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D-29
YG님의 대화: 병행 독서로 이 책 꼭 같이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새 선생 주장에는 동의가 안 되어도, 그 취지에는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 책 읽으면서 벽돌 책 모임(특히 지난 달)에서 나눈 얘기를 많이 떠올렸어요.
제가 개인 소셜 미디어에 주요 대목 발췌한 것 공유드립니다. * “꿈을 가지라는 주문, 스스로의 삶이 주인이 되라는 압력은 취약한 집단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의 현재를 미래와의 연관 속에서 의미 있게 서사화하는 것은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자기 일대기를 설계하고 자기 생애를 서사적으로 꿈꾸라는 요청은 공허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만족감을 가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 (53쪽) * “이 사회의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주 일부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청소년의 삶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어른들의 시각에서 계속해서 말해지고 쓰인다.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른들은 자신이 말하는 바가 너무 안일하거나 진부하거나 지나치게 안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지금 청소년들이 겪어내고 있는 삶은 지금의 어른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이다. 더욱이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좁은 세계에 국한된 존재는 아닌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괴롭히는 것은 실제로는 입시 경쟁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다.” (57~58쪽)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학력자본 경쟁이나 입시 경쟁의 과열이 아니다. 학력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입시 경쟁의 과열은 사실상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주로 국한된 문제다. 전국의 학교에서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학교라는) 장의 구성원이 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교육의 장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일루지오를 형성하게 할 것인가의 차원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등 교육의 문제가 주로 입시 경쟁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현상은 교육 현실을 더욱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75~76쪽) * ”결국 평등에 대한 논의는 권력과 지배의 질서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권력과 지배를 행사하는 자리는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문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지배해야 한다’는 답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라고 답함으로써, 귀족정은 사실성 민주정(민주주의)이 아닌 능력정(능력주의)에 의해 대체되고 만 것이다. (152쪽) “특히 능력정(능력주의)에 내장된 사회 이동을 향한 독특한 믿음과 열망이야말로 이 공모를 지속시키는 핵심적인 힘이다. 능력만 있으면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능력주의는 정당화되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정당하다고 믿는 상징폭력의 질서는 재생산된다.” (172쪽) * “공정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요구를 비판하거나 힐난하는 논의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중등 교육과 입시 제도에 대해 점점 더 파악할수록, 이렇게 설계된 제도하에서 중등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가 공정성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성장하도록 제도를 설계한 세대가, 자신들이 설계한 제도에서 성장한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81쪽) * “대다수 학생들에게 학교란 무엇일까.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저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수업 시간을 견뎌야 되잖아요.” “수업 시간을 견뎌야죠.” (193쪽) * “인간이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근대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일상적으로 배반하는 실제의 세계 사이의 간극이 가장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은 학교다.” (204쪽)
YG님의 대화: 제가 개인 소셜 미디어에 주요 대목 발췌한 것 공유드립니다. * “꿈을 가지라는 주문, 스스로의 삶이 주인이 되라는 압력은 취약한 집단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의 현재를 미래와의 연관 속에서 의미 있게 서사화하는 것은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자기 일대기를 설계하고 자기 생애를 서사적으로 꿈꾸라는 요청은 공허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만족감을 가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 (53쪽) * “이 사회의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주 일부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청소년의 삶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어른들의 시각에서 계속해서 말해지고 쓰인다.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른들은 자신이 말하는 바가 너무 안일하거나 진부하거나 지나치게 안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지금 청소년들이 겪어내고 있는 삶은 지금의 어른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이다. 더욱이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좁은 세계에 국한된 존재는 아닌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괴롭히는 것은 실제로는 입시 경쟁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다.” (57~58쪽)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학력자본 경쟁이나 입시 경쟁의 과열이 아니다. 학력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입시 경쟁의 과열은 사실상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주로 국한된 문제다. 전국의 학교에서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학교라는) 장의 구성원이 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교육의 장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일루지오를 형성하게 할 것인가의 차원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등 교육의 문제가 주로 입시 경쟁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현상은 교육 현실을 더욱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75~76쪽) * ”결국 평등에 대한 논의는 권력과 지배의 질서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권력과 지배를 행사하는 자리는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문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지배해야 한다’는 답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라고 답함으로써, 귀족정은 사실성 민주정(민주주의)이 아닌 능력정(능력주의)에 의해 대체되고 만 것이다. (152쪽) “특히 능력정(능력주의)에 내장된 사회 이동을 향한 독특한 믿음과 열망이야말로 이 공모를 지속시키는 핵심적인 힘이다. 능력만 있으면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능력주의는 정당화되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정당하다고 믿는 상징폭력의 질서는 재생산된다.” (172쪽) * “공정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요구를 비판하거나 힐난하는 논의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중등 교육과 입시 제도에 대해 점점 더 파악할수록, 이렇게 설계된 제도하에서 중등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가 공정성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성장하도록 제도를 설계한 세대가, 자신들이 설계한 제도에서 성장한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81쪽) * “대다수 학생들에게 학교란 무엇일까.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저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수업 시간을 견뎌야 되잖아요.” “수업 시간을 견뎌야죠.” (193쪽) * “인간이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근대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일상적으로 배반하는 실제의 세계 사이의 간극이 가장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은 학교다.” (204쪽)
이 책의 저자 조은주 선생님은 흔히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meritocracy'를 '능력정'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democracy'가 사실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정'이나 '민치정'으로 번역되어야 그 의미에 부합하다는 지적과 같은 맥락의 주장입니다.
