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독수리의 제국』 혼자 읽기

D-29
위에서 서술한 지리 개황은 간략하지만 한 가지 잘못된 이론을 반박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동아시아가 서구에서 달성할 수 없었던 정치적 통일을 이룬 것이 전적으로 그 지리적 형세에 의지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사실은 중국도 서양과 마찬가지로 지형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어 있다. 화베이평원은 북유럽 평원에 비해 광대하지 않고, 친링과 다바산도 유럽 알프스산맥에 비해 교통이 불편하다. 학자들은 대개 중국 지형을 교통이 불편한 8대 통상구역으로 나눈다. 화베이평원·징웨이분지·쓰촨분지·창장 중류·창장삼각주·동남 해안지대·주장(珠江) 유역·서남 산악지역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동북·내몽골·신장(新疆)·시짱(西藏)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이러한 지리 환경을 이용하여 중국은 통합이 오래되면 왜 반드시 분열하는지를 설명하기는 쉽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1장 민족들의 각축장, 어우양잉즈
주 왕실의 통치는 처음부터 강온 양면책을 함께 쓰며 각 지역의 풍속을 두루 포용하는 것이었다. 주나라에서는 채시관(采詩官)을 두어 민간으로 깊이 들어가 민요를 채집하게 했다. 이 일이 오래 지속되면서 나중에 『시경(詩經)』 안의 「국풍(國風)」이 편집되었다. 이것은 그리스의 서사시와 다르다. 『시경』의 「국풍」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살육 현장의 전사가 아니라 논밭의 농부나 짝을 찾는 여인이었다. 「국풍」에는 백성의 심성과 사회의 면모가 반영되어 있다. 주 왕실의 일반 정책은 “교화를 베풀면서도 그 풍속은 바꾸지 않고, 정치는 하나로 통일하면서도 각지의 타당한 일은 바꾸지 않는(脩其敎, 不易其俗, 齊其政, 不易其宜)” 것이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1장 민족들의 각축장, 어우양잉즈
당시의 철학과 사상은 어렴풋이 정치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이탈한 순수 학술임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또 집권자가 어떤 위대한 지도 사상을 고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눈앞의 임무에 다급해하며 성과를 다퉜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처럼 신중한 것이 결코 이상(理想)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전통 풍속, 선입견, 가용(可用) 개념, 보편적인 포폄(褒貶)이 모두 판단을 좌우하고 선택을 제약했다. 수많은 사회적 묵계는 뜻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만 철학자들은 그것들을 시험하며 말로써 전하려고 했다. 분석하고 분별하여 잠재적 행동 아래 의향을 분명하게 말하면서 자기 행동이 가져올 후과를 직시하고 가치 취향의 이성을 높여서 마침내 정책을 개량할 수 있게 되었다. 정치사에 미치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중대하지만 미묘하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자연물이든 인위적인 조직이든 규모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복잡한 사물의 설계를 무한하게 확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코끼리와 같은 큰 짐승의 몸에서는 곤충과 같은 가늘고 긴 다리를 절대 발견할 수 없다. 곤충의 체형 비례로 볼 때 곤충의 몸집이 너무 크거나 무거우면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리를 코끼리처럼 굵게 하거나 강철로 그 골격을 대신하지 않으면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하든 우리는 그 설계를 바꿔야 한다. 소국은 곤충과 같아서 나라가 커졌는데도 정부 기구를 바꾸지 않으면 그 나라는 붕괴될 수 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이치를 깊이 깨닫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공민의 인구를 적절하게 조정해야 그 도시국가 체제가 효과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규모와 체제에 대한 견해와 유사하게 중국에도 개혁에 종사한 법가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드문 형편이다. 로마인은 규모와 체제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다가 내전의 참담한 교훈을 겪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중국 유가에서 연연하는 선왕들의 세계는 인구가 많지 않았고 가(家)와 국(國)이 분리되지 않았으며, 정치도 종친과 친하고 연장자를 존중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1,100년 후 인구가 천 배, 만 배나 증가했는데도, 유생은 규모의 거대한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루한 대가문식 체제를 견지하고도 방대하고 복잡한 대제국을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정치사상을 옥죄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나라와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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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게 말해서 현대 사회의 이른바 ‘정치(political)’라는 개념은 대부분 제도와 법률을 가리키는데 이는 전적으로 인사와 관련된 권모(權謀, politics)의 개념과는 구별된다. 