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사 놓고 안 읽은 책 독파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D-29
처음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요즘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유들은 누군가가 이미 했던 사유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앞으로도 새로울 것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사유와 내가 쓰는 글들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지. 너무도 공감이 가기 때문에 적어 두고 싶은 문장이 있고, 너무도 공감가지 않아서 적어 두고 싶은 문장이 있다. 참 신기한 것은 이 책을 다시 읽기까지의 간격이 고작 몇 개월에 지나지 않음에도 표시해 두고 싶은 문장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그간 어떤 식으로든 성장했기 때문인지, 인생이 지나갈수록 내게 중요해지는 요소가 달리지기 때문(그것은 성장이 아닌 방향 같다는 생각이)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폐쇄적인 나에게도 그런 변화가 있다는 걸 포착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2023.04.03
그녀는 모든 육체가 평등했던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와 함께 살러 온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와 함께 산 것이다. 그런데 이제 토마시 역시 그녀와 다른 여자들 사이에 평등의 선을 그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모든 여자에게 키스했고 같은 식으로 애무했으며 테레자의 육체와 어떤 구별도, 정말 추호의 구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녀가 벗어났다고 믿었던 세계로 그녀를 되돌려 보낸 셈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03,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거듭 말하지만 소련군의 침공이 비극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도 그 이상한 도취감을 이해하지 못할 증오의 축제이기도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21,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녀는 자기가 약한 사람들의 편, 약한 사람들의 진영, 약한 사람들의 나라에 속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녀는 그들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약했기 때문이고 연설 중에 연신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 ... "당신을 위해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 거야?" "당신이 늙기를 바라. 지금보다 열 살 더. 스무 살 더!"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이 나약해지길 바라. 당신도 나처럼 나약하길 바라."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30,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 방식 혹은 감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 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왜냐하면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33,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조금 전만 해도 그녀가 쓴 중산모자는 농담의 효과를 보였다. 희극적인 것과 자극적인 것의 거리는 종이 한 장 차이일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4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토마시와 사비나가 중산모자의 모티프를 서로 나눠 가졌듯)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52,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아버지가 화병의 장미를 그리고 피카소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토록 잘못된 일이었을까? 열네 살짜리 자기 딸이 임신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그토록 비난받을 만한 일이었을까? 그녀는 다시 배신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자기 자신의 배신을 배신하기. ... 그러나 B를 위해 A를 배신했는데, 다시 B를 배신한다 해서 이 배신이 A와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57,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녀가 아버지를 배신했을 때, 삶은 길고 긴 배반의 길처럼 그녀 앞에 활짝 열렸고, 매번 새로운 배반은 마치 악덕처럼, 승리처럼 그녀를 유혹했다. 그녀는 대열 속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고 머무르지도 않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65,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녀는 공산주의, 파시즘, 모든 점령, 모든 침공은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어떤 악을 은폐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악의 이미지는 팔을 치켜들고 입을 맞춰 똑같은 단어를 외치며 행진하는 사람들의 대열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6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녀는 정말 성공적이었던 그녀의 첫 번째 그림을 떠올렸다. 실수로 붉은 물감이 흘러내렸던 그림. 그렇다. 그녀의 작품들은 실수의 아름다움 위에 구축된 것이고 뉴욕이야말로 그녀 그림의 은밀하고 진정한 조국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71,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프란츠는 강하다. 그러나 그의 힘은 오직 외부로만 향한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는 약하다. 프란츠의 허약함은 선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프란츠는 사비나에게 결코 명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예전 토마시처럼 바닥에 거울을 놓고 나체로 걸어 다니라고 명령하진 않을 것이다. 그에게 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명령할 힘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폭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있다. 육체적 사랑이란, 폭력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85,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만약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는 어떤 남자가 있다면? 누가 그녀를 지배하려 들었다면? 얼마 동안이나 그녀는 그것을 참아 낼 수 있었을까? 채 오 분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남자도 그녀에게는 적당치 않다. 강한 남자나 허약한 남자 모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8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당신 힘을 가끔 내게 쓰지 않는 이유가 뭐야?"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지."라고 프란츠가 부드럽게 말했다. 사비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이 말은 아름답고 진실하다. 둘째, 이 말 때문에 프란츠는 그녀의 에로틱한 삶에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8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사비나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 은밀한 삶, 또한 친구들의 은밀한 삶까지 까발리는 문학을 경멸했다.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했다. 또한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도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사비나는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87,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201,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녀는 참기 어려운 추락 욕구를 느꼈다. 그녀는 지속적인 현기증 속에서 살았다. 넘어지는 사람은 "날 좀 일으켜 줘!"라고 말한다. 토마시는 변함없이 그녀를 일으켜 줬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들은 폴란드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 당신들은 전쟁 중에 그리 큰 고통도 받지 않았어라고 비난할까 두려워 파괴된 건물을 영원히 보존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221,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테레자는 파괴된 시청을 바라보았고, 이 광경에 불현듯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신의 폐허를 과시하고, 자신의 추함에 자부심을 갖고 소매를 걷어 흉하게 잘려 나간 손을 보이며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보아 달라고 강요하는 그 변태적 욕구. ... 포도주를 마시며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라디오로 공개되었다는 것은 오로지 이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이 집단수용소로 바뀌었다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222,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몰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288,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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