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5장~] 이번 장에서는 소설 ⟪암흑의 핵심⟫의 저자이자 조지프 콘래드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유제프 테오도르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 그리고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외교관으로서 여러 식민지에서 근무했던 로저 케이스먼트를 다룹니다. 두 사람은 식민지 콩고에서 토착민들에게 벌어졌던 범죄를 목격하고 벨기에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글로써 남겼습니다. 5장 초입 부분에서 '나'가 잠결에 접한 다큐멘터리 방송에서도 나오듯, 코르제니오프스키는 콩고에서 탐욕으로 타락해 가는 유럽인들 중 케이스먼트만이 유일하게 올곧은 인물이었다고 전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코르제니오프스키가 콩고의 경험을 소설로 썼다면 케이스먼트는 사실관계 위주의 보고서로 작성했다는 점입니다. 제게는 두 사람이 하나의 현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술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 맞게 소설을, 또 보고서를 택했을 테니까요. 오늘에 와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내력이 그들에게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했고 또 그들을 서로 연결시켰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그들이 공유한 소수자성은 권력의 중심에서 먼 콩고 사람들에 대한 억압을 인식할 능력을 주었습니다. 5장에서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의 아버지이자 폴란드 독립운동을 벌였던 아폴로 코르제니오프스키에 관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노보파스또프를 떠난 뒤 십팔개월이 지난 1865년 4월 초, 서른둘의 에벨리나 코르제니오프스카는 결핵이 그녀의 몸속에 펼쳐놓은 그늘과,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은 향수 때문에 유형지에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생존 의지도 거의 다 소진되고 만다. 그토록 잦은 불행에 짓눌려 지내야 했던 아들을 교육하는 데 제대로 열의를 보이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빅또르 위고의 ⟪바다의 노동자⟫ 번역원고를 들여다보며 여기저기 몇줄 손보는 게 전부다. 이 지독하게 지루한 책이 그에게는 마치 그 자신의 삶의 거울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콘래드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건 고향상실자, 추방당하고 실종된 개인, 운명으로부터 지워진 사람, 고독하고 기피당한 사람 들에 관한 책이야.'
토성의 고리 129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5장] 조지프 콘래드는 폴란드계 영국인으로서 폴란드 작가인 아폴로 코르제니코프스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세기 당시 폴란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에 분할 통치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아버지 아폴로와 어머니 에바는 폴란드 독립 운동가로서 후일 반복된 수감과 유배 생활 끝에 일찍이 죽음을 맞이 합니다. 이때 코르제니오프스키의 나이는 불과 열두살이었습니다. 비록 부모님을 일찍 여의기는 했지만 그 영향이 적지 않았던 탓인지,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는 이후 자기 인생에서도 소수자로서 주류의 폭력을 감지하고 저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상업주식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콩고에서 자행되는 식민지 사업 전체가 허황된 것임을 누구보다 먼저 인지합니다. 이는 제국주의적 시선의 허황됨이기도 한데, 언젠가 '나'가 브뤼셀에서 들어간 파노라마관에서 보았던 풍경이 제시되는 방식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조명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전쟁화를 바라보는 관람객은 그것이 역사를 재현하는 기술로 여기지만, 기실 그것은 시선의 위조에 바탕하고 있을 뿐이며 "살아남은 자들인 우리는 모든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모든 것을 동시에 보면서도 실제로 현장이 어떠했는지는" 모른다는 것이 '나'의 주장입니다. 언젠가 유발 하라리 역시 ⟪사피엔스⟫에서 비슷한 대서양 노예무역 사례를 얘기하며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종적 증오에서 비롯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의 경영자는 외려 아프리카인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주식회사의 복잡다단한 체계에 따르면 그들은 아프리카인에 대해서 애당초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아프리카로부터 무척 멀리 떨어져 있었고, 다만 그들을 장부 속 기입된 손익계산상의 숫자로만 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따라서 피와 뼈와 살을 가진 한 인간을 보기보다, 마치 그림 속 재현된 전쟁화를 보듯, 그들을 하나의 기호로 파악하는 체계적인 '시선'을 따랐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책에서 이렇게 씁니다. "많은 농장주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고, 그들이 원한 유일한 정보는 손익을 담은 깔끔한 장부였다. (···) 영국 동인도회사는 벵골인 1천만 명의 삶보다 자기 이익에 더 신경을 썼다.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벌인 군사작전에 돈을 댄 것은 자기 자녀를 사랑하고, 자선사업에 돈을 내고, 좋은 음악과 미술을 즐기는 네덜란드의 정직한 시민들이었다." ⏤사피엔스, 469쪽. 여기서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를 조지프 콘라드로 이끈, 소설의 특수한 면모가 조명됩니다. 