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뾰뜨르 스쩨빠노비치는 인도를 다 차지하고 그 한복판을 걸어가면서 리뿌찐에게는 조금의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 리뿌찐은 옆에 걸어갈 자리가 없어서 한 걸음 뒤에서 서둘러 따라오거나, 아니면 옆에서 이야기하며 걸어가려면 진흙투성이 도로로 뛰어내려야만 했다. 뾰뜨르 스쩨빠노비치는 문득 얼마 전 지금의 그처럼 인도를 다 차지한 채 길 한복판을 걸어가던 스따브로긴을 따라 서둘러 가려고 지금처럼 똑같이 진흙탕 길을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던 일이 생각났다. 그는 이 장면이 생각나자 미친 듯이 화가 나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리뿌찐도 모욕감에 숨이 막혀 왔다. 그는 뾰뜨르 스쩨빠노비치가 지금이라도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뾰뜨르 스쩨빠노비치를 증오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위험 때문이 아니라, 그의 거만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일단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화가 나 있었다. 내일이 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자신의 신세를 망치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뾰뜨르 스쩨빠노비치를 죽일 수만 있다면 반드시 그를 죽였을 것이다.
”
『악령(하)(열린책들 세계문학 59)』 도스토예프스키
악령(하)(열린책들 세계문학 59)육체와 영혼의 고귀함보다 불행과 악덕, 욕정과 범죄에 기독교적인 공감을 보여주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의 장편소설 『악령』 하권. 정신 분석가와 같이 인간의 심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해부한 독자적인 소설 기법으로 근대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연 그의 대표작이다. 새 소설 구상에 골몰하고 있던 당시 모스크바의 한 대학생이 배신자로 의심받아 동료 혁명가의 손에 살해당하는 네챠예프 사건에 강한 인상을 받은 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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