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3.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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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별개로 한 평생을 돌아보는 이야기에서 자신이 속했던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에 대한 언급이 이토록 희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습니다. 크리스티 여사님(1890~1976)은 제가 좋아하는 조지 오웰(1903~1950)이 살았던 시기 내내 같은 나라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출신 계급의 문제일까요? 그보다 더 깊은 가치관의 문제일까요.
오오 이 글을 읽고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 때 친한 동네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 자주 놀러 갔는데, 부엌 근처에 정말 작은 사이즈의 방이 하나 있었던 기억이 갑자기 나네요. 검색해 보니 1990년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정말 최근까지도 식모를 두는 문화가 있었나 봐요.
크리스티 여사님은 본업인 추리소설 작가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 성악, 춤, 골프, 고고학자, 약 조제사와 간호사로도 일한 경험이 있으시네요. 심지어 본인은 불만족하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작곡한 곡들이 높은 평가를 받고 인기 악단이 레퍼토리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취미 부자가 아닌 직업 부자(!) 라 불릴 만한데요. 여사님의 예술적 소양이 워낙 뛰어나서 가능한 일이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인정받는 창작품에 대한 기준이나, 어떤 직업을 갖기 위한 전문 지식의 기준이 현대에 비해 훨씬 낮은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 같기도 합니다.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써 저렇게 다양한 범주의 일들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럽네요.
저는 어릴 때 책에 종종 나오는 ‘박물학자’가 무슨 직업인지, 무슨 학자인지 알 수 없어 꽤 오랜 기간 궁금해 했더랬어요. 지금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된 직업이자 학문인데... 과학 전 분야가 그 시절에는 신사 계급의 취미였다 생각하니 참 신기합니다. 전인(全人)으로 살기에는 분명 과거가 지금보다 나았다 싶기도 하고, 그런 기회를 얻는 사람이 전 인구의 0.1퍼센트도 안 됐을 거라는 점을 의식하면 현대가 가장 행복한 시기 같기도 하네요. ^^
'사교계' 라는 곳은 루이 16세 시대에나 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드라마 브리저튼 보셨나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은 물론이고 딸인 로잘린드까지 사교계에 데뷔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네요. 비교적 최근까지 있었던 문화라는 것에 한번 놀라고, 모두가 잠재적으로 결혼할 이성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 사교계 분위기에는 웃음짓게 되네요. 사교계란 마치 좀더 점잖고 좀더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는 결혼정보업체 같은 거였나 봐요.
저도 아무리 상상해보려 해도 상상이 잘 안 되는 풍습 중 하나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제사를 상상할 때 이런 기분일까요. 그런데 CSI 라스베가스인지 CSI 뉴욕인지에 잘 기억은 안 나는데, 현대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사교계 데뷔를 엄청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게 범죄 동기랑 얽혀 있던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고풍스러운 사교계가 요즘도 있기는 있는 건지, 드라마에서 과장한 건지는 전혀 모릅니다. 브리저튼은 못 봤는데, 음... 저는 부끄러워서 못 보게 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 아이 부끄러워...
605~606쪽,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특정 작가를 열렬히 존경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작가의 스타일을 저절로 모방하게 되는 일이 생기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스타일이라 형편없는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더 감동의 힘은 약해져 간다. 여전히 특정 작가를 존경하고, 심지어 그 사람처럼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나는 나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고는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의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열심히 하루키를 흉내 낸 글을 썼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모방작들은 당시 꽤 나왔습니다.
당시는 재혼이나 연상연하 커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현대보다 좀더 관대했던 걸까요? 서술되는 시점이 과거의 일이니 재혼에 대해서도 당연히 더 보수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책에서 언급되는 여러 사람들이 별 망설임 없이 자식이 있는 사람들과도 재혼하는 모습이 나타나서 신기합니다. 아니면 한국인의 가치관이 너무 보수적인 나머지, 100년도 더 전의 영국인보다 더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대중 소설로 성공하는 작가는 대중과 비슷한 도덕관과 가치관, 그리고 대중보다 더 고상한 취향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에서 드러나는 여사님의 가치관(결혼과 가정에 대한 생각이나, 유럽인으로서의 우월감) 을 보면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면이 있어 보이는데, 다양한 직업과 취미 생활을 보면 너무나 진취적이고 흥미로운 사람으로 생각되어서 대체 이 사람은 뭘까 싶었는데요. 이런 사람이었기에 대중이 열광하는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흥미로운 지적이십니다. 일단 크리스티 여사님은 뼛속 깊이 ‘체제 수호’의 기질이 있는 분 같은데, 어떤 가치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좋아하셨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체제와 질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대한의 즐거움을 누려보려는 분 같았고요. 저는 이 분 성격에 대해 ‘재미있지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우연인지 아닌지 이 분 작품에 대해 느끼는 바하고도 일치하네요.
‘경찰과 탐정은 체제를 수호하는 사람이므로, 경찰과 탐정이 범인을 잡아 처벌하는 추리소설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주장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아마 줄리언 시먼스의 책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때는 사회파 소설 모르는 소리라고 웃어넘겼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에는 꽤 들어맞는 얘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와 별개로 ‘대중문학은 도피문학이고, 도피문학은 독자의 눈을 현재 사회 부조리에서 돌리게 만든다, 고로 보수적’이라는 주장에 저는 썩 동의하는 편은 아니에요. 한데 막상 이런저런 작품과 평론을 접하다 보면 마음이 오락가락합니다. 소위 순문학이라는 게 더 도피적으로 여겨질 때도 많고,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대중성이 높은 문학도 있고, 그런가 하면 어떤 대중문학을 볼 때는 정말 아편이나 다름없게 느껴지고... 잘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가입했습니다. 벽돌책 좋아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좋아합니다. 참여가 늦어서 책 읽기 속도를 맞추기는 힘들 것 같지만 읽어보고 싶은책 리스트에 추가했습니다.
612~621쪽, 크리스티 여사님의 두 번째 결혼 이야기. 찰스 디킨스 소설 같네요.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631쪽, [우리는 어설픈 이탈리아 어로 선장과 수다를 나누었다. “맛있나요? 다행이네요. 영국 음식 달라고 했는데, 정말 영국 음식 같죠?” 나는 그가 영국에 올 일이 결코 없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만약 왔다가는 영국 음식이 어떤지를 알게 될까 지극히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국인도 인정하는 영국 요리의 위엄이다!
636쪽, [“아이고, 임무는 무슨. 일이 뭐고, 임무가 대체 뭐기에? 임무? 그건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긴 영국 사내들은 하나같이 그 모양이지. 냉혈한들. 프루와되르(냉담) 그 자체야. 영국 남자와 결혼하는 건 비극이야! 그 어떤 여자도 영국인과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랑만 가득한 사람과 결혼하면 존경심이 안 들 거 같아요. 임무가 있는 사람만이 주는 매력이 있지 않나요?
저는 어릴 때에는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험프리 보가트가 단연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왜 잉그리드 버그만이 보가트를 따라가지 않고 남편을 택하는지 알 거 같더라고요.
640쪽, [“얘야, 너는 정말 대단한 작가야. 그런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는데, 뭐랄까… 좀 더 ‘진지한’ 글을 써보지 그러니?”] 대중소설에 대한 비하의 역사는 유구하네요. 동서양 가리지도 않고.
642쪽,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여사님 작품이 『수수께끼의 할리퀸』인데!
뒷부분은 그냥 설렁설렁 읽었습니다. 독서모임용 발제를 두 가지 만들었는데, 이 모임은 1시간 뒤에 종료될 예정이지만 그냥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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