어떤 사람을 기호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디테일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케이스먼트가 식민지 콩고의 참상을 기술한 보고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현실에서 소설을 뽑아올리고, 또 어떤 사람은 문제적 현실을 가감없이 담아낸 보고서를 쓸까요? 조지프 콘래드와 로저 케이스먼트로 나뉘는 분기점은 어디였을까요? 바로 이런 질문이 던져지는 지점에서 제발트가 내세우는 화자로서 '나'의 독특한 위치가 드러납니다. 5장에 제발트 추정되는 '나'는 코르제니오프스키와 케이스먼트를 양쪽에 거드린 채 두 사람 사이에 나 있는 협소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읽힙니다. 생각해보면 소수자는 소수자된 자기 위치를 끊임없이 인지하고 의문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자신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소수자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이런 소수자성 자체가 선(善)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소수자성에서 장차 선해질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점을 5장을 통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롤랑바르트도 말했듯이 주변부는 주변부의 오만함이 있으므로 우리는 소수자성을 그 자체로 선한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짓기보다는 소수자성이 오만해 지지 않는 선에서 반성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5장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2011년 원서 출간 이후 10년을 돌아보고 위기 상황을 맞은 인류에게 건네는 제언이 특별 서문으로 수록되었다. 현재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키워드로 ‘인간 이해’를 강조한다.
암흑의 핵심문명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을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인식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의식이 깨어있는 한 인간의 자기 탐구담을 그린 폴란드 출신 작가의 장편『암흑의 핵심』. 헨리 제임스와 더불어 20세기 영국 소설을 개척한 콘래드의 대표작으로, 영화 '지옥의 묵시록' 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한 점에서 주목받는다. 이 소설의 화자 말로는 유럽인들이 '암흑의 대륙'이라고 부른 아프리카로의 항해를 통해, 탐험을 동경해
살아남은 자들인 우리는 모든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모든 것을 동시에 보면서도 실제로 현장이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우리를 에워싸고 펼쳐진 것은 병사 오만명과 말 일만필이 몇시간 안에 목숨을 잃은 황량한 벌판인 것이다. 전투가 끝난 밤, 여기서는 온갖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와 신음 소리가 뒤섞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갈색의 흙뿐이다. 당시에 사람들은 그 많은 시체와 뼈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그것들은 원뿔형 기념물 아래에 묻혀 있는가? 우리는 시신의 산 위에 서 있는 것인가? 결국 이것이 우리의 관점인가? 이런 지점에서 보면 많은 사람이 주장하는 역사적 조망이라는 것을 갖게 되는가? 내가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브라이턴 해변 근처에 자그마한 숲이 두곳 있는데, 이곳은 워털루 전투 뒤에 이 의미심장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나뽈레옹의 삼각모자 형태로 만들어졌고, 다른 숲은 웰링턴 사령관의 장화 모양을 하고 있다. 물론 땅 위에서는 이 모양을 인식할 수 없다.
토성의 고리 150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6장~] 6장에서 '나'는 싸우스월드와 월버스윅 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버려진 철조 다리를 보면서 그와 관련한 비극적인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6장은 인물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청나라 말기에 황제를 대신해 섭정을 했던 서태후를, 후반부는 시인 앨저넌 스윈번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이 두 사람은 '나'에 의해서 연결돼 있음이 드러납니다. 블라이드강 위를 가로지르는 철조 다리는 1875년 헤일스워스와 싸우스월드를 오가는 협궤철도용으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나'의 추측에 따르면 중국 황제에게 용이 그려진 작은 궁정 기차를 납품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이 황제는 청나라의 11대 황제 광서제로서, 사실상 서태후에 의해 정권을 장악당했으며 평생 그녀의 전횡에 시달리다가 말년에는 방치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청나라 말기의 중국 대륙은 서태후의 전횡에서도 보듯 엉망진창이었음이 본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황제가 더 이상 황제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고 청일전쟁과 청불전쟁을 거쳤던 데다가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려는 서구 열강의 등쌀에 떠밀려서 국운은 나날이 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싸우스월드와 월버스윅 사이의 버려진 철조 다리와 납품이 예정돼 있었다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황제의 기차는, 점진적으로 쇠해가던 청나라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오브제처럼 보입니다. 버려진 철조 다리는 서태후가 광서제를 어르고 달랠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점을 미루어보건대 한 비극적인 시기의 마침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6장 시작합니다.
