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님의 대화: 주말에 조금 속도를 내서 10장까지 읽었습니다.
카오스이론, 창발적 복잡성, 그리고 양자 불확정성을 무기로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양립주의자들에게 대항하여 새 선생님이 반박하는 논리에 별로 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요.
아무래도 새 선생님이 쓴 책이니까 자신의 논리가 타당함을 보이느라 양립주의자들의 결정적인 한 방을 숨기고 보여주지 않은 탓일까요? 그걸 파악하려면 양립주의자들이 쓴 책을 읽고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지 다시 살펴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있을지.... ㅠㅠ
10.5장부터는 무슨 이야기가 더 있을지 모르겠는데, 10장까지 이미 새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예전에 <행동>을 읽을 때는 그 쌈박한 논리 전개에 매혹되어 새 선생님이 책을 쓴 의도는 파악할 생각조차 못하고 지엽적 지식의 향연에 열광해버리고 말았는데 지금 이 책을 읽다 보니 <행동>은 자유의지가 없다라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아무튼, 전 새 선생님이 자신이 정의한 범주의 '자유의지'는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에 지금까지는 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YG 님께서는 새 선생님의 주장에 틈이 있다고 하셨고, 이 방에 계신 상당 분들이 새 선생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 분위기 같습니다. 새 선생님 주장에 있는 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또는 새 선생님 주장의 어떤 면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등에 대해 차차 의견들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 계속 진도 나가고 있겠습니다.
저는 7장까지 읽었는데 새 선생님의 주장에 진작 넘어가 있습니다. (아마도 @밥심 님께서 올려주신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부터..ㅎㅎ)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서 2프로 정도는 ‘그..그래도 자유의지가 있지 않을까?’ 우기면서 믿고 싶은 건, 제 경우에는 이런 심리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어떤 나쁜 짓을 저질렀을 때 그것이 그의 전적인 책임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제 맘 속에서는 고 인간을 탓하고 개인적 책임을 지우고 싶은 심리가 작동하거든요. 새 선생님 말씀을 인정한다면 내가 그에게 퍼붓고 싶은 비난과 탓을 못 하게 되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즉 논리적이 아닌 감정적인 이유에서 그냥 덮어놓고 우기고 싶은 심리라고나 할까요 ㅎㅎ (제 경우입니다.)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건, 새 선생님도 책 초반에 말씀하셨듯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재앙’이 아닌 이유, 자유의지가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더 나아지는가, 특히 가난한 자와 약자들의 입장에서…. 요런 논의에 부쩍 관심이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