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4. 조현병의 모든 것

D-29
부모가 자기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큰 아이에게 조현병이 발병했다고 믿는다면, 이론상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작은 아이의 조현병은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반면에 모든 증거가 암시하는 대로 조현병이 생물학적으로 발생하는 무작위적 사건이라고 믿는다면 그들로서는 조현병을 예방할 가망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런 가족들에게는 죄책감을 갖는 것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한다. 죄책감을 놓지 않으려는 가족의 또 다른 유형은, 죄책감이 그 가족의 삶의 방식이 된 경우다. 이런 가족에서는 대개 한 명 이상이 장기간 심리치료를 받고 있고, 이들은 죄책감을 낙으로 삼고 있으며, 죄책감에서 허우적거리며 서로를 비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여가 활동이다.
조현병의 모든 것 11장 환자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조현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E 풀러 토리
조현병 환자에게서는 이런 식의 꾸밈없는 대답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사회적 체면치레를 모두 제거해버린 대답, 우리 모두 가끔은 말해버리고 싶지만 대개는 입 밖에 내지 않는 그런 대답 말이다. 이럴 때 조현병에 걸린 사람과 함께 웃을 수 있으면 모두에게 치유가 된다. 그럴 때 화를 내는 건 물론 더 상처가 되지만.
조현병의 모든 것 11장 환자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조현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E 풀러 토리
환자가 병에 걸리기 전에 비범할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던 사람일수록 그러한 예상을 수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런 가족들일수록 그 사람이 언젠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예전의 경력을 이어갈 거라는 희망을 해가 가고 또 바뀌어도 계속해서 붙들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계획들을 세우고, 대학이나 성대한 결혼을 위한 돈을 저축하면서 ‘그 애가 다시 건강해질 때’에 대한 거대한 착각을 가족끼리 공유하며 함께 서로를 속이는 것이다.
조현병의 모든 것 11장 환자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조현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E 풀러 토리
이런 착각의 문제는 병든 당사자가 그것이 착각임을 알고 있고, 따라서 자기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 갇혀 버린다는 점이다. 환자가 가족을 만족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완치되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몇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를 감지하고 가족들에게 환자에 대한 기대를 낮추라고 권고해왔다. 그렇게 하면 가족들 자신도 더 행복해진다.
조현병의 모든 것 11장 환자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조현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E 풀러 토리
전문가와 환자 모두에게서 가장 존경받는 직원은 환자를 뇌 질환이 있어도 여전히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사람이다.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직원은 환자를 내려다보는 태도로 대하며 그들의 열등한 위치를 자주 상기시키는 사람이다. 이러는 이유는 대개 그 직원들이 조현병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병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현병에 걸린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바로 ‘친절하게’다.
조현병의 모든 것 11장 환자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조현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E 풀러 토리
대개는 가족들이 환자의 감각적 경험의 유효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 경험에 대한 그들의 해석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 “너는 거기 뱀이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믿는 걸 거야. 하지만 나는 그 이유가 병 때문에 네 뇌가 너에게 장난을 치고 있어서라고 생각해.”
조현병의 모든 것 11장 환자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조현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E 풀러 토리
그러나 나머지 성격특성들에 대한 척도에서는 차이가 매우 적었고, 전통적 가치 고수, 위험 감수 행동에 대한 흥미 같은 또 다른 척도들에서는 사실상 아무 차이도 없었다. 조용하고 신실한 두 여성은 둘 중 한 사람이 조현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용하고 신실했다. 말썽을 잘 부리고 위험한 행동을 감행하는 한 쌍의 젊은이들은 한 사람이 조현병에 걸렸음에도 여전히 말썽꾼에 위험한 행동을 좋아했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도 핵심 성격은 최소한으로만 변한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물론 그 사람에게서 보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성격특성을 모두 조현병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언제든 든다. 나는 환자 가족들이 실상과는 아주 다르게, 병든 가족이 조현병에 걸리기 전에는 아주 이상적인 성격이었던 것처럼 회상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또한 병에 걸리기 전에도 갖고 있던 모든 결점과 약점을 병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는 환자도 많이 보았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조현병이 없는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듯이 조현병에 걸린 사람 중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자신의 증상을 매우 잘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가 살고 싶지 않은 곳에 배정되었을 때 병원이나 이전에 살던 곳으로 다시 보내지려면 어떤 식으로 행동하면 되는지 정확히 안다. 