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믐에서 함께 읽기

D-29
그는 또 어쩐지 미심쩍어 보이는 사람과도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외딴 곳에 살고 있는 조슈아 앨런우드라는 가난한 농부였는데, 그는 그 지역에 있는 거의 모든 식물의 학명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췄다는 이유로 그 노인은 이웃들에게 "꿈도 야망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9%, 룰루 밀러
위대한 인물들은 시대를 잘못타고날 때도 많지요. 거의 모든 식물의 학명을 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며,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지혜였을텐데도 그런 취급을 받았었군요.
조슈아는 어찌보면 시대와 지역을 잘못 타고난 비운의 인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박하던 부모와 같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평생토록 폄하했겠지요. 현대에 태어나 살았더라면 그의 재능은 지역신문에 나 자랑거리가 되거나 적어도 구박받을 거리가 아니었을 겁니다. 어쩌면 데이비드도 조슈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을 수도 있었겠죠. 태어나 자란 곳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기회와 운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그는 페니키아섬이라는 기회를 잡아 조슈아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나는 그날 밤 간이침대에 누운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머리 위 나무 서까래들을 응시하며 자신의 세계가 재배열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데이비드를 상상했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을 너무나도 시답잖게 여겼던 어머니와 이웃들, 학우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말을 마침내 여기서 발견한 것이다. 데이비드가 손에 꽃을 들고 해왔던 일들은 "무의미"하거나 "소모적"이거나 "야심 없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 저명한 아가시가 정의한바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 활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의 계획, 생명의 의미, 어쩌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길까지 해독해내는 작업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5%, 룰루 밀러
이부분에선 인간의 오만(더 정확히는 데이비드의 오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신의 계획을 알아내려고 한다든지, 분류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잡으려고 했던 것까지요.
페니키아 섬 부분이 제게는 책을 읽기 힘들게 하는 장벽 중 하나였습니다. 끝도없이 펼쳐지는 묘사와 왜 이토록 나열해서 설명하는지 모르겠는 무언가들. 그렇지만 데이비드가 그 수업시간을 아주 좋아했고 아가시에게 흠뻑 빠져든 시간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이해받지 못하던 유년시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공간을 만났던 겁니다. 저 혼자 갑자기 한 페이지를 차지해버렸네요. 갑작스럽지만 혼자 말하면 외로우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많이 채우셔도 됩니다! 저는 페니키아 섬 이야기조차도 재밌게 읽었었는데요. 데이비드가 스승과는 다른 이론을 받아들이고(진화론), 여러 개인적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강박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본격적으로 수집에 임하는 시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작가인 룰루 밀러가 이 책을 쓸 정도로 그를 흠모했던 부분들을 드러내주기도 했구요. 하지만 대체로 이 앞부분이 많이 지루하다고들 하시더군요^^;
너무 재밌게 읽다가.. 중간에 잠시 쉬었다 본다는 게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ㅎㅎ 덕분에 다시 이어서 읽게 됐습니다. 다른 분들과 같이 읽는다고 생각하니 살짝 흥분되네요.
재밌게 읽고 계신분이 또 계셨군요! 한 인간의 흔적을 따라 읽는다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것이지요.
나는 온순하고 음울하며,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창백한 이 남자가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은채 미끄러지듯이 슬그머니 지나다니다가, 어느새 어떤 목적의 빛으로, 공기로, 빛나는 물질로, 뭐가 되었든 아무튼 그 목적으로 서서히 차오르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76, 룰루 밀러
요즘 이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라는 문장이 많이 와닿아 머리에 맴돌고 있습니다. 내가 살면서 힘들때 떠올릴 수 있는 문장이라 그런 것 같아요.
이런 좋은 문장이 있었군요. 저는 캐치하지 못했던 부분. 데이비드를 아주 잘 표현한 문장 같습니다. 데이비드의 분류학에 대한 광적인 몰입은 그의 인생을 바꾸기에 충분했지요.