YG님의 대화: 제가 개인 소셜 미디어에 주요 대목 발췌한 것 공유드립니다. * “꿈을 가지라는 주문, 스스로의 삶이 주인이 되라는 압력은 취약한 집단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의 현재를 미래와의 연관 속에서 의미 있게 서사화하는 것은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자기 일대기를 설계하고 자기 생애를 서사적으로 꿈꾸라는 요청은 공허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만족감을 가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 (53쪽) * “이 사회의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주 일부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청소년의 삶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어른들의 시각에서 계속해서 말해지고 쓰인다.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른들은 자신이 말하는 바가 너무 안일하거나 진부하거나 지나치게 안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지금 청소년들이 겪어내고 있는 삶은 지금의 어른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이다. 더욱이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좁은 세계에 국한된 존재는 아닌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괴롭히는 것은 실제로는 입시 경쟁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다.” (57~58쪽)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학력자본 경쟁이나 입시 경쟁의 과열이 아니다. 학력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입시 경쟁의 과열은 사실상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주로 국한된 문제다. 전국의 학교에서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학교라는) 장의 구성원이 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교육의 장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일루지오를 형성하게 할 것인가의 차원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등 교육의 문제가 주로 입시 경쟁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현상은 교육 현실을 더욱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75~76쪽) * ”결국 평등에 대한 논의는 권력과 지배의 질서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권력과 지배를 행사하는 자리는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문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지배해야 한다’는 답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라고 답함으로써, 귀족정은 사실성 민주정(민주주의)이 아닌 능력정(능력주의)에 의해 대체되고 만 것이다. (152쪽) “특히 능력정(능력주의)에 내장된 사회 이동을 향한 독특한 믿음과 열망이야말로 이 공모를 지속시키는 핵심적인 힘이다. 능력만 있으면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능력주의는 정당화되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정당하다고 믿는 상징폭력의 질서는 재생산된다.” (172쪽) * “공정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요구를 비판하거나 힐난하는 논의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중등 교육과 입시 제도에 대해 점점 더 파악할수록, 이렇게 설계된 제도하에서 중등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가 공정성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성장하도록 제도를 설계한 세대가, 자신들이 설계한 제도에서 성장한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81쪽) * “대다수 학생들에게 학교란 무엇일까.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저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수업 시간을 견뎌야 되잖아요.” “수업 시간을 견뎌야죠.” (193쪽) * “인간이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근대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일상적으로 배반하는 실제의 세계 사이의 간극이 가장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은 학교다.” (204쪽)
학교나 학생들의 현실을 많이 접해 본 건 아니지만 공감가는 대목들이 많네요. 새 박사님도 언급하셨지만 뇌과학 책에서는 사춘기 시절에 어떤 경험들을 하느냐에 따라 뇌가 크게 다른 구성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존의 잡다한 시냅스들 간의 연결이 상당 부분 가지치기 되고 핵심적인 뉴런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시기이죠. 그런데 우리는 사춘기의 중심이 되는 몇 년이 향후의 사회적 지위와 소득을 결정짓는다는 것에만 주목하고 미래를 위해 희생이 당연한 시기로 여깁니다. 학교에서 접하는 현실들이 청년들이 갖는 기본적인 세계상이 되는 것이겠죠. 어떻게 보면 굳어져 가는 결정론적 체제 안에서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육인 것 같기도 해요.