1861년 8월, 몇달 동안 결정을 미루던 끝에 함풍제는 도피처 허러에서 방탕으로 파괴된 짧은 생애를 마감하려는 중이었다. 물이 아랫배에서 가슴까지 올라왔고, 서서히 허물어져가는 몸의 세포들은 혈관에서 빠져나와 조직 사이의 모든 틈에 고인 염수 속에서 바닷물고기들처럼 떠다녔다. 의식이 깜빡깜빡하는 함풍제는 외병들이 자기 제국의 지방으로 침략해오는 것을 사지가 죽어가고 몸의 기관이 독극물로 범람하는 과정을 통해 생생하게 체험했다. 이렇듯 그 자신이 중국의 몰락이 진행되는 싸움터였으며, 결국 그달 22일 밤의 그림자가 그를 덮자 그는 죽음의 혼미 속으로 완전히 침잠했다.
토성의 고리 174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6장] 6장 전반에서는 쇠퇴를 예비하는 극도의 팽창이 돋보입니다. 어찌보면 이 책 전체가 곧 쪼그라들 일만 남은 팽창의 사례집이라고 할 만합니다. 서태후는 살아생전에 황제보다 높은 지위와 권세를 누렸고 화려한 보석과 금붙이로 자신을 치장했지만, 그 화려함은 곧 들이닥칠 비극의 전조임이 드러납니다. 죽기 직전에 서태후가 남긴 말을 듣고 있으면 그녀도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공허한 결말을 맞게될지 아주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씁니다. "되돌아보면 역사란 해변으로 거듭 몰려오는 파도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운과 시험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날 가운데 어느 한 순간도 진정으로 근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나'가 발을 내딛고 눈길을 주는 장소에는 모두 예외없이 이러한 말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편, 후반부에서는 빅토리아시대에 더니치 지역에서 살았던 시인 앨저넌 스윈번을 다룹니다. '나'에 따르면 스윈번의 생애는 서태후의 생몰년도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스윈번은 머리가 엄청나게 거대했던 데다가 키는 평균치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어딜 가든 "경악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윈번은 서태후와 생몰년도는 겹칠지 모르겠지만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많이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변두리 주택에서 머물면서 일체의 자극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계속 살아갔고, 하루 일과는 무료하다 싶을 정도로 규칙적이었습니다. 일례로 주변 사람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성실하게 뽕잎을 먹고 스스로 귀한 실을 자아내는 누에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누에는 서태후가 가장 좋아라 했던 것으로, 섭정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늘 주변인들을 의심해야 했고 누구도 터놓고 믿지 못했던 그녀에게 성실히 실을 잣고 또 그로써 죽음을 맞이하는 누에처럼 안심되는 존재도 없었으리라 우리는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앨저넌 스윈번에 대한 묘사를 인용하면서 6장 마치겠습니다.
'스윈번은 늘 아침에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글을 쓰고, 저녁에는 책을 읽습니다. 게다가 식사시간에는 마치 애벌레처럼 먹어대고 밤에는 겨울잠쥐처럼 잠에 빠지지요.' (···) 세기 전환기에 퍼트니힐을 방문했던 손님 중의 한 사람은 그 두 늙은 남자가 마치 레이던산(産) 병에 든 두마리의 기이한 벌레들처럼 보였다고 적었다. 그 사람은 스윈번을 볼 때마다 잿빛 누에나방(Bombyx mori)을 떠올렸는데, 스윈번이 자신 앞에 놓인 음식을 한조각 한조각 먹어치우는 모습도 그러했거니와, 점심식사 뒤 그를 덮친 몽롱한 상태에서 느닷없이 전기가 번쩍 지나간 듯 새롭고 활기찬 상태로 깨어나더니 내쫓긴 나방처럼 손을 떨면서 서재를 재빨리 왔다갔다하다가 계단과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런저런 귀한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는 모습 또한 나방을 연상시켰다고 한다.
