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3.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D-29
195쪽, [요즘에는 확실히 근심 걱정이 만연해 있다. 나의 동시대인들은 종종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여 원하는 것을 다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어쩜 그리 즐거운 일이 많았는지. 우리에게는 솟아나던 활력이 지금 세대에게는 솟아나지 않는 것일까? 교육과, 더 심하게는 교육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러한 활력을 목 졸라 버린 것일까?]
그런데 현대인들, 그리고 젊은 세대가 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그 외에 다른 신경증에 시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은 저만 하는 건가요? 과거에도 그런 정신질환들이 있었는데 저희들이 요즘에서야 주변을 더 잘 살피게 된 걸까요, 아니면 확실히 현대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문제가 있다면 원인은 뭔가요? 혹시 풍족한 생활 그 자체가 근본적인 원인인 걸까요?
195쪽, [하지만 우리 모두는 열정적으로 자라났다. 인도의 포석 틈새같이 아무리 힘겨운 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솟아나 충만하고도 즐거운 인생을 누리겠다는 마음으로 단단히 무장하고는 햇살 아래 활짝 꽃을 피웠다. 누군가가 짓밟고 지나가 한동안은 상처로 고통 받는다 하더라도 이내 다시 머리를 높이 쳐들었다. 불행히도 요즘에는 (선택적!) 제초제를 뿌린다. 머리를 쳐들 기회는 다시 찾을 수 없고 이들은 ‘인생의 부적격자’라고 불린다. 과거에는 그 누구도 우리에게 부적격자라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설령 그런 말을 들었다 해도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살 자격이 없는 유일한 부적격자는 살인자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살인자는 살 자격이 없다는 말은 감히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된다.]
‘아무리 힘겨운 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솟아나 충만하고도 즐거운 인생을 누리겠다는 마음’에 밑줄을 긋습니다.
200페이지까지 읽고 (1) 전체 800여 페이지이고 크리스티 여사님이 꽤 장수하셨는데 200페이지가 넘도록 아직 어린이 단계입니다. 작가 생활이나 파란만장한 중년 이후 모험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을까봐 조마조마합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재미없는 건 아닌데 이렇게 길게 푸실 일인가 싶기는 해요.
200페이지까지 읽고 (2) 구수한 할머니의 수다 같은 느낌으로 읽고 있는데 크리스티 여사님이 미스 마플이랑 닮지는 않은 것 같아요. 미스 마플보다 더 꼿꼿하고 엄격한 느낌, 인생에 대한 주장이 확고한 분이라는 느낌, 그리고 상류층 느낌. 마플보다는 오히려 포와로 소설의 배경과 가까운 곳에서 자라셨네요.
200페이지까지 읽고 (3)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어서 무얼 하겠느냐고, 자꾸 꿈을 물어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티 여사님 본인은 어렸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고 작가를 꿈꾼 적은 결단코 없다고 하는데 나중에 대작가가 되었잖아요? 어린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소질을 ‘발굴’해서 ‘계발’해야 하는 건지, 그냥 알아서 크도록 놔둬야 하는 건지, 헷갈리네요.
200페이지까지 읽고 (4)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내는 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의 행복이 어린 아이들의 요구를 무조건 다 들어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크리스티 여사님의 부모님은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거나 아이들의 요구에 휘둘리는 분은 전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행복하게 잘 컸습니다.
200페이지까지 읽고 (5)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관, 연애관, 결혼관은 적잖이 당혹스럽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티 여사님이나 어머님이나 한편으로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보여서 그런 당혹스러움이 배가됩니다. 한 시대의 생각들을 지난 시대의 눈으로 쉽게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크리스티 여사님 같은 주체적인 개인조차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기는 어렵다고, 그만큼 한 사회의 생각을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199쪽,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발명은 게으름이나 나태함에서 직접 비롯된다. ‘수고를 덜기 위해’ 발명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수천, 수십만 년 동안 부싯돌에서부터 세탁기 스위치에 이르기까지 온갖 발명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커다란 비밀이다.]
20세기까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2020년대에 쏟아지는 신기술들을 보면서 제가 느끼는 건 ‘그냥 발명할 수 있어서 발명한다’ 혹은 ‘돈이 될지도 모르겠으니까 발명한다’입니다.
238~239쪽, [교육이란 학생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 때만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정보만 전달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으며, 학생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여배우들이 연극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그 대사와 연설을 따라하고, 진짜 성악가가 부르는 「무성한 나무」나 나아가 글르쿠의 「오르페」의 아리아를 들음으로써 우리의 인생에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싹튼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으며, 나는 과거에는 전혀 가 본 적이 없는 진정 새로운 세계였다.]
242쪽, [하루는 깊은 숲 속에서 둘씩 짝을 지어 일렬로 걷는데 나무 뒤에서 웬 남자가 나오는 것이었다. 음란한 노출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우리 모두 그 사람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아무것도 못 본 척 품위 있게 지나갔다.] 바바리맨은 과거에도, 외국에도 있었군요...
244쪽, [나는 이제는 남자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이타적인 사랑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청년은 오직 청년으로서, 즉 만나면 즐겁고, 그들 중에 하나가 언젠가 내 남편감(사실상 천생연분)이 될지도 모를 그런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 나는 ‘진짜’ 청년을, 그것도 ‘많이’ 만나고 싶었다. 사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253쪽, [성적인 관계를 맺기는 힘들었다. 청년들은 아가씨들을 고귀하게 여겼고,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소문의 영향을 받았다. 청년들은 보통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유부녀와 성적 재미를 보거나, 아무도 모르는 런던의 ‘귀여운 친구들’을 만났다.] 이런 얘기를 보면 적어도 남자들에게는 그렇게 성적으로 억압적이었던 시대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261쪽, [십여 명의 중년 대령들에게 유혹의 시선을 던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벌써 매력적인 유부녀, 즉 동료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 있어서 재미없는 어린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불륜이 그렇게 공공연하다는 점이나, 젊음이 그다지 찬양할 대상이 아니라거나, 하여튼 지금의 눈으로는 신기한 시대입니다.
263쪽, [“물론, 아니지요. 대위와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사랑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청혼을 받고는 싶었단 말이에요.”] ㅋㅋㅋㅋ 이 마음을 왜 제가 이해할 것 같죠?
전 이해 못하겠어요. 전 청혼보단 사랑이 필요해요. ㅋㅋㅋㅋ.
https://www.youtube.com/watch?v=ZUqSNbJuGOw But if you try sometime you find, You get what you need!
와… 쇼펜하우어랑 친구하셔도 될 듯…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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