이를 근거로 엄격하게 정의해보면 유가의 정치는 권력을 다투기는 하지만 현대적 정치 개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것이 로마의 경우와 크게 다른 점이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유가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마치 자식이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로마공화정 공민의 충성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원로원과 로마 백성(SPQR:Senatus Populus que Romanus)’이었다. 고대 중국에는 사회(society)의 개념이 없었다. 춘추시대에 쓰인 ‘공(公)’의 의미는 아직 공후(公侯)의 범위에 한정되어 있었다. 공전(公田)도 공후의 땅이었고, 공사(公事)도 공후의 가문과 관련된 일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로마공화정(res publica)이란 명칭에는 이미 참신한 공적 범주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즉, 그것은 개인생활(res private)과 구별되는 공공이란 범주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로마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들끓는 연병장, 민회, 원로원에서 공민들이 사회적 연대망 속에 참여하여 공공의 복지와 이익을 토론했다. 어떤 개인에게도 속하지 않는 법률과 공공기관이 공공 범주를 대표하여 공공의 대의를 신장하고 공중도덕을 육성하여 가(家)와 다른 국(國)이란 정치 개념을 빚어냈다. 이것은 철인의 심사숙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동주 전기까지도 이런 개념이 없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평민이 관리의 핍박에 항거하는 일을 예로 들어보겠다. ‘길을 가다가 억울한 사람을 만나면 칼을 빼들고 도와준다(路見不平, 拔刀相助)’는 말이 있다. 이 중국 속담에는 대의를 보고 용기를 발휘하는 개인의 열렬한 의협심이 내포되어 있다. 로마의 공민은 이런 마음을 상설 법제로 만들었다. 평민은 학대를 당할 때 구조 요청을 하면 당연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제도가 계속해서 ‘공정함을 구할 권리(provocatio)’로 발전했다. 또 공민이 중형을 받아야 할 경우에도 시민에게 호소하여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요컨대 정부의 독단적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무슨 성군과 현인의 어진 마음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실천으로 쟁취했다. 이 때문에 공민은 왜 이러한 장치가 합리적인지 또 왜 그것이 시민이 응당 보유해야 할 권리로서 모든 사람이 단결해서 옹호할 가치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처럼 공적 원리를 추구하는 권리는 후세의 법률로 누차 강화되면서 로마의 공민이 누린 자유의 주춧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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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공화정은 안정된 정치체제를 갖고 있었지만 명문화된 헌법은 없었다. 이 정치체제에 딸린 것은 정식 절차로 통과된 법률을 제외하고도 성문화되지 않은 규율 및 전통적인 도덕관과 선조들의 규칙 등이었다. 그 주요 구조는 몇 세기를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즉, 행정관·원로원·민회가 시종일관 솥발처럼 정립해 있었다. 폴리비오스와 키케로는 모두 로마는 혼합 정치제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분석한 세 가지 정치제도, 즉 군주제·귀족제·민주제를 결합했다고 인식했다. 이에 대해 한 현대 정치학자는 새로운 진술을 했다. “세계의 각종 정부와 관련된 역사에서 로마는 첫 번째로 ‘견제와 균형’의 정치를 갖춘 나라였다. 현재 세계에서 이러한 제도를 가장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정부는 미국 연방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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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자유 중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공평하게 공개된 보통선거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법률로 인권을 보장하여 공민들이 정부의 탄압을 받지 않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난 형식만 보면 로마공화정은 전체 민중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적 정치체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형식을 들춰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로마의 대권이 원로원과 행정관을 장악한 귀족의 수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근현대 학자들도 대부분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로마의 정치체제는 민주 체제가 아니었다. 