토성의 고리 195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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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글을 썼는데 왜인지 모르게 글이 날아가버려서 생각나는대로 다시 써 봅니다:) 7장에서 '나'는 더니치의 들판을 걷고 있습니다. 더니치 들판은 수천년에 걸쳐서 삼림이 감소되고 파괴되면서 생겨난 지역입니다. '나'는 언젠가 숲이 조용히 타오르던 광경을 목격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더니치의 들판과도 같은 재의 땅이 영국 전역으로 점점 더 확산되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임을 예상하며 이렇게 씁니다. "고등 식물의 목탄화, 모든 가연성 물질의 지속적인 연소는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을 확산시키는 동력이다." 어찌보면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지는 불꽃"이며, 따라서 생래적으로 인간 종인 우리는 불이 공기를 삼키듯 우리 주변을 재로 만들면서 우리를 확장해왔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꽤 우울한 감상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에 잠겨서 '나'는 어느새 프란체스꼬 수도원의 폐허를 지나는데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치된 잡목림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어쩐 일인지 미로 속을 헤매듯 몇 번이나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다가 기진맥진하며 겨우 빠져나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경험의 여파는 이후에 마이클 햄버거를 만나고도 지속되는데요, 몇달 후에는 그와 비슷하게 더니치의 풀밭 위에서 끝없이 뒤얽힌 길을 걷는 꿈까지 꾸게 됩니다. 꿈속에서 '나'가 맞닥뜨린 미로를 서술한 부분을 함께 읽으면서 계속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어스름이 몰려올 무렵, 지독히 피곤하여 거의 쓰러질 지경이던 나는 어떤 좀 높은 장소에 이르렀는데, 거기에는 써머레이턴의 주목(朱木) 미로 한가운데처럼 작은 중국식 정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밝은색의 모랫바닥, 어른 키보다 크고, 이미 거의 밤의 암흑 속에 빠져들어가는 덤불의 날카롭게 재단된 선들, 내가 방황했던 길에 비하면 단순한 무늬로 이루어진 미로 자체를 보게되었다. 꿈속에서 나는 이 무늬가 내 두뇌의 단면을 그리고 있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했다. 미로 저편으로는 들판의 연기 위로 그림자가 뻗어 있었고, 이어서 별들이 차례차례 대기의 심연에서 솟아올랐다. 밤이, 모든 인간적인 것과는 다른 이방인인 놀라운 밤이 산꼭대기 위로 애절하고 어슴푸레하게 지나간다. 나는 마치 지구의 꼭대기에, 겨울밤이 영원히 멈추어서서 반짝거리는 곳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들판은 한기에 얼어붙어 있고, 모래땅의 우묵한 곳에서는 투명한 얼음으로 만든 살무사, 독사, 도마뱀 들이 졸고 있는 듯했다.
토성의 고리 202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7장]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내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 나오는, 하이펭의 대칭형 정원이 연상되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스파이인 유춘은 독일군의 스파이로서 자신을 추적하는 처단자를 피해서 베를린에 영국 포병대의 정확한 기밀을 전하고자 하며, 이에 따라 '이미 존재하는 미래'를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릅니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이 소설의 주제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소설 속에서 스파이인 유춘은 이런 말을 간직합니다. "무시무시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그것을 완수했다고 상상해야만 하고, 과거처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미래를 자기 자신에게 강요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일컬어지는 선형적인 명칭이지만 그것은 일방향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라는 데칼코마니의 접힘면이며, 미래는 과거만큼 고정불변할 수도 있고 과거는 미래만큼 유동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사람은 당대를 벗어나서 연결될 수 있고, 역사에서 우연은 필연과 동등해집니다. 그리고 7장에서 '나'가 만나게 되는 마이클 햄버거라는 인물도 앞서 언급한 유춘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마이클 햄버거를 포함해서 7장에서 소개되는 인물들은 '우연한 계기'로 타인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이 처한 당대를 넘어서 과거의 인물과 자신을 포갭니다. 대표적으로 마이클 햄버거는 자신을 둘러싼 온갖 사물이 시인 횔덜린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 횔덜린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또 '나'는 그런 마이클 햄버거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궁극적으로 마주한 마이클의 집에서 '나' 자신의 것인 듯한 집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나'와 마이클 햄버거의 삶의 궤적인 만나는 교차점에서 스탠리 캐리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렇듯 우연에 우연이 겹쳐지는 식으로 인물과 인물들은 사적인 연결고리로 얽혀있는데, 종내에는 그 전체를 "벨기에식 저택의 전망탑"에서 조망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은 언젠가 '나'가 경험했던 잡목림의 미로 형태를 띨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서만 목격이 가능할 것입니다. 7장은 저에게도 흥미진진하면서도 한번 들어가면 기진맥진하는 미로입니다. 더 얘기해볼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이쯤에서 7장 마무리하겠습니다.