향팔님의 대화: 음, 그러네요. 어쩐지 요즘 불교에 호감과 관심이 생겼답니다. (불교가 요즘 유행대로 ‘힙’해 보여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ㅎㅎ) 근데 그러면 결정론자는 도인처럼 사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치적 성향은 둘째 치고요.) 언제나 자기 수양을 하며 깨치려 노력하는….
전념해서 수양하시는 스님들은 다르겠지만. 결정론적 관점을 갖게 되면 자꾸 그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같은 경험을 해도 그런 쪽으로 해석을 하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이 있을텐데, 구태여 노력한다기보다는 그런 관점이 저한테는 잘 맞아서 몸에 배는 것 같습니다.
오도니안님의 대화: 학교나 학생들의 현실을 많이 접해 본 건 아니지만 공감가는 대목들이 많네요. 새 박사님도 언급하셨지만 뇌과학 책에서는 사춘기 시절에 어떤 경험들을 하느냐에 따라 뇌가 크게 다른 구성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존의 잡다한 시냅스들 간의 연결이 상당 부분 가지치기 되고 핵심적인 뉴런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시기이죠. 그런데 우리는 사춘기의 중심이 되는 몇 년이 향후의 사회적 지위와 소득을 결정짓는다는 것에만 주목하고 미래를 위해 희생이 당연한 시기로 여깁니다. 학교에서 접하는 현실들이 청년들이 갖는 기본적인 세계상이 되는 것이겠죠. 어떻게 보면 굳어져 가는 결정론적 체제 안에서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육인 것 같기도 해요.
요즘 10대, 20대가 극우화되고 있다며 비난하는 얘기가 많고 지난번 배재고 사건도 그렇다 하는데, 저는 이게 결국 기성세대가 만든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그 ‘586’들은 이게 다 리박스쿨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만요.) 그들이 만들어놓은 구조와 제도 아래서 아이들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하겠다, 싶기도 하고요.
향팔님의 대화: 요즘 10대, 20대가 극우화되고 있다며 비난하는 얘기가 많고 지난번 배재고 사건도 그렇다 하는데, 저는 이게 결국 기성세대가 만든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그 ‘586’들은 이게 다 리박스쿨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만요.) 그들이 만들어놓은 구조와 제도 아래서 아이들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하겠다, 싶기도 하고요.
교육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건 자유의지적인 관점(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이고, 구조적 원인을 찾는 것이 결정론적 관점이지 않을까 합니다. 전 결정론 예찬론자인 모양입니다.^^ 근데 결정론의 문제는 구조적 원인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TT
오도니안님의 대화: 전념해서 수양하시는 스님들은 다르겠지만. 결정론적 관점을 갖게 되면 자꾸 그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같은 경험을 해도 그런 쪽으로 해석을 하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이 있을텐데, 구태여 노력한다기보다는 그런 관점이 저한테는 잘 맞아서 몸에 배는 것 같습니다.
아, ‘구태여 노력한다기보다는 그런 관점이 잘 맞아서 몸에 배는 것 같다’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저는 그동안 ‘세상은 결정론적이지. 그치만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지 않겠어? 당연히!’ 라고 대강 생각해왔는데요. (사실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새 선생님의 책을 읽고 이 방에 계신 분들의 글을 읽을수록 ‘아 그런 생각은 모순일 수도!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말이 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점점 들고 있습니다 ㅎㅎ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이 공격성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가졌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환경에 따라 길거리에서 싸움을 벌이거나 매우 공격적인 방식으로 체스 경기를 진행할 수 있다. 또는 위험 감수와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가졌다면, 환경에 따라 상점을 털거나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다. 또는 중독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가졌다면, 환경에 따라 클럽에서 위스키를 너무 많이 마시는 브라만이 되거나 헤로인 구입할 돈을 필사적으로 훔치는 도둑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96p,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장맥주님의 대화: 333쪽, [길이가 60센티미터가 넘는 거대한 갯민숭달팽이인 캘리포니아 군소] 사실 저도 @연해 님만큼이나 다리가 다섯 개 이상인 친구들이 싫은데요, 거기에 더해 끈적하고 미끈덩한 녀석들도 싫어합니다. 길이가 60센티미터가 넘는... 음... 아주 싫네요.
