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D-29
콜랴도 그렇고 표도르도 이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광대짓이나 포악한 행동이나 그 이면엔 타인이 자신을 무시한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아요.
인정 욕구라는 게 참 뿌리 깊은 욕망이다 싶습니다. 특정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든, 세계 전체를 상대로 하는 것이든. 매슬로우의 5단계 이론 같은 걸 보면 존경에 대한 욕망은 배가 부르고 나서 생겨야 할 거 같은데, 옛 문학 작품에서의 이런 묘사들 보면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하긴 트로이 전쟁이나 삼국지의 호걸들도 그토록 명예에 목말라 있었던 걸 보면...
중권을 끝내고 마지막 하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민음사판으로 읽다가 범우사판으로 갈아타는 바람에 조금 늦어졌네요. 지금까지 읽은 총평은 (~ 10편 소년들까지) 스타브로긴?같은 캐릭터인가 잠시 짐작했던 드미트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같고요. (아니 3천루블을 나눈 이유를 읽고는 실소를..ㅎ) 악녀일거라고 추측한 그루셴카는 의외로 순정녀네요. 예심판사가 모르크예 여관에서 드미트리를 심문하는 과정이 꽤나 재밌었어요. 죄와벌의 포르피리 때와는 좀 다르네요. 증거를 잡기위해 난처한 질문을 집요하게 하는 것이. 그리고 10편 소년들에 나오는 콜랴는 13살이라면서 완전 능글능글한 애늙은이에요. 그렇지만 역시 애인지라 여린 마음도 있고, 일루샤에게 쥬치카를 보여준 장면은 감동이었어요. 하권 첫편은 이반이네요.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작가적 능력을 이야기할 때 주제도 굉장히 심오하고, 엄청나게 강렬한 캐릭터들을 창조했다는 점이 주로 거론되지요. 그런데 저는 그가 서스펜스를 자아낼 줄 아는 작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죄와 벌』은 줄거리는 아주 간단한데 순전히 그 서스펜스의 힘으로 읽게 되는 소설이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는 그런 서스펜스가 여러 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표도르 까라마조프를 죽인 건 누구일까? 스메르쟈꼬프와 이반의 기싸움은 어떻게 끝날까? 드미뜨리가 계속 말하지 않는 비밀이 도대체 뭘까? 재판은 어떻게 끝날까? 까쩨리나는 어떤 남자를 선택할까? 그루셴까와 까쩨리나는 누가 이길까? 일류샤는 살아날까? 등등. 사실 구조는 전혀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독자를 궁금하게, 또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작가라고 봅니다. 『악령』은 그런 서스펜스가 좀 덜했던 작품 같고요.
"그건 이렇게 생각해야 할 거야." 알료샤는 웃으면서 말했다. "예를 들면 어른들은 극장에 가는데 극장에서는 역시 여러 종류의 주인공들의 모험이 사여디기 때로는 강도질이나 전쟁 장면도 나오지. 이것 역시 일종의 놀이가 아닐까? 그러니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 하는 전쟁놀이나 도둑 놀이 역시 초보적인 예술이라 할 수 있어. 어린 마음속에 자라나는 예술적 욕구인 것이지. 그런데 어떤 때는 이런 놀이가 극장에서 상연되는 연극보다 더 근사할 때도 있거든. 단지 차이가 있다면 어른들은 배우들을 보러 극장에 가지만,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아이들 자신이 배우가 되는 거지. 하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카라마조프의 형제(상)(세계문학선 2-3) 416p ( 10편 소년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상)(세계문학선 2-3)
저도 신을 반대하는 건 아니예요. 물론 신이란 건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지만.... 신이 필요하다는 건 인정해 요 ..질서를 위해서....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 말입니다. 만약 신이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카라마조프의 형제(상)(세계문학선 2-3) 439p (10편 소년들), 도스토예프스키
