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a @이기린 님, 덥고 습한 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내는 책에 '능력주의와 자유 의지'에 대한 글을 하나 써보려고 하는데, 그때 기대해 주세요! :)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D-29

YG

YG
@Nana @이기린 님, 저는 리사 펠드먼 배럿의 자유 의지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배럿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과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새 선생과 그가 높이 평가하는 조지프 르두 같은 과학자가 아주 극찬하는 추천사까지 썼고, 사실 감정 연구의 표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나온 감정 관련 연구와 저서일수록 배럿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럿은 새 선생과 자유 의지를 놓고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새 선생이 자유 의지를 놓고서 아주 강하게 이야기한 배럿의 이전 저서의 논지를 왜 모두 논의에서 누락했는지 의아해요. 심지어 자기가 추천사까지 쓴 책의 한 장이 자유 의지 대목인데요.)
둘의 결정적인 차이를 요약하자면, 새 선생의 뇌는 '반응하는 뇌(Reactive Brain)'이고 배럿의 뇌는 '예측하는 뇌(Predictive Brain)'입니다.
새 선생의 뇌는 입력(원인)이 들어오면 출력(행동)이 도출되는 인과적 회로입니다. 반면, 배럿의 예측하는 뇌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능동적으로 예측합니다. 과거의 예측 회로는 새 선생 말대로 내 탓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일의 예측을 바꾸는 '오늘의 경험'은 내가 선택이 가능합니다. 배럿이라면 새 선생을 이렇게 비판할 듯합니다. 물론 새 선생은 교묘한 말장난이라고 비웃겠지만요.
"새 선생님, 당신은 뇌를 '입력(유전자·환경)-처리-출력(행동)'으로 이어지는 19세기식 유물론의 틀에 가둬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이 밝혀낸 뇌의 핵심은 '예측(Prediction)'입니다. 뇌는 자극을 기다렸다가 반응하는 수동적 회로가 아니라, 과거의 개념을 재조합해 끊임없이 미래의 감각을 예측하는 능동적 생성기입니다.
선생님 말대로 내가 지금 가진 예측 회로는 과거의 유전과 환경이 만든 것이 맞습니다. 그 점에선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죠. 하지만 인간의 뇌는 자신의 예측 루프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신경가소성과 개념 생성)을 갖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지금 술을 집어 드는 건 과거 회로의 예측 결과일 수 있지만, 그가 새로운 치료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거나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노출해 '내일의 뇌가 다르게 예측하도록 오늘의 인풋을 제어하는 행위'는 분명한 주체적 선택입니다. 당신은 과거의 원인이라는 사슬에 매여 '내일의 뇌를 리와이어링(Rewiring)할 수 있는 인간의 예측적 통제력'마저 부정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면, 저는 이런 배럿의 아이디어를 앞에서 언급한 지향성 개념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럿은 뇌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예측을 통한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무엇과' 결합시켜서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설명은 개인(주체)의 내면에 머물러 있는 면이 있습니다. 반면, 지향성을 염두에 두면 좀 더 세련된 설명이 가능해요.
내면의 자유 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물질, 도구, 기술, 제도 혹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 같은 네트워크의 결합 효과를 통한 창발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술을 끊겠다'는 알코올 중독자의 지향성은 중독자 개인의 뇌에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중독자의 예측하는 뇌 + 음주 운전 규제 같은 제도 + 가족의 존재 + 치료제 + 지지 커뮤니티의 존재 + 상담사' 같은 하이브리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을 때 창발하는 효과죠.
이 과정에서 중독자의 예측하는 뇌는 여전히 핵심 행위자이기 때문에 책임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고요.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보고 있습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심리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저자는 의학, 법률 제도, 자녀 양육, 명상, 심지어 공항 보안 분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감정과 마음과 뇌에 관한 새로운 과학이 밝혀낸 연구 성과와 함께 감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뇌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중요한지, 그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으며 어떻게 다른 뇌와 함께 작동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과학이 내놓은 성과 위에서 최선의 과학적 시선으로 뇌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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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달린 댓글 2개 보기