으아아 저도요. 비 오고 난 다음 날 길가에 기어다니는 작은 생명체에도 화들짝 놀라곤 하는데, 60센티미터가 넘는다니...(군소 검색했다가 또 놀람) 뜬금없지만 (추억의) 먹바퀴가 떠오릅니다. 작가님:) 그때 강력한 살충제를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넸던 것 같은데 말이죠.
YG님의 대화: @장맥주 역자 양병찬 선생님도 꼼꼼하게 번역 잘하시기로 유명하신 분이세요. (웃자고 덧붙이면, '사실, 내가 제일 잘해!' 이런 스타일이시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김명남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행동』과 비교하면 글 맛은 조금 다른 듯도 합니다.
<행동>과는 다른 차원의 장벽을 느끼고 있는데... 원문 내용 자체때문인지 번역 때문인지... 제 눈이 한문장을 반복적으로 오고가고 있네요...
제가 처음 책을 다 읽고 진지한 고찰 없이 빠르게 든 인상은 근거로 들고 있는 모든 지점이 그 자체로 여러 관점의 해석의 문제가 있는데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위해 판을 너무 크게 벌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편협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다잡으려 많은 분들께서 올려 주시는 여러 글들을 따라 읽으며 처음 읽을 때 인덱스 붙인 곳들을 찾아서 다시 읽고 있습니다. 다소 다른 얘기이나 요즘 이 모임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저의 아주 지엽적인 경험에 기반을 한 것이기는 하나 나름의 정교한 논리를 가졌든 그냥 통념을 따르는 느낌 정도의 것이든 소위 세상은 결정론적으로 작동하고 자유의지는 있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철학자와 법학자의 약90%가 이 부류에 속한다고 언급하는데요, 사실 여부를 떠나 보편적으로 그러하다면 이러한 경향성이 인간의 인식의 방식과 연관이 있는지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오래 전에 인간은 먼저 직관과 감정으로 판단하고 후에 논리적 근거를 들며 판단의 정당성을 제시한다(?) 는 식의 주장을 읽은 것 같은데 대니얼 데닛의 저서의 내용도 그렇고 다 기억에서 너무 흐릿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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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님의 대화: @소리없이 님 질문을 듣고서 간단히 제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새폴스키는 지나가다 우연히 새우깡을 사거나 필통에서 펜을 쥐는 사소한 행동까지도 "이전의 생물학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새폴스키의 사전에 '예외'는 없으니까요. ​이 '의도'의 문제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새폴스키가 말하는 의도를 한 사람의 '정체성(Identity)'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기계적인 반응이 있을 수도 있고, 나의 오랜 가치관이나 정체성에 깊게 닿아 있는 중요한 반응(직업 선택, 도덕적 결단 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행위들은 개인의 고유성과 맞닿아 있기에 훨씬 중요하죠. ​새폴스키가 주목하는 전선도 바로 이 '정체성이 반영된 의도'입니다. 많은 철학자는 사소한 행동은 결정되어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 깊이 고뇌하고 내 정체성에 따라 내린 '의도적인 선택'만큼은 자유 의지라고 부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새폴스키는 바로 그 지점에 돋보기를 들이댑니다. "그 정체성과 고유성은 대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라는 질문이죠. ​내가 사소하게 새우깡을 고르는 취향부터, 타인을 대하는 도덕적 태도(혹은 우발적 폭력성)라는 정체성까지, 그 깊은 의도마저도 결국 유전자, 태아 시절의 자궁 환경, 유년기의 양육 방식, 사회적 자극들이 촘촘하게 짜낸 결과물이라는 것이 새폴스키의 주장입니다. 즉, 사소한 행동이든 정체성이 담긴 행동이든 모두 인과관계의 그물 안에 있다는 뜻이지요. 흠, 저도 계속 생각을 정리 중이랍니다. 저는 틈새가 있다는 쪽이라서요. :)
새폴스키가 말하는 의도를 정체성(identity)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라는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는 데이비드 이글만의 "무의식" 개념이 떠올랐거든요.
