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했던 내용을 공유합니다.
《지대넓얕1》역사 파트 발췌, 수정, 요약입니다.
D-29
바닿늘모임지기의 말
바닿늘
시간의 두 가지 입장
시간에는 직선적 입장과 원형적 입장이 있다.
시간에 대한 입장은 실제 서양과 동양의 시간관
을 형성했다. 직선적 시간관은 서양의 문화와
종교의 밑바탕이 되었고, 원형적 시간관은 동양
의 문화와 종교의 밑바탕이 되었다. 서양의 그리
스도교는 직선적 시간관을 토대로 한다. 반면 동양
의 윤회 사상은 원형적 시간관을 토대로 한다.
이런 시간관의 차이는 역사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이어진다. 직선적 시간관은 역사는 끝없이 발전해
간다는 '진보적 역사관'을 낳는다. 진보적 역사관
에서의 역사는 직선적 시간관처럼 과거로의 회귀
를 인정하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를 지나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며, 그 나아감은 어제보다 변화
된 오늘이고 오늘보다 변화된 내일이다.
기술과 문명은 절대 후퇴하지 않고 발전해나간다.
스마트폰 다음에 삐삐가 다시 시장을 지배할 가능
성은 없다. 인류의 점진적 발전과 진보에 대한 낙
관이 진보적 역사관의 특징이며, 이는 서구 사상의
근간을 형성한다. 원형적 시간관은 역사가 큰 틀
에서 반복된다는 '순환적 역사관'을 낳는다.
순환적 역사관에서의 역사는 발전과 진보를 지속
하지 않는다. 대신 발전과 퇴보를 반복한다. 이것
이 동양적 역사관의 특징이다. 시간에 대해 알아본
이유는 시간에서 파생된 역사관의 두 가지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진보적 역사관과 순환적 역사
관, 이 두 역사관 중 이제부터 우리가 사용할 틀은
진보적 역사관이다. 앞으로 우리가 알아볼 역사는
발생한 사건들의 단순 나열을 넘어, 하나의 방향성
을 가지고 전개되는 흐름이 될 것이다.
생산수단 그리고 자본주의의 특성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핵심 개념 두 가지)
인류의 역사를 다섯 개의 시대로 살펴보면 원시,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나뉜다. 각각의 시대는
특성에 따라 일반적으로 불리는 이름이 있다.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 자본주의, 현대가 그것이다. 현대에만 이름이
없는 것은 특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현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구분 방식은 공산
주의 혁명가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5단계설을 근거
로 한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며
역사가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
제사회, 근대 자본주의를 지나 결국 자본주의 사회
의 붕괴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본
주의 사회가 내적 모순으로 붕괴 후, 경제적 평등이
실현되는 공산주의 사회가 올 거라 예언했다.
하지만 현시점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 예견은
빗나간 것처럼 보인다. 공산주의라 부를 수 있는
사회를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현존하는 공산주의 사회는 그다
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
은 경제력을 가진 것이고, 경제력을 가진다는 것은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시 사회부터 근
대 사회까지의 역사를 구분하는 데 생산수단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원시부터 근대까지를 누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지에 따라서 구분한다는 것은..
원시부터 근대까지를 권력의 이동에 따라 구분하
겠다는 의미다. 생산수단은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공장, 농장 같은 것이다. 생산물은 생산수단에 의
해서 만들어지는 물품이다. 이런 물품을 '재화'와
'서비스'라고도 부른다. 눈에 보이는 물질이면
재화, 눈에 안 보이면 서비스.