오도니안
Nana님의 대화: 이 부분이 이 책을 쓰면서 핵심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새선생님의 주장이라는 것도 알겠고, 동의합니다.
다만 중간중간 선택과 책임에 대한 측면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그런 면에서 스스로 양립주의자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 독서였습니다. 본인이 글을 쓰면서도 자제력을 발휘해라, 노력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의 의지는 부정하다니… @장맥주 님 말씀처럼 개념정의의 차이, @YG 님 말씀처럼 좁은자유의 개념 모두 이 책의 문제점이 될 수 있겠네요. 여러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혼동되는 부분, 정리되지 않는 부분 잘 짚어가면서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밉거나 싫어질 때, 그 사람한테 그런 미움과 싫음의 대상이 될만한 당연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뿐이라는 것만 납득해도 결정론의 효용은 절반 이상 거둔다고 생각합니다.
이기린
YG님의 대화: @Nana @이기린 님, 저는 리사 펠드먼 배럿의 자유 의지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배럿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과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새 선생과 그가 높이 평가하는 조지프 르두 같은 과학자가 아주 극찬하는 추천사까지 썼고, 사실 감정 연구의 표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나온 감정 관련 연구와 저서일수록 배럿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럿은 새 선생과 자유 의지를 놓고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새 선생이 자유 의지를 놓고서 아주 강하게 이야기한 배럿의 이전 저서의 논지를 왜 모두 논의에서 누락했는지 의아해요. 심지어 자기가 추천사까지 쓴 책의 한 장이 자유 의지 대목인데요.)
둘의 결정적인 차이를 요약하자면, 새 선생의 뇌는 '반응하는 뇌(Reactive Brain)'이고 배럿의 뇌는 '예측하는 뇌(Predictive Brain)'입니다.
새 선생의 뇌는 입력(원인)이 들어오면 출력(행동)이 도출되는 인과적 회로입니다. 반면, 배럿의 예측하는 뇌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능동적으로 예측합니다. 과거의 예측 회로는 새 선생 말대로 내 탓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일의 예측을 바꾸는 '오늘의 경험'은 내가 선택이 가능합니다. 배럿이라면 새 선생을 이렇게 비판할 듯합니다. 물론 새 선생은 교묘한 말장난이라고 비웃겠지만요.
"새 선생님, 당신은 뇌를 '입력(유전자·환경)-처리-출력(행동)'으로 이어지는 19세기식 유물론의 틀에 가둬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이 밝혀낸 뇌의 핵심은 '예측(Prediction)'입니다. 뇌는 자극을 기다렸다가 반응하는 수동적 회로가 아니라, 과거의 개념을 재조합해 끊임없이 미래의 감각을 예측하는 능동적 생성기입니다.
선생님 말대로 내가 지금 가진 예측 회로는 과거의 유전과 환경이 만든 것이 맞습니다. 그 점에선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죠. 하지만 인간의 뇌는 자신의 예측 루프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신경가소성과 개념 생성)을 갖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지금 술을 집어 드는 건 과거 회로의 예측 결과일 수 있지만, 그가 새로운 치료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거나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노출해 '내일의 뇌가 다르게 예측하도록 오늘의 인풋을 제어하는 행위'는 분명한 주체적 선택입니다. 당신은 과거의 원인이라는 사슬에 매여 '내일의 뇌를 리와이어링(Rewiring)할 수 있는 인간의 예측적 통제력'마저 부정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면, 저는 이런 배럿의 아이디어를 앞에서 언급한 지향성 개념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럿은 뇌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예측을 통한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무엇과' 결합시켜서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설명은 개인(주체)의 내면에 머물러 있는 면이 있습니다. 반면, 지향성을 염두에 두면 좀 더 세련된 설명이 가능해요.
내면의 자유 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물질, 도구, 기술, 제도 혹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 같은 네트워크의 결합 효과를 통한 창발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술을 끊겠다'는 알코올 중독자의 지향성은 중독자 개인의 뇌에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중독자의 예측하는 뇌 + 음주 운전 규제 같은 제도 + 가족의 존재 + 치료제 + 지지 커뮤니티의 존재 + 상담사' 같은 하이브리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을 때 창발하는 효과죠.
이 과정에서 중독자의 예측하는 뇌는 여전히 핵심 행위자이기 때문에 책임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고요.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보고 있습니다.
저 사실 이 책 둘 다 책장에 있어요🤭 전에 읽으실때 참여할까 하고 사두었지만 읽지 못했지만요 ㅋㅋ 이참에 재도전해볼까봐요!