픽션들'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권. 기호학, 해체주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 주요 현대 사상을 견인한 선구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대표작. 1941년 발표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과 1944년 발표한 '기교들'에 수록된 열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일생 동안 단 한 편의 장편 소설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단편 전문 작가 보르헤스의 문학적 정수를 보여 준다.
픽션들<픽션들>은 2백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청난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상상은 심심풀이 환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의 미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독창적인 사유로 이루어진 상상이다. <픽션들>은 20세기 문학에서 돋보이는 큰 별이다.
마이클이 말했다. 몇주 동안 새 한마리 안 보이네. 마치 만물이 어떤 식으로 파내어진 것처럼 보여(For weeks, there is not a bird to be seen. It is as if everything was somehow hollowed out). 모든 것이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인데, 잡초들만 계속 자라나. 서양메꽃은 덤불로 목을 조르고, 쐐기풀의 노란 뿌리는 땅속에서 앞으로 기어나가고, 다년초 덩굴들은 나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크고, 갈색 반점세균과 진드기가 번져가고, 끙끙대며 단어와 문장을 병렬해놓은 종이조차 진딧물이 짜낸 감로로 칠한 것처럼 느껴지네. 몇날 몇주 동안 성과도 없이 머리를 쥐어짜지만, 만일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습관 때문인지, 과시욕 때문인지, 아니면 배운 게 그것밖에 없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삶에 대한 경탄이나 진리에 대한 사랑, 절망, 분노 때문인지 말을 할 수 없고, 글을 쓰면 점점 똑똑해지는 건지 아니면 더 미쳐가는 건지도 대답할 수 없다네. 아마 도 우리 문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써나갈수록 전체적인 조망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낸 정신적 구성물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을 인식이 발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일 텐데, 실은 우리의 길을 실제로 지배하는 예측 불가능성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예감하고 있네. 횔덜린의 생일 이틀 뒤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그림자가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걸까?
토성의 고리 213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8장~] 8장은 '나'가 미들턴을 방문한 이튿날, 싸우스월드의 한 호텔에서 코르넬리우스 더용이라는 인물을 만나서 자본과 설탕과 예술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20세기 영국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거래를 독점하던 소수의 가문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그것을 과시할 수단으로서 예술(가)을 활용했다는 얘기입니다. 일례로 덴하우의 마우리츠하위스나 런던의 테이트미술관 같은 주요 미술관은 설탕 가문의 기부금으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본과 예술이 서로 공모 관계에 있었다는 점은 오늘에 와서 특별히 놀라운 사실은 아닙니다. 한편 8장은 아일랜드 내전이라는 역사적인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5장에서 말년에 로저 케이스먼트가 "아일랜드의 백인 원주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사실과 연결해서 읽을 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책 전체에서 반복되는 '누에'의 이미지도 등장합니다. 이로써 '나'가 종횡무진 걸으면서 보고 듣고 탐방하는 장소들을 점으로 이으면, 흐릿하나마 어떤 구심점이 그려지기는 합니다. '나'는 뚜렷한 목적지를 가지고 걷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발 딛는 곳마다 황폐해진 풍경이 보인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나'는 텅 빈 중심부로 이뤄진 미궁을 끝없이 배회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일랜드의 역사를 다룬 좋은 기사가 있어서 공유해봅니다. 읽어보시면 8장을 더욱 풍성하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8장 시작합니다. 1. [아일랜드 역사④…굶어 죽거나 이민 떠나거나]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9 2. [아일랜드 역사⑤…민족주의 대두, 거센 독립운동]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2 3. [아일랜드 역사⑥…對英 전쟁. 내전, 그리고 독립]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5
18세기와 19세기에 다양한 형태의 노예경제를 통해 축적된 자본은 지금도 여전히 회전되면서 이자를 낳고 이자는 또 이자를 낳고, 늘어나고 몇 배로 불어나면서 자신의 동력을 얻어 계속해서 새로운 열매를 맺고 있다고 더용은 말했다. 예로부터 이런 돈을 정당화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 바로 예술을 후원하고, 예술작품을 구매하고 전시하며, 큰 경매시장에서 작품가격을 우스울만큼 계속해서 높이 올리는 데 있다는 것이 더용의 생각이었다.
