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님의 대화: @오도니안 님, 반갑습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날카로운 지적에 한참 고심했습니다. ^^
@YG 님, 전부 몰랐던 이야기예요. 상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늘 배웁니다.
음... 저 사실 복잡계 이론도 카오스 이론도 양자역학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좀 후회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결정론이라는 단어 자체도 저희 세 사람 중에 최소한 두 사람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뒷부분에서 아마 새폴스키 박사님이 자기 나름대로 지금 이 논의도 다루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도 처음 저의 질문이 불충분했던 것 같고, 두 분 의견에 조금 달리 생각하는 바도 있어서 적어 봅니다.
1. 유물론과 결정론은 구분해야 할 거 같습니다. 신이나 정신세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물질세계만을 인정하는 상태로도 결정론을 부정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실 양자역학의 표준해석이 바로 그 얘기를 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2. 인과성과 결정론도 구분해야 할 거 같습니다. ‘모든 사건이 빈틈없는 인과관계 속에서 일어난다’(a)는 것은 결정론이 아닙니다. ‘그래서 동일한 상태에서는 반드시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b)고 해야 결정론이지요. (a)를 인정하면서 (b)를 부정할 수 있고, 이번에도 역시 양자역학의 표준해석이 그 얘기를 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3. 저는 오도니안님이 적어주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지가 100%의 정확성으로 결정되지 않고 어떤 확률분포를 갖는다고 해서’라는 바로 그 문구에서 오도니안님이 이미 결정론을 부정하셨다고 보거든요. 외람된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거칠게 말해서 오도니안님의 주장은 제게 ‘결정론이 정밀하게 성립하지 않는다 해도 큰 틀에서 성립하니까 결정론은 성립한다’는 말씀으로 읽혀요. 저는 그렇다면 성립하지 않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결정론 같은 문제에서는요.
4. 결정론을 다른 의미로 해석해서, 고전적-기계론적 결정론이 아닌 보다 넓은 개념으로 확장해서, 예를 들어 유의미한 패턴이나 확률 분포가 나오니까 결정론은 여전히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제게는 좀 지적인 묘기처럼 보입니다(그리고 새폴스키 박사님이 이런 묘기를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차원에서, 양자역학을 표준해석이 아닌 다른 식으로 해석해서 결정론이 여전히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묘기처럼 보입니다.
5. 정작 이제부터 제가 묘기를 부리려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 저는 복잡계 이론으로 결정론이라는 세계관이 무의미해진다고 이해합니다. ‘세계는 결정론적이다’와 ‘초기 조건이 늘 미세하게 다르고 측정 오차가 있기 때문에 미래는 예측불가능하다’는 두 주장을 합치면 ‘세계는 결정론적이지만 인간은 영원히 알 수 없다’라는 결론이 나오겠지요. 그렇다면 ‘세계는 결정론적이지만’이라는 전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차고 속의 용 같은 불필요한 가설이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요.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하시니 송구합니다. 제가 누구를 지적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고,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잘못 알고 하는 이야기라도 다른 이야기의 빌미가 될 수 있으면 의미가 있지 않겠나 생각하고 좀 덜 완성된 생각이라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섀폴스키 박사께서 따로 다루지 않으실까 싶긴 한데, 장작가님과 제 생각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고 결정론의 정의나 의미(시사점)에 대한 관점이 서로 좀 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는 결정론의 핵심이 물리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세계의 모든 사태가 결정되고 진행되어 나간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장작가님은 어차피 현재의 조건들을 살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결정론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서로 모순되는 건 아니고 결정론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가 좀 다른 거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과거의 자기가 한 선택에 대해 자유의지 관점과 결정론 관점에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자유의지 관점에서 보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의 감정이 클 것 같고, 결정론 관점에서 보면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일종의 운명 같은 거였어, 지금 와서 후회할 필요는 없어 하는 식으로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맞는지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논리적으로는 양쪽 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양립가능론자?)
활용 측면에서 보자면 후회의 감정이 반성과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고, 에너지만 소진시키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방해할 수도 있겠죠. 또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질텐데 수십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면 후회가 의미가 없고, 바로 어제 했던 선택이거나 내가 다시 범할 가능성이 높은 잘못에 관한 것이라면 후회와 반성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구요. 그런데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맞고 틀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결정론이 상당히 제 마음을 편하게 해 줄 때가 많습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처럼 힘든 감정들을 많이 줄여주고 미래에 대한 큰 불안이나 과도한 책임감 없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범위에 집중하자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하지만 그 때문에 네 삶이 치열하지 않고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흘러가고 있는 거라고 누가 지적한다면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