YG
이기린님의 대화: 저 사실 이 책 둘 다 책장에 있어요🤭 전에 읽으실때 참여할까 하고 사두었지만 읽지 못했지만요 ㅋㅋ 이참에 재도전해볼까봐요!
@이기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두껍고 어려운 대목도 있지만,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훨씬 문턱이 낮아요. 핵심 메시지는 겹치고, 이번 책까지 읽었으니 아주 금방 읽을 거예요. 재미있습니다!

오도니안
YG님의 대화: @Nana @이기린 님, 저는 리사 펠드먼 배럿의 자유 의지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배럿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과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새 선생과 그가 높이 평가하는 조지프 르두 같은 과학자가 아주 극찬하는 추천사까지 썼고, 사실 감정 연구의 표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나온 감정 관련 연구와 저서일수록 배럿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럿은 새 선생과 자유 의지를 놓고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새 선생이 자유 의지를 놓고서 아주 강하게 이야기한 배럿의 이전 저서의 논지를 왜 모두 논의에서 누락했는지 의아해요. 심지어 자기가 추천사까지 쓴 책의 한 장이 자유 의지 대목인데요.)
둘의 결정적인 차이를 요약하자면, 새 선생의 뇌는 '반응하는 뇌(Reactive Brain)'이고 배럿의 뇌는 '예측하는 뇌(Predictive Brain)'입니다.
새 선생의 뇌는 입력(원인)이 들어오면 출력(행동)이 도출되는 인과적 회로입니다. 반면, 배럿의 예측하는 뇌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능동적으로 예측합니다. 과거의 예측 회로는 새 선생 말대로 내 탓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일의 예측을 바꾸는 '오늘의 경험'은 내가 선택이 가능합니다. 배럿이라면 새 선생을 이렇게 비판할 듯합니다. 물론 새 선생은 교묘한 말장난이라고 비웃겠지만요.
"새 선생님, 당신은 뇌를 '입력(유전자·환경)-처리-출력(행동)'으로 이어지는 19세기식 유물론의 틀에 가둬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이 밝혀낸 뇌의 핵심은 '예측(Prediction)'입니다. 뇌는 자극을 기다렸다가 반응하는 수동적 회로가 아니라, 과거의 개념을 재조합해 끊임없이 미래의 감각을 예측하는 능동적 생성기입니다.
선생님 말대로 내가 지금 가진 예측 회로는 과거의 유전과 환경이 만든 것이 맞습니다. 그 점에선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죠. 하지만 인간의 뇌는 자신의 예측 루프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신경가소성과 개념 생성)을 갖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지금 술을 집어 드는 건 과거 회로의 예측 결과일 수 있지만, 그가 새로운 치료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거나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노출해 '내일의 뇌가 다르게 예측하도록 오늘의 인풋을 제어하는 행위'는 분명한 주체적 선택입니다. 당신은 과거의 원인이라는 사슬에 매여 '내일의 뇌를 리와이어링(Rewiring)할 수 있는 인간의 예측적 통제력'마저 부정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면, 저는 이런 배럿의 아이디어를 앞에서 언급한 지향성 개념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럿은 뇌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예측을 통한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무엇과' 결합시켜서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설명은 개인(주체)의 내면에 머물러 있는 면이 있습니다. 반면, 지향성을 염두에 두면 좀 더 세련된 설명이 가능해요.
내면의 자유 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물질, 도구, 기술, 제도 혹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 같은 네트워크의 결합 효과를 통한 창발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술을 끊겠다'는 알코올 중독자의 지향성은 중독자 개인의 뇌에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중독자의 예측하는 뇌 + 음주 운전 규제 같은 제도 + 가족의 존재 + 치료제 + 지지 커뮤니티의 존재 + 상담사' 같은 하이브리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을 때 창발하는 효과죠.
이 과정에서 중독자의 예측하는 뇌는 여전히 핵심 행위자이기 때문에 책임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고요.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보고 있습니다.
따옴표 안의 글은 배럿이 직접 한 말인가요? 새 선생님이 예측적 통제력을 부정했다는 근거는 없어 보여서요. 새 선생님은 하이드리드 네트워크 구축의 창발적 효과에 찬성하실 것 같아요.

