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니안님의 대화: 자꾸 같은 이야기가 맴도는 것 같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핵심적인 부분이라 저도 다시 짚어 이야기하자면, 결과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생각과 마음조차 인과적 도미노의 조각이라는 것은 결정론의 주된 결론입니다. 결정론자라면 그것을 인정할 거에요. 또한 배럿 역시 그것을 인정할 것이고 아마 YG님께서도 인정하실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노력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통제력이 있다는 배럿의 주장 역시 옳을 뿐 아니라 새 선생님 역시 동의할 것입니다. 새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건 그 통제력조차 선행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지 통제력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두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 모순이 아니지요.
문제는 책임입니다. 의지와 통제력 역시 선행요인에 의해 결정된 것이니 책임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의지와 통제력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 책임이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새 선생님은 없다고 강하게 얘기하시지만, 책임이 없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의 남은 부분을 더 읽어 보면 조금 더 분명해질 것 같지만 왠지 끝까지 명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새 선생님이 배럿이나 다른 일반 독자들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책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념 해석 문제를 떠나서 이 개념들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로 간다면,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 치유를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한다면 새 선생님이 철학적 차이로 인해 배럿의 실천적 방안에 반대할 부분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도니안 님 덕분에 토론이 훨씬 입체적으로 이어지네요. :) 말씀하신 대로 두 사람 모두 "인간의 행동이 과거 인과율의 영향을 받으며, 현실의 치유 방안(환경 변화, 치료제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계속해서 두 사람의 충돌을 강조하는 이유는, 새 선생이 그 상식적인 동의를 넘어 인간관의 가장 뿌리 깊은 지점까지 파고들어 전면전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통제력'의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새 선생이 말하는 통제력은 '자동 온도 조절기'가 온도를 맞추듯 뇌라는 기계가 작동하는 물리적 아웃풋일 뿐입니다. 반면 배럿이 말하는 통제력은 오늘의 인풋을 능동적으로 제어해 '내일의 뇌 회로를 재구성(Rewiring)하는 주체적 가소성'이지요. 새 선생은 이 후자의 통제력을 완벽한 착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둘째, 책임의 문제는 단순한 개념 해석의 차이가 아닙니다. 새 선생은 책임을 다르게 해석하자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시스템 자체가 완전한 비과학이자 야만"이라며 응징적·도덕적 책임 전체를 완전히 해체하자고 주장합니다. 반면 배럿은 인간에게 통제력이 있는 한 책임의 위치 역시 살아있다고 보지요.
셋째, 알코올 중독을 대하는 시선의 차이입니다. 14장에 나오듯 새 선생의 세계관에서 중독자는 '바이러스 보유자'나 '고장 난 기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비난 없이 따뜻하게 '격리 및 수리'하자는 것이죠. 하지만 배럿의 세계관에서 중독자는 자신의 예측 루프를 다시 써나가는 '능동적 행위자'입니다. 처방전의 모양은 비슷할지 몰라도, 인간을 '수리할 대상'으로 보느냐 '예측적 주체'로 보느냐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새 선생의 진짜 도발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오도니안 님 말씀처럼 두 사람을 다정하게 화해시켜 주기에는, 새 선생이 너무나도 지독하고 완고한 강한 결정론자(Hard Determinist)인 셈입니다.
이 모임의 많은 분들이 오도니안 님과 달리 새 선생의 견해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틈새를 모색했던 것도 그 때문이고요. 사실, 새 선생은 오도니안 님을 보고서 "양립론자"라고 "자기를 오해하지 말라"고 당부할 듯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