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내부에서
나의 끝까지를 다 볼 수 있을 때까지.
저 너머에서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들을.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p.12, 이장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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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쏘주
[일관된 생애]
태어난 뒤에 일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무
엇인지 몰랐는데
눈 코 입의 위치라든가 뒤통수의
방향 같은 것인가
또는 너를 기다리는 표정
정쏘주
[신발을 신는 일]
아직 신발 속에 무엇이 있다.
자꾸 커지는 무엇이.
나와 함께 이동하는
내가 아닌
전 세계를 콕콕
찌르는
겨울매미
[택시에 두고 내렸다]
그 순간 불현듯,
나는 어둠이 매일 온다는 걸 처음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
다른 하늘의 새 떼를 깨달은 사람이.
내가 없는 너의 하루를
가만히 수긍한 사람이.
겨울매미
[필연]
사랑을 합니다, 라고 적고
밤과 수수께끼라고 읽었다.
최후라고 읽었다.
토성에는
토성의 필연이 있다고
칼끝이 우연히 고독해진 것은 아니라고
겨울매미
[깜빡임]
밤이 오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여기서 네가 살고 있구나.
깜빡임도 없이.
내 인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겨울매미
[영숙의 독심술]
오늘의 신비는 나에게도
살아야 할 계절이 있다는 것
솔빛
[아직 눈사람이 아닌]
지금은 소리 없이 쌓여야 하기 때문에
솔빛
[아침들의 연결]
그것이 누가 죽어가는 긴 하루와 흡사하였다
솔빛
[내 인생의 책]
나는 혼자 서가에 꽂혀 있었다
솔빛
[깜박임]
네가 없는 듯하다가 거기
처음부터 있었다고 느끼지
정쏘주
[영숙의 독심술]
행인들 가운데서 손님이 불쑥 태어나는 순간을
영숙은 사랑하였다.
오늘의 신비는 나에게도
살아야 할 계절이 있다는 것
호혁선율
[아침들의 연결]
나는 이제 아침에 일어났다가 오늘
아침에 다시 일어났다.
그것이 누가 죽어가는 긴 하루와 흡사하였다.
...
어느 날 바라보면 문득
뒤집힌 호주머니처럼
[초점]
나는 명료하게 살아갔는데
거울 속의 내가 어딘지 흐릿하였다.
말을 했는데 또
하려던 말과 조금 달랐다.
액수가 맞지 않고
기사마다 오탈자가 있었다.
삼익비치
뭐라 말할 수 없는 모양으로 누워 있는데
누군가 하늘 저편의 검은 공간을 내 이름으로 불렀다.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필연, 이장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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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혁선율
[내 인생의 책]
당신이 뜻한 바가 무한히 늘어나는 것을 지옥이라고 불렀다. 수만 명이 겹쳐 써서 새까만 표지 같은 것을 당신이라고
당신의 표정
당신의 농담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이상한 꿈을 지나서
페이지를 열 때마다 닫히는 것이 있었다. 어떤 문장에서도
꺼내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당신은 토씨 하나
덧붙일 수 없도록 완성되었지만
눈 내리는 밤이란 목차가 없고
제목이 없고
결론은 사라진
정쏘주
당신을 잊자마자 당신을 이해했어.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밤에는 역설, 이장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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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쏘주
당신을 알지 못해서 당신에 대해
그토록 많은 말을 했구나.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밤에는 역설, 이장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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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쏘주
오늘과 내일 3부를 읽겠습니다. 저는 3부가 가장 좋았어요.^^
호혁선율
[밤에는 역설]
당신을 알지 못해서 당신에 대해
그토록 많은 말을 했구나.
어려운 책을 읽기 때문에 점점
단순한 식물이 되어서.
해맑아서
잔인한 아이처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까
새벽마다 또 눈을 뜨네.
내가 조용한 가구를 닮아갈 때
그건 방 안이 아니라 모든 곳,
호혁선율
지금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밤하늘을 내가 바라보자
거기 어딘가의 별들 가운데
깊은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조용한 의자를 닮은
그런 밤하늘이라고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