당신은 정말 어리석군요, 알료셴까. 아무리 현명하다고 해도 그런 것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네, 이건 정말이에요. 그분이 나 같은 여자 때문에 질투한다고 해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질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라고요. 난 그런 여자예요. 난 질투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아요. 내 마음은 아주 모질고 또 나 자신도 질투심이 많으니까요. 단지 나는 그분이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괜시리 질투심을 드러내는 것이 화가 날 뿐이에요. 내가 눈이 멀어서 그걸 모르는 걸까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욕망과 증오의 까마라조프 제국, 세계문학의 거장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도스또예프스끼의 마지막 장편 소설로, 40여 년에 걸친 작가 창작의 결산으로서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 가운데 가장 심오한 사상적 깊이와 이에 걸맞은 예술적 구조를 구현한 작품이다.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형님은 정신 이상자여서 발작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살인을 한 거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하니까요.」 알료샤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형님은 그 일에 동의하지 않고 있어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아아, 나는 혼란을 바래요. 언제나 난 집에 불을 지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살그머니 불을 놓는 상상을 하거든요. 그럴려면 반드시 살그머니 불을 놓아야 해요. 사람들은 불을 끄려 하지만 집은 활활 타오르지요. 그럼 나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는 거예요. 아아,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그만큼 무료하다니까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그 사람은 바로 팽이 같아요. 팽이처럼 그 사람을 감아 던져서 채찍으로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려 줘야 해요. 난 그 사람한테 시집을 가서 평생 팽이처럼 돌려 주겠어요. 나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나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바로 그게 내가 바라는 바예요. 저 세상에 가면 나는 심판을 받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면전에서 비웃겠어요. 정말이지 난 집에 불을 지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에요, 알료샤, 우리집을 말이에요. 내 말이 곧이들리지 않으시죠?」 「왜죠? 열두 살 가량 된 아이들 중에는 불장난이 하고 싶어서 결국 불을 지르는 아이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건 일종의 병이에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에 〈아귀〉 꿈을 꾸었을까? 〈어째서 아귀가 가엾게 느껴졌을까?〉 그 순간 그것은 내게 하나의 예언이었던 거야! 나는 〈아귀들〉을 찾아갈 거야.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죄인이니까. 나는 〈아귀들〉을 찾아갈 거야.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어린아이들이 있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아귀〉가 아니겠어. 난 모든 사람들을 찾아갈 거야. 왜냐하면 누구든 사람들을 찾아가야만 할 테니까.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그 길을 가야만 해. 그걸 받아들이겠어!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모든 것이 허용된다' 라는 말은, 죄와벌, 악령에 이어 카라마조프의 형제에까지도 이어지네요. 도선생님은 자신의 신앙에 대척점에 있는 사상의 핵심을 저걸로 본 걸까요. '11편 이반 표도로비치'는 장맥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과연 아버지 표도르를 죽인 범인이 누구일까 추리하며 끝까지 집중하며 읽었어요. 저는 큰형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일찍 스포를 당해서 스메르쟈코프와 이반의 공모가 아닌가 예상했거든요. 스포를 당했음에도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스메르쟈코프는 처음 등장했을 때 뭔가 큰일을 할 캐릭터로 예상했는데 맞았네요. 바보 같은 인상이었지만 가장 똑똑한 듯요. 살해현장에서 돈 봉투를 찢은 행동에 담긴 의도만 봐도.. 스메르쟈코프가 자살한 소식은 저도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는 확실히 이반을 존경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반의 사상의 확실한 실천가였으니요. 12편 오판도 기대가 됩니다.
