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혼자 읽기

D-29
우리가 이렇게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영웅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을 때 정치적 문제는 사실 뒷전인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묻거나 책임을 추궁할 여유 같은 건 사실 없다. 우리는 “모두 다 함께” 이 싸움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이미 금융위기의 정치경제적 측면도 함께 작용하기 시작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6장 “글로벌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8년 가을에는 어떤 시스템을 구해내야 했을까?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에 포함되는 사람은 누구였으며 또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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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러한 직접적인 구제 조치를 넘어서는 금융시스템 전반에 걸친 전면적 지원은 정말로 실물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대출을 할 수 없어서 투자가 중단되고 따라서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것일까? 아니면 주택시장의 붕괴와 가계경제의 어려움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투자를 해도 아무 이득이 없기 때문에 대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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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질문은 경제학의 영역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시한폭탄의 초침은 계속 움직이고 있으며 자동차는 다리 밖으로 막 떨어지려고 한다. 전 지구적 재앙이 벌어지고 있는데 인과관계의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가리는 게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6장 “글로벌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헨리 폴슨은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지원을 호소하며 유명한 말을 남긴다. “주머니 안에 권총을 갖고 있다면 밖으로 꺼내야 사람들이 알아볼 것이다. 그런데 바주카포를 갖고 있다면 굳이 그걸 꺼내 휘두르지 않아도 이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7장 긴급 구제금융,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그만큼 워싱턴 DC에서 펼쳐지는 정치 무대는 새롭고도 기이했다. 기업가 출신들이 이끄는 자유시장 중심의 보수적 행정부가 주택금융시스템의 상당 부분을 국유화하기 위해 무한정에 가까운 정부 지출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격분했다. 그들은 도와줄 가치가 없는 무책임한 채무자들, 그리고 그런 채무자들의 무책임함을 더욱 부추기는 새로운 제도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7장 긴급 구제금융,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마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며 갑자기 정치적 입장을 바꾼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공화당 대통령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그동안 지켜온 기본적인 원칙들에서 등을 돌리는 모습 말이다. 그렇지만 부시 대통령은 미국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 헨리 폴슨의 이 말은 미국 보수주의 안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분열 상태를 드러내 보인다. 공화당 우파들은 인기 없고 혐오스럽기만 한 조치들을 지지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조치는 “금융시스템”을 구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7장 긴급 구제금융,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그렇지만 팀 가이트너와 헨리 폴슨, 그리고 벤 버냉키는 여기에 대해서 모두 다 별 다른 의미가 없는 질문들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재무부와 연준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리먼브라더스의 몰락은 정부가 의도한 결과가 아니었다. “일부러 그렇게 내버려둔 것이 아니다.” 팀 가이트너의 주장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한계에 도달했고 영국 측에서는 극도로 몸을 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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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이 되자 민주당 의원인 바니 프랭크는 재무부 관료들과 가진 청문회에서 9월 15일 있었던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자유시장경제의 승리의 날”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프랭크 의원의 발언은 물론 농담이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헨리 폴슨의 한 보좌관은 9월 15일이 “재무부로서는 기쁜 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무부는 시장이 자기 역할을 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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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고 논평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헨리 폴슨의 결단을 지지한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정부로서는 어느 시점에서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다만 뉴욕 연준의 팀 가이트너는 이런 논조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선을 그은 것이 아니다. 몸을 사린 것이 아니라 솔직히 능력 부족이었다. 리먼브라더스의 끔찍한 파산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만 실패하고 만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7장 긴급 구제금융,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상원 금융위원회의 크리스 도드는 이렇게 말했다. “재무부의 요청은 그 적용 범위 면에서 전례가 없는 규모였고 거기에 자세한 내용도 부족해서 내가 나중에 덧붙여야 했다. 나는 경제만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헌법정신 자체도 위기에 빠지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7장 긴급 구제금융,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켄터키주 출신의 짐 버닝 의원은 이 법안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것은 미국식이 아니며, 금융사회주의다.” 역시 공화당 소속으로 텍사스주 출신인 테드 포 의원의 분노는 대단했다. “뉴욕의 배부른 자본가들은 선량한 국민들이 이런 정신 나간 짓에 좋아라 하며 세금을 가져다 바칠 거라고 기대하는 모양이다. …… 금융 안정을 미끼로 국민들을 위협하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7장 긴급 구제금융,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만일 연준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한 각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 재난이 밀어닥칠 수도 있었다. 유럽 입장에서는 미국에서의 대출을 줄이고 달러화로 바꿀 수 있는 자산들을 급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8장 “가장 시급한 현안”,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7년 말부터 연준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금융계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럽에 전대미문의 규모로 달러 유동성을 제공하기 시작하자 결국 유럽의 자산처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8년에 뿌려진 달러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서 미국과 유럽의 위기를 분리된 역사로 기록한다면 그것이 시대착오적이며 심각한 오해를 초래하게 만들어버렸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8장 “가장 시급한 현안”,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이중의 위기를 맞은 2008년의 동유럽 국가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발트 3국은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려 했고 헝가리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만큼 이 이중의 위기가 큰 충격으로 다가온 국가는 없었다. 마침 금융위기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안 그래도 위태로웠던 우크라이나 정권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우크라이나는 2013년 큰 정치적 위기를 겪지만 그 씨앗은 이미 5년 전부터 뿌려져 있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9장 유럽의 잊혀진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8년 봄,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는 NATO 회원국 신청을 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응원한 것이 부시 행정부와 폴란드, 그리고 다른 동유럽 국가들이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정계는 분열한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9장 유럽의 잊혀진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유셴코 대통령은 서방측에 정치적 승부를 걸었지만 당시 총리였던 율리아 티모셴코는 독립 이후 추구해온 대로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정책을 더 선호했고 이런 균형 관계 속에서 천연가스 거래를 통해 사적으로 재산을 모으기도 했다. 2008년 8월 조지아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나마 남아 있던 2004년 혁명의 정치적 유산까지 분열된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9장 유럽의 잊혀진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8년 중국은 자신이 쌓아 올린 달러화 자산에 미국 재무부 채권뿐만 아니라 모기지 대출을 확장시킨 자금원인 정부보증기관(GSE) 채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여론도 들끓어 올랐다. 왜 가난한 중국이 미국의 배를 불려주어야 하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중국 당국은 대변인을 통해 극적이면서도 비정상적일 만큼 솔직한 논평을 내놓는다. 만일 미국이 GSE의 파산을 묵인한다면 그것은 “재난”을 자초하는 일이며, 중국은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0장 동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가오시칭(高西慶)은 이렇게 언급했다. “최근 수개월 동안 세계는 미국이 자신만의 이념, 자부심, 독선으로 투쟁을 이어온 후 마침내 미국인의 위대한 재능 중 하나인 실용주의를 적용시켰음을 목도했다.” 미연준과 재무부는 금융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규모로 개입했고 그 때문에 중국은 미국을 자본주의 민주국가가 아니라 “아메리카식 사회주의”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0장 동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중국이 수출대국으로서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가치의 상당 부분은 원자재와 특정 부품들을 또 그만큼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결과 2008년 전까지 중국의 GDP 성장에서 순수하게 수출이 기여하는 몫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았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중국의 성장을 견인해온 원동력은 국내 수요였으며 수출은 그 영향력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0장 동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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