토성의 고리 227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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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나'는 더용과 헤어진 뒤 브레드필드에서 19세기 영국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생가터를 방문합니다. 앵글로 노르만 계통에서 유래한 피츠제럴드 가문은 육백년 이상을 아일랜드에 거주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는데 에드워드의 어머니인 메리 프랜시스 피츠제럴드는 가문의 막대한 재산의 유일한 상속자였다. 이렇게 부유한 가문에서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같은 걸출한 문인이 배출됐다는 이야기는, 예술과 자본이 공모를 맺어온 사례의 아이러니한 번안입니다. 꼭 피츠제럴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변에서 잊을 만하면 이런 유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수전노의 집안에서 걸출한 예술가가 탄생함으로써 한 가문의 계보가 이상한 방식으로 균형을 이룬다는 이야기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오이디푸스적인 클리셰입니다. (이런 클리셰는 아무도 불쾌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키기까지 하는 듯합니다. 이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 이후 ‘나’는 브레드필드를 떠나 우드브리지의 한 여관에서 잠을 청하다가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를 만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가 앉은 배경의 화원에서 언젠가 여행한 아일랜드의 슬리브블룸산의 기슭을 봅니다. 그곳은 애슈버리 부인의 별장이 위치한 곳으로서 한때 ‘나’는 애슈버리의 집에 기거하면서 그들과 교류한 적 있습니다. 애슈버리 부인은 남편이 제대한 직후인 1946년, 혼인하고 나서 아일랜드로 옮겨와 상속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애슈버리 가족은 30년대 초에 상속받은 넉넉한 유산을 바탕으로 재산을 지켰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애슈버리 부인은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는 사정이 호전될 거라는 믿음을 한번도 잃지 않았어요, 우리가 속한 사회가 몰락한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애슈버리 부인과 그 자식들은 삶과 무관한 소일거리에 매달리는데, 막내인 에드먼드는 바다로 진수할 생각도 없으면서 조선(造船)에 매달리고, 애슈버리 부인은 종이봉투에 꽃씨를 모으고 분류하는 일을 하며, 캐서린과 두 동생은 방에 모여서 배갯잇과 침대보를 꿰매면서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솔기를 뜯고 다시 봉합하는 일에 하루종일 매달립니다. 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행히도 저는 근본적으로 실제적이지 못한, 언제나 생각에 잠겨 있는 유형의 인간이에요. 우리 가족은 모두 실생활에 능력이 없는 몽상가들이지요. 아이들이나 저나 똑같아요.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외에도 8장에서 ‘나’는 많은 지역을 돌아다닙니며, 하나같이 터무니없이 팽창한 다음에 덧없이 수축하는 사례라고 할 만합니다. 쌘들링스에서는 과거 귀족들이 사냥 파티를 위해서 자연을 거대한 평지로 깎아낸 땅을 맞닥뜨립니다. 기업활동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은 시민계급의 남자들이 상류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자연을 거대한 저택과 대지를 구입하였고,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이 신봉하던 기업가 정신에 위배되는, “아무런 소득이 없고 오로지 파괴만을 지향하는, 그런데 누구도 탓하지 않는 사냥”에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극도의 효율성과 합리성으로 자본을 증식시킨 이들이 나중에는 극도의 비효율성과 비합리성으로 자본을 소진합니다. (여기서 그들이 자본으로써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납니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착취해서 자기 벽에 걸어놓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그런 예술 작품에 돈을 쾌척할 수 있게 만들어준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타파하는 데는 십원 한 푼 쓸 의지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오퍼드니스 곶의 한 이름 없는 섬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지역 주민조차 그냥 ‘섬(The Island)’라고 부르는 곳으로서, 과거 국방부에서 무기를 연구하던 비밀연구소가 있던 장소이며 ‘나’가 여행할 당시인 1972년에는 민간에 개방된 상태였습니다. 이 이름 없는 ‘섬’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작은 축소판이자 그리 멀지 않은 미래처럼 보입니다. 이 풍경을 묘사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4년 전 작성된 한 기사 내용에 따르면,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토성의 고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가 바라본 풍경을 함께 읽어보면서 8장 마칩니다. [동아사이언스, 토성의 ‘절대 고리’가 사라진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6785