내가 맡았던 환자 중에도 병세가 개선되었을 때 내게 “선생님, 내 상태가 좀 좋아지기는 했지만, 일을 해도 될 만큼 충분히 좋아진 건 아닙니다”라고 의도가 뻔히 보이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어떤 사람의 행동이 정신이상의 ‘결과’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주관적인 일이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그 말의 정의상 거의 모든 범죄가 정신이상이라고 표현할 만한 사회규범의 위반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충동’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없는 충동과 저항하지 않은 충동을 구분하는 선은 아마도 황혼과 땅거미를 구분하는 선만큼 모호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그런 판단은 지나간 시점에 회고적으로 내려진다는 사실도 어려움을 한층 더한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은유와 상징적 사고가 불가능해지는 것 또한 종교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방해하는 또 한 가지 요소다. 대부분의 공식화된 종교적 신앙 체계에서는 은유와 상징적 사고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조현병 환자가 이 병을 앓는 과정 내내 종교적 문제들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실제로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조현병 환자의 30퍼센트가 “발병 이후 신앙심이 더욱 깊어졌다”고 보고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1960~1970년대 영화에서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을 표현하던 또 하나의 흔한 방식은, 주변의 정상적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제정신인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왕이 된 사나이〉(1966)에서는 정신병원 입원환자들이 병원을 떠나 전쟁 통에 모두가 버리고 떠난 마을을 차지한다. 그들이 보이는 정상적인 행동은 계속되는 전쟁의 광기와 대조되고, 앨런 베이츠가 연기한 플럼픽 일병은 결국 군대를 떠나 그 환자들의 무리에 합류하기로 결정한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영화에서는 정확한 병명을 말하지 않지만 명백히 조현병으로 보인다. 헬프갓을 연기한 제프리 러시는 계속되는 증상에 시달리는 재능 있는 예술가를 훌륭하게 연기했고, 영화는 그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조현병에 관한 지식은 30년은 뒤처져 있어서, 어린 시절 헬프갓을 잔인하게 대한 아버지(아만드 뮐러 스탈) 때문에 병이 생긴 것처럼 암시하고 있다. 헬프갓의 누나도 그러한 주장에 강력히 반박했다. 영화가 성공하면서 헬프갓은 미국 순회공연을 했는데, 비판자들은 이를 순전한 착취라고 느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2세기 전에는 점잖은 사람들이 일요일마다 정신병원을 찾아가 얼을 빼고 환자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오늘날 우리는 환자들을 정신병원에서 나오게 하고는 그들에게 ‘정상적인’ 삶을 살라고 부추긴다. 어떤 이들은 길모퉁이에서 기괴한 종교를 전파하고, 어떤 이들은 애버리피셔홀에서 콘서트를 열고 점잖은 사람들은 그들을 보기 위해 1인당 50달러를 지불하는데, 그러고는 이런 걸 진보라고 부른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그러나 창조적인 사람과 조현병 환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창조적인 사람은 자신의 비범한 사고 과정을 통제할 수 있고 작품을 창조하는 데 그러한 사고를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조현병 환자는 불협화음 같은 무질서 속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연결되지 않은 생각들과 이완된 연상에 아무 힘도 못 쓰고 끌려 다닌다. 창조적인 사람에게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조현병 환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조현병이나 조현정동장애를 앓았다고 여겨지는 창조적인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사고장애가 작품 활동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생각해보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조현병과는 대조적으로 조울증은 창조성에 도움이 된다. 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높은 활력과 신속한 사고 과정 때문이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창조적인 사람과 조현병이 있는 사람이 인지 측면에서 여러 특징을 공유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두 부류 모두 단어와 언어를 비범한 방식으로 사용하며(위대한 시인이나 소설가의 대표적 특징), 현실에 대해 비범한 시각을 갖고 있고(위대한 화가의 특징), 또한 깊은 사고를 할 때 비범한 사고 과정을 자주 사용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홀로 있기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창조적인 사람은 전통적인 심리 검사에서 창조적이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정신병리적 측면이 더 많이 드러나며, 친구들에게 기이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일도 많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우리가 이 병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해온 방식도, 너무나 자주, 잔인하며 모순적이었다. 사실 그 방식은 현대 미국의 의료와 사회서비스의 표면에 생긴 가장 커다란 오점이다. 우리 시대의 사회사가 쓰일 날이 오면 조현병 환자들이 겪은 곤경은 전국적인 추문으로 기록될 것이다.
조현병의 모든 것 14장 조현병이라는 재앙의 규모, E 풀러 토리
통탄할 정도로 잘못된 생각에 빠진 민권변호사와 ‘환자 옹호자’ 들은 ‘정신증 상태로 있을 개인의 권리’를 줄기차게 옹호한다. 그런 변호사와 옹호자 들의 사고는 그들이 옹호하는 사람들보다 더 깊은 사고장애에 빠져 있다. 예를 들어 위스콘신의 한 국선변호인은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대변을 먹는 조현병 환자가 본인에게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고, 판사는 변론을 받아들여 환자를 풀어주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4장 조현병이라는 재앙의 규모, E 풀러 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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