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질문에 고민이 깊었는데요. 사실 저는 철학과 생명과학(더 정확히는 과학전체)쪽 지식이 많이 부족한 편이라서요. 좋아하는 장르도 문학이 월등히 많고,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갖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했어요(이를테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자멸하는 이반이라던가,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라던가). 그래서 주말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왕이면 비문학 쪽으로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정체성과 닿아있는 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선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른 책은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이었어요. 2022년의 장강명과 2023년의 장강명의 세포나 기억을 놓고 비교해 주셨는데, 그 부분과는 맥이 좀 다른 책일 수도 있는데요. 어떤 의미에서는 한 인간이 저물어가는(?) 과정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담아낸 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책에서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매달리기보다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있는데, 저는 그걸 한 인간의 정체성이라고도 봤어요. 나는 원래 이렇게 멋지고 잘난 사람이었지만, 노화를 피할 수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현실을 직면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어라는)
이 책을 읽을 당시에 인상 깊게 읽었던 문장이 하나 있는데,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라는 어떤 할머니의 고백이었어요. 이 문장을 보면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과 노화라는 것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나씩 잃어가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했거든요. 어떤 누군가는 돌봐야 하는 생명이 생긴다는 것(이를테면 동식물일 수 있겠죠) 자체만으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글 수 있는 문과 자신만의 부엌이 주어진다는 것만으로 삶의 자율성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한 인간을 규정하는 것에는 정말 다양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조건적인 것을 다 떠나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세월, 즉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게 정체성을 찾아가는 또 다른 형태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요.
두 번째로는 아직 읽지 않은(더 정확히는 도입부에서 살짝 포기한, 하지만 다시 읽을 예정인) 책인데요.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입니다.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해서 내용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주변에서 여러 번 추천받았던 터라 제 머릿속 저편에 계속 남아있는 책이에요. 전해 듣기로는 한 인간이 태어났을 때 이 사회로부터 왜 인간으로 대접받는가, 만약 대접받지 못한다면 왜 대접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보수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어떠한 환경적 요인(조건들)으로 인해 태어나면서부터 환대 받지 못한,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는 그 사회구조 자체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지향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책 중 한 권은 마이클 센델의 <완벽에 대한 반론>입니다. 이 책은 사실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는데, 책 소개가 흥미로웠어요.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앞으로가 기대되는 생명공학의 발전을 단순히 긍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 작가 특유의 그...).
이렇게 세 권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봅니다. 사실 이 세 권 중에 그나마(?) 작가님이 말씀하신 방향과 비슷한 책은 마지막에 말씀드린 책이 아닐까 싶고, 앞의 두 권은 유전학보다는 오히려 사회 구성원으로의 정체성에 더 가깝긴 하겠지만, 그래도 뭐 의견은 다양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의견이 산으로 갈지라도...?(허허허)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학과 공중 보건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났다고 하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 인간의 어떤 시도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죽음이 모든 것을 이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의 문제의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죽어갈 때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무엇이 있을까? 그 자신이 의사이기도 한 가완디는 우선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한다. 관절염, 심장질환 같은

사람, 장소, 환대현대의 지성 시리즈.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완벽에 대한 반 론 - 생명공학 시대, 인간의 욕망과 생명윤리<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밝은 전망과 어두운 우려를 동시에 안겨준다고 말한다. 생명윤리를 둘러싼 다양한 도덕적 난제들을 제시하면서 인간 생명 근원을 재설계하는 것이 옳은지에 관한 도덕적 판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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