그건 전통적으로 공민을 존중한 것에 불과했다. 공민의 권리 배경에는 공민의 무장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것은 민회의 투표와 입법 활동으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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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와 입법 활동을 통해 공민은 정부와 이해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것을 소통 창구로 활용하여 공민은 원망과 분노를 발설했고, 통치자는 공민의 뜻을 청취했다. 정기 선거는 행정 권력을 순조롭게 귀족들 사이에 이동시킬 수 있게 했으며, 공민은 법률 절차에 따라 귀족 간의 경쟁을 중재하여 과도한 충돌을 피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민은 귀족 통치를 안정시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다. 종합해보면 로마공화정은 본질적인 면에서 귀족통치에 바탕을 두고 있었지만 다소 민주적인 색채도 가미되어 있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사·농·공·상 네 종류의 백성은 나라의 주춧돌이다(士農工商四民者, 國之石民也).” 네 종류의 백성, 즉 ‘사민(四民)’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낸 『관자』 「소광(小匡)」편은 대체로 전국시대의 저술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도 군중을 농민·기술공·점주(店主)·날품팔이 네 종류로 분류했다. 이 두 분류를 비교해보면 중국과 서양에서 네 가지 중 세 가지 업종의 차례가 동일하게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날그날 벌어먹고사는 날품팔이는 지구 전체에 두루 분포할 테지만 중국의 사는 독특한 개념이다. 지식이 있는 공민은 그리스에도 부지기수였지만 이들은 중국의 사처럼 정치성이 농후한 권익 계층이 되지는 못했다. 전국시대 사인에는 문사(文士)도 있었고 무사(武士)도 있었으며 사상과 식견도 다재다능했다. 미래의 황조 중국에서 이들은 획일적인 유가 사대부로 변했다. 어떻든 사는 봉건 귀족의 서자이므로, 이미 뱃속에서부터 정치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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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치체제에 속하는가에 상관없이 정부에는 반드시 사무를 처리하는 관리 기구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학에서는 행정제도를 거칠게 두 부류로 분류한다. 가부장형과 관료형이 그것이다. 전자는 관리의 품성에 치중하고, 후자는 관리의 조직화에 치중한다. 이 두 가지는 같은 시기에 병존하면서 동일한 역할을 놓고 다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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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에서는 사회를 두 종류로 구분하는데 그 하나는 ‘노예가 있는 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제 기반 사회’다. 전자는 노예 숫자가 적을 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효과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자는 마르크스의 이른바 노예제 생산양식을 채택한 사회이기 때문에 노예의 숫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또 그들은 생산 업무를 확실하게 담당하며 엘리트층 대부분에게 직접적인 수입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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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가 있는 사회’는 역사적으로 수백 개 나라에 달하고 황조 중국도 그 하나의 사례다. ‘노예 기반 사회’는 세계 역사에서 다섯 차례의 사례만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고대에 두 경우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테네와 그리스 도시국가들(스파르타는 제외), 그리고 로마 치하의 이탈리아, 갈리아, 그리스 도시국가다(제국 전부를 포함하지는 않음). 현대에도 세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즉, 남북전쟁 전의 미국 남부, 카리브해 근처의 에스파냐 식민지, 포르투갈 통치 아래의 브라질이 그것이다. 이들 사회의 노예 숫자는 가장 많을 때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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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례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느낌을 갖게 한다. 아테네와 미국은 자유 민주의 간판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로마공화정도 완전한 민주를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자유를 표방한 나라로 유명하다. “소리 높여 자유를 부르짖은 국민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왜 흑인 노예 이용에 그처럼 열중했을까?” 