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독수리의 제국』 혼자 읽기

D-29
투표와 입법 활동을 통해 공민은 정부와 이해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것을 소통 창구로 활용하여 공민은 원망과 분노를 발설했고, 통치자는 공민의 뜻을 청취했다. 정기 선거는 행정 권력을 순조롭게 귀족들 사이에 이동시킬 수 있게 했으며, 공민은 법률 절차에 따라 귀족 간의 경쟁을 중재하여 과도한 충돌을 피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민은 귀족 통치를 안정시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다. 종합해보면 로마공화정은 본질적인 면에서 귀족통치에 바탕을 두고 있었지만 다소 민주적인 색채도 가미되어 있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사·농·공·상 네 종류의 백성은 나라의 주춧돌이다(士農工商四民者, 國之石民也).” 네 종류의 백성, 즉 ‘사민(四民)’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낸 『관자』 「소광(小匡)」편은 대체로 전국시대의 저술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도 군중을 농민·기술공·점주(店主)·날품팔이 네 종류로 분류했다. 이 두 분류를 비교해보면 중국과 서양에서 네 가지 중 세 가지 업종의 차례가 동일하게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날그날 벌어먹고사는 날품팔이는 지구 전체에 두루 분포할 테지만 중국의 사는 독특한 개념이다. 지식이 있는 공민은 그리스에도 부지기수였지만 이들은 중국의 사처럼 정치성이 농후한 권익 계층이 되지는 못했다. 전국시대 사인에는 문사(文士)도 있었고 무사(武士)도 있었으며 사상과 식견도 다재다능했다. 미래의 황조 중국에서 이들은 획일적인 유가 사대부로 변했다. 어떻든 사는 봉건 귀족의 서자이므로, 이미 뱃속에서부터 정치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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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치체제에 속하는가에 상관없이 정부에는 반드시 사무를 처리하는 관리 기구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학에서는 행정제도를 거칠게 두 부류로 분류한다. 가부장형과 관료형이 그것이다. 전자는 관리의 품성에 치중하고, 후자는 관리의 조직화에 치중한다. 이 두 가지는 같은 시기에 병존하면서 동일한 역할을 놓고 다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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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에서는 사회를 두 종류로 구분하는데 그 하나는 ‘노예가 있는 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제 기반 사회’다. 전자는 노예 숫자가 적을 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효과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자는 마르크스의 이른바 노예제 생산양식을 채택한 사회이기 때문에 노예의 숫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또 그들은 생산 업무를 확실하게 담당하며 엘리트층 대부분에게 직접적인 수입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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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가 있는 사회’는 역사적으로 수백 개 나라에 달하고 황조 중국도 그 하나의 사례다. ‘노예 기반 사회’는 세계 역사에서 다섯 차례의 사례만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고대에 두 경우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테네와 그리스 도시국가들(스파르타는 제외), 그리고 로마 치하의 이탈리아, 갈리아, 그리스 도시국가다(제국 전부를 포함하지는 않음). 현대에도 세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즉, 남북전쟁 전의 미국 남부, 카리브해 근처의 에스파냐 식민지, 포르투갈 통치 아래의 브라질이 그것이다. 이들 사회의 노예 숫자는 가장 많을 때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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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례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느낌을 갖게 한다. 아테네와 미국은 자유 민주의 간판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로마공화정도 완전한 민주를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자유를 표방한 나라로 유명하다. “소리 높여 자유를 부르짖은 국민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왜 흑인 노예 이용에 그처럼 열중했을까?” 근대 노예제를 목격한 학자가 이처럼 물었다. 한 사학자는 이 수수께끼가 옛날부터 있었음을 발견했다. “공민의 자유가 가장 고양된 도시국가가 바로 노예제가 가장 만연한 도시국가였다. 아테네가 가장 뚜렷한 사례다.”[Finely 1980, 114.] 세계 역사상 첫 번째 민주정치체제를 가진 나라로 일컫는 곳은 바로 첫 번째로 노예제에 기반을 둔 사회이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체제가 흥기한 시기는 또 정치적 자유 개념이 탄생한 때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은 모두가 우연일까? 이 수수께끼는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바로 왜 전통 중국에서는 정치적 자유라는 개념이 부족했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 원인을 상하관계와 존비관계를 엄수하는 중국 사회의 오랜 관습 탓으로 돌리곤 한다. 