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기 한때 기독교 세례를 받으셨던 여러분이 사색해 볼 만한 좋은 선배들이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 에리히 프롬, 테리 이글턴 등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았던 사상가들이죠.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았고, 때로는 신이라는 지평이 필수불가결하다고도 주장했던 이들입니다. 저는 이들의 고민을 엿보는 게 새 선생의 결정론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알다시피,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토대와 그것이 결정한 계급 같은 '구조'가 주체의 행동을 아주 강하게 구속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이 대결해야 했던 당대의 기계적 마르크스주의는 구조와 주체의 관계를 일방통행식 인과관계로 규정했죠. 이들은 이런 딱딱한 '결정론'에 깊은 회의를 느꼈지만, 동시에 토대와 계급이 주체를 규정짓는 기본 전제 또한 무작정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이 구조의 거대한 속박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삶을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자율적 주체성'의 가능성을 지켜내기 위해 호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초월적 존재(신학적 지평)'입니다.
이들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 '초월성'은 위에서 통제하는 '가부장적 신'이 아니었습니다. 구조가 인간을 한낱 기계나 부속품으로 환원하려고 할 때, 거기에 맞서 인간의 존엄과 주체성을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의 근거로서의 초월성이었지요.
새 선생이 뇌과학이라는 생물학적 구조로 인간을 해체하려 할 때, 우리가 '그럼에도 주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선배들의 고뇌와 닿아 있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D-29

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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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YG님의 대화: @장맥주 @오도니안 @오구오구 @밥심 님, 모두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7월 27일 월요일과 내일 28일 화요일은 13장 '우리는 변화를 일구어낸 경험이 있다'를 읽습니다.
먼저 읽으신 분들은 13장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이번 장이 바로 @장맥주 작가님께서 여러 차례 언급하신 책임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지 능력이 떨어진 게 확실한 노인이 운전을 하다가 평일 저녁 야근이나 회식하러 가던 회사원을 여럿 죽인 일의 책임을 물을 것인가, 음주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한 가족의 가장을 죽인 일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 광주에서 이채원 양을 살해한 장윤기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인가 등. 새 선생은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게 과연 합당한 것인가?
저는 새 선생이 구조주의자가 흔히 빠지는 오류의 늪으로 걸어들어갔다고 보는 편입니다만; 다들 13장을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흥미롭게도, 13장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와도 깊게 통합니다. (저는 영화는 보지 못했어요. 이창동 감독 싫어해서요! :))
아주 흥미로운 비교일 수 있는데요. 이미 신에게서 용서를 받았다는, 자기 아들을 잃은 살인자를 맞닥뜨린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신'의 자리에 새 선생의 '생물학적 구조'를 집어넣으면 아주 똑같은 구도가 성립하거든요. 한때 '신'의 이름으로 주어졌던 면죄부를 '생물학적 구조'의 이름으로 바꾸어 주었을 때, 피해자의 고통과 '책임'의 문제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벌레 이야기 (양장)'이청준 전집' 20권. 이번 전집에 실린, 1985년부터 1987년 봄 무렵까지 3년여에 걸쳐 발표한 중단편 10편을 통해 작가는, 5공화국의 기묘한 담론 질서와 그 집권 세력인 신군부 체제는 물론이고 1985년 무렵의 끔찍한 모더니티 일반을 겨냥해 비판하고 있다.

밀양신애는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아들 준을 데리고 이사한다. 오는 길에 고장난 차를 고쳐주러 온 카센터 사장 종찬의 렉카를 타고 밀양으로 들어가는 세 사람. 신애는 남편의 고향에 덩그러니 정착한 모자를 측은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애써 씩씩하게 군다. 종찬은 이 속모를 여자를 그날부터 졸졸 따른다. 살 집을 구해주고, 피아노 학원을 봐주고, 그녀를 따라 땅을 보러 다니며 그의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늘 네댓 걸음 뒤에서, 부르면 다가서고 밀쳐내면 물러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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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밥심님의 대화: 아 직 일주일이나 기한이 남았는데 일찍 완독하신분들이 몇분 계시네요. @오도니안 님, @오구오구 님 수고 많으셨고 중간 중간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완독했는데 마지막 장 476쪽에 인용된 테드 창의 단편소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이 소설이 리벳의 실험을 모티프로 했음에 왠지 신이났고요, 테드 창이 생각하는 자유의지가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느라 시간을 더 쓰고 있습니다. 5쪽에 불과한 이 짧은 소설을 그 때는 신기하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는데 말이죠. 테드 창의 단편집 <숨>에 세 번째로 실려있는 소설입니다.
안 읽은 책이 너무 많네요~ 책 소개 감사해요 5쪽이라니 오늘 퇴근길에 당장 도서관 가봐야겠어요