밥심님의 대화: 이번 책이 전작인 <행동>에 비해 어렵다는 의견들이 있는데요, 릴랙스하시라고 한국인 유튜버가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주제로 새폴스키 교수를 인터뷰한 동영상을 링크합니다. <행동>을 읽으신 분들이나 안 읽으신 분들 모두 이미 새폴스키는 결정론을 지지하면서 자유의지는 없다고 주장하는 완전한 비양립주의자임을 알고 있으므로 인터뷰 내용이 그다지 스포일러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전 책을 1장까지만 읽은 상태에서 인터뷰를 봤습니다. 혹시라도 스포일러를 단 하나라도 당하고 싶지 않다는 분은 링크를 누르지 않으셔도 되고 히피 스타일의 범상치 않은 외모인데도 매우 착해보이는 얼굴로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새폴스키 교수를 잠깐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zHSEaksC5z4?si=gGL9jlS1mqVWy752 그리고 이 유튜브 채널에서는 김새섬 그믐 대표님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네요(9개월 전에). 김대표님의 재활이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 감사합니다. 책보다 인터뷰가 더 쉽고 이해가 잘 됩니다~ ㅎㅎ introduction으로 이걸 먼저 보고 책을 읽는것도 좋겠어요.
YG님의 대화: @향팔 우리 새폴스키 옹도 말씀하셨잖아요. 철학자들이 "설치는" 바람에 이해하기도 벅차는 상황이 되었다고. 핵심은 '리벨 실험은 자유 의지 논쟁에서 의미가 없다 혹은 크지 않다'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
결정한다는 것, 의도하는 것, 실제로 뭘 의미하는지에 대핸 진지한 의미론적 고찰이 필요한데... 철학자들이 미묘한 방식으로 설치고 있다고... ㅋㅋ 아 새폴스키 교수님 인터뷰 표정과 설치는 철학자를 대응하시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ㅋ
향팔님의 대화: 아, ‘구태여 노력한다기보다는 그런 관점이 잘 맞아서 몸에 배는 것 같다’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저는 그동안 ‘세상은 결정론적이지. 그치만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지 않겠어? 당연히!’ 라고 대강 생각해왔는데요. (사실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새 선생님의 책을 읽고 이 방에 계신 분들의 글을 읽을수록 ‘아 그런 생각은 모순일 수도!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말이 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점점 들고 있습니다 ㅎㅎ
저요! 사실 어제 밤에 단독으로 올리려고 했는데 마침 그믐이 잠시 먹통되는 바람에 오늘 향팔님 생각이 저와 비슷해서 답글로 올립니다. 우선 관련해서 영화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란 영화죠. 필립 느와레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환데, 그렇게 말하면 잘 모르실 분도 혹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영사 기사 알프레도를 연기했던 배우의 젊은 시절 영화죠. 워낙 오래전에 본 영화라 정확한 내용은 기억에 없고, 하나 기억나는 장면은 아름답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남편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붓는 아내가 어느 날 사고로 사망을 합니다. 물론 슬프기도 하겠지만 그건 장례 기간 동안뿐이고 알렉산더는 그때부터 불행 끝 행복 시작이죠. 그에게 행복은 침대를 떠나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머리고 수염이고 엉망으로 자랐는데도 별로 신경 쓰지 않죠.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좀 다르긴 한데, 제가 기억하는 건 알렉산더의 엉망으로 자란 머리와 수염이었습니다.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있으면 좋고, 발전적인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안 좋은 쪽으로 간다고. 한마디로 짐승 같아진다는 얘기죠. 늑대 인간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을 연마하고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교육이란 게 필요하고, 이것이 인간과 동물이 다른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새 박사님 결정론을 인정해 버리면 인간이 교육을 굳이 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밥심님 올린 새 박사님 인터뷰 중에 교도소 죄수들에 관한 얘기를 잠깐 언급했는데,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면 자신이 지은 죄도 내 의지가 아닌 그렇게 하기로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라고 자기 변명을 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굳이 속죄할 필요가 없어지고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을 죽여놓고도 그게 뭐 어때서...? 이렇게 되어버린다는 거죠. 그렇다면 인간의 양심은 어디로 간 걸까요? 그런 건 아예 없는 걸까? 오늘날의 교도소가 교정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사회와 격리만 시킨다는 새 박사님의 지적은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사형 제도가 사라졌죠. 적어도 선진국에선 사형이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종신형을 때릴망정. 물론 일각에선 사형제도의 부활을 주장합니다. 어쨌든 그들이 사형을 피했다고 해서 그 사실에 대해 감사를 하고 새 마음으로 고쳐먹느냐면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들은 여전히 같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높고 범죄는 줄어들지 않죠. 