루바이야트11세기 페르시아의 시인들은 벗들과 흥겹게 어울리며 즉흥적으로 ‘루바이’를 지었다. 루바이는 4행시를 뜻한다.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천문학자인 오마르 하이얌은 수백 편의 루바이를 남겼다. 그로부터 7세기가 지나 영국 시인 피츠제럴드는 친구로부터 하이얌의 루바이가 적힌 필사본을 선물받는다. 그는 약 600년 전의 이 ‘쾌락주의적 불신자’ 하이얌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루바이들을 번안해 ‘루바이야트’라는 이름으로 출간한다. 말이 번안이지 피츠제럴드는 거의 자신
하지만 폐허에 가까이 갈수록 망자들의 신비로운 섬에 와 있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졌고, 그 대신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우리 자신의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남겨놓은 금속과 기계의 쓰레기더미 사이를 돌아다니는 미래의 이방인처럼 나 또한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 여기서 살고 일했는지, 벙커 안의 원시적인 장비들과 천장 아래의 철제 궤도들과 아직 군데군데 타일이 붙은 벽에 걸린 괭이들, 쟁반 크기의 물뿌리개, 승강장과 하수구 따위들이 어디에 쓰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날 내가 오퍼드니스에서 실제로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를 모른다. 마지막으로 높은 제방을 따라 걸었던 것은 그나마 기억하는데, 차이니스 월 다리로부터 낡은 펌프하우스를 지나 선착장으로 나아갈 때 왼쪽으로는 초원지대에 검은 바라크로 된 임시수용소가 서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강 건너 육지가 보였다. 방파제에 앉아 사공을 기다릴 때, 저녁 태양이 구름을 벗어나 멀리까지 휘어진 바다의 경계를 비추었다. 주류는 강물을 거슬러올라갔고, 물은 주석판처럼 빛났으며, 갯벌 위로 높이 치솟은 라디오 안테나 탑은 거의 들릴 듯 말듯한 웅웅거리는 소리를 고르게 내뱉었다. 오퍼드의 지붕과 탑 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나무 우듬지 위로 솟아 있었다. 저기가 한때 내 집이었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점점 더 눈을 파고드는 역광 속에서 문득, 사라진 지 오래된 방아들이 어두워져가는 풍경 속 여기저기서 무겁게 진동하며 날개를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토성의 고리 278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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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9장은 제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어느 한 부분을 빼 놓고 얘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좋아해서 암기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번 장은 크게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인물을 중심으로 얘기하자면, 9장은 성서 역사에 근거해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현하는 모형제작가 알렉 개러드 그리고 19세기 프랑스 작가이자 ⟪무덤 저편으로부터의 기억⟫의 저자인 샤토브리앙을 다룹니다. 성전의 모형 제작자인 개러드는 감리교의 아마추어 설교자를 했을 정도로 신실함을 갖췄지만 자기 작업을 할 때는 '신의 의지' 같은 표현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고작 10제곱미터 크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모형을 만드는 데 수년을 바칩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9장 엽니다.
어느 미국인 설교자는 내가 성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표사이 신의 계시에 의해 주어졌느냐고 묻더군요. '내가 신의 계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했더니, 그는 아주 실망합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신의 계시가 있었다면 왜 내가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획을 자꾸 변경해야 했겠습니까? 아니, 오직 연구와 노동만이, 무수한 시간에 걸친 노동만이 있을 뿐입니다.' 미슈나와 여타 접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사료를 연구하고, 로마 건축을 공부하고, 헤롯이 마사다와 보로디움에 세운 건축물들의 특징도 연구해야 올바른 생각에 도달할 수 있어요. 우리의 모든 작업은 결국 생각에 기초할 뿐이고, 생각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바뀌는 법이니, 이렇게 바뀐 생각 때문에 우리가 이미 완성했다고 간주한 것들을 다시 부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고 더 철저히 세부를 파고드는 이 작업이 내게 무엇을 요구할지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아마도 성전 짓는 일을 애당초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는 인상을 주려면 주랑 천장의 1제곱센티미터짜리 격자칸 하나하나를, 수백개의 기둥과 수천개의 사각돌 하나하나를 직접 손으로 만들고 색칠해야 합니다. 이제 시야의 가장자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내가 도대체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을지, 지금까지 해놓은 일 전체가 가련한 졸작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가끔씩 묻게 됩니다.
