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인생책> 이평춘 번역가와 『엔도 슈사쿠 단편선집』 함께 읽기

D-29
영주님 <그림자> 제목에 관해서 생각을 올려주셨는데, 다시 읽어보시고 정리가 되셨나요?
번역가님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방법을 따라 읽었을 때 어떠할 지 기대됩니다. ‘그림자’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엔도가 스스로에게 정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첫 페이지의 ‘공허한 마음’이 그의 고뇌와 변화의 시작점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편지를 보내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혼란함 때문이기도 하고 41페이지에 나온 ‘상처를 주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당신은 자신감과 신념에 찬 선교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불 켜진 빌딩과 기저귀를 말리는 아파트 사이에서 이제는 삶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려진 개의 슬픈 눈과 같은 눈을 가진 인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p. 63,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이 부분에서 이전에 알던 ‘당신’과 지금 어렴풋이 알게 된 ‘당신’이 만나는 것 같습니다. 이 ‘당신’들과의 만남이 엔도의 성장기 인간 이해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이 강한 모습과 나약함을 동시에 가졌음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자신에게 강함을 요구했던 어머니와 ‘당신’에 대한 애증 혹은 원망이 어느 정도 사그러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믐 모임이 처음이라… 이렇게 참여하는 것이 맞겠지요?
마들렌님 잘 하고 계십니다. 저도 그믐 독서모임이 처음인데 이런 형식으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세밀하게 읽고 생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설혹 나를 배신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원망할 마음이 없어졌고, 오히려 당신이 그 옛날 믿고 있던 그 신앙은 자신감이나 재판하는 강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버림 받은 자의 슬픔을 위해서 존재했었다고까지 생각해 봅니다 (p38)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너무 먹먹하고 슬픕니다. 스페인 선교사가 배교를 했다고 해도 그 믿음 밑바닥에는 여전히 예수의 가난한 마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봅니다. 빠르게 성호를 그을 때 누가 볼까 하는 마음과 예수에 대한 배신의 자책감, 그러나 결코 떨어낼 수 없는 믿음과 그런 불쌍한 죄인을 위해 죽으신 예수의 희생이 복합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을테지요. 배교를 했다고 예수를 등질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자신이 이전에 정죄했던 죄인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입장으로 뒤바뀐 것이라고 봅니다. 계속 슬프고 먹먹한 이 후유증이 오래 갈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이 책에 실린 <그림자>를 처음 읽었을 때, 슬프거나 안타까운 감정보다는 반가움과 즐거운 감정이 더 컸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엔도 슈사쿠의 소설을 여러 권 읽었는데요. 모든 작품에 작가의 경험이나 생활이 조금씩 투영되어 있긴 했으나 이 소설만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실제 생활이나 성격, 사고에 대해서 보다 사실적인 렌즈로 들여다보는 듯해서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더불어 제가 즐거움을 느낀 이유는, 이전에 읽은 엔도의 여러 소설 속의 모티브가 바로 <그림자>라는 소설 속에 집약되어 들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신의 아이 (백색인), 신들의 아이 (황색인>이었는데요, 그 중 <신들의 아이(황색인)> 또한 '나'가 브로우 신부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하는 까닭입니다. 또한 <그림자> 14~15쪽에 이따금 외국인 노인이 교회에 찾아와 ‘당신’을 만나는 내용이 있는데, 그는 류머티즘을 앓는 다리를 질질 끌며 걷고 있죠. ‘황색인’의 듀랑 신부가 류머티즘을 앓았던 모습과 겹치는데요. 