근대 노예제를 목격한 학자가 이처럼 물었다. 한 사학자는 이 수수께끼가 옛날부터 있었음을 발견했다. “공민의 자유가 가장 고양된 도시국가가 바로 노예제가 가장 만연한 도시국가였다. 아테네가 가장 뚜렷한 사례다.”[Finely 1980, 114.] 세계 역사상 첫 번째 민주정치체제를 가진 나라로 일컫는 곳은 바로 첫 번째로 노예제에 기반을 둔 사회이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체제가 흥기한 시기는 또 정치적 자유 개념이 탄생한 때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은 모두가 우연일까? 이 수수께끼는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바로 왜 전통 중국에서는 정치적 자유라는 개념이 부족했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 원인을 상하관계와 존비관계를 엄수하는 중국 사회의 오랜 관습 탓으로 돌리곤 한다. 이 해석이 일리가 있다는 건 의심할 수 없지만 그 이면에 논리적 허점도 함께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다. 어떤 학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로마 사회는 계급이 매우 엄격했다. 모든 사회생활과 정치생활은 신분에 따라 달라졌다. 자유민과 노예, 공민과 비공민, 원로와 기사, 전통 귀족과 평민 귀족은 그 경계선이 아주 분명했다. 모든 로마인이 자신의 지위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은 강조할 만하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그러나 로마는 자유를 숭상했는데 중국에는 왜 자유 개념이 부족했을까?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로마와 자유의 선구인 아테네에서는 주목할 만한 현상, 즉 그 사회의 경제적 기반인 노예로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까? 개념의 기능은 사물을 변별하는 데 있다. 사물을 잘 구별하지 못할 때는 거의 개념이 탄생하지 않는다. ‘자유민’이란 조사 항목이 만약 오늘날의 인구조사표에 출현한다면, 그건 쓸모 없는 항목일 뿐 아니라 추악한 설문으로 취급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는 명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무엇 때문에 ‘자유민’이란 범주를 넣을 필요가 있겠는가? 서양에서는 자유민이 노예와 대립되는 개념이었지만, 중국에서는 노예가 천민에 속했으며 그것은 양민과 대립되는 개념이었다. 소수의 노예만으로는 사회적으로 깊은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역사사회학의 해석은 이렇다. “노예(고대 그리스)가 생산을 담당하는 주력이 되자 노예와 상반되는 자유 개념이 비로소 탄생했다. 사람들은 마침내 새로운 명사를 발명하여 새로운 개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유(freedom)’란 단어는 바빌로니아어나 중국어로 직역할 방법이 없다.” 바빌로니아와 중국은 노예제에 기반을 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 출현한 다섯 노예제 사회에서 로마의 규모가 가장 컸다. 로마법에는 노예를 언급한 부분이 대단히 많다.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재산은 사회 경제적으로 필수불가결의 도구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적극적인 생각을 가능케 하여 ‘비노예’로서의 의의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게 했다. 어떤 고전학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자유에 대한 생각 및 그것에 대한 평가는 모두 노예경제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로마에서는 그리스에서처럼 자유가 주로 노예와 상대되는 법적 지위를 가리켰다.” “노예가 경작을 담당함으로써 자유민 소농은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적 권리를 누릴 여유를 갖게 되었다. 또 귀족계급은 사치스럽게 생활하며 권력으로 공공사업을 통제할 자원을 갖게 되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만약 동서양 역사를 거대한 연극 두 편이라고 상상한다면, 전통 역사책에 남아 있는 두 각본은 대륙의 양 끝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며 서로의 몸을 비춰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강렬한 수은등 하나가 시종일관 로마라는 독보적인 주인공의 몸을 비추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로마와 교류할 때만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동양에서는 막이 오르자마자 조명등 여러 개가 중원으로 대표되는 전체 무대를 비추고 있다. 그 무대 위에는 동주시대 여러 나라가 형제나 친척처럼 점점 성장하며 분쟁하다가 마침내 서로 살육하는 지경으로까지 내달았다. 진(秦)나라는 서쪽 한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최후 1막에 이르러서 수은등 하나를 홀로 차지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양장본 HardCover)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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