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혼자 읽기

D-29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고 논평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헨리 폴슨의 결단을 지지한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정부로서는 어느 시점에서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다만 뉴욕 연준의 팀 가이트너는 이런 논조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선을 그은 것이 아니다. 몸을 사린 것이 아니라 솔직히 능력 부족이었다. 리먼브라더스의 끔찍한 파산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만 실패하고 만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7장 긴급 구제금융,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상원 금융위원회의 크리스 도드는 이렇게 말했다. “재무부의 요청은 그 적용 범위 면에서 전례가 없는 규모였고 거기에 자세한 내용도 부족해서 내가 나중에 덧붙여야 했다. 나는 경제만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헌법정신 자체도 위기에 빠지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7장 긴급 구제금융,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켄터키주 출신의 짐 버닝 의원은 이 법안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것은 미국식이 아니며, 금융사회주의다.” 역시 공화당 소속으로 텍사스주 출신인 테드 포 의원의 분노는 대단했다. “뉴욕의 배부른 자본가들은 선량한 국민들이 이런 정신 나간 짓에 좋아라 하며 세금을 가져다 바칠 거라고 기대하는 모양이다. …… 금융 안정을 미끼로 국민들을 위협하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7장 긴급 구제금융,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만일 연준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한 각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 재난이 밀어닥칠 수도 있었다. 유럽 입장에서는 미국에서의 대출을 줄이고 달러화로 바꿀 수 있는 자산들을 급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8장 “가장 시급한 현안”,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7년 말부터 연준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금융계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럽에 전대미문의 규모로 달러 유동성을 제공하기 시작하자 결국 유럽의 자산처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8년에 뿌려진 달러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서 미국과 유럽의 위기를 분리된 역사로 기록한다면 그것이 시대착오적이며 심각한 오해를 초래하게 만들어버렸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8장 “가장 시급한 현안”,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이중의 위기를 맞은 2008년의 동유럽 국가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발트 3국은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려 했고 헝가리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만큼 이 이중의 위기가 큰 충격으로 다가온 국가는 없었다. 마침 금융위기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안 그래도 위태로웠던 우크라이나 정권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우크라이나는 2013년 큰 정치적 위기를 겪지만 그 씨앗은 이미 5년 전부터 뿌려져 있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9장 유럽의 잊혀진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8년 봄,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는 NATO 회원국 신청을 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응원한 것이 부시 행정부와 폴란드, 그리고 다른 동유럽 국가들이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정계는 분열한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9장 유럽의 잊혀진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유셴코 대통령은 서방측에 정치적 승부를 걸었지만 당시 총리였던 율리아 티모셴코는 독립 이후 추구해온 대로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정책을 더 선호했고 이런 균형 관계 속에서 천연가스 거래를 통해 사적으로 재산을 모으기도 했다. 2008년 8월 조지아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나마 남아 있던 2004년 혁명의 정치적 유산까지 분열된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9장 유럽의 잊혀진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8년 중국은 자신이 쌓아 올린 달러화 자산에 미국 재무부 채권뿐만 아니라 모기지 대출을 확장시킨 자금원인 정부보증기관(GSE) 채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여론도 들끓어 올랐다. 왜 가난한 중국이 미국의 배를 불려주어야 하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중국 당국은 대변인을 통해 극적이면서도 비정상적일 만큼 솔직한 논평을 내놓는다. 만일 미국이 GSE의 파산을 묵인한다면 그것은 “재난”을 자초하는 일이며, 중국은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0장 동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가오시칭(高西慶)은 이렇게 언급했다. “최근 수개월 동안 세계는 미국이 자신만의 이념, 자부심, 독선으로 투쟁을 이어온 후 마침내 미국인의 위대한 재능 중 하나인 실용주의를 적용시켰음을 목도했다.” 미연준과 재무부는 금융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규모로 개입했고 그 때문에 중국은 미국을 자본주의 민주국가가 아니라 “아메리카식 사회주의”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0장 동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중국이 수출대국으로서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가치의 상당 부분은 원자재와 특정 부품들을 또 그만큼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결과 2008년 전까지 중국의 GDP 성장에서 순수하게 수출이 기여하는 몫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았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중국의 성장을 견인해온 원동력은 국내 수요였으며 수출은 그 영향력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0장 동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독일은 2000년 이후 국내 소비와 투자가 그리 크게 늘지 않았고 그런 독일의 성장을 견인한 건 대부분 해외 수요였다. 반면에 중국은 성장의 진정한 원동력이자 견인차가 바로 엄청난 규모로 늘어난 국내 투자와 수요였다. 