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3.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D-29
315쪽, [매지 언니는 말했다. “네가 쓰기는 힘들지 않을까. 추리 소설 쓰기가 보통 어려워야지. 나도 쓸까 생각은 해 보았지만.” “꼭 쓸 거야.” “안 될걸.” 그것으로 결정되었다. 사실 내기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기한을 정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한번 뱉은 말은 단호히 지켜야 했다. 그 순간 나는 추리 소설을 쓰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와우, 이렇게 시작되었군요!
저는 하루키의 '쓸놈쓸' 이론을 지지합니다. 수리부엉이에서 그랬죠? '뭐, 아무튼 열심히 써 보세요.' 였던가.
요즘은 글쓰기를 포함해서 인생이라는 게 그냥 아주 사소한 계기로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와의 작은 내기나, 어떤 불운한 날의 해프닝이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조언이나... 그런 것들이 다 계기가 될 수 있는 것 같고요. 그게 너무 사소해서 나중에 봤을 때 '어떻게든 일어날 일이었디'고 여기게 되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정말 어떤 토양만 조성되면 언제 어떤 식으로 비가 오든 싹이 트는 걸까요?
대략 2주간 미친 야근에 시달리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시작했으나 역시 예상대로 술술 읽힙니다. 재밌는 것은, 여사님께서 자주 옆길로 새시는데 그게 정말 매력적이네요.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 44페이지에 보이는 여사님 어머님의 양육관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저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네요. “너한테 무례하게 굴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공손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거라.”
모든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면 좋겠어요. 회사에서도 관리자나 협력업체와 일하는 위치의 담당자들에게 꼭 알려줘야 할 이야기인 거 같습니다... ㅠ.ㅠ 저는 계속 재미있는 할머니 수다를 듣는 기분으로 읽고 있습니다.
할머니 수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듯 합니다. 열심히 읽어내려가다보니 Ealing이라는 정겨운 지명이 나오네요. 대략 15년전 쯤에 저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한달에 두 번씩은 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여사님의 이모할머니들이 빅토리아 여왕의 장례식을 보려고 뷰포인트(?)로 잡으셨던 Paddington역도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그 동네 특성상 100년전이나 요즘이나 풍경이 비슷하니, 아마 여사님이 보셨던 거리의 희미한 아웃라인이라도 어슴프레 제가 봤을거라 생각하니 뿌듯하고 재미납니다 ㅋㅋ. 모처럼 출근 안 한 토요일이었는데 이러다 밤 새겠습니다.
말씀 재미있게 하시는 멋지고 고상한 할머니이기는 한데 미스 마플보다는 좀 더 대하기 어려울 듯한... 영국에서 공부하셨군요. 저는 영국에는 짧게 두 번, 합쳐서 열흘쯤 있어본 거 같은데, 뼛속까지 들어오는 것 같은 습하고 차가운 공기와 복잡한 런던 지리에 당황하다가 돌아왔어요. (‘City’라는 말이 뭔지도 몰랐어요.) 지금도 런던은 딱히 가보고 싶지 않은데 스코틀랜드 고지대는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런 쓸쓸하고 황량한 풍경 좋아해서...
322쪽, [“당신 어머니 덕분에 우리가 지금 처지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어. 기다려야만 한다고. 하지만 최대한 빨리 결혼식을 치르고 말겠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테야.”] 오, 이 청년 아주 강속구네요. 저는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조금 설렙니다.
324쪽, [때때로 우리는 절망의 파도에 압도당했다. 둘 중 하나가 편지를 보내 약혼을 파기하자고 했다. 그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둘 다 동의했다. 그러다 일주일 후 도저히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는 다시 약혼 상태로 돌아갔다.] 젊다, 젊어. 폭풍 같은 사랑을 하셨구먼요.
334쪽, [보통 사람들은, 아니 몇몇 고위급 장관과 외무부 핵심 인사들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사람들은 전쟁 비슷한 것이 일어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모두 유언비어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진지한 척’ 하느라고 제멋대로 말을 지어내 정치가의 연설인 양 떠들어댔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일이 터졌다. 영국에 전쟁이 닥친 것이다.] 전쟁이라는 게 이렇게 갑자기 오는군요.
340쪽, [마음 아파하며 열심히 하긴 했지만, 간호라는 것이 주로 환자용 변기 씻기, 방수포 씻기, 구토물 치우기, 썩어 가는 상처 냄새 맡기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베개를 바로하고, 우리의 용감한 병사를 나직이 다독여 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이상주의자들은 곧바로 임무를 포기했다.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많은 이상주의자들이 이상주의자인 이유가 현실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는 종종 합니다.
350~353쪽, 크리스티 여사의 첫 결혼 이야기. ‘오늘 결혼해야 해’라고 결심하고 그날 결혼하다니. 거리에서 증인을 데려오고. 저도 결혼식 안 올리고 구청에서 혼인 신고만 했거든요. 뭔가 유사하지 않나 억지로 우기며 읽었습니다.
356쪽, [다리 골절로 입원했던 스코틀랜드 남자도 마침내 회복하여 고향으로 떠났다. 그런데 사실 그는 돌아가던 길에 기차역 플랫폼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하루 빨리 스코틀랜드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다리가 다시 골절되었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으나 다리는 처음부터 다시 치료해야 했다.] ㅋㅋㅋㅋㅋㅋ
364쪽, [늙으면 누구나 자립적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수많은 노인들이 누가 먹을 것에 독을 탔다거나 물건을 훔쳐 간다고 믿는 것은 삶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성이 약해져서는 아니라고 본다. 단지 흥분과 자극이 필요할 뿐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독살하려 한다고 생각하면 삶은 훨씬 흥미진진해진다. 차츰차츰 이모할머니는 이러한 환상에 빠져들었다.]
368쪽, [아무래도 나는 간호사가 천직이 아닌가 싶다. 간호 일을 계속하였더라면 무척 행복했을 텐데.] 누가 봐도 천직이 추리소설가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니 참 기분이 이상합니다. 재능과 소질, 적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생각해보게 되고요.
377쪽, [그 후 얼마 안 있어 실습 과정을 마쳤지만, 종종 P 씨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순진한 얼굴인데도 나에게는 다소 위험인물처럼 느껴졌다. 그에 대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훗날 『창백한 말』을 쓸 때 영감을 주었다. 자그마치 50년 가까이 내 기억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가끔 소설 소재를 어디서 얻습니까, 영감을 어떻게 구합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데 순도 100퍼센트로 정직하게 대답하자면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여기저기서 얻습니다’가 정답일 거 같습니다.
377쪽, [나는 내가 쓸 수 있을 만한 추리 소설의 종류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독에 둘러싸여 이으니 독살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장난삼아 독살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내 마음에 쏙 들어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등장인물을 설정해야 했다. 누가 독살당하지? 누가 독살하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왜? 그리고 나머지 온갖 것을 정해야 했다.]
380쪽, 에르퀼 포와로가 이렇게 탄생했군요! [여기서 나는 실수를 했다. 지금쯤 나의 탐정은 100살도 훌쩍 넘었으리라]에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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