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D-29
@동키돈키 님 덕분에 제사 라는 용어를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악령의 제사는 너무 인상적이어서 기억이 나는데, 까라마조프 씨에 형제들의 제사는 읽어 보지도 않고 넘겼네요. 워낙 자주 인용되는 성경구절이라 인상에 남지 않았나봅니다. 반면 악령의 제사는 성경에서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고요.
@고쿠라29 철학적 대화 와중에 위와 같은 대화도 나와서 역시 러시아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니까, 그 애는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면서 괴로워하더니 슬픔에 잠기는 것이었어요, 자신의 유약함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고상한 측면 때문에 말이에요. 그 애의 슬픔은 대체 어떤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해 봤지요. 나는 그 애한테 매달려 그 내막을 알아냈지요. 그 애는 돌아가신 당신 아버지(당시에는 아직 살아 계실 때였습니다)의 하인인 스메르쟈꼬프와 어떤 일로 함께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자가 바보 같은 그 애한테 어리석은 장난을, 다시 말해서 동물적이고 야비한 장난을 가르쳤던 거예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 제10권 소년들, 도스토예프스키
말랑말랑한 빵 조각에다가 바늘을 집어넣은 다음 굶주린 개한테 던져 주면 그 개는 씹지 않고 그냥 삼킬 테니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라는 것이었지요. 그 두 사람은 그런 빵 조각을 만들어 바로 털북숭이 쥬츠까한테 던져 주었지요. 지금 이 이야기는 먹을 것을 전혀 얻어먹지 못해 하루 종일 울부짖던 어느 집 개에 관한 거죠. (당신은 그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좋아하세요, 까라마조프 씨? 난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빵을 던져 주자, 개는 단숨에 삼킨 후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가 달아나 버리고 말았어요. 내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 결국 종적을 감추고 말았던 것이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 제10권 소년들, 도스토예프스키
참 이런 불편하고 끔직한 생각들을 어쩌면 그렇게 잘 하는지요. 아니면 설마 창작이 아니라 목격하거나 들은 이야기인 걸까요.
그 애는 스무로프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을 치뜨면서, 〈내가 말하더라고 끄라소뜨낀한테 전해. 난 앞으로 바늘을 넣은 빵을 모든 개들한테, 모든 개들한테 먹일 거야!〉 하면서 악을 쓰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막돼먹은 녀석이라면, 아주 따돌림을 놔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는 모욕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고, 마주칠 때마다 외면을 하거나 냉소적인 미소를 보내곤 했지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 제10권 소년들, 도스토예프스키
세상에는 감정이 풍부하면서도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지. 그들의 광대짓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모멸적인 소심한 상태에 놓였기 때문에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악의적인 풍자의 일종이지. 믿어 다오, 끄라소뜨낀, 그런 광대짓은 때로는 상당히 비극적이란 사실을. 그분은 지금 모든 희망을, 이 세상의 모든 희망을 일류샤에게 걸고 있어. 일류샤가 죽어 버린다면, 그분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 버리거나 자살하고 말 거야.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 제10권 소년들, 도스토예프스키
오, 까라마조프 씨, 나는 정말 불행해요. 왠지 모르게 이따금씩 세상 사람들이, 온 세상이 나를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럴 때면 모든 세상 질서를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그때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겠지.」 알료샤가 미소를 지었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 제10권 소년들, 도스토예프스키
제 어릴 적을 보는 거 같습니다.
콜랴도 그렇고 표도르도 이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광대짓이나 포악한 행동이나 그 이면엔 타인이 자신을 무시한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아요.
인정 욕구라는 게 참 뿌리 깊은 욕망이다 싶습니다. 특정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든, 세계 전체를 상대로 하는 것이든. 매슬로우의 5단계 이론 같은 걸 보면 존경에 대한 욕망은 배가 부르고 나서 생겨야 할 거 같은데, 옛 문학 작품에서의 이런 묘사들 보면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하긴 트로이 전쟁이나 삼국지의 호걸들도 그토록 명예에 목말라 있었던 걸 보면...
