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분명 '아스타틴'을 다 읽었는데도 @Jonas 님이 올려주신 문장들이 또 새롭게 읽힙니다. 순간 '아 이런 문장도 있었지'싶어요. 역시 사람마다 자신이 인상 깊게 생각하는 문장들이 다 다른가 봐요. 에오스라는 인물 자체에 호기심이 생겼는데도, 이 문장들은 놓치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요.
타인과의 관계, 의지는 닮은 꼴로 복구할 수 없다는 문장도 이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문장 같네요. 결국에는 한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 같은.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함께 읽어요
D-29

연해

Jonas
굳이 비교하자면, 예전에는 '의지'보단 '타인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겼어요. 워낙 어릴때부터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에 익숙해선지 내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타인과의 관계'의 중요성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의 나'를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저는 결혼&연애 기간까지하면 14년차라 가끔은 나보다 과거의 나를 더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방인거 같단 생각도 들거든요.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느끼지만, 과거의 나에 대해선 의외로 스스로는 잘 기억 못하고 있더라고요. 어린 시절의 제모습은 부모님이 가장 잘 아시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란 사람을 가장 잘 알고 기억하는 건 옆에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어서 스스로가 상대의 아카이브가 되어 가는 느낌이에요.
아마도 이런 이유로 초기의 아스타틴도 지구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오고 부활까지 시키면서 자신의 존재를 계속 기억되게 만들었겠다 싶어 한편으로 (아주 살짝은) 이해되기도 했고요.

연해
"나라는 존재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의 나"라는 문장과 "스스로가 상대의 아카이브가 되어 가는 느낌이에요"라는 @Jonas 님의 문장에 한동안 머물러 있었어요. 저는 반대로 '의지'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지금도 어떤 면에서는 그걸 온전히 놓지 못하고 있고요. 낯선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제 인생의 주요 키워드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제가 바라는 어떤 형태의 관계(결혼은 아니고요)가 있는데, 아직 그걸 이뤄내지(?)는 못한 것 같고, 그것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면서도 이게 무슨 궤변인가 싶네요(푸핫).
오, 저도 @Jonas 님 말씀에 소설을 다시 찾아봤는데, 정말 그러네요! 테라포밍 장비를 왜 가지고 간 거지? 결국 그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다시 이 삶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비록 에오스는 이 세상에 없지만요. 아니면 또 다른 빅피처? 후속편? 뭐가 됐든 열린 결말 같기는 합니다:)

Jonas
“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로마에서는 아오로라라고 불렀다. 오로라의 어원이다. 그녀는 사랑을 할 때마다 끝이 불행해지고야 마는 저주를 받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여인에게 화가 치밀 대로 치민 아스타틴이 잔인한 장난을 친 것 아닐까? 아스타틴은 자신의 실패작이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 생각이 거대한 형상으로 우주에 펼쳐지도록 했다. 멀리서도 누군가 그걸 감상할 수 있도록. 비록 아스타틴 본인은 에오스를 기억하지도 못하게 됐지만 말이다.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아스타틴> p. 296~297 , 장강명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