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사 놓고 안 읽은 책 독파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D-29
프란츠는 강하다. 그러나 그의 힘은 오직 외부로만 향한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는 약하다. 프란츠의 허약함은 선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프란츠는 사비나에게 결코 명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예전 토마시처럼 바닥에 거울을 놓고 나체로 걸어 다니라고 명령하진 않을 것이다. 그에게 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명령할 힘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폭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있다. 육체적 사랑이란, 폭력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85,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만약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는 어떤 남자가 있다면? 누가 그녀를 지배하려 들었다면? 얼마 동안이나 그녀는 그것을 참아 낼 수 있었을까? 채 오 분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남자도 그녀에게는 적당치 않다. 강한 남자나 허약한 남자 모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8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당신 힘을 가끔 내게 쓰지 않는 이유가 뭐야?"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지."라고 프란츠가 부드럽게 말했다. 사비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이 말은 아름답고 진실하다. 둘째, 이 말 때문에 프란츠는 그녀의 에로틱한 삶에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8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사비나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 은밀한 삶, 또한 친구들의 은밀한 삶까지 까발리는 문학을 경멸했다.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했다. 또한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도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사비나는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87,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201,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녀는 참기 어려운 추락 욕구를 느꼈다. 그녀는 지속적인 현기증 속에서 살았다. 넘어지는 사람은 "날 좀 일으켜 줘!"라고 말한다. 토마시는 변함없이 그녀를 일으켜 줬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들은 폴란드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 당신들은 전쟁 중에 그리 큰 고통도 받지 않았어라고 비난할까 두려워 파괴된 건물을 영원히 보존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221,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테레자는 파괴된 시청을 바라보았고, 이 광경에 불현듯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신의 폐허를 과시하고, 자신의 추함에 자부심을 갖고 소매를 걷어 흉하게 잘려 나간 손을 보이며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보아 달라고 강요하는 그 변태적 욕구. ... 포도주를 마시며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라디오로 공개되었다는 것은 오로지 이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이 집단수용소로 바뀌었다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222,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몰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288,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배우란 어렸을 적부터 익명의 군중에게 자기 모습이 노출되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천부적 재능과는 아무 상관 없는, 그렇지만 재능보다 훨씬 심오한 그 무엇인 이 근본적 동의가 없다면 누구도 배우가 될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13,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신은 자신이 발명해서 조심스레 피부로 감싸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은폐하고 봉합한 체제 내부에 인간이 감히 손을 집어넣으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토마시는 처음으로 마취 상태에서 축 늘어진 환자의 피부에 메스를 대고 확고한 힘을 가해 그 피부를 찢고 다시 정확한 솜씨로 봉합하면서 아주 순간적이지만 강렬하게 신성모독을 느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1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물론 의학에 대한 그의 애정에서 비롯된 "es muss sein!"은 내면적 필연성이었던 반면, 그때 그것은 사회적 관습이 개입한 외부적 "es muss sein!"과 관련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결 어려웠다. 내면의 명령은 더욱 강렬하고 그래서 더욱 강하게 반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17,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외과의사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안에 숨은 것을 들여다본다. 토마시에게 "es muss sein!"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런 욕망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17,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그렇다. 그는 망설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말하기가 꺼려졌다. 눈앞 벽면에는 "아지곧 붉은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망설이는가?" 혹은 "아직도 2000자 선언에 서명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당신도 2000자 선언에 서명했는가?" 혹은 "사면을 위한 탄원서에 서명하기 싫은가?"라며 손가락질로 위협하는 군인의 포스터가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건 그 군인은 협박을 하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4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것보다 생매장당한 까마귀를 꺼내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요." ...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53,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이미 말했듯 소설 인물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머니의 육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상황, 하나의 문장, 그리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근본적이며 인간적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은유에서 태어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55,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나도 직접 이런 상황을 겪어 보았다. 그러나 내 이력서 속 자아로부터 그 어떤 인물도 도출되지 않았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을 모두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55,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5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58,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저주와 특권이 더도 덜도 아닌 같은 것이라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사이의 차이점은 없어질 테고, 신의 아들이 똥 때문에 심판받는다면 인간 존재는 그 의미를 잃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스탈린의 아들이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몸을 던진 것은 의미가 사라진 세계의 무한한 가벼움 때문에 한심하게 치솟은 천칭 접시 위에 자기 몸을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392,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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