원시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이
생산수단이라면, 다음으로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은 '자본주의의 특성'이
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갖
는 모습으로 '공급량이 언제나 수요량 보다 많다'는
특성이다. 여기서의 공급은 시장에 생산물을 제공
하는 것을 말하고, 수요는 그러한 생산물을 사려는
욕구나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는 일반적으로 공급량은 과다하지만 수요량은 공
급량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것은 산업화를 통해
발전한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알기 위해 공급과
수요를 고려하는 것은 근대와 현대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근대와 현대의 모습은 자본
주의의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원시 공산사회(어느 날 생산수단이 탄생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는
원시 시대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의 여행이 시작
된다. 이곳에는 원시인 A와 B가 살고 있다. 이 두
원시인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함께
물고기도 잡아먹고 과일도 따 먹고 풀뿌리도 캐먹
으며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중이다. 가끔
고기가 먹고 싶어지면 A와 B는 협력해서 짐승을
잡아먹는다.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공산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시 사회는 원시
공산사회라 부른다. '공산(共産)'은 재산을 공동으
로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뜻이다. 평화롭게 공존하
던 A와 B는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씨앗을 버린
곳에서 싹이 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이 식물을
컨트롤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농업혁명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먹을 걸 찾아 떠돌아다니는 위험한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 이들은 씨앗을 뿌리고 관리하며, 그
결실로 삶을 유지하면 되었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
던 때와는 생활 방식이 크게 변했다. 낮에는 밭에서
노동을 했고, 한 곳에 오래 정착하면서 살림살이는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아직까지 A와 B는 평등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동력은 차이가
나지 않았고, 생산물의 차이도 크지 않았다. 흉년
이면 함께 배고프고, 풍년이면 함께 배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밭을 갈며 돌을 골라내던 A는 밭
에서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걸로 보이는 돌 조각을
하나 발견했다. 우연히도 한쪽 면이 날카롭게 깨져
나간 돌 조각이었다. A는 고심하다가 이것을 농사
에 이용했고, 효과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가을이
되고, 돌 조각을 농사에 사용하기 시작한 A는 그렇
지 못한 B보다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원시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살펴
보며 가장 중요하게 다룰 핵심 개념인 생산수단과
생산물이 등장한다. 돌 조각은 곡물을 생산하는
생산수단이 된다. 그리고 곡물은 돌 조각이라는
생산수단에 의해 발생하는 생산물이 된다. 생산
수단과 생산물을 구분해야 하는 것은, 부와 재산
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바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면 부는 계속해서 발생한다. 다행히 아직 돌
조각은 독점하기 어려운 생산수단이다. B도 구하
면 된다. 하지만 B는 한동안 A가 돌조각을 소유하
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A의 창고
에는 곡식이 가득해졌고, B의 창고는 검소해졌다.
겨울이 오고, A와 B는 자신이 모아둔 곡식으로
겨울을 났다. 봄이 되자, 보리를 수확하는 초여름
이 되기 전까지 B는 보릿고개를 견디고 있었다.
삼 일째 밥을 굶고 난 후, A와 함께 풀뿌리나 캐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B는 A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A는 아직도 배불리 밥을 먹고 있었다.
A의 창고에는 지난가을에 수확한 곡식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B가 말했다. "우리 옛날에 좋았지?
... 곡식 좀 나눠 주겠나?" A는 B와 함께 도우며
생활했던 과거를 떠올렸고, B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다. 곧 A가 말했다. "그래, 그때 즐거웠지.
여기 곡식이 있네. 그런데 오늘 내가 조금 피곤하
니 화장실 청소좀 부탁하네." 지시 관계가 발생했
다. 이제 A는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B는 지시에
따라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어떻게 겉보기에
별로 다를 바 없는 A가 B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게
되었을까? A가 가진 생산물과 생산 수단 덕분이다.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면 생산물을 소유하게 되고,
그 생산물을 이용해서 권력을 얻게 된다.
바닿늘
고대 노예제사회(왕과 노예를 만든 생산수단)
원시 공산사회에서 생산수단이 발생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A와 B의 자손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왔다. 그리고 A와 B의 관계도 점차 고정되었다.
A는 생산수단을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생산물을
생산해왔고, 이를 통해 B를 지배해왔다. 이제 A
와 B의 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되었다.
A는 주인인 왕이 되었고, B는 A의 노예가 되었
다. 사회는 계급으로 체계화되었다. 지배 계급으
로 왕과 귀족이, 피지배 계급으로 평민과 노예가
구성되었다. 원시 시대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A가 소유한 생산수단이 변했다는
것이다. A가 소유한 생산수단은 토지, 영토였다.
토지, 영토가 생산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여기
서 모든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A는 거대한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막대한 생
산물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막강한 권력
을 얻을 수도 있었다. A는 특별히 일하지 않아도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 토지와 영토에
서 곡식을 수확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B다.
B가 땀 흘려 노동해서 가을에 수확을 하면, A는
그 수확물을 모두 가져가서 일정량은 자신이 소
비하고 나머지 일정량은 B를 먹이고 입히는 데
사용했다. 여기서 생산수단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생산수단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
문이다. 사실 원시 시대의 돌 조각은 생산수단이
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생산수단은 토지와 영토
혹은 대농장이나 근대의 공장 같은 것들이다.