YG
YG님의 대화: 사실, 여기 한때 기독교 세례를 받으셨던 여러분이 사색해 볼 만한 좋은 선배들이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 에리히 프롬, 테리 이글턴 등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았던 사상가들이죠.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았고, 때로는 신이라는 지평이 필수불가결하다고도 주장했던 이들입니다. 저는 이들의 고민을 엿보는 게 새 선생의 결정론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알다시피,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토대와 그것이 결정한 계급 같은 '구조'가 주체의 행동을 아주 강하게 구속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이 대결해야 했던 당대의 기계적 마르크스주의는 구조와 주체의 관계를 일방통행식 인과관계로 규정했죠. 이들은 이런 딱딱한 '결정론'에 깊은 회의를 느꼈지만, 동시에 토대와 계급이 주체를 규정짓는 기본 전제 또한 무작정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이 구조의 거대한 속박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삶을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자율적 주체성'의 가능성을 지켜내기 위해 호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초월적 존재(신학적 지평)'입니다.
이들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 '초월성'은 위에서 통제하는 '가부장적 신'이 아니었습니다. 구조가 인간을 한낱 기계나 부속품으로 환원하려고 할 때, 거기에 맞서 인간의 존엄과 주체성을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의 근거로서의 초월성이었지요.
새 선생이 뇌과학이라는 생물학적 구조로 인간을 해체하려 할 때, 우리가 '그럼에도 주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선배들의 고뇌와 닿아 있습니다.
덧붙이면, 한국에서도 완고한 마르크스주의자(올드보이)들이 만년에 생물학적 결정론을 만나고서 아주 환호했던 흥미로운 지성사가 있습니다. :)

사회생물학 대논쟁생물학은 인간과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가? 동물만이 아닌 인간의 사회적 행동까지 생물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하고자 하는 '사회생물학'과 생물학을 중심으로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통합하려는 '통섭'을 둘러싸고 벌인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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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YG님의 대화: 흥미롭게도, 13장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와도 깊게 통합니다. (저는 영화는 보지 못했어요. 이창동 감독 싫어해서요! :))
아주 흥미로운 비교일 수 있는데요. 이미 신에게서 용서를 받았다는, 자기 아들을 잃은 살인자를 맞닥뜨린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신'의 자리에 새 선생의 '생물학적 구조'를 집어넣으면 아주 똑같은 구도가 성립하거든요. 한때 '신'의 이름으로 주어졌던 면죄부를 '생물학적 구조'의 이름으로 바꾸어 주었을 때, 피해자의 고통과 '책임'의 문제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책을 읽으며 피해자의 고통과 '책임'의 문제를 저도 생각해보았어요. 관련해서 개인적인 경험도 떠오르더라구요,
저희 아이가 교사에 의한 아동학대 문제로 수년간 송사를 했었는데요. 당시 가해자 처벌이 피해자에게 위로가 된다는 경험을 했어요. 가해자가 계속 부인하고 변명하니까 판사가 법정 구속을 시켰어요. 그때 피해자 부모들이 모두 눈물 흘리며, 공정한 판사에게 감사했었죠. 결국 그 교사는 파면되고 민사소송까지 하여 그렇게 마무리되었는데, 그 일이 상처를 치유하지는 않더라구요. 그냥 상처는 상처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제일 힘들었던것은 그 가해자가 동네에 계속 같이 사는 부분이었고, 특히 친구네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아서 재판 하는 도중에도 아침에 일찍 골프채를 매고 골프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을때 가슴이 쿵쾅거 리고 힘들더라구요.
책임의 문제에 대해서도, 결국 책임이라는 것은 피해 복구의 측면에서 이해될수 있는데 피해복구가 가능하지는 않더라구요.
결국 그 가해자가 어딘지 모를 곳으로 이사를 갔고 재판은 끝났고.. 시간이 지나서 생각이 덜 나고 가슴이 덜 쿵쾅거리면서 천천히 회복되는 거 같더라구요. 물론 여전히 아이에게 틱 반응이 나타나면 분노가 일기도 합니다
ps 밀양은 정말 너무나 끔찍하고 힘든 영화였어요.

