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13. <N>

D-29
저는 3을 마지막으로 읽었는데 마지막으로 읽기엔 최악이었던 것 같아 슬픕니다. 흐흑~ 소설자체는 흥미롭고 여운이 많이 남는 좋은 책이었어요! 근래 읽은 소설 중에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오~ 잔 재주(?)로만 승부를 보려는 책이 아니고 작가님이 내용에도 꽤 공력을 기울이셨나 보네요. <30일의 밤>보다 <N>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어요.
저는 그럼 이걸 젤 처음 읽을까봐요. 아 고민돼라 어디부터 읽을지
오늘, 수요일 방송 들으시면 아시겠지만 JYP랑 박평은 그냥 1-2-3-4-5-6으로 읽었더라고요. 두 분은 불만도 가득 토로했으니 한번 들어보세요. :)
‘웃기시네!’ 이 책의 홍보 문구를 보자마자 처음 했던 생각입니다. 일단 어떤 사정인지부터 공유해야겠네요. 이 책은 이야기 여섯 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겉보기에 여섯 개의 이야기는 장르도 다르고, 서로 관계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인물과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설정이야 식상하다고요? 맞습니다. 진짜 특이한 것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저자는 여섯 개 이야기의 읽는 순서를 독자마다 바꿔보라고 권합니다. 그러니까, 보통의 책처럼 ‘1-2-3-4-5-6’ 순으로 읽지 말고 자기가 내키는 대로 순서를 정해보라는 것입니다. 이론대로라면 720가지(6×5×4×3×2×1=720) 조합이 가능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순서를 바꿔서 읽을 때마다 전혀 다른 소설이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심지어, 독자가 그렇게 순서를 마음대로 정해서 읽을 수 있도록 편집 장치까지 마련해 놓았습니다. 우선, 맨 앞에다가 여섯 개 이야기의 첫 부분을 소개하면서 그 이야기를 읽으려면 몇 쪽을 펼치라고 안내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예 1번, 3번, 5번 이야기는 거꾸로 인쇄해 놓았습니다. 독자가 습관처럼 앞에서 뒤로 읽는 일을 방해하려는 시도죠. 이쯤이면, 그냥 허풍이 아니라 진짜 저자가 진지하게 실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죠. 어떻습니까? 일단 시도 자체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신박합니다.’
오 맞아요!! 읽는 순서에 따라 느끼는 감상은 정말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1번으로 시작해서 3번으로 끝났습니다. 결말은 완전한 새드엔딩이죠. 게다가 이야기마다 끝부분에 등장하는 천사의 사다리도 이 이야기에서만 안나와요 ㅠ ㅠ 또 YG님이 말씀하신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많다는 것도 공감합니다. 자세히 나오지 않는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들을 제가 상상해보며 여백을 채워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박평님과 JYP님 두분 다 차례대로 읽었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ㅋㅋ
하지만, 이런 설명을 듣고 나서의 첫 반응은 글머리에서 밝혔듯이 고개를 젓는 것이었죠. 진짜 재미있는 소설은 이렇게 장난치지 않고도 첫 장을 펴자마자 독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멱살을 잡고 끌고 가니까요. 예를 들어, 작년(2022년)에 읽은 소설 가운데는 스티븐 킹의 『빌리 서머스』(황금가지)가 그랬습니다. 이야기 순서를 바꿔서 읽어보라는 이 책의 시도는 독자의 멱살을 잡고서 끌고 갈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 저자의 비겁함으로 여겨졌죠.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저자 이름 ‘미치오 슈스케’를 보고 나니 ‘앗, 이 작가가?’ 하게 된 것이죠. 왜냐하면, 슈스케는 기막힌 이야기, 특히 독자를 속이는 반전의 작가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한참 전에 읽었던 『까마귀의 엄지』 (문학동네) 같은 책이 그랬습니다. 사채 조직으로부터 피해당한 아픔을 공유하며 작은 사기를 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사기꾼과 그 주변 사람 다섯이 일종의 대안 가족을 꾸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뒷골목에서 갈고 닦은 모든 능력을 동원해 무서운 사채 조직에 복수하는데…. 여기에다 따뜻한 반전! 그의 다른 소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들녘)도 있습니다. 이 찝찝한 소설은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날 결석한 친구에게 유인물을 가져다주는 초등학교 4학년 주인공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그가 찾아간 친구는 목을 매고 죽어 있었습니다. 혼비백산한 주인공이 어른을 데려오자 시체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일까요? 이렇게 시작한 소설은 정말 끈적끈적 기분 나쁜 분위기를 풍기면서 독자를 홀리고 속이다 마지막에 기막힌 반전으로 끝납니다.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까마귀의 엄지』)와 찝찝하며 기분 나쁜 이야기(『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를 써낼 수 있는 그 슈스케라면 그냥 호언장담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N』(북폴리오)을 펼치고 읽은 건 이런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모범생 독자라서 저자가 권한 대로 앞에서 뒤로 읽는 일도 피했습니다. 720가지 조합 가운데 가장 뒤의 이야기를 먼저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온 다음에 가운데 이야기를 공략하는 ‘6-1-3-2-5-4’ 순서를 택했습니다. 과연 슈스케의 의도는 성공했을까요?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면서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16부작의 후반부 여덟 편을 몰아봤습니다. 소설과 드라마를 포함한 전 세계의 온갖 ‘센’ 이야기 마니아를 자처하는 처지에서 당연히 아쉬운 점이 많았죠. 하지만, 평소 이런 이야기를 즐기지 않은 사람조차도 홀리는 드라마의 성공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진짜 재미있는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멱살을 잡고서 질질 끌고 갑니다. 하지만, 소설과 드라마가 이야기를 내놓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결정적인 차이점은 수용자(독자/시청자)의 자율성을 얼마나 허용하는가입니다. 소설은 어쩔 수 없이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여백이 있습니다. 독자는 그 여백을 채워가면서 소설을 자기만의 텍스트로 만듭니다. 반면, 드라마는 (작품마다 천차만별이긴 합니다만) 소설과 비교했을 때 그 여백이 작습니다. 애초 제작진이 촘촘하게 짜놓은 이야기를 시청자가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의 성공으로 대세가 된 몰아보는 유행 탓에 애초 작았던 여백은 더욱더 작아졌습니다. 여덟 시간에서 열여섯 시간 정신없이 드라마를 몰아봤던 과정에서 시청자가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평소 극찬하던 이혁진의 소설 『사랑의 이해』(민음사)와 최근에 방송한 드라마 <사랑의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사랑의 이해』는 주요 등장인물 넷의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을 독자가 상상해서 채워 넣을 여지가 훨씬 큽니다. 하지만,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그 여백을 줄이는 대신에 두 남녀 주인공(‘상수영’ 커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다른 걸작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과 드라마의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은 독자의 멱살을 잡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려는 노력은 그대로 하되, 소설만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여백을 영리하게 제시할 여러 방법을 모색해야죠. 아니나 다를까, 미치오 슈스케가 『N』을 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소설을 읽는 사람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까 평범한 소설로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라이벌과 싸우려면 소설이 더 재미있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어느 업계든 일단 고객이 줄어들면 상품의 개량을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책에 대해서만은 책을 안 읽게 된 사람들이 나쁘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풍조가 있어서 더 책을 읽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재미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독자들이 오지 않을까요?”