오도니안
오도니안님의 대화: 따옴표 안의 글은 배럿이 직접 한 말인가요? 새 선생님이 예측적 통제력을 부정했다는 근거는 없어 보여서요. 새 선생님은 하이드리드 네트워크 구축의 창발적 효과에 찬성하실 것 같아요.
새 선생님이 반대하시는 건 중독자의 문제를 중독자 본인이나 주변 가족들의 책임 문제로 문제 범위를 좁혀 교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21세기에 그런 관점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요.
배럿과 새 선생과 조너선 하이트와 아마도 대니얼 카너먼은 80프로 이상 서로의 관점에 동의할 것 같습니다. 관점이 비슷한데 자유의지가 가진 역설적 측면 때문에 개념과 표현 상의 차이들인 것 같아요.

YG
오도니안님의 대화: 따옴표 안의 글은 배럿이 직접 한 말인가요? 새 선생님이 예측적 통제력을 부정했다는 근거는 없어 보여서요. 새 선생님은 하이드리드 네트워크 구축의 창발적 효과에 찬성하실 것 같아요.
제가 배럿의 입장을 염두에 두고 정리해 본 가상의 반박이에요.

꽃의요정
YG님의 대화: @꽃의요정 님께서 언급하셔서 살짝 덧붙여 볼게요.
영화 <컨텍트>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외계인 '헵타포드'와 새 선생의 결정론은 다른 듯해요. 표면적으로는 둘 다 "자유 의지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수면 아래 펼쳐진 시공간관은 완벽하게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건 시간을 바라보는 눈이에요. 헵타포드에게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장의 거대한 회화나 병풍처럼 통째로 한눈에 펼쳐져 있는 세계입니다. 이미 결말(미래)이 정해져 있고, 그 정해진 연극 대본을 충실히 연주하며 살아가는 숙명론에 가깝지요.
반면, 새 선생의 세계에는 미래의 대본 같은 건 없습니다. 오직 과거의 원인들—유전자, 호르몬, 1초 전 뉴런, 유년기 환경이라는 도미노가 차례로 무너지며 현재의 나를 100% 밀어붙일 뿐입니다. 철저한 생물학적 인과론인 샘이죠. 다만, 헵타포드와 달리 지금의 또 다른 자극에 따라서 미래는 달라질 수 있죠.
오! 역시 YG 님의 박학다식함과 친절한 설명, 감동입니다.
어디 가서 컨택트 얘기 나오면 잘난척 해야겠어요~
추천해 주신 작품도 읽어 보겠습니다!

YG
오도니안님의 대화: 새 선생님이 반대하시는 건 중독자의 문제를 중독자 본인이나 주변 가족들의 책임 문제로 문제 범위를 좁혀 교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21세기에 그런 관점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요.
배럿과 새 선생과 조너선 하이트와 아마도 대니얼 카너먼은 80프로 이상 서로의 관점에 동의할 것 같습니다. 관점이 비슷한데 자유의지가 가진 역설적 측면 때문에 개념과 표현 상의 차이들인 것 같아요.
@오도니안 님의 해석을 새 선생이 보시면, '아니오, 난 오도니안 선생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아주 강경한 양립 불가능론자요'라고 말씀하실 듯해요. :)

꽃의요정
YG님의 대화: 그리고 이건 제가 테드 창을 조금 낮춰 보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헵타포드식 결정론의 물리학적 아이디어는 사실 새로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원조는 19세기 아일랜드의 수학자 윌리엄 해밀턴이 정립한 '최소 작용의 원리(해밀턴의 원리)'거든요.
뉴턴식이 '과거의 원인이 현재를 만든다'는 미분적 사고(새 선생의 인과론)라면, 해밀턴식은 '시작과 끝이 정해진 상태에서 전체 경로를 한 번에 선택한다'는 변분학적 사고(헵타포드의 목적론)입니다.
테드 창은 문학적 스토리텔링 능력보다는 이런 물리학의 고전적 아이디어와 설정을 매끈하게 가져오는 능력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인데, 과학사의 맥락에서 보자면 독창성 면에서는 고개를 갸웃갸웃하게 되지요. :)
이 글도 머릿속에 집어 넣고, 어디가서 잘난척 하고 싶은데, 뉴턴식/해밀턴식/미분학적/변분학적 등 기억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아 패스하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글 많이 올려 주세요 ^^ 제 머릿속 뉴런들이 반응하거든요!