네, 저도 도스토옙스키가 무신론에 정면으로 맞서려 했다고 생각해요. 무신론자는 도덕적 중심이 없기에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생각에 빠지고야 만다, 그리고 그런 무시무시한 자유를 버틸 수 없어서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만다, 그런 게 도스토옙스키의 주장이었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게 참 시대를 초월한 통찰인 게, 아직까지 그에 대해 완전한 반론이 없는 것 같아요.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도덕의 중심에 두고 과연 건강히 살 수 있을까요. 스메르쟈꼬프는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나오는 유라이어 힙과 함께 문학사에 남을 인상적인 악인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으며 사람들을 파국으로 몰고간 '거짓말'과 잘못된 '소문'이 만들어 내는 파장, 그리고 당시 귀족들이 무서워한 '수치', '모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당신은 남편감으론 적합지 않은 사람이에요. 내가 당신에게 시집을 간 연후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돼서 갑자기 그 사람한테 갖다주라면서 당신에게 쪽지라도 건네주면, 당신은 그걸 받아 들고 반드시 전해 줄 테고, 그것도 모자라 답장까지 갖고 을 테죠. 마흔 살이 돼도 당신은 여전히 이런 이유의 내 쪽지 심부름이나 하고 다닐 사람이에요.” > 알료샤와 약간의 썸 관계인 리자가 하는 말인데, 알료샤 캐릭터를 너무 잘 보여주는 문장인 것 같아서 책 옆에다 ‘ㅎㅎㅎ’라고 적게되더라고요. 알료샤같이 많은 이들에게 말동무가 되어주고 편안함을 느끼게하는 사람이 소유욕, 독점욕, 질투 같은 감정이 일어나는 연애를 할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알료샤 캐릭터도 잘 보여주는데, 여성의 심리를 모르면 또 나오기 힘든 구절 같아요. 그런데 알료샤도 쑥맥인 척 하는 선수 같기도... ^^
못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알렉세이, 난 지금 살고 싶어 미치겠고, 바로 이 헐어 빠진 담벼락 안에서 존재하고 싶고 의식하고 싶은 갈망이 내 안에서 너무도 강렬하게 되살아났어! 라키친은 이걸 이해하지 못해. 그 녀석은 그냥 집을 짓고 세 들어 살 사람들만 있으면 되는 거지만, 나는 너를 기다렸단 말이다. 도대체 고통이라는 것이 뭐냐? 비록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통이 밀려오겠지만, 그런 것 따윈 두렵지 않아. (…) 지금 내 안에서 이 힘이 얼마나 강하게 용솟음치는지. 그저 나 자신에게 시시각각 나는 존재한다! 하고 말하고 얘기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 모든 고통을 때려눕힐 수 있 을 것 같아. 수천 개의 고통 속에서도 나는 존재한다. 어떤 고문을 당해도 나는 존재한다! 망루 위에 앉아 있어도 나는 존 재하고 태양을 볼 수 있고, 설령 그것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태양이 존재한다는 것 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삶은 충분한 거야. 알료샤, 나의 게루빔아, 이런저런 철학들 때문에 나는 아주 죽을 지경이구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민음사 3권 11장 184-185p,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카라마조프 일가를 가까이서 깊이 관찰해 온 청년, 즉 라키친 군이 아까 진술한 훌륭한 의견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라키친 군은 걷잡을 수 없이 방탕한 성격을 지닌 그들에게는 저열한 타락의 실감이 고상하고 고결한 실감과 마찬가지로 필요 불가결한 것' 이라고 말했는데 그건 옳은 말입니다. 사실 그들에겐 이 부자연스런 혼합이 항상 필요한 것입니다. 두 개의 심연, 이 두 개의 심연을 동시에 본다는 것 -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불행하고 불만스러워합니다. 우리의 생존은 충실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광범합니다. 어머니인 러시아처럼 광범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를 내부에 공존시키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과 함께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하)(세계문학선 2-5) 225p 제 12편 오판,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하)(세계문학선 2-5)
그러나 그 무렵 이반은 그와는 전혀 관계없는 다른 한 가지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모스끄바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첫날부터 까쩨리나 이바노브나에 대한 활활 타오르는 미칠 듯한 열정에 몰두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훗날 이반 표도로비치의 일생에 영향을 끼칠 그 새로운 열정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낼 입장이 못 된다.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 또 다른 소설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언제 그 이야기에 착수할지는 필자도 알지 못한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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