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22. <여름의 빌라>

D-29
저도 어렸을 때 너무 궁금했었어요. 내가 가난하다는 게 티가 날까? 허름한 옷가지라던가 행색 같은 외적인 표지 말고요. 매일 매일 결핍과 궁핍에 시달리는 가난뱅이라는 것. 그건 남들 눈에 보일까 안 보일까.
<아주 잠깐 동안에> 와 비슷한 단편은 몇 번 읽은 적이 있어요. 이러한 스타일이 워낙 매력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 평범한 주인공은 어느 날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어떤 사건을 목격하거나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보통 살인, 추행, 강도 등으로 일상의 균열을 만들어 내는 폭력적인 사건) 권태롭거나 안정적이었던 주인공은 이를 통해 이전 삶과 이후 삶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계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죠. 죽을 때까지 묻어두고 갈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의 고독함과 내면의 고통 또는 자책, 작은 파장이 주인공을 어떻게 낙담하고 절망케 하는지를 잘 묘사하는 것이 이런 류(?) 작품의 관건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구성이 잘 드러나 있고 또 앞서도 얘기했듯 외국을 소재로 삼지 않으셨는데도 참 재미있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재주꾼인 작가님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소설입니다.
저도 이 작품 좋았어요. 주인공이 남자인데도 잘쓰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요. 여자 작가의 소설엔 여자 주인공이 대부분이라...작가의 성별과 주인공의 성별이 다른 작품을 만나면 저는 좀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마지막 작품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까지 완독했습니다. 이 작품도 괜찮았지만 워낙 <여름의 빌라>의 여운이 큽니다. @바나나 님 말씀처럼 '오래 생각나고, 오래 슬퍼요' 긴 여운이 남았어요. <여름의 빌라> 의 등장인물 지호가 전 너무 싫었어요. 지호의 슬픔과 사정은 알겠지만 솔직히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가 옆에 있다면 제가 지금 다른 모임에서 읽는 책을 추천해 주고 싶네요.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재치 넘치는 연구로 2013년 이그 노벨상을 수상한 로랑 베그가 특유의 유머감각과 깊이 있는 통찰로 '도덕적 착각'에 빠져 있는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사회심리학의 명저이다. 로랑 베그는 특정한 도덕관념이나 보편적 판단을 옹호하는 법이 없다.
백수린 소설가의 작품을 읽는 내내 김혜순 시인의 양쪽 귀를 접은 페이지(날개 환상통 中)와 세사르 바예호의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 中)라는 시가 맴돌았습니다. 각각 한 대목씩만 소개하면,
[양쪽 귀를 접은 페이지] 부엌에서 너를 때렸을 때 새를 때리는 것 같았어 말하는 엄마 다 맞고 나서 너는 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날개를 폈지 이것아 이 불쌍한 것아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부모나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이 고통은 부모라서 자식이라서 겪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밤이 되기에는 등이 부족하고, 새벽이 되기에는 가슴이 남아돕니다......
『여름의 빌라』는 저도 문장이 좋아서 천천히 읽고 있어요. 주말에는 다른 책을 읽는 사이에 '폭설' '여름의 빌라' '아주 잠깐 동안에'를 읽었네요. 저자가 관심을 두는 주제가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좋아요. 단편집이지만 소설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문장도 좋고 작가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네요. 보통 이런이야기들은 읽고 나면 아주 어둡고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데 백수린 작가님 소설은 그렇지가 않아서 좋아요. 작가님의 새로운 소설이나 에세이들도 읽어 보고 싶어졌어요.
