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혼자 읽기

D-29
민주당은 2016년 대통령 선거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2008년 이후 민주당이 의회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2012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승리한 후로는 의회는 몰라도 대통령 자리만은 넘겨주지 않겠다는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민주당의 지휘 아래 미국은 금융위기를 무사히 이겨낼 수 있었으며 위기가 끝나고 미국이 다시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오자 더욱 현대적이고 다양한 모습의 민주당이 대통령 선거전에서 필연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미국 사회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고 경제도 원하는 만큼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단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의 새로운 전문가 세대는 자신이 정권을 잡기만 하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4장 트럼프,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16년 선거에서 2008년 금융위기의 분위기를 가장 강하게 드러낸 것은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강력한 경쟁자로 나섰다는 사실이다. 샌더스는 심지어 애초에 민주당 소속도 아니었으며 스스로를 민주사회주의자로 불렀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분명한 적이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4장 트럼프,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정신이 그의 힘이 되어주었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무당파나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샌더스의 인기는 상당히 높았다. 샌더스가 대통령에 도전하는 후보로서 이 정도 인기를 끌 수 있었다는 사실은 결국 30세 이하의 젊은 유권자들 중에서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를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증명하는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4장 트럼프,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8년의 분노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 중심에 샌더스가 있었다. 그를 지지하는 모임에는 거의 언제나 구제금융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국 국민들은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전히 애를 쓰고 있었다. 샌더스는 2015년 9월 이제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 연준의 금리 인상 취소를 지지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실제 실업률이 10퍼센트를 넘어가는 지금 우리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임금을 올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이제는 연준이 나서서 무너진 중산층을 재건하기 위한 조치를 서둘러 취할 때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을 구해준 것처럼 말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4장 트럼프,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트럼프를 지지하는 인터넷 웹사이트들이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고 다시 연준과 전·현직 의장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정책 공약과 연준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중 어느 쪽이 더 제정신인가? 은행들에 대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자금을 퍼주던 때를 잊은 건가? 연준이 수조 달러어치에 이르는 재무부 채권을 매입하고 재무부에 이자를 지급한 다음 그 이자를 연방정부 예산의 수입으로 계산하는 건 과연 정상적인 행동인가?”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4장 트럼프,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8년 이후 몇 년 동안 엄청난 자금 축적을 통해 중국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중공업 분야 역시 생산능력이 지나칠 정도로 늘어났다. 부동산 분야 역시 건설 물량이 너무 많아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주식시장은 “비합리적 열광(irrational exuberance)”과 위험천만한 주식담보 대출의 유행으로 어느 정도 탄력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그림자 금융은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유럽과 미국을 침몰시킨 그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5장 다가올 미래,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엄청난 무역 흑자를 내고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국가가 어떻게 통화 위기를 겪을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2008년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최고의 수출대국이었던 한국이나 러시아 같은 국가는 은행이 위기에 처하면서 달러화 조달에 큰 곤란을 겪었다. 그리고 문제에 대한 설명은 2008년이나 2015년이나 똑같다. 세계화는 각기 다른 수준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이나 중국 같은 국가가 강점을 보이는 무역의 방향은 오직 한 가지뿐이며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방향은 금융위기와 이어져 있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5장 다가올 미래,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위대한 경제학자 아바 러너는 이런 신랄한 지적을 남긴 바 있다. “경제학은 해결된 정치적 문제들을 자신의 전문 영역으로 삼음으로써 사회과학의 여왕이라는 위치에 올랐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5장 다가올 미래,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어쩌면 이런 불확실한 상황들을 바탕으로 세계 질서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결정된다는 사실은 자못 충격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비록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편향적일 수도 있는 동맹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민주적 체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의 통치방식일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마셜플랜, 혹은 허버트 후버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대공황 대책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이른바 “정치경제”의 시대에서 정말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 부분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5장 다가올 미래,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7년 이후 벌어진 금융위기의 규모는 민주적 정치와 자본주의식 통치에 대한 요구 사이의 관계를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긴장된 관계로 몰아넣는다. 무엇보다도 이런 긴장상태는 일반 대중의 정치참여나 혹은 선출된 지도자들의 절대적인 정책 통제 안에서 일어나는 위기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런 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해온 정당들의 위기 안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긴장상태는 정당들의 계획과 일관성,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시험하며 동시에 정말로 필요한 존재들인가도 확인해준다. 여러 국가들, 특히 그리스와 프랑스에서는 온건한 성향의 좌파 정당들이 이런 시험을 통해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5장 다가올 미래,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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