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4. 조현병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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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머지 성격특성들에 대한 척도에서는 차이가 매우 적었고, 전통적 가치 고수, 위험 감수 행동에 대한 흥미 같은 또 다른 척도들에서는 사실상 아무 차이도 없었다. 조용하고 신실한 두 여성은 둘 중 한 사람이 조현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용하고 신실했다. 말썽을 잘 부리고 위험한 행동을 감행하는 한 쌍의 젊은이들은 한 사람이 조현병에 걸렸음에도 여전히 말썽꾼에 위험한 행동을 좋아했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도 핵심 성격은 최소한으로만 변한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물론 그 사람에게서 보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성격특성을 모두 조현병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언제든 든다. 나는 환자 가족들이 실상과는 아주 다르게, 병든 가족이 조현병에 걸리기 전에는 아주 이상적인 성격이었던 것처럼 회상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또한 병에 걸리기 전에도 갖고 있던 모든 결점과 약점을 병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는 환자도 많이 보았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조현병이 없는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듯이 조현병에 걸린 사람 중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자신의 증상을 매우 잘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가 살고 싶지 않은 곳에 배정되었을 때 병원이나 이전에 살던 곳으로 다시 보내지려면 어떤 식으로 행동하면 되는지 정확히 안다. 내가 맡았던 환자 중에도 병세가 개선되었을 때 내게 “선생님, 내 상태가 좀 좋아지기는 했지만, 일을 해도 될 만큼 충분히 좋아진 건 아닙니다”라고 의도가 뻔히 보이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어떤 사람의 행동이 정신이상의 ‘결과’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주관적인 일이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그 말의 정의상 거의 모든 범죄가 정신이상이라고 표현할 만한 사회규범의 위반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충동’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없는 충동과 저항하지 않은 충동을 구분하는 선은 아마도 황혼과 땅거미를 구분하는 선만큼 모호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그런 판단은 지나간 시점에 회고적으로 내려진다는 사실도 어려움을 한층 더한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은유와 상징적 사고가 불가능해지는 것 또한 종교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방해하는 또 한 가지 요소다. 대부분의 공식화된 종교적 신앙 체계에서는 은유와 상징적 사고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조현병 환자가 이 병을 앓는 과정 내내 종교적 문제들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실제로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조현병 환자의 30퍼센트가 “발병 이후 신앙심이 더욱 깊어졌다”고 보고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2장 자주 묻는 질문들, E 풀러 토리
1960~1970년대 영화에서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을 표현하던 또 하나의 흔한 방식은, 주변의 정상적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제정신인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왕이 된 사나이〉(1966)에서는 정신병원 입원환자들이 병원을 떠나 전쟁 통에 모두가 버리고 떠난 마을을 차지한다. 그들이 보이는 정상적인 행동은 계속되는 전쟁의 광기와 대조되고, 앨런 베이츠가 연기한 플럼픽 일병은 결국 군대를 떠나 그 환자들의 무리에 합류하기로 결정한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영화에서는 정확한 병명을 말하지 않지만 명백히 조현병으로 보인다. 헬프갓을 연기한 제프리 러시는 계속되는 증상에 시달리는 재능 있는 예술가를 훌륭하게 연기했고, 영화는 그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조현병에 관한 지식은 30년은 뒤처져 있어서, 어린 시절 헬프갓을 잔인하게 대한 아버지(아만드 뮐러 스탈) 때문에 병이 생긴 것처럼 암시하고 있다. 헬프갓의 누나도 그러한 주장에 강력히 반박했다. 영화가 성공하면서 헬프갓은 미국 순회공연을 했는데, 비판자들은 이를 순전한 착취라고 느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2세기 전에는 점잖은 사람들이 일요일마다 정신병원을 찾아가 얼을 빼고 환자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오늘날 우리는 환자들을 정신병원에서 나오게 하고는 그들에게 ‘정상적인’ 삶을 살라고 부추긴다. 어떤 이들은 길모퉁이에서 기괴한 종교를 전파하고, 어떤 이들은 애버리피셔홀에서 콘서트를 열고 점잖은 사람들은 그들을 보기 위해 1인당 50달러를 지불하는데, 그러고는 이런 걸 진보라고 부른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그러나 창조적인 사람과 조현병 환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창조적인 사람은 자신의 비범한 사고 과정을 통제할 수 있고 작품을 창조하는 데 그러한 사고를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조현병 환자는 불협화음 같은 무질서 속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연결되지 않은 생각들과 이완된 연상에 아무 힘도 못 쓰고 끌려 다닌다. 창조적인 사람에게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조현병 환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조현병이나 조현정동장애를 앓았다고 여겨지는 창조적인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사고장애가 작품 활동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생각해보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조현병과는 대조적으로 조울증은 창조성에 도움이 된다. 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높은 활력과 신속한 사고 과정 때문이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창조적인 사람과 조현병이 있는 사람이 인지 측면에서 여러 특징을 공유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두 부류 모두 단어와 언어를 비범한 방식으로 사용하며(위대한 시인이나 소설가의 대표적 특징), 현실에 대해 비범한 시각을 갖고 있고(위대한 화가의 특징), 또한 깊은 사고를 할 때 비범한 사고 과정을 자주 사용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홀로 있기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창조적인 사람은 전통적인 심리 검사에서 창조적이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정신병리적 측면이 더 많이 드러나며, 친구들에게 기이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일도 많다.
