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인생책> 이평춘 번역가와 『엔도 슈사쿠 단편선집』 함께 읽기

D-29
며칠 여행을 다녀오느라 오랜만에 들어오네요. 여행중에 단편소설 <잡종견> 다시 읽었고,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도 읽어보았습니다. 예전에 알던 지인이 반려견을 극도로 사랑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 말씀으로는 가족 없이는 살아도 반려견 없이는 못 산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집에 가면 자신을 반겨주는 존재가 강아지 뿐이라는 거예요. 가족들은 대화도 인사도 없고 그저 개인적으로 생활한다면서요... 그 말을 들으니 반려견을 극도로 사랑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기는 했지만, 마음 한켠이 씁쓸해지더라고요... <잡종견>을 읽을 때마다 그 이야기가 늘 생각이 납니다...
인간과 동물의 소통방법은 매우 다양하죠. 어쩌면 인간을 통해 완벽한 관계가 유지된다면 동물에 거는 기대는 크지 않을 수 있겠죠. 인간을 통한 불소통이나 절망이나 외로움에 지쳤을 때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대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때로는 멀리있는 가족이나 친구보다도 매일 같은 공간에서 숨쉬는 존재를 통해 위로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스구로가 방과 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을 배회할 때 자신의 곁을 통행해 주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슬픔을 구우에게만은 이야기할 수 있었던 그 교류는 중요하다고 생각드는군요. 그런 대상을 찾고, 그런 대상이 있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건너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엔도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가지고 있던 궁금증이 있는데요, 혹시 엔도 슈사쿠 본인의 눈이 사시였나요? 오래 전에 읽어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 중 <백색인> 주인공이 사시에 추남으로 묘사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엔도의 프로필 사진을 찾아보면 안경알이 두꺼워 보여서, 눈이 굉장히 안 좋았던 게 아닐까 추측하게 됩니다. <잡종견>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69쪽 마지막 문단에 "강아지는 가엾게도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작았고, 게다가 오른쪽 눈 주변만이 갈색이어서 마치 안경을 끼고 있는 듯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강아지의 눈이 짝짝이인 것을 보며 자신의 존재를 이입하게 된 건 아닐까 궁금하더라고요.
유미소님, 엔도는 사시가 아니었습니다. 안경을 끼고는 있으나, 작품 속에서나 개인적 사변에서도 시력에 관한 언급들은 없었기에 사시이거나 시력때문에 고생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백색인>에서 '나'가 못생기고 사팔뜨기로 표사된 것은, 왜곡된 성향을 나타내기 위한 설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프랑스인이었는데, 리르의 공업기술학교에 있을 때 독일인인 어머니와 약혼을 했다. 결혼 후 그들은 리옹에 살았다. 나는 못생긴 아이였다. 못생겼을 뿐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사팔뜨기였다. 훗날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18세기의 천박한 방탕아의 초상화를 떠올린다. <신의아이(백색인)>p.10-11
신의 아이 백색인 신들의 아이 황색인 엔도 슈사쿠
신의 아이 백색인 신들의 아이 황색인20세기 일본 문학의 거장 엔도 슈사쿠의 초기작『신의 아이 백색인 · 신들의 아이 황색인』. 이 작품은 인간에게 있는 악의 본성은 신의 세계에서 어떤 의미인가,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유다의 관계에 대해 간접적으로 고찰하고 있어, 행간에 담긴 엔도 슈사쿠 특유의 종교적 사색을 읽을 수 있다.
작가의 시력에 대해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오래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제야 속 시원히 알게 되었네요^^ 소설 <잡종견>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느낀 점은, 작가의 유작인 <깊은 강>을 먼저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잡종견' 또한 마치 '깊은 강'과 같이 인간을 차별하거나 분별하지 않고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대상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중국 다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일본인 소년 스구로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테고,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으리라 추측이 됩니다. 그를 가장 아껴주고 배려해주어야 할 부모님은 자기들 문제에 빠져 스구로를 챙겨주지 못했고요. 오직 잡종견 구우만이 스구로의 인종, 성별, 연령, 성격, 외모, 성적 등 어떤 것도 판단하지 않고 곁에 있으며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는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분별없이 사랑해준 잡종견, 자기 대신 죽어간 구관조를 통하여 예수를 발견하고 깊은 강으로까지 나아간 엔도의 문학 세계 자체가 하나의 기나 긴 강줄기 같다는 인상이 듭니다. 좋은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미소님 글을 읽으며 이 책을 끝내고 다음책으로 깊은강을 읽어야 겠다 생각했어요. 또 다른 작품도 추천해주실게 있으실까요?
