YG님의 대화: @장맥주 @오도니안 님께서 정확히 설명해 주셨네요. 카오스 이론은 복잡한 현상 속에도 결정론적 법칙이 작동하며, 초기 오차가 시간에 따라 지수 함수적으로 증폭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니, 그 자체로는 오히려 결정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복잡한 현상을 지배하는 방정식을 파악해야 하고, 설사 그렇게 방정식으로 표현하더라도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지수적으로 커져서 나중에는 그 결과가 걷잡을 수 없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실상 장기적인 변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난점을 가지고 있죠.
한 가지 덧붙이면, 과학자 공동체(특히, 통계 물리학)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과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을 구분합니다. 카오스 이론은 앞에서 설명해 드린 대로 변수의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성 때문에 시스템을 지배하는 방정식을 알고 있더라도(결정론) 변화 예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접근입니다. 특히, 이 카오스 이론은 아주 적은 숫자의 변수로도 성립 가능합니다.
반면, 복잡계 이론은 말 그대로 수많은 구성 요소가 상호 작용하면서 개별 요소의 특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시적인 패턴이나 질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창발 및 자기 조직화) 현상을 설명할 때 쓰여요. 이 복잡계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개별 요소의 미시적 행로는 예측할 수 없을지라도, 이들이 모여 만드는 거시적인 패턴이나 질서를 예측하는 일은 (카오스 이론과는 다르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복잡계 현상을 규정하고, 그것의 통계적 패턴이나 질서를 예측하여 시스템의 위험을 제어하는 일이 이 분야의 중요한 연구 과제랍니다.
사실 국내에서 순수하게 카오스 이론만 연구하는 과학자는 거의 없어요. 왜냐하면, 어차피 방정식을 파악하더라도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니 현실적인 쓸모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반면, 복잡계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상당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정재승, 김범준 교수님 같은 분이 모두 복잡계 과학을 연구하시면서 커리어를 시작하신 분들이죠. 실제로 김 교수님 같은 분은 주식 시장의 패턴을 찾아보려는 시도도 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
@오도니안 님, 반갑습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날카로운 지적에 한참 고심했습니다. ^^
@YG 님, 전부 몰랐던 이야기예요. 상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늘 배웁니다.
음... 저 사실 복잡계 이론도 카오스 이론도 양자역학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좀 후회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결정론이라는 단어 자체도 저희 세 사람 중에 최소한 두 사람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뒷부분에서 아마 새폴스키 박사님이 자기 나름대로 지금 이 논의도 다루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도 처음 저의 질문이 불충분했던 것 같고, 두 분 의견에 조금 달리 생각하는 바도 있어서 적어 봅니다.
1. 유물론과 결정론은 구분해야 할 거 같습니다. 신이나 정신세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물질세계만을 인정하는 상태로도 결정론을 부정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실 양자역학의 표준해석이 바로 그 얘기를 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2. 인과성과 결정론도 구분해야 할 거 같습니다. ‘모든 사건이 빈틈없는 인과관계 속에서 일어난다’(a)는 것은 결정론이 아닙니다. ‘그래서 동일한 상태에서는 반드시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b)고 해야 결정론이지요. (a)를 인정하면서 (b)를 부정할 수 있고, 이번에도 역시 양자역학의 표준해석이 그 얘기를 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3. 저는 오도니안님이 적어주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지가 100%의 정확성으로 결정되지 않고 어떤 확률분포를 갖는다고 해서’라는 바로 그 문구에서 오도니안님이 이미 결정론을 부정하셨다고 보거든요. 외람된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거칠게 말해서 오도니안님의 주장은 제게 ‘결정론이 정밀하게 성립하지 않는다 해도 큰 틀에서 성립하니까 결정론은 성립한다’는 말씀으로 읽혀요. 저는 그렇다면 성립하지 않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결정론 같은 문제에서는요.
4. 결정론을 다른 의미로 해석해서, 고전적-기계론적 결정론이 아닌 보다 넓은 개념으로 확장해서, 예를 들어 유의미한 패턴이나 확률 분포가 나오니까 결정론은 여전히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제게는 좀 지적인 묘기처럼 보입니다(그리고 새폴스키 박사님이 이런 묘기를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차원에서, 양자역학을 표준해석이 아닌 다른 식으로 해석해서 결정론이 여전히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묘기처럼 보입니다.
5. 정작 이제부터 제가 묘기를 부리려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 저는 복잡계 이론으로 결정론이라는 세계관이 무의미해진다고 이해합니다. ‘세계는 결정론적이다’와 ‘초기 조건이 늘 미세하게 다르고 측정 오차가 있기 때문에 미래는 예측불가능하다’는 두 주장을 합치면 ‘세계는 결정론적이지만 인간은 영원히 알 수 없다’라는 결론이 나오겠지요. 그렇다면 ‘세계는 결정론적이지만’이라는 전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차고 속의 용 같은 불필요한 가설이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