그렇다면 <그림자> 속 ‘외국인 노인’과 ‘당신’의 관계를 상상하며 쓴 소설이 바로 <황색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더불어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엔도의 소설 <침묵>은 배교한 선교사의 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엔도가 왜 이렇게 배교한 선교사 이야기를 많이 쓰는지 늘 궁금했는데, <그림자>를 읽으며 이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해서 매우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림자>를 읽으며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12쪽에서 언급하는 ‘소설가가 되고 나서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세 차례나 썼는데, 그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변형시켜 썼습니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황색인>, <침묵> 외에도 배교한 선교사 이야기가 또 있을 듯한데 혹시 어떤 작품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17쪽에 ‘1년전 어떤 장편소설을 쓰면서 때때로 나는 당신과 만나게 된 그 우연을 생각했습니다’ 라면서 ‘사람들의 발에 밟혀 닳아 움푹 패인 후미에의 그리스도 얼굴’이라는 내용도 나오는데요. 소설 <침묵>이 1966년도 발표작이고, <그림자>가 1968년 발표작이니 집필시기를 감안해 따져보면 여기서 언급한 소설이 <침묵>이 맞을지, 아니면 다른 작품일지도 궁금하네요^^; 글이 너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워낙에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유미소님의 글 "더불어 제가 즐거움을 느낀 이유는, 이전에 읽은 엔도의 여러 소설 속의 모티브가 바로 <그림자>라는 소설 속에 집약되어 들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라는 내용 감사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된 이유이고 작가 엔도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시작한지 몇 일만에 글 처음 씁니다. 1. 왜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아직 종교와 자신의 신앙에 대한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아서라 생각합니다. 주인공의 신앙은 어머니에 대한 애착과 당신에 대한 경외심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신앙에 대해 생각해야하니까요.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당신, 그러니까 배교한 신부가 실제 인물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신앙 생활 그 자체나 규율과의 괴리 등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리스도나 전반적인 종교인을 의미하기도 할테구요. 그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다가, 깊은 강에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2. 당신에 대한 생각의 변화 주인공이 어렸을 때는 엄격한 규율로 다가오던 종교였지만, 막상 떠나니 다시 종교생활이 생각납니다. 신앙과 인간의 나약함과 일상과 사랑에 대한 복잡한 고민이 아버지 옆에서 생활하면서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로 표현됩니다. 그렇지만 그 신부 또한 종국에는 사랑으로 인해 교단을 떠나면서 그 고민이 더 깊어집니다. 그러다 어느 날 신부를 만납니다. 그 신부는 아직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주인공 스스로도 그 고민이 잘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앞서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것 처럼 강인한 규약의 종교관에서, ‘버려진 개의 슬픈 눈’이나 ‘버림 받은 자의 슬픔’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예수>로의 종교관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는 엔도의 소설 중 <깊은 강>을 이전에 읽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결론을 위주로 생각하게 되네요.
최형주님 올려주신 글 좋은 나눔이 되었습니다.
@최형주 그러고 보니 배교한 신부를 실제 인물이 아닌 신앙 생활에 대한 메타포로 읽어볼 수도 있었네요. 그렇게 대입해 보면 또 새롭고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감상을 이야기 나눠볼 수 있어서 참 좋네요^^
가루이자와에서 버터를 내게 준 당신의 동상 걸린 손,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그림자,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이상하게 동상 걸린 손으로 몰래 버터를 쥐여 주던 신부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도네요. 당시 시대상도 그려지고요.
내가 배급받은 버터요. 내 것을 주는데 잘못됐나요?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그림자,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당신>에 대한 여러분이 올리신 글을 보니 <당신>에 대해 거의 파악된 것 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많은 나눔이 되었습니다.
유미소님이 엔도의 작품을 많이 읽으신 만큼 세밀한 부분을 요구하는 질문을 하셨군요. 그럼 질문하신 내용에 관해 적겠습니다.
