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13. <N>

D-29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면서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16부작의 후반부 여덟 편을 몰아봤습니다. 소설과 드라마를 포함한 전 세계의 온갖 ‘센’ 이야기 마니아를 자처하는 처지에서 당연히 아쉬운 점이 많았죠. 하지만, 평소 이런 이야기를 즐기지 않은 사람조차도 홀리는 드라마의 성공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진짜 재미있는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멱살을 잡고서 질질 끌고 갑니다. 하지만, 소설과 드라마가 이야기를 내놓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결정적인 차이점은 수용자(독자/시청자)의 자율성을 얼마나 허용하는가입니다. 소설은 어쩔 수 없이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여백이 있습니다. 독자는 그 여백을 채워가면서 소설을 자기만의 텍스트로 만듭니다. 반면, 드라마는 (작품마다 천차만별이긴 합니다만) 소설과 비교했을 때 그 여백이 작습니다. 애초 제작진이 촘촘하게 짜놓은 이야기를 시청자가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의 성공으로 대세가 된 몰아보는 유행 탓에 애초 작았던 여백은 더욱더 작아졌습니다. 여덟 시간에서 열여섯 시간 정신없이 드라마를 몰아봤던 과정에서 시청자가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평소 극찬하던 이혁진의 소설 『사랑의 이해』(민음사)와 최근에 방송한 드라마 <사랑의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사랑의 이해』는 주요 등장인물 넷의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을 독자가 상상해서 채워 넣을 여지가 훨씬 큽니다. 하지만,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그 여백을 줄이는 대신에 두 남녀 주인공(‘상수영’ 커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다른 걸작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과 드라마의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은 독자의 멱살을 잡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려는 노력은 그대로 하되, 소설만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여백을 영리하게 제시할 여러 방법을 모색해야죠. 아니나 다를까, 미치오 슈스케가 『N』을 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소설을 읽는 사람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까 평범한 소설로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라이벌과 싸우려면 소설이 더 재미있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어느 업계든 일단 고객이 줄어들면 상품의 개량을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책에 대해서만은 책을 안 읽게 된 사람들이 나쁘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풍조가 있어서 더 책을 읽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재미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독자들이 오지 않을까요?”
이제 결론을 말할 때입니다. 저는 『N』의 시도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각각의 이야기는 순서만 바꿔서 읽어도 독자에게 다른 효과를 줍니다. 어떤 이야기를 먼저 읽느냐에 따라서 독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보를 아느냐 모르냐에 따라서 그것과 얽힌 어떤 이야기의 전개가 독자에게 주는 효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장르나 느낌이 제각각인 이야기는 결말도 저자의 다른 소설처럼 천차만별입니다. 따뜻하고, 차갑고, 찝찝하고, 서늘한 결말까지. 그러니, 편집자(그 유명한 ‘김 사장’)의 말처럼 어떤 순서로 읽느냐에 따라서 이 책을 최종적으로 덮는 독자의 느낌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죠.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어떻습니까? 이제 여러분이 『N』을 읽고서 직접 확인할 차례입니다. 저는 한국 소설에서도 이런 대담한 실험이 더욱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더 글로리>도 못 하는 일이 있는 법입니다.
『N』과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비교하면서 떠오른 단상을 <기획회의> 580호(2023년 3월 20일) ‘이 주의 큐레이션’에서 나눠 봤어요. 오늘(3월 27일) 방송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요. 글로 정리된 생각을 다시 공유합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시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 두 권을 권합니다. 정말 느낌이 다른 소설입니다.
까마귀의 엄지우타노 쇼고, 이사카 고타로가 극찬한 작품. 2004년 데뷔 이래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미치오 슈스케. <까마귀의 엄지>는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으로, 제6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나오키 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에도 후보로 올랐다. '블랙펜 클럽' 20권.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제5회 호러서스펜스 대상 특별상 수상작 <등의 눈>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두 번째 장편소설. 미치오 슈스케를 미스터리계의 기린아로 부상시킨 출세작이다. 부조리한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환상소설 같으면서 불편한 감정을 자극하는 일종의 사이코서스펜스이지만 마지막에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본격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정말 기분 나쁘게(?) 잘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때 이런 음침한 일본 소설에 빠져 있던 시절에 이런 류를 닥치는 대로 읽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제법 괜찮았어요.
정말 기분 나쁜 책이죠;;;
까마귀의 엄지 읽어봐야겠어요. 왠지 이런 용감한 시도 하시는 작가님은 응원하고 싶어요.
팁을 주십시오. 해피엔딩이려면 뭘 제일 마지막에 읽어야 하나요.
앞에 무엇을 읽으셨냐에 따라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될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 죽었을때는 그냥 안타까운 사연을 뉴스에서 들었을 때 정도의 슬픔이지만, 그 사람의 지난 경험을 잘 알던 사이에 갑자기 상에 처하면 황만한 마음이 크잖아요. 저는 어쩌다 보니, 나쁜일이 일어나는 인물들의 미래를 먼저 읽고 과거로 돌아가서 모르는 사람의 죽음 정도로 너무 무겁지 않게 넘어갔던거 같어요. 오히려 다 읽고 사람들은 서로 엄청난 영향을 주며 사는 구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해야겠다 생각하게 하는 독서였어요.
1-2 순서대로 읽었습니다. 일단 Choose Your Own Adventure가 아니라 영화 매그놀리아나 펄프 필션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이해해야할 거 같네요. 이 같은 시도가 유의미하려면 순서를 바꿔가며 다시 읽는 과정이 필요할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 두 번을 읽을 거 같진 않습니다. 혹시 순서를 바꿔가면서 다시 읽어보신 분들도 있을까요?
오! 똑같은 이야기를 방송에서 박평이 하셨어요... :)
책에 호기심이 생겨서 유입된 케이스라 부끄럽지만 여기 참여하면서도 아직 팟캐스트는 안 들어봤네요. 이 참에 구독하고 들어보겠습니다.
아직 읽기 전이지만...다시 읽은들 이야기를 읽기 전의, 내용을 모르는 나로 돌아갈수 없는 이상, 결국 경험은 내가 정한 한가지 조합밖에는 못하는게 아닐까 생각해요.
혹은 다른 루트로 읽은 분들과 이야기하기 좋을 거 같긴 하네요.
그쵸! 서로 다른 순서로 읽은 사람들의 감상이 넘 궁금해요.
한 몇년 뒤에 다시 읽으면 가능 할 것 같은데 처음 읽은 느낌을 홀랑 까먹을거 같은... 그게 그거인건 가요? ㅋㅋㅋ 해피엔딩이 되려면 3번만 빼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너무 인생 같지 않나요?? 이미 아는 것을 모르게 될 수 없는… 왠지 나만 할 수 있는 독서 경험 같기도 하고… 전 즐거운 독서 였어요.
시작을 해보고싶습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당시 중학생이던 딸아이가 책을 주며 추천해서 읽었는데...허걱...읽고나서 아이의 정서상태를 의심했지 뭔가요? 이게 뭐야 이런 소설 좋아해? 등등 심각한 사춘기인가 의심하며. 월요일 방송 아이랑 같이 들으면서(그 아이가 이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이 책 기억나냐 물으니 막 웃더라구요. 진짜 기분나쁘게 잘썼지...라며...^^;;;
@바나나 중학생 아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저한테 권한다면 저도 상당히 충격받을 것 같아요; (저는 도대체 왜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렸는지 사실 이해가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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