토지, 영토, 대농장, 공장이 돌 조각과 다른 점은
혼자서 소유할 수는 있지만 혼자서 운영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거대한 땅의 주인은
A 혼자일 수 있지만, A 혼자서는 그 땅을 경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A는 B를 고용해야 한다. 즉,
생산수단은 노동을 대신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생산수단은 소유자가 타인의 노동
력을 이용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왜
곡한다. 뭔가 이상하다. 노동은 오직 B 혼자서 했
는데, B의 노동의 결과물인 생산물은 A와 B가 나
눈다. A가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 때문에..
B는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뭔가 잘못되었고 부당하다. 그뿐만 아니라, B에
비해 A는 근육 발달 정도가 아주 형편없다. B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A의 지배를 받을 이유
가 없어 보였다.
이제 B는 A가 일을 시키면 마지못해서 설렁설렁
하기 시작했다. A도 B의 눈빛이 예전과는 다르다
는 사실을 곧 느꼈다. 조금만 뭐라고 해도 B는 가
자미눈을 해가지고 쏘아보는 것이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A는 어느 날 B를 불렀다.
B는 구시렁거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A가
B를 가까이 부르더니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아. 나, 사실은 신이다."
이후 B는 열심히 일했다. A가 일을 시키면 기쁜
마음까지 들었다. 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에..
이제 B는 아무런 불만도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신'은 요청된다. 지배자는 신을 부른다. 신이 정
말 응답을 하거나 말거나 그건 중요치 않다. 신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는 지배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지배자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신'이라는
언어만이 필요하다. 지배욕구가 큰 자 일수록...
중세 봉건제사회(계급의 세분화)
중세 봉건제사회는 4세기부터 14세기 무렵까지
천 년 정도의 시기다. 중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고대 말기, 역사적으로 매우 독특한 사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만 한다. 이 이야기는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약 400년 간의 이야기다. 우리는 21
세기를 살고 있다. 그리고 고대는 기원전 1세기,
기원전 5세기 등으로 부르고 있다. 세기를 나누는
기준은 예수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한다. 예수 그
리스도의 탄생이 1년으로, 1세기의 시작이 결정
되었다. 물론 역사적 사료를 고려하면 1년이 예수
가 탄생한 때인지는 아직까지도 의심스럽다.
예수라는 인물의 영향력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시
대를 구분하는 기준점이된 것일까? 그리스도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친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적 대화를
위해서는 타 종교를 가진 사람이더라도 최소한의
내용은 알아둬야 편하다. 서구 사회의 문화와 역
사를 관통하는 근원적 배경은 크게 두 가지, 헬레
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
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역사적 사조로서, 우리가 그
리스·로마 신화 하면 떠올리는 제우스나 아폴론
등의 다신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있다. 반면 헤브
라이즘은 야훼나 여호와, 하느님 등으로 불리는
유일 신과 이스라엘 민족의 계약에 대한 역사적
흐름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교라고 하면 떠올리
는 것들을 말한다. 그렇기에 서구 사회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교를 이해해야 한다.
1세기가 되면 고대 이스라엘의 작은 도시 나사렛
에서 예수라는 인물이 성장한다. 이 시기의 이스
라엘 민족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때의 로마는 거대 제국으로, 지금으로 치면 미
국의 영향력에 버금가는 국가였다. 반면 이스라
엘 민족은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았
고, 문화적으로는 신과의 계약인 율법을 중시하는
독자적인 유대교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이스
라엘의 민족종교가 유대교였다. 그리고 예수는
이러한 식민지 이스라엘에서 탄생했다. 이후 장
성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유일신의 뜻에 따라
예수의 가르침인 복음을 전파하러 이스라엘 전역
을 떠돌았다. 그런데 예수의 가르침은 율법을 이
해하는 부분에서 당시 유대교 신학자 집단인 율법
학자들과 충돌했다. (중략) 결국, 예수는 십자가
처형을 선고 받은 후 골고다 언덕에서 생을 마감
했다가 사흘만에 부활했고, 흩어진 제자들을 모
아 초기 그리스도교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박해를 받으며, 지하
무덤이면서 동굴인 카타콤에서 비밀스럽게 예배
를 이어갔다. 하지만 4세기, 분열되었던 로마를
통일한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박해의 대상이었던
그리스도교를 로마 국교 중 하나로 인정했고, 얼
마 후, 유럽 전체로 그 영향력을 뻗어나갔다.