그 분야를 지칭하는 '사이어소피'(사이비지식)라는 명칭까지 만들어냈다. 과학과 철학의 유감스러운 결합이라는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88, 룰루 밀러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미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이지요. 데이비드를 후원하는 제인 스탠퍼드는 역으로 이런 것을 싫어하는 데이비드를 비난하고요. 한 때 우리나라의 사이비 종교에도 지식인이나 부유층들이 꽤 있어서 저런 사람들이 저런 것에 왜 빠질까 싶었는데, 여기서도 대학을 세우고 지원하는 제인 스탠퍼드 부인이 그런 미신을 절실히 믿는다는 것에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금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57, 룰루 밀러
아버지는 인생의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너를 지켜주지도, 내세도, 운명도, 세계의 계획도 없다면서 말이죠. 모든 것은 자신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저도 십수년을 과학 강사로 근무 했는데요. "인생의 의미는 없어!"라는 발언에 함축된 많은 것들을 저 나름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과학을 계속해서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죠. 하지만 저 문장은 너무 이상적인 문장입니다. 저 한 문장의 "외피"에만 집중을 하게 되면 주인공과 같이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인공은 일곱 살의 어린 나이였으니까요. "본질"적으로 보면 아버지도 결국 저 문장을 믿고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단 하나의 거짓말을 허용한 이유도 본인이 내뱉은 저 문장이 이 큰 세상에서 본인 한 사람이 믿기로 한 하나의 가치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일겁니다.
데이비드는 살면서 언제부턴가 "낙천성의 방패"를 갖추게 된 것 같다는 말로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키가 낙천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도 추측했다. (...) "나는 이미 지나간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근심하지 않는다"라고 데이비드는 설명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80, 룰루 밀러
최근 읽었던 김주환 교수님의 책 회복탄력성이 생각나는 부분이었습니다. 데이비드는 높은 자존감을 기반으로 강한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큰 키가 그 자존감을 부여해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복탄력성(15만부 기념 리커버)15만부 기념 리커버판 『회복탄력성』.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일컫는 말로, 심리학에서는 주로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김주환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2011년,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언론, 교육계, 심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저자가 제시한 회복탄력성이라는 이 개념은 원래 있었던 단어처럼 많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이 책은 회복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더 자세하게 나오더군요. 낙천성 > 자기기만 > 그릿에 이어지는 설명 이후 데이비드는 가장 마지막인 그릿에 해당된다는 것 또한 설명하지요. 과거 핫했던 책 '그릿'과 같은 용어가 맞는 듯 합니다. 긍정적 피드백이 없는데도 장기적 목표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는 힘... 자연재해로 자신이 수집한 것들이 망가져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시작해내는 힘... 이것이 데이비드가 가진 힘(광기)이 아닐까요.
그릿(Grit)나온 부모, 천재적인 재능 등 성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그저 그런 성취에 머물고 마는 까닭은 무엇일까?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선구적인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인 『그릿(Grit)』에서 성공의 비결은 재능이 아니라 그녀가 ‘그릿’이라고 부르는 열정과 끈기의 조합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릿’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끝까지 해내는 힘이자, 어려움, 역경, 슬럼프가 있더라도 그 목표를
목에, 꼬리에, 눈알에 꿰메 붙인 이름들. 이 작은 혁신은 도전적인 소망을 담고 있었다. 이제 그의 작업은 혼돈의 맹공 앞에서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라는, 다음번 혼돈의 공격 때는 그의 질서가 흔들림 없이 우뚝 서 있을 거라는 도전적인 소망. (...)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18, 룰루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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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9.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2024.01.17. <참 괜찮은 눈이 온다 _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2024.01.16. <이 별이 마음에 들어> 김하율2024.01.14. <각자 도사 사회> 송병기2026.01.01. <아무튼, 데모> 정보라2026.01.02. <버드 캐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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