이 해석이 일리가 있다는 건 의심할 수 없지만 그 이면에 논리적 허점도 함께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다. 어떤 학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로마 사회는 계급이 매우 엄격했다. 모든 사회생활과 정치생활은 신분에 따라 달라졌다. 자유민과 노예, 공민과 비공민, 원로와 기사, 전통 귀족과 평민 귀족은 그 경계선이 아주 분명했다. 모든 로마인이 자신의 지위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은 강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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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로마는 자유를 숭상했는데 중국에는 왜 자유 개념이 부족했을까?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로마와 자유의 선구인 아테네에서는 주목할 만한 현상, 즉 그 사회의 경제적 기반인 노예로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까? 개념의 기능은 사물을 변별하는 데 있다. 사물을 잘 구별하지 못할 때는 거의 개념이 탄생하지 않는다. ‘자유민’이란 조사 항목이 만약 오늘날의 인구조사표에 출현한다면, 그건 쓸모 없는 항목일 뿐 아니라 추악한 설문으로 취급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는 명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무엇 때문에 ‘자유민’이란 범주를 넣을 필요가 있겠는가? 서양에서는 자유민이 노예와 대립되는 개념이었지만, 중국에서는 노예가 천민에 속했으며 그것은 양민과 대립되는 개념이었다. 소수의 노예만으로는 사회적으로 깊은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역사사회학의 해석은 이렇다. “노예(고대 그리스)가 생산을 담당하는 주력이 되자 노예와 상반되는 자유 개념이 비로소 탄생했다. 사람들은 마침내 새로운 명사를 발명하여 새로운 개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유(freedom)’란 단어는 바빌로니아어나 중국어로 직역할 방법이 없다.” 바빌로니아와 중국은 노예제에 기반을 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 출현한 다섯 노예제 사회에서 로마의 규모가 가장 컸다. 로마법에는 노예를 언급한 부분이 대단히 많다.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재산은 사회 경제적으로 필수불가결의 도구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적극적인 생각을 가능케 하여 ‘비노예’로서의 의의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게 했다. 어떤 고전학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자유에 대한 생각 및 그것에 대한 평가는 모두 노예경제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로마에서는 그리스에서처럼 자유가 주로 노예와 상대되는 법적 지위를 가리켰다.” “노예가 경작을 담당함으로써 자유민 소농은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적 권리를 누릴 여유를 갖게 되었다. 또 귀족계급은 사치스럽게 생활하며 권력으로 공공사업을 통제할 자원을 갖게 되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만약 동서양 역사를 거대한 연극 두 편이라고 상상한다면, 전통 역사책에 남아 있는 두 각본은 대륙의 양 끝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며 서로의 몸을 비춰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강렬한 수은등 하나가 시종일관 로마라는 독보적인 주인공의 몸을 비추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로마와 교류할 때만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동양에서는 막이 오르자마자 조명등 여러 개가 중원으로 대표되는 전체 무대를 비추고 있다. 그 무대 위에는 동주시대 여러 나라가 형제나 친척처럼 점점 성장하며 분쟁하다가 마침내 서로 살육하는 지경으로까지 내달았다. 진(秦)나라는 서쪽 한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최후 1막에 이르러서 수은등 하나를 홀로 차지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이런 줄거리의 차이는 역사가의 수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로 기본적인 역사 사실이 상이한 데서 온 것이다. 어떤 학자는 미국의 세력 확장 경험을 로마 역사에 비유했다. 지중해 동부 열강이 머나먼 이탈리아에 아무 흥미도 갖지 않는 틈을 로마가 파고들어 강국으로 변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 열강도 아메리카대륙의 신흥 국가를 방해할 틈이 없어서 미국도 쉽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이 두 나라는 연맹을 만들어 적에게 대항한 전통이 부족하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로마는 어떤 적수에 대해서도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로마는 주체적으로 과녁을 선택하여 외국을 하나하나 요리하면서, 단독행동과 단독명령으로 외국을 대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또 어떤 학자는 전국시대의 형세를 현대 유럽 초기의 세력 균형에 비유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관계가 밀접하고 실력이 비슷한 5~7개 국가는 군사와 외교 부문에 통달하여 설령 최강국이라 해도 몇 나라의 연합 전선에 대적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전국칠웅은 다방면으로 담판을 하며 합종연횡(合縱連衡)을 실시했다. 