중세 봉건제사회가 되면 사회 계급은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분화되었다. 국왕과 노예 사이 성직자,
영주, 귀족, 기사, 농노가 생겨났다. 이 중 중세
사회에서 주목할 계급은 영주다. 영주는 성의 주
인으로서 성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 해당하는
사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사유지는 영주의
생산수단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생
산수단을 소유하면 생산물을 소유하게 되고, 이
로써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권력을 갖게 된다.
영주들은 더 큰 권력을 위해 서로의 영토를 필요
로 했고, 이러한 이해 충돌은 영주들 간의 끊임없
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중세는 천년이라는 긴 세
월 유지 되었다. 그런데 중세 후기가 되면서 견고
했던 사회 분위기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원인은 상업의 발달과 공장의 탄생이 유력하다.
18세기가 되면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
명했고, 이 장치는 당시에 발전하고 있던 분업 시
스템과 만났고, 새로운 생산수단 '공장'을 탄생시
켰다. 공장을 소유한 자들은 권력을 갖게 되었는
데, 이들은 '부르주아'라고 불렸다. 얼마 후, 부르
조아는 기존 권력과 충돌했다. 그리고 결과적으
로 신권력인 부르조아가 승리했다. 대표적인 사
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인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다. 무엇보다 부르주아는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했다.
(문화운동 르네상스의 중심에 있는 인본주의)
바닿늘
근대 자본주의의 전개(공급과잉의 시작)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에 의해 시작되었다. 산업
혁명이 자본주의를 발생시킨 셈이다. 산업 혁명을
단순화하면 공장의 탄생을 말한다. 공장은 기계와
분업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물을 만들어냈다. 쏟아
져 나온 막대한 양의 생산물이 화폐경제를 만나며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공장의 특징은
대량생산이고, 이에 따른 자본주의의 특징은 공급
과잉이다. 자본주의의 특성은 '공급'이 '수요' 보
다 많은 상태다. 다른 말로는 공급과잉, 초과공급
이라고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언제나 공급과잉
의 상태에 놓인다. 공급과잉의 상태는 자본주의의
가장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상태다. 이제부터 공급
과잉을 핵심개념으로, 근대와 현대의 역사가 어떻
게 전개되었는지 알아볼 것이다.
이제 B는 구두공장을 소유한 자본가가 되었다.
노동자도 세 명이나 고용했다. B는 최대한 오랜
시간 공장을 가동하려 한다. 공장 유지비와 임대
료, 임금은 고정적으로 지출되기 때문이다. B는
공장을 최대한 가동해서 구두를 찍어냈다. 그런
데 문제가 발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고에 재
고가 쌓였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논리적으로
두 가지다. 공급을 줄이거나 수요를 늘리거나.
따져봤을 때 더 나은 해결 방안은 수요를 늘리는
방법처럼 보인다. 수요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은
역시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 해볼 수 있다. '시장
개척'과 '가격 인하'라는 두 가지 해결 방안이 그
것이다. 산업화, 즉 공장의 탄생으로 공급과잉을
맞이하게 된 인류는 필연적으로 이 두 가지 방안
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B는 창고에 쌓인 구두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대
출을 받아 배를 한 척 구입한 뒤, 창고에 쌓여 있
던 구두를 모두 싣고는 항해를 시작했다. 몇 달의
고생 끝에 비로소 아마존에 도착했다. 배가 해안
에 도착하자 머리에 깃털을 꽂고 나뭇 잎으로 하
반신만 가린 원주민이 B를 환영했다. B가 말했다.
"구두 팔러 왔어." 원주민 족장이 말했다. "줄게
없는데?" 그때 원주민 뒤로 소들이 지나갔다.
B가 말했다. "소 한 마리당 구두 다섯 켤레!" 원
주민 족장이 그 말에 대답했다. "소는 우리 선조
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우리의 형제나 다름
없기에 팔 수 없다." B가 준비해온 총을 뽑아서
족장과 함께 나온 원주민 중 한 명을 쏘자, 원주민
족장이 말했다. "일곱 켤레로 하시죠." 시장이 개
척되었다.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그들에게 필요했던 식민지)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된 국가들은 자본주의
의 특성인 공급과잉 문제에 필연적으로 봉착했다.
곧, 수요를 늘리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만 했고, 시장을 개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식민
지를 만들어서 원료를 공급받고 가공품을 판매하
는 것이다. 이게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유럽이
필연적으로 거칠 역사의 방향이었다. 실제, 산업
화된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세계
로 뻗어나갔다. 영국은 인도, 스페인은 남미로, 프
랑스는 아프리카로 갔다. 그곳에 식민지를 세워,
자국에서 만든 생산물을 불공정한 방법으로 판매
하고 큰 이익을 얻었다. 대표적 예가 영국이다.
