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팔님의 문장 수집: "왜 그 일이 방금 일어났을까?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전에 일어난 일은 왜 일어났을까? 무한히 반복되는 "그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끊이지 않는 흐름 속에서 터무니없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 이유인즉 어느 시점에서 세계(또는 전두피질이나 뉴런이나 세로토닌 분자 등등)의 상태 같은 '그 이전 것'이 허공에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음을 증명하려면, 이 모든 생물학적 전구체를 고려하더라도 어떤 행동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듯 갑자기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약간의 교묘한 철학적 논증으로 이를 회피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계에 알려진 어떤 것으로도 이를 증명할 수는 없다."
“ 1장에서 언급했듯이, 저명한 양립주의 철학자 앨프리드 마일은 자유의지에 대한 이러한 요구가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약간의 애매한 의미론이 끼어든다. 레비가 "구성적" 운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일에게는 "원격적” 운, 즉 시간적으로 매우 떨어졌기 때문에 ('예컨대 결정을 내리기 백만 년 전'이나 '결정을 내리기 1분 전') 자유의지와 책임을 배제하지 않는 운이다. 이는 원격성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혀 관련성이 없거나, 또는 원격적인 생물학적·환경적 운의 결과가 유심론자인 '당신'이 영향을 고르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필터링되거나, 또는 데닛이 말한 것처럼 원격적 불운이 장기적인 행운과 균형을 이루므로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일부 양립주의 이론가들은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역사는 무관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구성적' 운에 대한 레비의 표현은 매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역사는 관련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빌리면 "역사의 문제는 운의 문제다". 뉴런의 행동이 이전의 모든 통제 불가능한 요인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터무니없이 높은 잣대이거나 허황된 주장이 아닌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이 유일한 요구 사항일 수 있는 건, 이전의 모든 것이 '통제 불가능한 운의 다양한 특징'을 지닌 채 당신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 '지금의 당신'이 되었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3장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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