오도니안
YG님의 대화: @오도니안 님의 해석을 새 선생이 보시면, '아니오, 난 오도니안 선생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아주 강경한 양립 불가능론자요'라고 말씀하실 듯해요. :)
새 선생님이 알콜 중독자는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주체적 선택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실리는 없잖아요. 그런 오혀를 자꾸 받으시는 것 같은데 그건 새 선생님 책임이겠네요.

YG
오도니안님의 대화: 새 선생님이 알콜 중독자는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주체적 선택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실리는 없잖아요. 그런 오혀를 자꾸 받으시는 것 같은데 그건 새 선생님 책임이겠네요.
@오도니안 님이 새 선생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크신가 봐요. 오도니안 님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합니다만.
새 선생은 바로 그 '치료받고 중독을 벗어나겠다는 결단'조차 단 0.001%의 주체적 선택이 아니라고 100% 단언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새 선생도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고 삶이 바뀌는 '변화' 자체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 변화가 마음을 고쳐먹은 '주체적 선택'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주어진 외부의 자극, 치료제, 가족의 경고, 그날 아침의 호르몬 상태 같은 인과적 도미노가 무너지며 뇌 회로가 다르게 굴러간 물리적 결과일 뿐이라고 보죠.
즉, 새 선생의 세계관에서는 '변화'는 존재하지만 그 변화를 이끄는 '주체적 선택'은 완벽한 착각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설마 이렇게까지 단정하겠어?" 싶어서 글을 잘못 읽었나 의아해지지만, 실은 새 선생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 '자유 의지 0%'라는 과격한 선언이었던 셈이죠.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제가 앞서 말씀드린 리사 펠드먼 배럿의 '예측하는 뇌'와, 외부의 제도·타인이 결합하는 '지향성 네트워크'라는 프레임이 중요해집니다.
인간을 그저 수동적인 기계로 만들어버리는 새 선생의 지독한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인간이 타인 및 제도와 결합해 자기 삶의 궤적을 능동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가"에 대한 훨씬 더 정교하고 세련된 대답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

YG
꽃의요정님의 대화: 이 글도 머릿속에 집어 넣고, 어디가서 잘난척 하고 싶은데, 뉴턴식/해밀턴식/미분학적/변분학적 등 기억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아 패스하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글 많이 올려 주세요 ^^ 제 머릿속 뉴런들이 반응하거든요!
@꽃의요정 테드 창이 어디선가 자기가 어떤 세미나에서 해밀턴 얘기를 듣고서 구상한 소설이라고 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오도니안
YG님의 대화: @오도니안 님이 새 선생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크신가 봐요. 오도니안 님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합니다만.
새 선생은 바로 그 '치료받고 중독을 벗어나겠다는 결단'조차 단 0.001%의 주체적 선택이 아니라고 100% 단언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새 선생도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고 삶이 바뀌는 '변화' 자체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 변화가 마음을 고쳐먹은 '주체적 선택'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주어진 외부의 자극, 치료제, 가족의 경고, 그날 아침의 호르몬 상태 같은 인과적 도미노가 무너지며 뇌 회로가 다르게 굴러간 물리적 결과일 뿐이라고 보죠.
즉, 새 선생의 세계관에서는 '변화'는 존재하지만 그 변화를 이끄는 '주체적 선택'은 완벽한 착각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설마 이렇게까지 단정하겠어?" 싶어서 글을 잘못 읽었나 의아해지지만, 실은 새 선생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 '자유 의지 0%'라는 과격한 선언이었던 셈이죠.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제가 앞서 말씀드린 리사 펠드먼 배럿의 '예측하는 뇌'와, 외부의 제도·타인이 결합하는 '지향성 네트워크'라는 프레임이 중요해집니다.
인간을 그저 수동적인 기계로 만들어버리는 새 선생의 지독한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인간이 타인 및 제도와 결합해 자기 삶의 궤적을 능동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가"에 대한 훨씬 더 정교하고 세련된 대답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
새 선생님의 주장을 요약해 주신 것이 제가 이해한 내용과 차이가 있지도 않고 그 내용에 저도 동의해요. 제가 무슨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이미 결정된 것이죠.
문제는 그 함의에요. 제가 무슨 선택을 내릴지가 이미 결정되었다고 하는 것이 내가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거나 내 선택으로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건 YG님도 동의하시지요? 서로 큰 차이가 없는데 각자 다른 부분을 짚으면서 이야기하는 느낌입니다.
YG님이 소개해주시는 배럿의 관점이 단순한 환원론보다 더 효과적으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일 수 있다는 데에 대해서도 반대하진 않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배럿의 관점이 새 선생님 주장과 모순되는 부분이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동물행동학이 생화학과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요.

