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30. <눈부신 안부>

D-29
방금 완독했어요 마지막에 선자 이모 편지에서 좀 울어주고요. kh를 찾아 일주일 가량 책을 읽었는데 알고보니 kh는 저였어요. 고현이잖아요^^ 😆
KH!!! 우리 가까이 있었군요. ㅋㅋㅋㅋㅋ
도대체 나는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던 걸까? 내가 한수를 특별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슬픔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면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수가 기약도 없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에 매달리는 일이, 도예가가 꿈이라 실업계 중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선자 이모를 기쁘게 해주려고 인문계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안쓰러워 견딜 수 없었다. 한수는 속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는 아이였고, 그만큼 다른 이의 비밀에도 입이 무거웠는데, 그래서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한수에게만큼은 할 수 있었다.
눈부신 안부 p. 104, 백수린 지음
우재와 해미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해미는 소극적이고 우재가 적극적이라 생각했는데, 한수와 해미의 관계는 또 그 반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해미보다 더 조심스럽고 어른스러운 모습이 한수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슬픔을 공유하는 사이"에서 오는 끈끈함과 나의 상처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이 앞에서만 보일 수 있는 솔직한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엄마, 우린 일본 사람도 중국 사람도 아닌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말을 거는 거야?" 주말이라 장을 보고 돌아오다가 브레첼을 파는 가판대 앞을 지날 때였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그건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이번엔 내가 물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니까."
눈부신 안부 p.106, 백수린 지음
그 일을 했던 오 년간 깨달은 건 사람은 누구나 갑자기 죽는다는 거였어. 멀리서 보면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죽음조차 가까운 이들에겐 언제나 갑작스럽지. 그리고 또하나는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라는 것.
눈부신 안부 p. 225, 백수린 지음
"해미야,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상대를 바라보잖아? 그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하지만 가끔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느낀 모멸감을 되갚아주기 위해 인적이 드문 새벽 일부러 찾아와 똥을 누고 간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 똥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들어. 아무리 인간에게 한계가 있다 해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토록 모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우재는 잘 있을까? 우재에게서는 며칠째 연락이 없었다. 우리는 이대로 멀어지고 마는 걸까? 내 곁을 스쳐간 지난 연인들처럼. 책상 위에서 진즉 시들어버린 수국을 생각하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번져갔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부신 안부 p. 249, 백수린 지음
해미야,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네가 상대를 배려하는 방식이란 걸 알아. 그래서 나는 그걸 존중해주려고 노력해왔고. 하지만 나는 이제 그걸로는 모자란 것 같아. 나는 네가 조금 더 간섭해주면 좋겠고 어리광을 부려주면 좋겠고, 누굴, 왜 찾고 있는지도 말해주면 좋겠다. 나만 너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너도 내 안부를 궁금해하며 제주로 만나러 와줬으면 좋겠고.
눈부신 안부 p. 262, 백수린 지음
"그러니까 내 말은 이렇게 쌀쌀할 땐 코앞에 너희 집이 버젓이 있는 걸 둘 다 알면서 여기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따뜻한 네 집에 가서 이야기하면 얼마나 좋겠냐 이 말이야." 무거워지려는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 싶은 것인지 우재가 재킷을 벗어 내 어깨를 덮어주며 말했다." "너 춥잖아. 나 안 추워." "난 더 안 추워."
눈부신 안부 p.263, 백수린 지음
우재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우재는 계속 '배려'라고 말했지만 우재가 알지 못하는 건 그해 늦봄 우재를 위한 마음으로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럼 그건 무엇이었을까? 어둑해진 천변에서 우재가 덮어준 재킷의 온기를 느끼며 그건 누구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일 뿐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재는 몰랐겠지만, 그후로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린 것은 내가 그날 이후 조금씩 우재의 연락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피했다고? 피한 것이다. 달아난 것이다. 나에게 다가와 마음의 문고리를 잡고 흔드는 우재로부터. 그때 내가 원했던 건 누군가의 삶에 내가 또다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그 무시무시한 가능성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뿐이었으니까.
눈부신 안부 p.263, 백수린 지음
생각해야 해. 내 안의 누군가가 다시 속삭였다. 생각해야만 해.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더 이상 도망치기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앉은 벤치를 스치고 지나갔다. 찰방거리는 물소리 사이로 멀리서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다시 찾기 시작한 이래 나는 내가 왜 이 일에 집착하는지 줄곧 궁금했다. 그렇게 오래전 일을 왜 가만히 덮어둘 수 없는지, 이 과정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재는 기도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비가 그친 거리를 함께 걸을 때면 내 팔을 살짝 당겨 웅덩이를 피하게 해주고 해가 들이치면 이마에 차양을 만들어주던 우재의 손을 보며 나는 이제야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니야, 우재야. 나쁜 건 네가 아니라 나야."
눈부신 안부 p.264, 백수린 지음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사람은 희망을 보지. 그리고 희망이 있는 자리엔 뜻밖의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하잖니. 그래서 나는 유리병에 담아 대서양에 띄우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네게 보낸다.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눈부신 안부 p.304, 백수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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