영국은 18세기부터 인도를 식민지화한 후에 자
국의 면직물을 인도에 판매하고 그 대가로 아편
을 받았다. 받은 아편을 다시 중국에 판매하고 그
대가로 홍차와 막대한 부를 얻었다. 반대로 인도
경제는 영국의 면직물 산업에 종속되면서, 많은
자원과 부를 영국에 빼앗겼다. 면직물로 인해 국
가 전체가 영국에 종속된 것이다. 그래서 인도의
민족 해방을 이끌었던 간디는 영국산 면직물의
수입을 막기 위해 스스로 옷을 제작해서 입자는
운동을 펼쳤다. 우리가 간디를 생각할 때 물레를
감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
레는 영국산 면직물에 대한 거부이자, 궁극적으
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다. 근대
유럽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확보함으로써 공급과
잉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산업화된 국가들이 식
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던 시대를 제국주의
시대라고 한다.이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국
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빠르게 산업화
하는 유럽에 속했으면서도 산업화가 늦어지면서,
뒤늦게 제국주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독일의 산
업화가 늦어진 것은 중세 봉건체제가 오래 지속
되면서 계속된 내전으로 산업화를 추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통일된 독일은 산업
화를 먼저 거친 영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들과는
다르게, 면직물 같은 전통적 공업보다 국가 주도
의 중화학공업을 발전시키며 산업화에 박차를 가
했다. 독일 역시 산업화에 따라 자본주의가 정착
했고,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 문제에 봉착
했다.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확
보 해야만 했다. 즉, 식민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더 이상 차지할 만한 식민
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앞서 산업화를 이룩한
열강들이 식민지를 모두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독일에는 위기였다. 산업화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이 필수지만, 새롭게 개척할 수 있는
시장이 없으니 말이다. 이 무렵, 기회가 찾아왔다.
1914년, 동맹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
태자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지역에 갔다가, 독
립을 원하는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피살되는 사건
이 발생했다. 이게 왜 문제냐고 생각할지 모르기
에, 큰 줄기만 적어보자면, 독일의 동맹국인 오스
트리아의 황태자가 러시아 지역에서 민족 문제로
암살당한 것이다. 독일한테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사건을 빌미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독
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의 서막이 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공급과잉이 일으킨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약
4년 동안 지속되었다. 표면적인 원인은 오스트리
아 황태자 암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
스트리아와 독일이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가 전쟁에 휘말리자 러시아의 동맹
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참가했다. 이후 미
국이 참전하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제국주의
확장을 위해 전쟁에 뛰어들면서 전쟁의 무대는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본질적인 이유는 독일이 전쟁
을 원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뒤늦은 산업화로
식민지 경쟁에서 제외되어 있어서였다. 오스트리
아 황태자의 암살은 명분이 된 것뿐이다. 마찬가
지로 독일인의 천성이 나쁘거나 악독하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다. 궁극적인 원인은 자
본주의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 이를 극
복하고 산업화를 유지하기 위해 독일이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전쟁밖에 없었다. 독일과 오스트리
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가 3국 동맹을 형
성했고, 영국과 프랑스와 러시아가 3국 협상을 결
성하여 대립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에 협력
한 이유는 단순했다. 국가 주도의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독일이 자신들의 식민
지를 위협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식민지
를 지키기 위해서는 독일을 저지해야만 했다.
전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전쟁이 끝난 다음 해,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전국들은 전쟁의 책임을
물어 전쟁범죄국인 독일과 베르사유 조약을 맺었
다. 이로 인해 독일 경제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침체됐고, 세계는 전쟁 이후 안정되며 성장했다.
세계가 역사상 유례없는 끔찍한 대규모 전쟁을
치렀는데, 어떻게 세계는 그토록 빠르게 안정되
고 더 나아가 경제적 성장까지 이뤄냈을까?
쉬운 예로, B는 전쟁 후 국가가 관리해주는 식민
지에서 안정적으로 구두를 팔았고, 전쟁 중에는
군에 구두를 납품하며 구두 재고를 모두 처리할
수 있었고, 그걸로도 부족하여 공장은 쉴 새 없이
가동 됐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유지해주는 핵심
2가지 요소는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
이다. 전쟁과 유행은 자본주의라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공급
과잉의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듯, 유행은 필요를
뛰어넘는 막대한 소비를 창출해서 공급과잉 문제
를 해소한다. 전쟁과 유행 없이 자본주의를 유지
하기란 어려웠다.