YG
오도니안님의 대화: 새 선생님의 주장을 요약해 주신 것이 제가 이해한 내용과 차이가 있지도 않고 그 내용에 저도 동의해요. 제가 무슨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이미 결정된 것이죠.
문제는 그 함의에요. 제가 무슨 선택을 내릴지가 이미 결정되었다고 하는 것이 내가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거나 내 선택으로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건 YG님도 동의하시지요? 서로 큰 차이가 없는데 각자 다른 부분을 짚으면서 이야기하는 느낌입니다.
YG님이 소개해주시는 배럿의 관점이 단순한 환원론보다 더 효과적으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일 수 있다는 데에 대해서도 반대하진 않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배럿의 관점이 새 선생님 주장과 모순되는 부분이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동물행동학이 생화학과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요.
@오도니안 아니요, 오도니안 님. :) 새 선생은 배럿의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대니얼 데닛을 비판할 때처럼 "양립론자들의 전형적인 말장난"이라고 폄훼할 가능성이 훨씬 크지요.
오도니안 님께서는 "동물행동학과 생화학의 관계"처럼 묘사 층위의 차이로 보셨지만, 두 사람의 관점은 인간의 책임과 주체성을 바라보는 철학적 전제에서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새 선생의 강한 견해에 당혹스러워했던 대목이 바로 말씀하신 그 지점을 새 선생이 뿌리부터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새 선생의 세계관에서는 "내가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기울이는 자율적 노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새 선생은 전전두엽을 동원해 수행하는 '노력'이나 '의지력'조차도, 그 직전의 호르몬과 유전자, 환경이 100% 결정한 물리적 결과물일 뿐이라고 봅니다. 즉, "결과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생각과 마음조차 0.001%의 자율성도 없는 인과적 도미노의 조각이라는 것이죠.
반면 배럿은 "오늘의 노력으로 내일의 뇌 회로(예측)를 바꿀 수 있으므로 미래에 대한 통제력과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배럿은 주체성을 인정하고, 새 선생은 그 주체성을 '착각'이라며 해체합니다. 이건 설명 층위의 차이가 아니라 '자유 의지와 책임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정면 대립입니다.
오도니안 님의 친절하고 온화한 해석의 의도는 충분히 존중하지만, 이건 이 책과 새 선생이 던진 가장 과격하고 중요한 전제에 관한 대목이라 저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어 이렇게 답글을 드립니다. :)

YG
꽃의요정님의 대화: 이 글도 머릿속에 집어 넣고, 어디가서 잘난척 하고 싶은데, 뉴턴식/해밀턴식/미분학적/변분학적 등 기억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아 패스하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글 많이 올려 주세요 ^^ 제 머릿속 뉴런들이 반응하거든요!
@꽃의요정 덧붙이면, 용어는 생소하지만 어려운 개념은 아니에요.
미분(Differential)은 우리가 수학 시간에 배운 그 미분이에요. 초기 조건(위치, 속도, 받는 힘)을 바탕으로 바로 다음 미세 시간(0.01초 후 등)에 일어나는 변화를 순간 순간 추적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아주 잘게 쪼개서 앞뒤의 인과 관계를 방정식으로 추정하는 일이 바로 우리 가 잘 아는 미분법이고요. (새 선생의 방식입니다.)
반면 생소한 변분(Variational)은 시작 시각과 끝 시각의 위치를 미리 고정해 두고서, 그 사이를 연결하는 수많은 가상의 경로들 가운데 '가장 최선의 경로'를 통째로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이건 마치 물체가 출발할 때부터 목적지와 최적의 경로를 이미 알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바로 이 아이디어를 테드 창이 헵타포드의 사고방식으로 끌어온 것입니다.

