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말이나 소처럼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동물만 의료 행위를 받을 수 있었다. Veterinary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인 라틴어 Veterinae의 뜻은 '일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19세기 중반 영국에는 이미 동물병원이 있었던 것 같다. 영국인 저자는 150년 전엔 동물병원이란 건 있지도 않았다는 식으로 썼지만.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엔 동물병원이 아니라 '가축병원'이 있었다. 가축이냐 반려동물이냐 선을 긋는 것이 지극히 인위적이란 생각이 들지만,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은 개, 고양이, 적은 수의 닭 정도였을 서울 동네에도 동물은 없고 가축이 있었다.
호두언니
저자는 고양이 퍼스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거금을 내고 치료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썼다.
"녀석이 내게 선사하는 정서적 가치는 수의사의 청구서를 훌쩍 뛰어넘었다. 결국 내가 그 돈을 나 자신에게 쓴 거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그 돈은 내가 퍼스를 데리고 일곱 번의 여름을 더 보내기 위한 비용이었다."
반려동물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호두언니
사람이 동물을 일방적으로 보살피는 것은 아니다. 동물도 인간을 돌본다. 사냥개, 눈이 먼 사람을 인도하는 개 등의 역사는 길다.
오늘날 혈당 수치 변화나 뇌전증 발작을 미리 경고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 돌봐주는 동물도 있지만 분명 인간에 의해 착취당하는 동물도 있다.(의학 실험 등으로) 저자는 인간 위주의 생명 결정권을 우려한다.
호두언니
사랑이 커져갈수록, 동물은 점점 동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동물을 보살필 때 마주하는 가장 큰 고민은 그들과 우리 사이의 어디쯤에 선을 그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제시카는 늙은 오디가 힘든 순간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좋은 순간을 누릴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충분히 있다고 여겼고, 늙은 오디에게 찾아온 온갖 고난과 질병을 함께 견딘다. 그러다가 그녀는 좋은 순간과 힘든 순간 사이의 균형이 깨졌음을 인지하고, 좋은 결말을 맞이할 때가 다가왔음을 인정한다. 그녀는 오디의 목숨을 연장해 봐야 더 좋을 게 없다는 걸 깨닫고 곧장 실행에 옮긴다."
좋은 순간과 힘든 순간 사이의 균형이 깨졌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게 내가 제 때 해내려고 노력한 것이다. 제 때 해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호두언니
“ 모든 죽음은 일종의 질문이고 수련이다. 반려동물이 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연습한다. (중략) 그렇다고 우리가, 아니 그 누가 아버지에게 죽음을 권할 수 있을까. 우리가 '좋은 결말'을 우리 입으로 꺼내지 못하는 건 때가 왔음을 몰라서가 아니다. 내가 아닌 존재의 죽음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다. 모두에게 가혹한 일이다. ”
내가 책임지고 함께 살았던 동물들의 죽음은 내게 많은 질문을 주었다. 수련도 했다. 그렇다고 다시 닥칠 죽음이 덜 아픈 건 아니다. 모든 생명엔 끝이 있다는 걸 약간이라도 받아들이게 되었을 뿐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겪은,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서 결정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는 것을 나의 아버지도 겪었다.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느냐처럼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도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 존재가 얼마나 선택권이 적은 상태로 이 세상에 던져지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살이라는 선택은 죽음의 일부지 전체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즐거움을 최대한 누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은 경험이 쌓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은 연습해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별 수 없이, 후회가 없도록, 친절한 사람이 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되 낭비하지 않고 현재의 육체를 잘 보살피고 하늘과 나무와 꽃을 들여다보고 책과 그림을 가까이하면서 살자고 다짐하게 된다.
제인 칼라일은 반려견 네로를 안락사시킨 다음 '아름답고 애교 넘치는 이 작은 존재는 어떻게 될까? 이 미덕들이 청산 몇 방울에 스러져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그걸 믿을 수 있을까? 우리가 신성과 불멸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 속에서 발견한 이런 자질보다 청산이 더욱 강력하단 말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제인 칼라일은 윌리엄 러셀 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종교적 관점에선 이단에 가까운 이런 내용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러셀 부인은 이렇게 쿨하게 대답했다.
"친애하는 부인, 그런데 굳이 왜 신을 믿으려는 거죠? 누가 그걸 믿겠어요? 전 안 믿어요."
호두언니
독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고 각혼이 있을 뿐이라는 신부님의 강론을 어릴 때 듣고, 종교라는 것이 백퍼센트 믿을만하진 않다고 느꼈다. 게다가 예수님이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지 않은가! 동물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나를 종교에서 멀어지게 한 여러 원인들 중 하나이다. 다만 프란시스코 교황이 모든 피조물에게 천국의 문은 열려 있다고 얘기해서 꽁한 마음이 아주 약간 풀리긴 했지만, 나는 천국이고 내세고 환생이고간에, 지금의 삶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 내 옆의 동물이 중요하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만에하나 천국이 있다면 나의 개들은 모두 거기 있을 것이므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호두언니
“ 예술품은 인간이 바라보는 대상의 모습을 재현할 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든 사람이 어떤 관점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펼쳤는지도 알려 준다. 따라서 예술품은 작품을 만든 이들에 대한 기록으로 볼 수도 있다. (특이한 형태의 자화상이라고 불러도 좋다) 하나의 작품 안에는 제작자의 심미관, 주변 세상에 대한 반응, 그들이 처한 환경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예술품은 세상을 읽는 각자의 방식을 전한다. 그들이 동물을 묘사한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그들의 상상력이고, 그 상상력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다. ”
이 책에서 다룬 내용 중에 선택하고 이름짓고 소통하고 보살피고 이별하는 것까지는 꽤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9장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어서가 아니라 장 제목을 상상하기로 붙였다는 것이 신선하다. 동물과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나 상상하고, 어떻게 해야 동물과 우리에게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나 상상하고.
호두언니
강렬한 색으로 동물을 자주 그렸던 독일 화가 프란츠 마르크의 이야기가 이 책의 마무리로 나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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