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책에 종종 나오는 ‘박물학자’가 무슨 직업인지, 무슨 학자인지 알 수 없어 꽤 오랜 기간 궁금해 했더랬어요. 지금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된 직업이자 학문인데... 과학 전 분야가 그 시절에는 신사 계급의 취미였다 생각하니 참 신기합니다. 전인(全人)으로 살기에는 분명 과거가 지금보다 나았다 싶기도 하고, 그런 기회를 얻는 사람이 전 인구의 0.1퍼센트도 안 됐을 거라는 점을 의식하면 현대가 가장 행복한 시기 같기도 하네요. ^^
[벽돌책 챌린지] 3.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D-29

장맥주

Lani
'사교계' 라는 곳은 루이 16세 시대에나 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드라 마 브리저튼 보셨나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은 물론이고 딸인 로잘린드까지 사교계에 데뷔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네요. 비교적 최근까지 있었던 문화라는 것에 한번 놀라고, 모두가 잠재적으로 결혼할 이성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 사교계 분위기에는 웃음짓게 되네요. 사교계란 마치 좀더 점잖고 좀더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는 결혼정보업체 같은 거였나 봐요.

장맥주
저도 아무리 상상해보려 해도 상상이 잘 안 되는 풍습 중 하나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제사를 상상할 때 이런 기분일까요. 그런데 CSI 라스베가스인지 CSI 뉴욕인지에 잘 기억은 안 나는데, 현대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사교계 데뷔를 엄청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게 범죄 동기랑 얽혀 있던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고풍스러운 사교계가 요즘도 있기는 있는 건지, 드라마에서 과장한 건지는 전혀 모릅니다. 브리저튼은 못 봤는데, 음... 저는 부끄러워서 못 보게 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 아이 부끄러워...

장맥주
605~606쪽,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특정 작가를 열렬히 존경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작가의 스타일을 저절로 모방하게 되는 일이 생기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스타일이라 형편없는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더 감동의 힘은 약해져 간다. 여전히 특정 작가를 존경하고, 심지어 그 사람처럼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나는 나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고는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의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열심히 하루키를 흉내 낸 글을 썼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모방작들은 당시 꽤 나왔습니다.

Lani
당시는 재혼이나 연상연하 커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현대보다 좀더 관대했던 걸까요? 서술되는 시점이 과거의 일이니 재혼에 대해서도 당연히 더 보수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책에서 언급되는 여러 사람들이 별 망설임 없이 자식이 있는 사람들과도 재혼하는 모습이 나타나서 신기합니다. 아니면 한국인의 가치관이 너무 보수적인 나머지, 100년도 더 전의 영국인보다 더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Lani
대중 소설로 성공하는 작가는 대중과 비슷한 도덕관과 가치관, 그리고 대중보다 더 고상한 취향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에서 드러나는 여사님의 가치관(결혼과 가정에 대한 생각이나, 유럽인으로서의 우월감) 을 보면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면이 있어 보이는데, 다양한 직업과 취미 생활을 보면 너무나 진취적이고 흥미로운 사람으로 생각되어서 대체 이 사람은 뭘까 싶었는데요. 이런 사람이었기에 대중이 열광하는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장맥주
흥미로운 지적이십니다. 일단 크리스티 여사님은 뼛속 깊이 ‘체제 수호’의 기질이 있는 분 같은데, 어떤 가치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좋아하셨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체제와 질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대한의 즐거움을 누려보려는 분 같았고요. 저는 이 분 성격에 대해 ‘재미있지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우연인지 아닌지 이 분 작품에 대해 느끼는 바하고도 일치하네요.