토성의 고리 287,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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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나'는 쎼인트마거릿 교회에 들릅니다. 그리고 18세기 말 샤토브리앙이 혁명을 피해서 영국으로 도망왔고, 그곳에서 아이브스라는 목사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그의 딸 샬럿 아이브스와 교류하게 된 일화를 떠올립니다. 그곳에서 샤토브리앙은 샬럿과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당시 그는 기혼자로서 자신을 차마 속일 순 없었기에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그녀를 떠나게 됩니다. 후일 시간이 흘러서 샤토브리앙은 쎄인트마거릿을 회상하며 글을 남기는데, 자신이 지금처럼 정치가이자 작가이기를 포기하고 당시 샬럿과 결혼해서 살림을 차리고 소박한 행복을 추구했더라면 어땠을까 자문합니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의 회한과 아쉬움이 묻어 있습니다. 이 결핍이 글을 글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것은 글쓰기에 뒤따르는 아이러니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지만, 결과로서 남은 글과 애당초 불행 없는 삶 중에서 무엇이 더 나았으리라고 우리는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보르헤스의 한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릅니다. 나쁜 일들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글로 변하리라는 것을 보르헤스 자신은 알았다고요. 또 행복은 그 자체로 누리면 되기 때문에 무언가로 변할 필요가 없다고요.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행복하거나 불행할 테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모든 경험은 하나의 소실점을 이루며 그곳에서 동등하게 견딜만한 것이 되리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제발트의 인식은 이보다 더 멜랑콜리하긴 합니다. 삶에서 대부분의 순간들은 행복보다는 불행한 일이 더 많으므로 "하나의 불행에서 다음 불행으로 비틀거리며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형식을 띠게 될 텐데, 기억 작업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연대기의 기록자는 "자신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자기 몸에 새겨넣는" 행위를 거듭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불가항력적인 불행 앞에서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을 다른 무언가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샤토브리앙에게는 그 수단이 글쓰기였을 테고요. 어느 강연에선가 들은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행복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으며,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행복이 필요할 뿐이라고요. 이 말이 묘한 위로를 주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드문드문 찾아올 행복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닥치는 불행을 시간의 먼 소실점 너머로 유예시키는 의연함일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이는 단순히 실패를 딛고 성장하는 성장 문법과는 다릅니다. 저는 글쓰기를 통해서 얻는 보상은 글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오늘은 조금 일반론적인 얘기를 해봤습니다. 제가 읽은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9장 마무리합니다.
마지막으로 굴착기가 땅에 커다란 웅덩이를 파더니, 더러 거의 건초더미만 한 나무뿌리들을 그 안에 밀어넣고 묻었다. 그리하여 말 그대로 아래위가 바뀌었다. 그 전해에는 양치류와 이끼 사이에서 눈풀꽃과 제비꽃, 아네모네가 자라나던 숲의 흙바닥이 이제는 무거운 점토층으로 뒤덮였다. 오래지 않아 완전히 끈적끈적해진 땅 위에서는 씨앗이 얼마나 오래 땅속 깊이 묻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늪풀만이 다발을 이루며 자라났다. 이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게 된 햇살은 정원의 음지식물들을 순식간에 파괴했고, 날이 갈수록 나는 스텝지대의 가장자리에 사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하루가 시작될 때면 때로 침실의 창문을 닫아야 할 만큼 무수한 새들이 요란하게 노래하던 곳, 오전이면 종달새들이 들판 위로 솟구쳐오르고 저녁 무렵이면 때로 울창한 숲에서 나이팅게일이 우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던 바로 그곳에서 나는 이제 생명의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토성의 고리 313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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