중국의 도시들이 확대되고 사회기반시설들이 빠른 속도로 현대화하면서 체질 개선이 시작되었고 중국 경제도 그와 함께 성장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0장 동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8년에 가장 위기에 몰린 나라는 한국이다. 지금의 한국을 일으켜 세운 유명한 수출전문 기업 집단, 즉 대우나 현대, 삼성 같은 “재벌”들과 거대한 규모의 제철소, 조선소, 자동차 공장들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우리는 우리와 상관없는 금융위기의 유탄을 맞은 셈이다.” 한 고려대학교 교수의 지적이다. “우리는 불공정한 세상에 살고 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1장 G20,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그렇지만 죄 없는 희생자를 자처하는 이 정도의 분석으로는 한국의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짚어낼 수 없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별나게 동유럽이나 러시아처럼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전 세계와 하나로 엮여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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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혹독했던 시련 이후 한국은행은 충분한 외화를 축적하는 데 집중했고 2008년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4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한국 금융시스템이 가진 약점을 극복할 수 없었다. 유럽과 달리 서브프라임 대출상품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당시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불량 미국 모기지 증권은 8500만 달러어치에 불과했다. 문제는 보유 자산이 아니라 대차대조표상의 자금조달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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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려 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통화와 자본의 흐름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한국 금융업의 상당 부분을 해외 투자자들이 소유했으며 한국의 은행들은 도매금융 자금조달 방식이라는 새롭지만 불안정한 방식으로 전 세계 달러시장에서 단기로 자금을 빌려와 한국 내에서 고금리로 장기간 투자를 했다. 한국의 수출은 호황이었고 달러 대비 원화 가치도 꾸준히 오르자 이런 투자방식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재벌들의 고민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환율에 맞서 지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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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그 어떤 지역이나 국가도 2008년의 한국처럼 수출 불황과 환율 폭락, 그리고 유동성 위기가 종합적으로 덮친 곳은 없었다. 그렇지만 아시아 지역 전체로 봤을 때 그 영향은 대단히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태국에서는 금융위기와 함께 정치적 위기가 고조되었고 중산층이 들고일어나 엄청난 시위와 방콕공항 점거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2008년 12월, 이미 추방당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국민의힘당이 이끄는 태국 정부는 공권력을 앞세워 국민들의 저항을 진압했다.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상품과 용역 수출이 GDP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태국에서 이런 민심의 불안은 경제불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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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한국이 특히 곤경에 처했던 건 금융 부문에서 발생한 긴급사태 때문이다. 달러 자금시장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2008년 10월 한국 정부는 1000억 달러에 달하는 해외 대출 보증을 설 수밖에 없었고 다른 유동성 자금이나 지원 방법을 위해 최소한 300억 달러를 더 투입해야 했다. 2008년 가을 한국이 보여준 위기 탈출 동원력은 정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철강업체 포스코나 현대자동차, 그리고 삼성전자 같은 주요 수출제조업체들은 수천만 달러를 외환시장에 쏟아부어 원화에 대한 압력을 늦추려고 했다. 한국 정부의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자발적으로 은행 채권을 매입해 자금조달 문제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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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런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했던 도움은 역시 밖으로부터 왔다. 10월 30일 한국은행은 미연준과 3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고 발표한다. 이를 통해 한국은행은 필요한 만큼의 달러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외환시장은 공황상태에서 벗어났고 그동안 타격을 입었던 금융 부문도 복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2009년 초 한국 정부는 은행간 대출을 위해 550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하고 나섰으며 부실채권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230억 달러를 따로 책정해두었다. 또한 여기에 채권시장안정화기금 78억 달러와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313억 달러가 더해졌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1장 G20,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 전역에 걸쳐 2008년의 금융위기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일종의 역사적 분기점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1997년 위기 당시 IMF와 클린턴 행정부의 도움에 굴욕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태국과 말레이시아, 그리고 한국은 이제 새로운 수준의 자율성을 갖춘 것이다. 중국이나 서구 국가들과의 차이점은 단지 기술적인 완성도와 전문 인력뿐이었다. 경기부양을 위한 주요 노력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방식을 통해 진행되고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거기에 어떤 지역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했든 상관없이 아시아 신흥시장국가들의 정책 대응은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이런 새로운 회복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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