중권을 끝내고 마지막 하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민음사판으로 읽다가 범우사판으로 갈아타는 바람에 조금 늦어졌네요. 지금까지 읽은 총평은 (~ 10편 소년들까지) 스타브로긴?같은 캐릭터인가 잠시 짐작했던 드미트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같고요. (아니 3천루블을 나눈 이유를 읽고는 실소를..ㅎ) 악녀일거라고 추측한 그루셴카는 의외로 순정녀네요. 예심판사가 모르크예 여관에서 드미트리를 심문하는 과정이 꽤나 재밌었어요. 죄와벌의 포르피리 때와는 좀 다르네요. 증거를 잡기위해 난처한 질문을 집요하게 하는 것이. 그리고 10편 소년들에 나오는 콜랴는 13살이라면서 완전 능글능글한 애늙은이에요. 그렇지만 역시 애인지라 여린 마음도 있고, 일루샤에게 쥬치카를 보여준 장면은 감동이었어요. 하권 첫편은 이반이네요.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작가적 능력을 이야기할 때 주제도 굉장히 심오하고, 엄청나게 강렬한 캐릭터들을 창조했다는 점이 주로 거론되지요. 그런데 저는 그가 서스펜스를 자아낼 줄 아는 작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죄와 벌』은 줄거리는 아주 간단한데 순전히 그 서스펜스의 힘으로 읽게 되는 소설이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는 그런 서스펜스가 여러 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표도르 까라마조프를 죽인 건 누구일까? 스메르쟈꼬프와 이반의 기싸움은 어떻게 끝날까? 드미뜨리가 계속 말하지 않는 비밀이 도대체 뭘까? 재판은 어떻게 끝날까? 까쩨리나는 어떤 남자를 선택할까? 그루셴까와 까쩨리나는 누가 이길까? 일류샤는 살아날까? 등등. 사실 구조는 전혀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독자를 궁금하게, 또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작가라고 봅니다. 『악령』은 그런 서스펜스가 좀 덜했던 작품 같고요.
"그건 이렇게 생각해야 할 거야." 알료샤는 웃으면서 말했다. "예를 들면 어른들은 극장에 가는데 극장에서는 역시 여러 종류의 주인공들의 모험이 사여디기 때로는 강도질이나 전쟁 장면도 나오지. 이것 역시 일종의 놀이가 아닐까? 그러니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 하는 전쟁놀이나 도둑 놀이 역시 초보적인 예술이라 할 수 있어. 어린 마음속에 자라나는 예술적 욕구인 것이지. 그런데 어떤 때는 이런 놀이가 극장에서 상연되는 연극보다 더 근사할 때도 있거든. 단지 차이가 있다면 어른들은 배우들을 보러 극장에 가지만,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아이들 자신이 배우가 되는 거지. 하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카라마조프의 형제(상)(세계문학선 2-3) 416p ( 10편 소년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상)(세계문학선 2-3)
저도 신을 반대하는 건 아니예요. 물론 신이란 건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지만.... 신이 필요하다는 건 인정해 요 ..질서를 위해서....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 말입니다. 만약 신이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카라마조프의 형제(상)(세계문학선 2-3) 439p (10편 소년들), 도스토예프스키
당신은 정말 어리석군요, 알료셴까. 아무리 현명하다고 해도 그런 것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네, 이건 정말이에요. 그분이 나 같은 여자 때문에 질투한다고 해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질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라고요. 난 그런 여자예요. 난 질투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아요. 내 마음은 아주 모질고 또 나 자신도 질투심이 많으니까요. 단지 나는 그분이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괜시리 질투심을 드러내는 것이 화가 날 뿐이에요. 내가 눈이 멀어서 그걸 모르는 걸까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욕망과 증오의 까마라조프 제국, 세계문학의 거장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도스또예프스끼의 마지막 장편 소설로, 40여 년에 걸친 작가 창작의 결산으로서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 가운데 가장 심오한 사상적 깊이와 이에 걸맞은 예술적 구조를 구현한 작품이다.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형님은 정신 이상자여서 발작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살인을 한 거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하니까요.」 알료샤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형님은 그 일에 동의하지 않고 있어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아아, 나는 혼란을 바래요. 언제나 난 집에 불을 지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살그머니 불을 놓는 상상을 하거든요. 그럴려면 반드시 살그머니 불을 놓아야 해요. 사람들은 불을 끄려 하지만 집은 활활 타오르지요. 그럼 나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는 거예요. 아아,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그만큼 무료하다니까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그 사람은 바로 팽이 같아요. 팽이처럼 그 사람을 감아 던져서 채찍으로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려 줘야 해요. 난 그 사람한테 시집을 가서 평생 팽이처럼 돌려 주겠어요. 나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나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바로 그게 내가 바라는 바예요. 저 세상에 가면 나는 심판을 받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면전에서 비웃겠어요. 정말이지 난 집에 불을 지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에요, 알료샤, 우리집을 말이에요. 내 말이 곧이들리지 않으시죠?」 「왜죠? 열두 살 가량 된 아이들 중에는 불장난이 하고 싶어서 결국 불을 지르는 아이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건 일종의 병이에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제11권 작은형 이반 표도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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