바닿늘
세계 경제대공황
(대공황으로 이어진 가격 경쟁)
전쟁 후 세계경제는 호황을 맞이했다. 그런데 시간
이 갈수록 예전에 경험했던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B의 공장 창고에 또 구두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시장의 포화였다. 이제 처음의 문제
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자본주의의 특성으로 공급
이 수요보다 많다는 문제점을 처음에 언급했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량을 줄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님도 전제했다. 게다가 식민지
조차 더는 없기에 가격을 낮추기로 결정했고, 낮춘
단가를 맞추기 위한 방법으로 근로자를 해고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위기는 B가 눈치채지 못한
시장의 다른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수요 감소
로 상품 가격을 낮춰야만 하는 상황은 B에게만 해
당하는 문제도, 구두 산업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도
아니었다. 공급과잉의 문제는 사회 전체적으로 발
생하고 있었고, 모든 산업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동자 해고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문제는 노동
자는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라는 점이었다. 해고
당한 노동자는 소비 능력을 상실한 소비자와 동일
하다. 다시 말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실업자가 늘어
나며 소비도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이때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더 많아짐을 의미하고, 공급랑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시 모든 산업에서 가격 인하 경쟁이 일어날 수밖
에 없음을 뜻한다. 또 가격을 인하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해고해야만 하고, 해고된 노동자가 다시
소비 능력을 상실한 소비자가 되어 수요를 창출하
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사회는 경기
침체의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는 늘어갔고, 문을 닫
는 공장과 기업이 속출했다. 이 문제가 폭발한 사건
까지 발생했으니.. 뉴욕 증시가 대폭락하면서 세계
경제 전체를 무너뜨린 1929년 세계경제대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전쟁으로 수요가 폭발하면서 이루
어진 경제 성장은 특히 미국의 유례없는 호황을 가
져왔다. 사람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경제
에 낙관했다. 빠르게 늘어나는 자산에 들떠 있었고,
많은 사람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주식
을 사기 위해 빚을 내어 투자했다. 하지만 1929년
10월 29일, 뉴욕증시는 하루아침에 30% 폭락했
다. 폭락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져 1932년에는
90% 가까이 폭락했다. 국내 총생산은 반 토막이
났고, 실업률은 25%에 달했다. 당시 세계 총생산
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던 미국 시장의 침체는
더욱 더 빠르게 세계 시장의 침체로 몰고 갔다.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 각국은 다양한 방
안을 모색해야만 했다. 대표적인 세 국가의 극복
방안을 살펴보자면.. 미국, 러시아, 독일이 있다.
미국은 뉴딜정책을 시행했다. 이것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가 시행한 경제정책으로,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자유 시장의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의지를 담은 정책이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경기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 철도, 댐 건설 등의 공공사업을 추진했다.
공공 사업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노동자는 임금
을 받고, 그동안 일자리가 없던 노동자가 임금을
받으면 생필품을 사게 되고, 사회 전반에 수요가
다시 창출된다. 수요가 생기면 기업은 상품을 생산
하기 위해 멈춰있던 공장을 다시 가동하게 된다.
미국 경기는 차츰 회복될 수 있었다.
러시아는 미국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공급과잉이
라는 문제점을 내포한 자본주의를 폐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인위적
과정을 거쳐서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혁명 이후 러시아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즉 '소련'으로 명칭을 전환했다.
러시아는 대공황 이전, 이미 자본주의를 폐기했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공황으로 경기침체를
경험하던 시기에, 반대로 러시아는 단계적이고 점
진적인 과정을 거쳐 안정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전쟁 배상금
을 물고 있는 중, 설상가상으로 대공황까지 겹치자
국가적 파산에 직면했다. 물가는 치솟고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되었다. 수레에 현금을 가득 싣고 가
도 빵을 사기에 부족할 정도였다. 국민의 고통과
불만이 극에 달했을 무렵 모든 독일인을 구원해줄
영웅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히틀러다. 히틀러는
독일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전쟁배상
금 때문임을 밝히고, 자신이 전쟁배상금을 물지
않게 하겠다며 독일인을 선동했다. 그리고 위대한
독일 민족이 이렇게 초라해진 원인은 독일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이 너무 좁고, 더 큰 문제는 독일 민족
의 영토가 유대인으로 인해 오염되었다는 것이었
다. 독일 민족의 위대한 부활을 위해, 영토를 순결
하게 청소할 필요가 있었다. 얼마 후, 대학살 홀로
코스트가 시작되었다.