이제 결론을 말할 때입니다. 저는 『N』의 시도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각각의 이야기는 순서만 바꿔서 읽어도 독자에게 다른 효과를 줍니다. 어떤 이야기를 먼저 읽느냐에 따라서 독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보를 아느냐 모르냐에 따라서 그것과 얽힌 어떤 이야기의 전개가 독자에게 주는 효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장르나 느낌이 제각각인 이야기는 결말도 저자의 다른 소설처럼 천차만별입니다. 따뜻하고, 차갑고, 찝찝하고, 서늘한 결말까지. 그러니, 편집자(그 유명한 ‘김 사장’)의 말처럼 어떤 순서로 읽느냐에 따라서 이 책을 최종적으로 덮는 독자의 느낌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죠.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어떻습니까? 이제 여러분이 『N』을 읽고서 직접 확인할 차례입니다. 저는 한국 소설에서도 이런 대담한 실험이 더욱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더 글로리>도 못 하는 일이 있는 법입니다.
『N』과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비교하면서 떠오른 단상을 <기획회의> 580호(2023년 3월 20일) ‘이 주의 큐레이션’에서 나눠 봤어요. 오늘(3월 27일) 방송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요. 글로 정리된 생각을 다시 공유합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시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 두 권을 권합니다. 정말 느낌이 다른 소설입니다.
까마귀의 엄지우타노 쇼고, 이사카 고타로가 극찬한 작품. 2004년 데뷔 이래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미치오 슈스케. <까마귀의 엄지>는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으로, 제6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나오키 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에도 후보로 올랐다. '블랙펜 클럽' 20권.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제5회 호러서스펜스 대상 특별상 수상작 <등의 눈>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두 번째 장편소설. 미치오 슈스케를 미스터리계의 기린아로 부상시킨 출세작이다. 부조리한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환상소설 같으면서 불편한 감정을 자극하는 일종의 사이코서스펜스이지만 마지막에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본격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정말 기분 나쁘게(?) 잘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때 이런 음침한 일본 소설에 빠져 있던 시절에 이런 류를 닥치는 대로 읽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제법 괜찮았어요.
정말 기분 나쁜 책이죠;;;
까마귀의 엄지 읽어봐야겠어요. 왠지 이런 용감한 시도 하시는 작가님은 응원하고 싶어요.
팁을 주십시오. 해피엔딩이려면 뭘 제일 마지막에 읽어야 하나요.
앞에 무엇을 읽으셨냐에 따라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될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 죽었을때는 그냥 안타까운 사연을 뉴스에서 들었을 때 정도의 슬픔이지만, 그 사람의 지난 경험을 잘 알던 사이에 갑자기 상에 처하면 황만한 마음이 크잖아요. 저는 어쩌다 보니, 나쁜일이 일어나는 인물들의 미래를 먼저 읽고 과거로 돌아가서 모르는 사람의 죽음 정도로 너무 무겁지 않게 넘어갔던거 같어요. 오히려 다 읽고 사람들은 서로 엄청난 영향을 주며 사는 구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해야겠다 생각하게 하는 독서였어요.
1-2 순서대로 읽었습니다. 일단 Choose Your Own Adventure가 아니라 영화 매그놀리아나 펄프 필션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이해해야할 거 같네요. 이 같은 시도가 유의미하려면 순서를 바꿔가며 다시 읽는 과정이 필요할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 두 번을 읽을 거 같진 않습니다. 혹시 순서를 바꿔가면서 다시 읽어보신 분들도 있을까요?
오! 똑같은 이야기를 방송에서 박평이 하셨어요... :)
책에 호기심이 생겨서 유입된 케이스라 부끄럽지만 여기 참여하면서도 아직 팟캐스트는 안 들어봤네요. 이 참에 구독하고 들어보겠습니다.
아직 읽기 전이지만...다시 읽은들 이야기를 읽기 전의, 내용을 모르는 나로 돌아갈수 없는 이상, 결국 경험은 내가 정한 한가지 조합밖에는 못하는게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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