장맥주
‘경찰과 탐정은 체제를 수호하는 사람이므로, 경찰과 탐정이 범인을 잡아 처벌하는 추리소설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주장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아마 줄리언 시먼스의 책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때는 사회파 소설 모르는 소리라고 웃어넘겼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에는 꽤 들어맞는 얘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장맥주
그와 별개로 ‘대중문학은 도피문학이고, 도피문학은 독자의 눈을 현재 사회 부조리에서 돌리게 만든다, 고로 보수적’이라는 주장에 저는 썩 동의하는 편은 아니에요. 한데 막상 이런저런 작품과 평론을 접하다 보면 마음이 오락가락합니다. 소위 순문학이라는 게 더 도피적으로 여겨질 때도 많고,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대중성이 높은 문학도 있고, 그런가 하면 어떤 대중문학을 볼 때는 정말 아편이나 다름없게 느껴지고... 잘 모르겠습니다.
8월
안녕하세요. 오늘 가입했습니다. 벽돌책 좋아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좋아합니다. 참여가 늦어서 책 읽기 속도를 맞추기는 힘들 것 같지만 읽어보고 싶은책 리스트에 추가했습니다.

장맥주
612~621쪽, 크리스티 여사 님의 두 번째 결혼 이야기. 찰스 디킨스 소설 같네요.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장맥주
631쪽, [우리는 어설픈 이탈리아 어로 선장과 수다를 나누었다. “맛있나요? 다행이네요. 영국 음식 달라고 했는데, 정말 영국 음식 같죠?” 나는 그가 영국에 올 일이 결코 없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만약 왔다가는 영국 음식이 어떤지를 알게 될까 지극히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국인도 인정하는 영국 요리의 위엄이다!

장맥주
636쪽, [“아이고, 임무는 무슨. 일이 뭐고, 임무가 대체 뭐기에? 임무? 그건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긴 영국 사내들은 하나같이 그 모양이지. 냉혈한들. 프루와되르(냉담) 그 자체야. 영국 남자와 결혼하는 건 비극이야! 그 어떤 여자도 영국인과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랑만 가득한 사람과 결혼하면 존경심이 안 들 거 같아요. 임무가 있는 사람만이 주는 매력이 있지 않나요?

장맥주
저는 어릴 때에는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험프리 보가트가 단연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왜 잉그리드 버그만이 보가트를 따라가지 않고 남편을 택하는지 알 거 같더라고요.

장맥주
640쪽, [“얘야, 너는 정말 대단한 작가야. 그런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는데, 뭐랄까… 좀 더 ‘진지한’ 글을 써보지 그러니?”]
대중소설에 대한 비하의 역사는 유구하네요. 동서양 가리지도 않고.

장맥주
642쪽,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여사님 작품이 『수수께끼의 할리퀸』인데!

장맥주
뒷부분은 그냥 설렁설렁 읽었습니다. 독서모임용 발제를 두 가지 만들었는데, 이 모임은 1시간 뒤에 종료될 예정이지만 그냥 올려 봅니다.

장맥주
북 토크 Ⅰ : ‘재미있는 인생’ 매뉴얼 만들기
책은 기대와 다르게 다소 밋밋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의 인생이 매우 흥미진진하고 충만했음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여사님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듯하고요. 그런가 하면 훨씬 더 현란하지만 전체적으로 부럽지는 않은 몬티 오빠의 삶도 제법 자세히 묘사됩니다.
저 역시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보고 싶은 사람으로서,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는 삶의 재미는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상태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 즉 행복하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상태는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 이사나 여행 같은 작은 요소들이 인생의 재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마치 음식에 풍미를 더해주는 향신료처럼요. 그렇다면 그 요소는 어느 정도의 비율로 추구해야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그 요소들의 적정 비율을 개인적 지침으로 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까지 하게 되더군요.
아래와 같은 사항들을 순서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장맥주
-재미있는 인생을 살려면 삶의 환경을 완전히 바꾸는 일을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몇 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는 게 적당하다고 보시나요? 모든 것이 완벽한 ‘꿈의 집’을 얻더라도 너무 오래 살면 이사를 하는 게 좋다고 보시나요?

장맥주
-재미있는 인생을 살려면 직장 환경을 완전히 바꾸는 일을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의 직장이나 직업에 무척 만족하더라도 수십 년이라는 기간을 고려해보면 전직, 혹은 이직을 꼭 해야 더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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