저는 사실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이라는 소설집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이 책이 좀 어렵다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백색인>에서 폭력과 악을 탐구하는 주인공에게 독자가 공감하거나 이입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도 같아요. 엔도 슈사쿠 독서모임에서 다들 좋아했던 작품은 <바다와 독약> 그리고 <침묵>이었어요. 모두 다 엔도의 대표작이니 천천히 한 권씩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을 읽으신 분들은 역자후기를 통해서 아시겠지만,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입장에서 부연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서 입니다. 원래 원제는 <白い人/しろいひと> <黄色い人/きいろいひと>입니다. 번역을 한다면 <백색인> <황색인>입니다. 이 작품은 중편의 각각의 작품입니다만, 6개월 차이로 발표되면서 신의 문제를 '백색인'의 입장과 '황색인'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기에 연결시켜 읽고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엔도의 프랑스 유학 체험을 통해 구체화 되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서양인인 '백색인'의 세계와, 동양인인 '황색인'의 두 세계의 이질감과 갈등을 그리고 있으며, 결국 '백색인의 세계가 상징하는 신'과 '황색인의 세계가 상징하는 신들'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하여 제목만으로 본 작품이 인종의 문제로 오해될 수 있어서 원제인 <백색인> <황색인>에 부제를 붙여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초기문학의 출발선에 있던 이 문제의식이 엔도문학의 50년을 이끌어 갔고 최종적으로 <깊은 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백색인'과 '황색인'의 구별까지도 감싸고 , 신과 신들의 구별까지도 모두 포용하며 흐르는 '깊은 강'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에 붙은 부제의 의미 그리고 부제를 붙인 이유 등이 항상 궁금했는데 이렇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은 영어로도 읽은 적이 있는데, 영역서 제목은 <White Man, Yellow Man>이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저도 인종차별에 예민한 서양에서는 제목만 보고 부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어 번역서로 처음 접했을 때는 '신의 아이, 신들의 아이'라는 문장이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느껴졌지만, 다 읽고 났을 때는 굉장히 커다란 울림과 깨달음을 주는 제목이었습니다.
이 방대한 세계를 더 탐험하고픈 마음이 드네요~ 오늘이 마지막이라니요! 아쉬워서 대화들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 중입니다:)
네 오늘이 마지막인데 느려터진 달팽이님처럼 저도 아쉬움이 남는군요. 그렇지만 엔도 문학의 인연은 여전히 이어지리라 믿어봅니다.
제가 다른 아이디로 로그인 해서 글을 썼네요 ㅎㅎ 위에 사라스 게시글 제가 썼습니다!
유미소님의 글 공감합니다. "오직 잡종견 구우만이 스구로의 인종, 성별, 연령, 성격, 외모, 성적 등 어떤 것도 판단하지 않고 곁에 있으며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는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분별없이 사랑해준 잡종견, 자기 대신 죽어간 구관조를 통하여 예수를 발견하고 깊은 강으로까지 나아간 엔도의 문학 세계 자체가 하나의 기나 긴 강줄기 같다는 인상이 듭니다."
따라서 본 작품 <잡종견>은 엔도 문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곁에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는 유일한 존재"가 <침묵>의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하고 있었다. 네 발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예수의 음성으로 환원됩니다. 잡종견의 '구우'가 구관조가 되고 예수가 되는 구조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함께 동행하는 '동반자'의식의 태동이 <잡종견>의 '구우'에게서 출발하였기에 이 작품을 꼭 함께 읽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 '보잘 것 없음' 입니다. 명견을 원하지 않았고, 보잘것 없는 잡종견을 좋아하는 '나'입니다. 새차가 아니라 오랜세월 함께하며 손때 묻은 낡은 차에 애착을 느끼는 '나' 입니다. 이것이 점차적으로 버리는 자보다 버림 받은 자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으며 이것이 <내가 버린 여자>의 미츠를 통해서 그려집니다. 그리고 <침묵>의 나약하여 수없이 후미에를 밟으며 배교에 이르는 '기치지로'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으며 '유다'에게 조차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독자들은 위로받게 되고 엔도를 가톨릭작가의 대부로 서게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잡종견>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부터는 세번째 작품인 <6일간의 여행>으로 들어가겠습니다. (6월 15일~22일) 이 작품에서는 <그림자>에서 나왔던 '어머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소감을 기대하겠습니다.
연어 무리가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주인공은 오사카로 향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해 알아가는 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불꽃처럼 사셨습니다.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불어넣어 주려면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불꽃이란 멀리서 보면 어둠을 밝혀주는 귀한 빛이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불꽃에 데일 수 있습니다. 어머니와 손닿을 거리에 있었던 이들은 저마다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바닷가의 소나무 숲의 나뭇가지는 모두 바다 반대 방향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어머니로 인해 삶의 방향이 틀어져 버린 이들은 바람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갈 것입니다. 반면 어머니로 인해 신자가 된 사람들은 거대한 힘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나뭇가지는 휘어버린 것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살기 위해 고개를 숙였을 테니까요. 주인공은 소설을 쓰겠다는 아들에게서 아내의 흔적을 발견하고 아버지가 불쾌했을 거라 단정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심정이 불쾌인지 불안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부자 관계가 그런데도 아버지가 원했을 법한 여자와 결혼한 그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만큼 어려웠나 봅니다. “오직 한 가지, 나는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남긴 흔적을 꼭 보고 싶을 뿐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는 시립병원에서 입원 중인 고이치를 만납니다. 큰아버지는 30년 전에 돌아가셨고 그의 아들은 아비의 시신도 보지 못했습니다. 성당에서 만난 T씨와 N씨, K씨와 병원에 있는 고이치와 만남의 간극만큼 어머니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나는 안 돼!, 그럴 수가 없어.”라며 혼자 고개를 흔들거나 빗속의 아버지를 향한 연민을 억누르는 모습에서 해결하지 못한 상처가 보였습니다.
"나뭇가지는 휘어버린 것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살기 위해 고개를 숙였을 테니까요." 네, 바람에 꺾이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람의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었네요.
바람의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것. 바람을 끊을 수는 없으니~ 좋은 표현이네요! 바람과 함께 살기 위해 고개를 숙였을테니까요~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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