세 나라의 대공황 해결 방안
미국 : 뉴딜정책 - 자본주의 수정
러시아 : 공산주의 - 자본주의 폐기
독일 : 군국화 - 자본주의 유지
제2차 세계대전(공급과잉에 의한 두 번째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치
러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추축국이 되어 전쟁을 일으켰고 이에 대
항해서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등 여러
나라가 연합국을 형성했다. 일본은 대체 갑자기
왜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것인가? 그것도 지구
반대편의 독일과 동맹을 맺고?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마찬가지였다.
중세의 일본에는 천황이 존재했으나, 실질적 힘
은 지방의 영주라고 할 수 있는 막부에 있었다.
막부는 군부정권으로 통치권자인 쇼군이 통치를
했다. 중세의 끝인 19세기 중엽이 되면, 일본은
미국과의 통상조약을 시작으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근대화를 '메이지유신'이라고 한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일본의 막부체제가 종식되고,
천황에 의한 중앙집권적 통치가 이루어졌다.
곧 열강들의 기술, 문화, 제도를 빠르게 받아들여
국가주도의 산업화가 본격화되었다. 이후의 역사
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구조에 따라 흘러갔다.
산업화는 자본주의를 낳았고, 자본주의는 공급과
잉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그 다음은 수요를 늘려
야 하고,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
인 식민지가 필요하다.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1894년에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
쟁을 일으켜 타이완, 조선, 사할린을 식민지로 얻
었다. 발전을 계속하던 일본 역시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그 해
결책으 더 큰 시장인 대륙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세계 열강 모두가 원하는 꿈의 시장이었고,
이에 따라 일본은 이들과 대립하며 제2차 세계대
전에 참여하게 된것이다. 독일과 일본이 추축국
으로 동맹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국가
의 궁극적인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과도한 공
급량을 해소하기 위한 식민지의 확보, 그리고 무
역협정에서의 국가적 우위. 반면 연합국의 목적은
자국의 식민지를 지키고 독일, 일본과의 무역협정
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었다. 경제 위기를 극
복하기 위해 식민지를 얻으려는 국가와 식민지를
지키려는 국가 간의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의 본
질이라고 할 수 있다.전쟁은 연합국의 승리였다.
1945년 5월에 독일이 먼저 항복했고, 같은 해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핵폭탄이 투
하되고 나서 일본은 항복했다. 그날이 15일이었
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은 인류 역사에서
세계 대전 종전일이 되었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의 관점에서는 광복절이 된 셈이다.
바닿늘
냉전시대(자본주의VS공산주의)
전쟁이 끝나고 세계는 새롭게 재편되었다. 세계
역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로 대표
되는 유럽 사회는 전쟁으로 황폐해졌고,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미국과
소련은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과 일본에 맞서 동맹
을 맺고 있었지만, 그것은 불안한 동맹이었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이질적인 체제로 대결할 수
밖에 없었다. 서로 판이하게 다른 경제체제 때문
이었다. 대공황 이후에 미국은 정부가 시장에 개
입하는 후기 자본주의를 선택했고, 소련은 러시아
혁명을 거치면서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자본주의
와 공산주의라는 두 체제를 중심으로 세계는 팀을
나누어 재편되었다.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국가는
미국, 서유럽, 일본, 남한 등이 있었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국가는 소련, 동유럽, 중국, 북한 등이
있었다. 두 세계는 체제와 군비경쟁으로 아슬아
슬한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 미국과 소련은 모두
막대한 양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국가가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은 핵전쟁을 의
미했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미국과 러시아는 대
략적으로 각각 7,000기와 7,300기가량의 핵무
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과 소련이 직접 전쟁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전면전으로 갈 수 있는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으나,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
대신 다른 국가들에서 국지적으로 전쟁이 발발
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베를린 위기,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이다. 이렇게 미국과 소련의 전면전 없이 긴장과
갈등이 계속되고 체제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이
냉전 시대의 특징이다.