매번 그믐 책걸상 모임을 신청해놓고 따라 읽지를 못해서 뒤늦게 혹은 모임종료 후에 기웃거리게 되네요. 『여름의 빌라』는 수록된 작품들이 다 고루 좋아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사서 두고두고 읽으려고요. 저는 특히 「고요한 사건」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주인공과 저는 성별, 나이대, 사는 곳도 다 다른데도 그 시기의 동네와 분위기와 친구 관계 등을 이해하고 마치 제 경험처럼 느끼면서 읽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어요. 작가님의 뛰어난 문장이 이룬 성취라는 생각도 들고, 사람이 서로 많이 달라 보여도 깊은 곳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다는 생각도 들어요. 「고요한 사건」의 마지막 눈 내리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창밖에는 커다란 눈송이가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눈송이가. 역청빛 어둠을 덧빛한 이웃집의 지붕 위에도, 옥상 위의 장독대와 비탈 아래쪽의 앙상한 나무초리 위에도, 고요하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것은 정말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눈송이였다. 마른눈. 자국눈. 가랑눈. 국어사전에서 내가 발견했던 무수한 단어로도 형용하기가 충분치 않던 눈송이. 그토록 숨막히는 광경을 나는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까치발을 한 채로.
여름의 빌라 「고요한 사건」, 백수린 지음
단편집은 한꺼번에 읽으면 좀 감동이 떨어지는것 같아서(비슷비슷한 맛을 한꺼번에 먹는 느낌이랄까요) 한두편씩 띄엄띄엄 읽고 있어요. <고요한 사건>은 재개발을 둘러싼 시끄러움,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속내가 바쁜 그시기를 다룬 소설이 많았어서 평이하게 읽다가, @동광동 님 말씀처럼 마지막 장면에서 팡~ 터져서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가 생겼어요.
저두요. 그래서 여러 작가님이 참여하신 앤솔로지가 재미있을 때가 있어요. 다들 각자 스타일이나 플롯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서 비교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가끔 한 작가님이 쓰신 단편집은 주주룩 읽고 모든 내용이 다 뒤섞기기도 해요.
눈오는 장면 하니까 생각났는데, 은희경 작가님 단편중에 <아가씨 유정도 하지>라는 소설이 있는데, 여기 눈오는 장면도 일품이에요. 저는 2021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는데, 나중에 장미의 이름은 장미 단편집에 수록되었더라구요. 눈에 띄면 읽어봐주세요~
저도 어제 다 읽었어요. 저는 '아주 잠깐 동안에'와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이 좋던데요? 작가 자신은 불만족스러운 작품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백수린 작가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 읽고 백수린 작가님의 팬이 되었어요. 우연히 인터뷰를 읽었는데 공감되는 부분을 발견하고 여기 공유해봅니다. "'백수린다움'을 좋아하는 여러분은 겉으론 조용하고 소심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 타오르는 불꽃을 가진 분들이시군요." (읽고 속으로) "네 정말 그래요..." ㅎ
[흑설탕 캔디] 그럼에도 이런 겨울 오후에, 각설탕을 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리면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각설탕 탑을 쌓는 일에 아이처럼 열중하는 늙은 남자의 정수리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어른거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는 삶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또다시 차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인생에 무언가를 기대한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저도 적어주신 문장들이 너무 좋았어요. 나이가 아주 많이 들면 정말이지 모든 것에 무심해질까...? 아니기를 바래봅니다. 그 때도 저를 설레게 해 주는 책이 있고 음악이 있고 사람이 있을 거에요. 분명.
드디어 완독. 저는 여름의 빌라, 흑설탕 캔디, 아주 잠깐 동안에. 가 좋았어요. 흑설탕 캔디는 읽는 내내 파리의 공원들, 두분이 듣는 음악, 그리고 흑설탕캔디의 맛에 대한 상상이 어우러져서 오감을 동원한 독서를 했네요. 최근에 모 작가님이 파리 체류중에 파리 풍경을 인스타에 올리고 계셔서 그 장면과 오버랩 되었던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할머니에게 관심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10대 손자들의 행동이 너무...사실적이에요. (할아버지 말도 안전해주고...ㅜㅜ)
손자들 묘사 정말 사실적이에요. 아 몰라... 저도 할머니한테 어렸을 때 그런 식으로 얘기했어요. T.T 어렸을 때는 정말 할머니는 태어나면서 할머니인 줄 알았네요. 백수린 작가님 작품이 약간 현실에 붕 뜬 듯 묘한 느낌을 주다가도 이렇듯 제대로 된 현실 묘사로 정신 번쩍 차리게 만들어 주실 때가 있어요. 저도 @동광동 님처럼 완전 팬 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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