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 5문5답] 9. ‘이부망천’에 열받지 않는 인천출신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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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들을 만나 그 분들의 인생책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생책 5문5답] 인생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준 책. 좋은 삶을 살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용기를 주는 책. 당신의 인생책을 알려주세요. 함께 읽고 나누겠습니다.
Q1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와 인생책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JTBC 강인식 기자입니다. 중앙일보에서 12년 JTBC에서 8년 일했습니다. 20년 조금 넘게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작가로 불리우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아프기만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2022, 원더박스), 『꿈보다 열정』(2012, 문학동네), 『0.1그램의 희망』(2008, 랜덤하우스) 등의 책을 냈습니다. 인천 출신입니다.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어서 여기저기 많이 이사를 다녔습니다. 제가 태어날 즈음 인천 근방에 근무를 했고, 큰 병원이 좋을 거 같아 ‘길산부인과(길병원 전신)’를 택했습니다. 돌림자는 ‘식(植)’이었는데, 어머니가 당시 많이 아파, ‘식’에 뭘 붙여야 할지 고민조차 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건강히 태어난 뒤, 숨을 돌려 둘러보니 ‘仁川(인천)’이 눈에 들어오더랍니다. 어질 인(仁)! 그래 인식이라고 하자! 그렇게 제 이름은 仁植이 됐습니다. 그 사연을 듣고 “서울이나 포항에서 태어나지 않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름으로 불려지면서, 인천은 숨길 수 없는 저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정태옥 의원이 TV토론 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인천 부시장 출신인 그는 지역 발전을 강조하면서 해선 안될 말을 하죠. “이혼 한 번 하거나 직장을 잃으면 부천 정도 갑니다. 부천 있다가 또 살기 어려워지면(망하면) 그럼 저기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에 갑니다.” 이를 한 언론이 ‘이부망천(離富亡川)’이라는 조어로 승화시킵니다. 이 발언으로 다들 난리가 났더랬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와 제 친구들은 또 그러려니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나름 맷집이 있거든요. 그 맷집을 키워 준 최고 은인은 다름 아닌 인천을 연고로 둔, 지금은 사라진 프로야구 팀 ‘삼미 슈퍼스타즈’였습니다. 시즌 최저 승률: 0.188 (열 번 싸워 두 번을 이기지 못했다는 뜻) 팀 최다 실점: 20실점 삼미 (대 삼성 두 차례) 특정 팀 상대 연승: 16연승 OB (대 삼미) 원정 경기 연패: 21연패 삼미 시즌 최소 득점: 삼미 국내 최초 사이클 히트: 삼성 (대 삼미) 최다 득점 차 역전승: 8점 OB (대 삼미) 시즌 최소 타점, 시즌 최소 득점, 시즌 최소 루타, 시즌 최소 수비율, 1이닝 최다 피안타, 1게임 최다 피안타, 심지어 단독 홈스틸 허용까지… 이는 한국프로야구위원회 홈페이지에도 나온 기록입니다만 소설가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알게 된 삼미의 ‘우주적’ 기록입니다. 한화팬들을 보며 ‘성불했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삼미 팬들에게 그건 ‘껌’입니다. 인천은 큰 도시지만 서울과는 많이 다릅니다. 서울 주변에 생긴 베드타운들과도 많이 다르죠.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의 과거를 보여주려면 호남에서 영화를 찍고(8월의 크리스마스, 말죽거리 잔혹사 등이 그렇죠), 현대물인데 좀 슬럼한 지역을 배경으로 하려면 인천에서 찍는 것 같은(천하장사 마돈나가 그런 경우일까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치인의 ‘망언’과 맥이 닿아 있네요. 여기엔 온갖 구조적인 문제가 엮여 있겠지만 암튼 결과적으론 그렇습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이런 여러가지 구조를 단번에 꿰뚫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Q2 이 책이 인생책인 이유에 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인생책=내 생애 최고의 책’이라면 이 책은 제 인생책은 아닙니다. ‘인생’과 ‘책’을 맞물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 나는 무엇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합니다. 출범 멤버 중에 삼미가 있었고요. 저는 그때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제 생애 처음으로 어떤 ‘계급’을 느끼게 된 것이 바로 야구였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 그야말로 핫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섭니다. 우리 학교 학생은 아파트 단지 아이들 절반, 언덕배기 주택가 아이들 절반 정도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희한하게 인천임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단지에는 OB베어즈와 MBC청룡 어린이 팬클럽이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잠바를 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특정 팀 상대 연승: 16연승 OB (대 삼미)] 이 기록을 다시 얘기해야 겠습니다. 80년대 초반 지어진 최신식 아파트와 오래된 주택의 구도에, OB와 삼미의 구도가 들어옵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 아주 어린 시절이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관통하는 ‘인생의 깨달음’이 거기에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나중에 커서 생겨난 ‘사후 분석’일 수도 있지만, 정말 너무나 절묘한 것이었죠. 그리고 저도 소설과 같은 일을 겪습니다. 아래와 비슷한 일이요. [인용] (삼미의 성적이 너무 안좋은 전기 리그를 넘어)여름이 진행되면서 팬클럽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두 명의 회원이 별절을 한 것이다. 그 중 한 친구는 방학이 시잘될 무렵 부평(여기도 인천, 제가 가장 오래 산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 어느 날 MBC 청룡의 잠바를 입고 공터에 나타났다. 푸른색의 챙을 끄덕이며, 놈은 이렇게 말했다. ”부평은 거의 서울에 가까우니까.“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4년만에 문을 닫은 삼미와, 그 팀의 팬이었던 어린 아이의 성장기를 오버랩시킵니다. 비슷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이야기에서 저는 동질감을 넘어 어떤 인생을 느끼게 됐습니다. 인생책인 겁니다.