꽃의요정
YG님의 대화: @꽃의요정 덧붙이면, 용어는 생소하지만 어려운 개념은 아니에요.
미분(Differential)은 우리가 수학 시간에 배운 그 미분이에요. 초기 조건(위치, 속도, 받는 힘)을 바탕으로 바로 다음 미세 시간(0.01초 후 등)에 일어나는 변화를 순간 순간 추적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아주 잘게 쪼개서 앞뒤의 인과 관계를 방정식으로 추정하는 일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미분법이고요. (새 선생의 방식입니다.)
반면 생소한 변분(Variational)은 시작 시각과 끝 시각의 위치를 미리 고정해 두고서, 그 사이를 연결하는 수많은 가상의 경로들 가운데 '가장 최선의 경로'를 통째로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이건 마치 물체가 출발할 때부터 목적지와 최적의 경로를 이미 알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바로 이 아이디어를 테드 창이 헵타포드의 사고방식으로 끌어온 것입니다.
미분에 저런 심오한 의미가 있는지 몰랐어요. 저희 수학 선생님은 들어오셔서 말 한마디도 안 하시고, 칠판을 네 개로 쫙 나눈 후에 판서만 50분 하다가 나가셨거든요. 어차피 '너희들은 잘 거잖아'를 전제로 한 말도 안되는 수업이었습니다.
아님, 어차피 학원/과외 숙제 할 건데 에너지 낭비하기 싫다는 태도?
YG 님의 설명을 들으니, 새 선생님의 책 내용도 햅타포드의 사고방식도 더 잘 이해가 됩니다.

꽃의요정
이제는 짜증날 정도로 익숙해진 개념을 다시 반복하자면, 우리는 생물학, 환경, 상호작용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의 총합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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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YG님의 대화: @오도니안 아니요, 오도니안 님. :) 새 선생은 배럿의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대니얼 데닛을 비판할 때처럼 "양립론자들의 전형적인 말장난"이라고 폄훼할 가능성이 훨씬 크지요.
오도니안 님께서는 "동물행동학과 생화학의 관계"처럼 묘사 층위의 차이로 보셨지만, 두 사람의 관점은 인간의 책임과 주체성을 바라보는 철학적 전제에서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새 선생의 강한 견해에 당혹스러워했던 대목이 바로 말씀하신 그 지점을 새 선생이 뿌리부터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새 선생의 세계관에서는 "내가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기울이는 자율적 노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새 선생은 전전두엽을 동원해 수행하는 '노력'이나 '의지력'조차도, 그 직전의 호르몬과 유전자, 환경이 100% 결정한 물리적 결과물일 뿐이라고 봅니다. 즉, "결과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생각과 마음조차 0.001%의 자율성도 없는 인과적 도미노의 조각이라는 것이죠.
반면 배럿은 "오늘의 노력으로 내일의 뇌 회로(예측)를 바꿀 수 있으므로 미래에 대한 통제력과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배럿은 주체성을 인정하고, 새 선생은 그 주체성을 '착각'이라며 해체합니다. 이건 설명 층위의 차이가 아니라 '자유 의지와 책임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정면 대립입니다.
오도니안 님의 친절하고 온화한 해석의 의도는 충분히 존중하지만, 이건 이 책과 새 선생이 던진 가장 과격하고 중요한 전제에 관한 대목이라 저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어 이렇게 답글을 드립니다. :)
자꾸 같은 이야기가 맴도는 것 같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핵심적인 부분이라 저도 다시 짚어 이야기하자면, 결과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생각과 마음조차 인과적 도미노의 조각이라는 것은 결정론의 주된 결론입니다. 결정론자라면 그것을 인정할 거에요. 또한 배럿 역시 그것을 인정할 것이고 아마 YG님께서도 인정하실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노력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통제력이 있다는 배럿의 주장 역시 옳을 뿐 아니라 새 선생님 역시 동의할 것입니다. 새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건 그 통제력조차 선행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지 통제력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두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 모순이 아니지요.
문제는 책임입니다. 의지와 통제력 역시 선행요인에 의해 결정된 것이니 책임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의지와 통제력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 책임이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새 선생님은 없다고 강하게 얘기하시지만, 책임이 없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의 남은 부분을 더 읽어 보면 조금 더 분명해질 것 같지만 왠지 끝까지 명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새 선생님이 배럿이나 다른 일반 독자들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책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념 해석 문제를 떠나서 이 개념들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로 간다면,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 치유를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한다면 새 선생님이 철학적 차이로 인해 배럿의 실천적 방안에 반대할 부분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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