단독 혹은 다자간 외교 교섭이 제국이나 황조 시대에 이르러서도 쇠퇴하지 않았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후미진 강가에 숨어 있었던 진나라나 긴 반도에 자리 잡은 로마는 문화나 경제가 모두 동쪽 이웃보다 상당히 뒤떨어져 있었다. 두 나라는 본래 고급 학문에 별 흥미가 없었고 공예 기술 부문에서도 장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진나라의 쇠뇌와 철검은 비교적 낙후되어 있었고, 로마의 무기도 늘 적국보다 수준이 떨어졌다. 그러나 국가조직에서는 독창적인 면모를 보이며 효율적인 정치 기관을 발전시켜 인력과 물자 동원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게 했다. 진나라 사람은 로마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활이 소박했고, 생각은 착실했다. 이들은 전사의 기풍으로 농민을 강인하게 단합시켰다. 칠국 중에서 진나라가 병농일치(兵農一致)를 제창했다. 로마인은 카르타고가 실패한 까닭이 상업을 군대 위에 올려놓은 탓이라고 인식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진과 로마는 모두 자신의 동쪽 이웃을 정복했지만 그 문화에는 복종했다. 진나라의 고위 경상(卿相)은 대부분 동쪽 여러 나라 출신이었다. 로마 관할의 그리스인은 라틴어를 배우는 사람이 드물었고, 오히려 로마인이 그리스 문학을 따라 배웠다. 그것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 전 65~전 8)가 말한 바와 같다. “죄수인 그리스가 그 주인을 정복하여 야만적인 라틴인을 문명으로 진입하게 했다.” 진과 로마의 굴기는 가장 오래된 나라이면서 증거도 가장 많은 역사 모델에 부합한다. 본래 문명의 변방에 위치한 세력이 떨쳐 일어나 획기적인 전쟁으로 세상의 형세를 바꿨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로마제국 대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 전 70~전 19)의 말에 따르면 로마는 도처에서 정벌에 나서 4대 사명, 즉 “약자를 도와주고, 강자를 제거하고, 천하를 잘 다스리고, 법률로 평화를 돕는 일”을 실행했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자기 선전은 진시황에 비해 훨씬 성공적이었고 아울러 후세의 나라들도 이를 모방했다. 19세기 중엽 구미 제국주의가 위세를 떨칠 때 고급 지식인들은 자위적 제국주의 이론을 발명하여 침략이란 용어를 벗어던지려고 했다. “로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따르며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바라다가 뜻하지 않게 시대의 희생품이 되었다.” 이러한 논리가 100년 이상 학계를 주도했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잦아들었다. 새로운 세대 학자들은 로마의 강고한 군국주의 전통을 폭로하면서, 그 제국주의 지향이 자위에 있지 않고 약탈에 있다고 질책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막측이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제국주의 경향이 다시 강화되고, 자위적 제국주의 이론이 부활하는 조짐을 보여줬다. 역사 평론가들이 폭로하는 건 평론 대상에 그치지 않고 평론가 본인의 성질까지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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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적 제국주의 이론의 증거로 흔히 거론하는 것 중 하나는 로마가 다른 나라를 정복한 후 왕왕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나라의 영토를 병탄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중국의 전국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진나라는 기원전 352년 처음 위나라 안읍을 함락시킨 후 66년 지나서야 병탄했다. 또 진나라는 촉 땅을 탈취한 후 31년이 지나서야 촉후(蜀侯)를 폐위하고 군(郡)을 설치했다. 인내한 기간으로 말하자면 로마가 마케도니아를 다룬 시각보다 더욱 길었다. 진나라가 이렇게 한 이유는 주로 군정(軍政) 때문이었지 도덕 때문이 아니었다. 로마도 마찬가지다. 양자는 모두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아울러 적의 군대를 궤멸시키는 것이 확장의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권을 공고하게 하려는 긴 노정에는 거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더욱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패전국 점령은 봉기자가 잠복하여 복수를 엿보는 등 갖가지 모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점령군이 부족하면 반격하는 적군의 공격 목표가 되거나 심지어 무기고 탈취의 대상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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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강대한 주둔군은 또 지휘 장수의 할거 야심을 쉽게 유발할 수 있다. 국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곳을 지키려면 그 인력과 자원이 모자라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병력을 분산하여 모든 곳을 지키다가 적의 의병에게 주도권을 내주기보다, 물러나서 자국의 강력한 기동부대를 보호한 후 자신은 잠시 적국을 통제만 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편이 더 낫다. 이렇게 하면 수시로 점령지로 가서 강력한 징벌을 이용하여 적의 불측한 마음을 제압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온전한 기동부대는 새로운 지역을 정벌하러 갈 수도 있다. 로마가 승리 후에 군사를 물리며 점령지까지 돌려준 것은 결코 정의감이나 인자함의 소산이 아니라 스스로 경직된 수세를 버리고 기민한 공세를 이어가기 위한 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시기를 선택하여 패전국으로 다시 와서 공세를 강화하곤 했다. 