Q3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신 거예요? 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와 사연이 궁금합니다.
'삼미슈퍼스타즈'라는 책 이름을 보고 친한 친구가 "너 인천 출신이지?"라며 소개해줬습니다. 사회 친구들에게 저는 어쨋든 인천출신이니까요. 영호남충청만은 못하지만 수도권에선 인천이 구분되는 지역으로서 의미가 있나 봅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요. 아, 질문과 다른 말이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이 PC통신 시절 쓰여진 글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더라고요. 인생책을 소개해주며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 저도 얼마전에 알게 됐씁니다. 온라인 오픈백과인 '나무위키'에도 친절하게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PC통신 시절 참 좋은 글이 많이 쓰여지고 공유됐잖아요. 그믐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소설가 장강명도 PC통신의 스타 아니었습니까. 그 꿈을 키워 기어코 글을 쓰고 직업까지 작가로 바꿔내다니, 그 용기가 삼미의 팬들과 버금갈 정도입니다. 어쨋든, PC통신 시절 쓰여진 글 중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오랜 팬이 남긴 글이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아이디어가 비슷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부 그 지적에 공감하긴 합니다만, 표절이라는 지적에까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어쨋든 ‘인생’ + ‘책’ 두 단어가 맞물리는 지점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있습니다.
Q4 이 책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분들께 추천하시겠어요?
박민규는 2000년대 초반을 달군 작가입니다. 박 작가는 그래서 젊은 세대들에겐 그리 친숙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글 쓰는 게 '낭창낭창'하니 '괴기발랄'하다고 할까요. 킬링 타임으로 읽다가 쑤욱! 빠져는 그런 글입니다. 해서 박민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조금 다른 글을 만난다는 기분이 들 겁니다. 또 장거리 비행이나 기차 여행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유튜브만 들여다보다 현타 오는 분들에게 권합니다. 책으로의 연착륙을(아주 잠시나마) 도와줄 것입니다. 박민규 작가가 어떤 사람이냐고요? 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는 이상한 고글을 쓰고 다니거나, 프로레슬러나 쓸법한 가면을 쓰고 다녔습니다. 요즘에 그분은 뭐하시는지 잘 안 보이는 것 같긴 한데요. 심지어 시상식에서 영화 반칙왕의 송강호처럼 가면을 쓰고, 정장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은 신기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마치 이성이 마비된 기인처럼 보였고 그것이 이 책과 너무나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사실 그것이 다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어떤 이미지의 조합이거나 관념의 파편일뿐 박민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가 싫지 않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책은 읽어보길 권합니다.
Q5 마지막으로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을 공유해 주세요.
2000년 출간된 후 이 책은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해서 여러 분석이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의 과도한 성장주의의 비판이라느니, 주인공이 S대를 가지만 결국 주변인에 머무를 수 없는 한계에 대한 구조적 지적이라느니, 뭐 그런 얘기죠. IMF 외환 위기까지 등장하니 그런 얘기들은 다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이 오로지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이 소설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인용] 전기 리그의 치욕과 수모, 또 생각지도 못했던 동료들의 배신은 조경훈(친구)을 불붙는 승부욕의 화신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승부욕은 나름대로 똑똑하고 지혜로웠던 한 소년의 이성을 차례차례 마비시켰다. 그는 점점 삼미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무덥고 외로웠던 여름의 길목에서 간혹 이상한 말들을 지껄이곤 했다. ”후기 리그에선 삼미가 우승할 가능성이 커.“ 잠시 요양원 같은 데서 쉬다 오는 게 어떻겠니, 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그 별빛에 물든 밤같이 까만 눈동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저 별은 너의 별이니까. "그래, 저 별은 너의 별이니까." 이 말 한마디에 이 책의 모든 웃음과 눈물이 담겨 있습니다. 인천은 저의 정체성이며, 때론 자학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대상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를 키워냈습니다. 그것은 저의 선택은 아니었죠. 인생이란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인천도 삼미도 저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인생책 5문5답] 인터뷰에 함께 해 주셔서 진솔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해 주실 분들은 아래를 클릭해서 참여해 주세요. 전 국민이 자신의 인생책 한 권씩 소개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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