세 차례의 소설로 추정되는 것은 1.<황색인>의 듀랑신부/ <신의 아이(백색인)신들의 아이(황색인)> 2. <그림자>의 당신 3.<침묵>의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 그러나 <침묵>의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와는 관점이 전혀 다르고, 실패한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연관성은 없다고 보여집니다. 같은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황색인>의 듀랑신부와 <그림자>의 <당신>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황색인>의 경우 전쟁 시기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바다와 독약>하고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치바'라는 이름의 '나' 또한 기흉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나오는 게 <바다와 독약> 도입부 인물과 겹치기도 하는 등 엔도 문학의 초기작 퍼즐이 전체적으로 맞춰지는 느낌입니다^^
네, 재미있는 발견을 하셨네요. 엔도 소설에는 전쟁을 매개로 하는 소설이 많이 있죠. 실제로 전쟁을 체험한 세대이고, 징집령이 내려졌으나 결핵으로 인하여 연기된 상태로 있다가 종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유학 시절 결핵이 발병되었으며, 결국 유학을 중도 포기하고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아덴까지> <백색인>을 발표합니다. 이 <백색인>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문단의 자리를 확고히 다지게 되죠. 김해나 작가님이 그믐에서 독자들과 함께 읽으신 <바다와 독약>은 그 뒤의 발표작이고, 말씀하신대로 전쟁상황과 결핵으로 인한 기흉치료를 받고 있는 주인공과 미군포로들의 생체실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과 결핵은 엔도가 체험한 내용이었고 그러한 작가적 체험들이 소설의 소재로 그려진 것 같습니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체험한 것만을 쓴다'는 자세로 글을 썼다고 하는데, 아마도 작가적 상상력에는 작가의 체험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고, 왠지 그것이 진실한 글씨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래서 엔도작품에는 전쟁과 결핵의 문제는 자주 나오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특히 엔도문학은 작가론과 작품론을 완전 분리시키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그래서 하고 있습니다.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열림원/도서 증정] 『쇼펜하우어의 고독한 행복』을 함께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나눠요![책증정]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그림책 세계. 에세이 『다정하게, 토닥토닥』 편집자와함께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③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수북탐독] 3. 로메리고 주식회사⭐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황보름 작가님과 함께, 그래도 읽는 사람들
[링컨 하이웨이] 읽기 (<모스크바의 신사> 작가의 신작)<서양미술사> 함께 읽으실래요? <사회심리학> 함께 읽기 <진리의 발견> 함께 읽으실래요?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함께 읽으실래요?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함께 읽으실래요?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꿈꾸는 [김영사] 북클럽
[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김영사/책증정]우리...이 정도면 착한가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어려운가> 읽기[김영사/책증정] 투명 고릴라 실험, <보이지 않는 고릴라> 함께 읽어요![김영사]<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읽고 우리의 이동을 함께 이야기해봐요!
송승환 시인과 함께 보들레르 알아가기
보들레르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읽기 2보들레르 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 읽기 1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 2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 3
현경이랑 세상 읽기:겨울매미님이 썼습니다.
괜찮은 순간들을 위하여눈물 버튼쥐어짜는 사회
SF 전성시대!
[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장르적 장르읽기] 2. <SF 보다 Vol.1 얼음> 장르적 시선으로 바라보기 [책증정]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하다! 《시간의 물리학》 북클럽[박소해의 장르살롱] 5. 고통에 관하여
지금 신청 가능한 그믐북클럽 2개
[그믐북클럽X교보문고sam] 20.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읽고 답해요[그믐북클럽X교보문고sam] 21.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 읽고 답해요
세상이 이런데 경제학자는 무얼 하고 있나?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2.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1. <사람을 위한 경제학> [책걸상 함께 읽기] #23.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김영사/책증정] ★편집자와 함께 읽기★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개정증보판》[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2. <경제학자의 시대>
8월3일(토) 그믐밤은 사진전 📷
[그믐밤×휴머니스트] 25. 8월 3일, 조지프 콘래드와 제국주의 희생자를 기려요
지친 여름, 재미있는 이야기로 더위 날려요~ <여름 휴가를 위한 책 4권>
차무진 작가와 귀주대첩을 다룬 장편소설 <여우의 계절>을 함께 읽어요<빌리 서머스> 함께 읽으실래요? [박소해의 장르살롱] 1. 호러만찬회[책걸상 함께 읽기] #44. <수확자>
23년도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함께 읽었던 책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①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함께 읽기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② 『같이 가면 길이 된다』 함께 읽기[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③ 『동물권력』 함께 읽기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④ 『에이징 솔로』 함께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24년도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진행 중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① 『당신의 작업복 이야기』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② 『공감의 반경』
비 오는 여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3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I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2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
모집중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