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 5문5답] 10. 이승미 현대지성 출판사 편집자

D-29
안녕하세요, 저는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있는 이승미입니다. 신문 편집을 하는 편집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고, 신문의 짧은 수명에 제 수명도 점점 짧아지는 거 같아서(ㅎㅎ) 출판으로 발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소진되는 느낌에서 벗어나니 활자를 만지는 일이 더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다 아이를 낳고 꽤 오랫동안 쉬었습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서 외주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다 작년에 이곳 현대지성 출판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현대지성에서 국내서 기획편집을 주로 담당하며 본받을 만한 선배, 후배들과 즐겁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의 인하우스에 있어 가장 좋은 점은 기획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제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 낯선 사람을 만나도 대가 없이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과도 인생에서 느낀 감정을 공유하려면 그 전까지 매우 섬세한 교류가 필요한데, 책을 위해 작가님들을 만나면 처음 만나는 자리라도 작가님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모든 통찰과 감정들을 들을 수 있고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아요. 그야말로 사람 책을 몇 시간 만에 읽을 수 있는 거죠. 인생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왠지 내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고민이 깊었어요. 자연스럽게 몇 십년 전에 읽은 책들 중에 기억나는 책을 더듬어보게 되었고요. 몇 가지 후보가 추려졌지만, 그 책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뀌었나? 하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해서 그냥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려고 해요.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입니다. 교수로 탄탄대로의 삶을 살던 저자가 심장마비와 암을 겪으며, 질병을 앓는 사람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사이의 감정과 사회에서 달라진 자신의 위치와 역할 등에 대해 매우 섬세하게 표현한 책이에요. 보통의 질병 서사는 개인적인 느낌을 강조하며 그것을 한 인간이라는 개인이 어떻게 극복하느냐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환자가 되는 순간 달라지는 나를 둘러싼 공기까지 면밀히 살피고 있어요.
Q2 이 책이 인생책인 이유에 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이 책은 질병을 앓아본 사람이 느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끄집어내 정갈하게 차려 놓았어요. '병'이라는 단어를 낯설게 느끼지 않는 사람으로서, 내 안에 뭉개져 있던 사유가 문장이 되어 있는 모습이 좋았던 거 같아요. 질병을 단지 신파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소비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질병 경험은 생각보다 한 사람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차별과 낙인,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나 속도,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 등등이요.
Q3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신 거예요? 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와 사연이 궁금합니다.
몇 년 전부터 질병 서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불의의 사고로 인한 장애나 선천적인 장애를 극복한 긍정적인 이들의 이야기만 있었지요. 세대가 바뀌어서일까요. 요즘은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자신의 병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우울증 등 정신 질환에만 한정되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즘에는 신체 질환도 많아요. '극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전 그 흐름이 참 반가웠어요. 질병이라는 게 단순히 극복해서 끝나면 좋겠지만, 오랫동안 한 사람의 인생에 디폴트 값이 되어 모든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 그 이야기들을 생활이라는 아래 단계로 끌어내리고 싶었거든요. <아픈 몸을 살다>라는 책이 존재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읽게 된 건 최근이에요. 변명하자면 누군가의 내밀한 고통에 다가가는 것이 제가 만들어놓은 명랑함을 앗아갈지도 모른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최대한 고통과 아픔에 가까워지지 않을수록 안전할 수 있다는 착각인 거죠. 장애를 얻게 된 작가님과 에세이 출판 계약을 최근에 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그동안의 회피와 두려움을 이기고 이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작가님의 책은 내년에 출간되는데요, 단순히 장애 극복기라는 통상적인 틀에 넣지 않고 생활인의 자세를 강조하는 쪽으로 내용을 담을 예정입니다.
Q4 이 책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분들께 추천하시겠어요?
환자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어요. 질병을 겪지는 않지만 환자 옆에서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돌봄 제공자들의 시선도 이 책에 녹아 있거든요. 환자는 환자대로 아무리 친밀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외로움이 있는데, 돌봄 제공자도 마찬가지일 거 같아요. 환자의 삶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삶도 판이하게 달라지고 변하니까요. 이 책이 서로를 이해해 더 나은 일상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 같아요. 그다음은 당연히 질병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구체적인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들어 있어 후련한 위로를 받으실 거 같아요.
Q5 마지막으로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을 공유해 주세요.
"사람들이 암을 마주하길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 측에서 보면 '조용히 걱정'하는 일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암이라는 질병을 다시 한 번 부정하는 일로 느껴진다."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질환과 고통에 두려움을 느낀다. 다시 그들처럼 될까 봐 두려울 뿐 아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할까 봐 두렵다. 고통도 무섭지만 속도를 늦추는 것도 무섭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느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광기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속도가 늦어질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며, 이들은 조직이라는 생산 기계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겁낸다."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내달리면서 살아가느라 사람들에겐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반추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하는 법, 몸을 생산 도구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면서 인생을 보낸다.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우리는 몸을 생산 도구로 사용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만, 우리 자신을 생산한다는 말의 의미는 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아픈 사람이 자기 질환에 책임이 있다는 관념을 버리지 못한다. 아픈 사람에게 나아야 할 책임이 있다면 애초에 아프게 된 것에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나아야 한다는 이상은 또한 낫지 못하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깎아내린다. 아픈 사람들의 책임이 낫는 일이 아니라면 그들의 진정한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경험을 표현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인생책 5문5답] 인터뷰에 함께 해 주셔서 진솔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해 주실 분들은 아래를 클릭해서 참여해 주세요. 전 국민이 자신의 인생책 한 권씩 소개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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