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 근처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러니까 사냥당하지 않고 사냥하기 위해, 인간은 세상을 공유하는 다른 생명체를 해석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동물을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했으며, 또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동물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우리가 동물이라면 어찌했을까?' 동물의 의식에 침투하는 인간의 기술 혹은 능력은 동물을 양육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이 능력은 지금 우리가 동물을 반려동물로 삼는 행위에서도 주된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
그러고 보니 개와 인간은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무리 지어 살고, 사냥을 했고, 구성원들은 (대부분) 서열이 있다.
호두언니
1만2천년 전 상부 요르단 계곡에 살던 나투프족(정착해서 살았던 최초의 종족으로 추정됨)의 무덤 중엔 강아지와 함께 묻힌 유골이 발견됐다. 강아지 뼈는 잡아먹고 버린 모양으로 흩어져 있지 않았다. 덩치가 작아 저승에서 경비견이나 사냥견으로 쓰려는 것도 아니었다. 유골의 주인과 강아지는 내세에서도 서로 쓰다듬고 핥아주며 살라고 함께 묻혔을 것이다.
이로부터 500년 정도 후에 만들어진 키프로스섬의 한 무덤엔 사람과 고양이가 마주보고 누워 있다. 키프로스는 섬이므로 인간이 가축화된 고양이를 데리고 왔을 것이고, 이 무렵의 사람은 고양이 이동장을 만들 정도의 기술이 있었을 것이고, 고양이는 인류의 식량창고를 지켜주었을 것이다.
호두언니
동물은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다. 우리가 동물에게 느끼는 매력의 일부는 동물이 우리와 다르다는 점에서 온다.
“ 동물은 우리에게 자신감과 힘을 선사한다. 우리는 그저 사냥만 하려고 동물과 정신적으로 엮인 게 아니다. 정서적으로 교감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인간은 왜 반려동물을 키우는가? 그것은 인간에게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동물과의 소통은 인간 자신의 위상을 북돋우고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안겨 준다. ”
“ 책을 쓰다 보면 은둔자가 되거나 동굴 같은 집에 칩거하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그리스도교의 성인(이며 동물의 반려인이었던) 예로니모는 서재에서 사자를 키웠다. 사나는 그가 종일 말할 유일한 상대였을 것이다. 나는 바깥세상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일깨우려고 달리기를 한다. ”
작가는 달리기를 하 다가 만나는 갈매기들 중 푸드덕거리며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는 녀석들에 대해 "내가 다가가도 겁먹지 않는 능력을 소유했다"고 하면서 도망갈까 아니면 공격할까 하는 반사작용을 유발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손이 즉각 분비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코르티손은 극한 상황에 마주했을 때 나오는 호르몬인데, 이와 반대인 호르몬은 옥시토신이다. 즉각 날아가버리지 않은 갈매기처럼 느긋한 개체는 어디나 존재한다.
이 느긋한 개체가 우리의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조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확실히 그들의 후손이다.
많은 반려인들이 간택당했다는, 동물이 (나의 무엇인가를 인정해주고) 나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동물의 판단에 무게를 싣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까지 내가 책임지기로 한 나의 동물들은 내가 선택했다. 그러나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나 이웃의 반려견이 내 종아리에 몸을 부빈다든가 엉덩이를 들이밀고 내 발 위에 앉는다거나 거리낌없이 내 얼굴을 핥아주면 난 어깨가 으쓱으쓱하고 콧대가 저절로 높아진다. 나 역시 동물의 판단에 무게를 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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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을 선택하건, 동물이 인간을 선택하건,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은 우리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은 다시 한번, 동물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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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은 언제나 그 주인을 정의한다(그 정의가 옳은가는 별개의 문제다).
『살며 사랑하며 기르며 - 당신을 위한 반려동물 인문학 수업』 3장, 이미지 메이킹, 재키 콜리스 하비 지음, 김미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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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은 동물이 반려인의 이미지를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16세기 페데리코 곤차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들고 믿을만한 남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초상화에 흰 털이 부숭부숭한 귀여운 강아지를 함께 넣었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나쁜 남자일리가 없어, 하는 섣부른 추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특이하고 이국적인 동물을 키움으로서 자신의 재력과 인맥, 취향을 과시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청동기시대부터 서기 1세기까지 요새로 쓰이던 북아일랜드의 에번 바허에서 모로코의 고산 지대에서 살던 원숭이의 뼈가 발견됐다. 멀리서 온 원숭이를 경이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특이한 동물을 기르는 사람도 존재한다.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동물의 생김새를 바꾸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사냥개나 물가에서 사는 개들의 털이 젖는 것을 막기 위해서 털을 깎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유행에 따라 염색하거나 리본을 매달아주는 것은 아무 실용적인 이유도 없다.
개 미용실은 18세기 파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18세기 파리지앵이나 21세기의 나나 개를 미용실에서 목욕시키고 털을 다듬는 이유는 같아서 내심 놀랐다. 파리 시내의 아파트들에 개를 목욕시킬 장소도 마땅치 않고, 털을 방치해두면 벼룩을 옮아오기 쉽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