조현병의 모든 것 13장 대중의 눈에 비친 조현병, E 풀러 토리
우리가 이 병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해온 방식도, 너무나 자주, 잔인하며 모순적이었다. 사실 그 방식은 현대 미국의 의료와 사회서비스의 표면에 생긴 가장 커다란 오점이다. 우리 시대의 사회사가 쓰일 날이 오면 조현병 환자들이 겪은 곤경은 전국적인 추문으로 기록될 것이다.
조현병의 모든 것 14장 조현병이라는 재앙의 규모, E 풀러 토리
통탄할 정도로 잘못된 생각에 빠진 민권변호사와 ‘환자 옹호자’ 들은 ‘정신증 상태로 있을 개인의 권리’를 줄기차게 옹호한다. 그런 변호사와 옹호자 들의 사고는 그들이 옹호하는 사람들보다 더 깊은 사고장애에 빠져 있다. 예를 들어 위스콘신의 한 국선변호인은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대변을 먹는 조현병 환자가 본인에게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고, 판사는 변론을 받아들여 환자를 풀어주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4장 조현병이라는 재앙의 규모, E 풀러 토리
정신이상이 실제로 증가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개연성 있는 설명들을 제시했는데, 유전학(예를 들어 혈족결혼의 증가)부터 문명의 복잡성 증가, 수음, 알코올 사용, 기차 여행의 증가까지 다양했다. 실제로는 정신이상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던 사람들은 정신질환자의 기대수명 증가, 성가신 사람들을 시설에 가두는 사회적 움직임,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가족들이 집을 떠나 일하러 가고 따라서 더 이상 병든 친족을 집에 둘 수 없어서 생기는 통계상의 수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4장 조현병이라는 재앙의 규모, E 풀러 토리
영국의 에드워드 헤어 박사는 이러한 주장들을 세세하게 분석해 19세기에 실제로 정신이상이 증가했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 역시 이 주제에 관해 공저한 《보이지 않는 역병》에서 정신이상이 실제로 증가했다고 결론지었다.
조현병의 모든 것 14장 조현병이라는 재앙의 규모, E 풀러 토리
탈원화의 규모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1955년에 주립 정신병원들에는 중증 정신질환자 55만 9000명이 있었다. 2015년에는 약 3만 5000명이었다. 1955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인구가 1억 6600만 명에서 3억 900만 명으로 증가했으니, 만약 오늘날에도 1955년과 인구당 입원환자 수의 비율이 동일하다면 오늘날 입원환자 수는 104만 명이 되었을 것이다. 이 말은 곧 1955년이라면 주립 정신병원에 있었을 환자 약 100만 명이 오늘날에는 지역사회 안에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는 50년 전이라면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사람 중 96퍼센트 이상이 오늘날에는 병원에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현병의 모든 것 14장 조현병이라는 재앙의 규모, E 풀러 토리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정회성 옮김, 민음사, 2009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모은 이 소설은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와 영화 〈왕이 된 사나이〉가 불씨를 지핀 개념의 픽션 버전이다. 랜들 맥머피는 주립 병원 환자들을 동원해 래치드 수간호사와 그 병원에서 일하는 사악한 정신과 의사들에게 도전을 시도한다. 환자들은 병든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것으로 묘사되며, 마지막에 브룸 추장은 병원을 탈출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간다. 현실에서라면 브룸 추장은 어떤 다리 아래 모여 사는 정신질환자 노숙자 무리의 일원이 되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구타를 당하거나 혹은 그 모든 일을 다 당할 확률이 높다. 키지는 당시 환각제의 전도사 같은 존재였는데, 그가 쓴 이야기에서도 환각 상태의 기미가 느껴진다.
조현병의 모든 것 부록 1 조현병에 관한 최고의 책과 최악의 책 목록, E 풀러 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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