그래봤자 종신형이니까. 교정이 필요한 건데 격리만 시켜놓다니. 사형의 폐지가 인도주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 의해 희생 당한 사람과 유가족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처사라고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사형제도가 있었을 땐 양심에 따라 죽어서라도 죄를 씻겠다는 사람이 있지만 이젠 그 마음이 작동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물론 사형제도의 폐지론자는 재판의 오판으로 억울하게 죽는 사람을 막기위한 거라고 합니다. 그것도 일리는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쓰고 보니 새 박사님이 말씀하신 결정론이란 게 신경학보단 이미 사회제도가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철학이나 특히 신학에서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다루어왔던 주제이긴 합니다. 그것을 신경학에서도 다룬다는 게 저로선 이색적이긴 합니다. 용어도 어렵고. 결정론을 감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기독교에서의 '원죄'로 치환해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에 열린 마음을 가진 분들은 생각해 볼 여지는 있겠지만 부정적인 분들도 있을 겁니다. 기독교에선 어떤 신경 작용 보다는 존재론에 더 주목을 하죠. 그래서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기 보단 둘 다를 수용하되 자유의지를 좀 더 강조합니다. 뭐 꼭 기독교 사고관이 아니더라도 새 박사님 이론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미 그런 거 같긴하지만. 저도 주워들은 거 대충 짜깁기 한 것이니 그냥 참고로 이런 생각도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해 주시길. 혹시 이 원죄에 대해 흥미가 있으시다면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아마도 도 선생님의 '카씨 형제들'과 비교해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빙점의사인 게이조와 그의 아내 나쓰에는 어린 딸 루리코가 오느 날 피살된 채로발견되자, 딸을 읽은 ㅅ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요코라는 딸아이를 데려온다. 그러나 주인공 요코는 성장하여 자신이 살인범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죄를 깊이 느끼고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꾀하여 혼수상태에 빠진다.
오구오구님의 대화: 새폴스키가 말하는 의도를 정체성(identity)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라는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는 데이비드 이글만의 "무의식" 개념이 떠올랐거든요.
앗, 49쪽에 관련 내용이 조금 나오네요. 각 장을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써야겠네요 ㅎㅎ
이러한 난맥상 속에서 '전의식적 결정의 중재자'로서 의식이 필요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고? 의식적 중재의 순간에 우리는 결정을 거부함으로써 그 결정이 이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51,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오도니안님의 대화: 아무리 결정론을 지지한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짜장면과 짬뽕 중 무엇을 먹을지는 제가 선택하는 거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고민을 하면서 미리 그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도 대부분의 경우엔 불가능하구요. 하지만 제가 짜장면과 짬뽕 중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에는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과 상황적인 우연을 포함해서 나름대로 필연적인 이유들이 있기도 하겠죠. 양쪽 다 명백한 상식이기 때문에 결정론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선택하는 자유'는 양립 가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궁금한 건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 우리가 생각이나 결심을 통해 선택을 바꿀 수 있다는 상식적인 현실과 다른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시사점을 갖는 것인지 하는 거에요. 그에 대해 새폴스키 박사님이 진행해 주실 걸로 기대하고 있어요.
양립주의자의 입장이시군요. ㅎ 짜장면과 짬뽕 중 무엇을 먹을지를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 몸의 전해질 상태, 그날의 혈당이나 수면상태 어릴때 어떤 음식을 좋아하도록 길들여 졌는지 같은 무수한 생물학적 요인들이 만들어 낸다는게 새폴스키의 주장 같아요. 결국 나의 의지(사고)와 몸(생물학적반응)이 하나이고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구요. 저는 의지와 의식이 어렵네요.
내가 확실히 경멸적으로나 더 나쁘게 들리게 하려고 노력할 때는,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는 이러한 비역사적 관점이 도덕의 가면을 쓸 때다. 우리가 누군가의 행동을 분석할 때 선행 요인을 무시하는 이유가 뭘까? 다른 사람이 왜 나와 다른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60-61,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Determined, not predeterm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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