Nana
369페이지 주석에서 분류한 것에 따르면, 저는 두번째 부류인 것 같아요. 자유의지를 훨씬 강하게 믿는다고는 못하겠지만 놓을 수 없는? 예전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죠, 소련의 우주인이 우주에 나가서 보고 ‘신은 없더라‘ 라고 한 반면 미국 우주인은 ‘하나님이 만든 세계는 정말 아름답더라‘ 라고 했다고요. 전 이렇게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분자단위까지 세세하고 파고들고 있으면 과연 우리가 기계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면서 오히려 영혼과 마음의 존재를 믿게 되는 것 같아요. 새선생님이 근거를 들라고 한다면 어버버 거리겠지만 어쩌겠어요? 제 코끼리는 그쪽으로 가겠다는데…
13장을 읽다보니 드는 생각은,
1. 뇌전증환자는 잘못이 없지만 술을 먹기 위해 약을 안 먹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잘못이 아니면 음주운전도 잘못이 아니겠죠. 새선생님은 분노하지 말라고, 처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말씀하실 것 같은데 (14장에서) 세상에는 다른 사람이 처벌 받는 것을 여러번 봐야 뇌.에.서. 하지말아야겠다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람도 있을거라고요. 처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분리가 중요한 거면 영원히 감옥에서 나오지 않아야 하는겁니다. (이게 더 문제 아닙니까? 감옥이 교화하는 곳이라고 생각해볼 때 이미 결정된 뇌를 가진 사람을 그 1-2년 감옥에 둔다고 뭐 많이 변화하겠습니까? .. 이러면 두번째 기회에 대한 고찰로 넘어가야 할텐데 나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지도 궁금하군요)
2. 결정론 입장에서 보면 후성 유전학적인 측면에서도 뇌에 영향을 미치는데, 3장에서 아동기 성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양육,또래 사회화, 환경적 영향,문화적 신념과 가치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4가지 중 부모가 전혀 관련이 없는 항목이 있을까요? 이렇게 따진다면 조현병 발병의 환경적 스트레스에도 부모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 인데, (물론 부모도 자유의지없이 본인이 자라온 대로 아이들을 키운다…라고 겹쳐진 거북이론을 펼치겠지만) 오히려 결정론이 부모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네요. 현대에는 조현병은 좀 덜하지만 자폐(아직도)나 우울증같은 정신병리적인 질병에 가정환경문제나 부모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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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발작을 일으키는 것'과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운전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똑같이 생물학적이며, 똑같이 당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신경계의 산물이다.
[…] 4장과 앞 단락의 과학에 기반하여 '발작을 일으킨다고 해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고, 약을 먹지 않았음에도 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삶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것 역시 동일하게 부당하고 과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설사 누군가가 술을 마실 때 거나하게 취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약을 먹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 학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면 명심하라. 그들이 약을 먹지 않고 운전하도록 만든 뇌는 1초 전, 1분 전… 천 년 전에 일어난 통제 불가능한 모든 것의 최종 결과물이다. 당신이 친절하거나 똑똑하거나 동기가 부여되도록 만든 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솔직히, 이 글을 계속 쓰는 것이 망설여진다(너무 나갔다며 등돌리는 독자들이 있을까봐). 하지만 '약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운전대를 잡은 환자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동일한 발상의 전환을 할 때, 세상은 훨씬 더 정의로운 곳이 될 것이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13장 우리는 변화를 일구어낸 경험이 있다,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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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향팔님의 문장 수집: "'발작을 일으키는 것'과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운전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똑같이 생물학적이며, 똑같이 당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신경계의 산물이다.
[…] 4장과 앞 단락의 과학에 기반하여 '발작을 일으킨다고 해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고, 약을 먹지 않았음에도 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삶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것 역시 동일하게 부당하고 과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설사 누군가가 술을 마실 때 거나하게 취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약을 먹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학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면 명심하라. 그들이 약을 먹지 않고 운전하도록 만든 뇌는 1초 전, 1분 전… 천 년 전에 일어난 통제 불가능한 모든 것의 최종 결과물이다. 당신이 친절하거나 똑똑하거나 동기가 부여되도록 만든 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솔직히, 이 글을 계속 쓰는 것이 망설여진다(너무 나갔다며 등돌리는 독자들이 있을까봐). 하지만 '약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운전대를 잡은 환자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동일한 발상의 전환을 할 때, 세상은 훨씬 더 정의로운 곳이 될 것이다."
이제 13장을 읽기 시작했는데 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네요 ㅎㅎ “과학의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나 파격적인 것이었다니 ㅜㅜ 아이고

꽃의요정
연해님의 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