카르타고에 대한 로마의 정책이 바로 이런 전략의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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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상황에서 벌이는 전쟁은 정의로운 것이라고 했다. “첫째, 우리가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걸 방비하는 전쟁이다. 둘째, 우리가 패주(hēgemōn)로서 영도적 지위를 갖기 위한 전쟁이다. 영도는 신민의 이익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지, 그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셋째, 우리가 태생적 노예들의 주인으로 살게 하는 전쟁이다.” 키케로는 로마의 정벌이 생존을 위하고, 맹우를 보호하고, 제국을 건립하기 위한 것인데 이 세 가지는 모두 정의에 부합하고, 카르타고와 누만티아를 멸망시킨 것도 틀림없이 정의에 속하지만, 코린토스를 멸망시킨 건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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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적 제국주의 이론에서는 로마의 해외 출병이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실재하는 위협이 없을 때도 로마인은 자신이 위험하다고 상상했다. 그 부분적인 원인은 그들이 동방의 정사(政事)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상세하고 착실한 연구에 의해 뒤집어졌다.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그리스 세계는 그 내부에 온갖 어려움이 중첩해 있어서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야만의 나라 이탈리아에 관심이나 흥미를 가질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로마인도 그렇게 무지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속셈을 품고 있었을 뿐이다. 다수의 로마 귀족은 그리스 문화를 배웠기에 동방의 상황에 대해 상당히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지식은 늘 군사 정책 결정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귀족은 영예를 갈망해서 위협적인 수단으로 사령관의 직책을 쟁취했고, 정객은 일부러 과장된 말로 백성을 선동하여 전장으로 내몰았다. 양심에 입각하여 사실을 보지 않고 해마다 아득히 먼 나라로 군사를 보내 공격을 일삼았는데 어찌 여기에 자위의 의미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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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적 전쟁은 결코 전투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것과 같지 않다. 전자는 주관적이고, 후자는 객관적이다. 만약 상대가 적극적으로 전쟁 준비를 하며 수시로 진공해올 증거가 확실하다면 기선 제압은 선견지명이 있는 자위적 전투라 할 수 있다. 방어적 전쟁은 목전에 위협도 없고 객관적인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주관적인 추측에 의지하며 장래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헛소리를 하며 군사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그러하다. 국제법이나 의전(義戰) 이론을 막론하고 방어적 전쟁은 기실 침략 전쟁과 다르지 않다고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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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역사를 연구하는 뛰어난 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주의할 만한 것은 제국의 강권에 대해서 아테네나 로마 내부에서 항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테네에서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로마에서는 희미한 한 가닥 호소만이 있었을 뿐이다.” 로마인은 위엄을 떨치려는 어떤 국가도 전쟁에 종사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전쟁은 고귀한 행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마가 끊임없이 해외 정벌에 나설 때의 문헌에도 평화를 갈망하는 생각이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전국시대의 유가·도가·묵가는 이구동성으로 그들이 제지할 수 없는 전쟁을 질책했다. 로마인은 개선 행진을 벌이며 즐거워했지만 중국의 노자는 “전승한 이후에는 상례(喪禮)로 대처하자(戰勝以喪禮處之)”고 제안했다. 이것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의 호소에 그치지 않는다. 극력 강병을 기르자고 한 법가와 병법서를 쓴 장군들은 모두 전쟁은 정치에 미치지 못하고, 가장 좋은 건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진나라 도성 함양 성문 위에서 공표한 『여씨춘추』에도 이에 관한 분명한 언급이 있다. “무릇 병기는 천하의 흉기다. 용기는 천하의 악덕이다. 흉기를 들어 악덕을 행하는 건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일이다(凡兵, 天下之凶器也. 勇, 天下之凶德也. 擧凶器, 行凶德, 猶不得已也).” 서구 학자들은 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이런 특징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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