냉전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1945년
부터 소련이 개혁과 개방을 외치며 해체된 1991
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B는 제1차 세계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대공황
의 여파로 눈물을 머금고 운영을 중단해야 했던
공장이 전쟁으로 다시 가동된 덕분이었다. 전쟁이
수요를 창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고했던 노
동자들도 다시 고용했다. 공장은 점진적으로 안정
되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노동자로 고
용한 C1,C2,C3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예전에는 쉬고 있다가도 B가 공장에 방문하면
괜히 더 열심히 일하는 척도 하고, 특별히 시키지
않은 일도 서로 경쟁하듯 앞장서서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급변했다. 어째 B가 공장에
오면 노동자들간에 서로 말을 맞췄는지 불평불만
을 쏟아냈다. 업무량은 많은데 임금이 적다느니,
공장 환경이 좋지 않아 건강을 해치게 되었으니
보상하라느니 하고 말이다. 게다가 예전처럼 B
마음대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누군가를 해고할 때는 노동자 전체와 다시 협상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B는 우연하게 구
두공장 근처에서 빵공장을 운영하는 D와 만나면
서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었다. D는 큰일이 났으
며, 자신은 망했다고 하소연했다. 자신이 빵을 수
출하고 대신 원료인 밀을 수입하는 국가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를 취했다. 이는, 공산주
의 체제가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결과만 놓고 생각해본
다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끼리 무역을 하면 될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자본 주의의 특성은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것이다. 수요를 늘리기 위한 방법은 식민지
개척이고, 식민지는 공급과잉을 해소할 시장으로
서 기능하기에, 시장 확보가 필수적인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는 공
산주의 국가가 늘어난다는 것은 시장의 축소를 의
미한다. 시장의 축소는 수요량의 감소를 의미하고,
수요량의 감소는 생산 중단, 즉 공황을 의미한다.
즉,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에 위협
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더해서, 이렇게 존재
만으로도 위협적인 공산주의가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B는 대충 상황
이 파악되는 것 같았다. 왜 요즘 들어 노동자들의
눈빛이 예전 같지 않고 자신을 적대적으로 보는지
도 알 것 같았다. B는 고민 끝에 자신이 노동자들
을 고용하는 일을 정당화해줄 정신적인 무엇인가
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B는 괜찮은 것을 찾아냈다.
B는 노동자들을 모았다. C1, C2, C3가 불만 가득
한 얼굴로 모였다. B는 짜증이 났지만 속마음을 숨
기고, 최대한 근엄하고 숭고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
막하게 말했다. "존경하는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
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멀리 다른나라에
서는 독재자들이 공산주의를 앞세워 국민을 억압
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고통과 가난 속에서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공산주의가
우리나라에까지 검은 마수를 뻗치려 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국가적 비상시국에,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시는 노동자 여
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B가 연설을 마치
고 내려오면서 곁눈질로 보니, 노동자들은 당혹스
러운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B는 마음이 놓
였다. C1이 C2와 C3에게 말했다. "뭐야, 너희가
말한 공산주의가 반국가적인 그런 거였어?" C2와
C3는 당황했다. 다음 날부터 노동자들은 묵묵히
맡은 일을 열심히 했다. '국가'는 요청된다. 국가
라는 개념은 신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특히 '애국'
에 대해 강요함으로써 지배자들을 편리하게한다.
그래서 애국은 국가 차원에서 장려되고 교육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요청은 자본주의만의 특징은
아니다. 신을 요청할 수 없는 모든 지배 권력은 애
국을 장려한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신
과 국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의 탄생(새롭고 독특한 경제체제)
냉전의 종식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승리
를 의미했다. 공산주의가 없는 세계에서 자본주의
는 빠르게 확산되어, 1991년 이후 30여 년간 세계
는 자본주의화되었다. 하지만 냉전 이후의 자본주
의는 냉전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성격이 달랐다.
냉전 이전의 자본주의는 대공황 이후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강조하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였으나, 냉전
이후의 자본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는 분위기
로 흘러갔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걸 비판하고
자유 시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신자유주
의'라고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
가 독주한 시대가 불과 얼마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에는 소련이 해체된 이후
에 태어난 까닭에 신자유주의 외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확실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수세기를 지속해온 보편적인 혹은 안정적인 체제
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탄생한 지 30년 정도
밖에 안 되는 짧은 경제체제, 수천년의 인류 역사
를 고려할 때 매우 독특한 경제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는 신자유주
의라는 매우 소비적이고 시장중심적인, 인류 역사
상 유례가 없는 매우 독특한 세계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살지 않았던 과거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너
무도 다르게 살았을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만큼 지금의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생활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매우 독특한 세계임을 아는 것, 내가 사는 세계가
지금까지의 인류 전체가 살아왔던 평균적이고 보
편적인 삶의 모습은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바닿늘
다른 파트도 나중에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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