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믐에서 함께 읽기

D-29
데이비드의 분류학 몰입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 정리체계가 있나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저같은 경우는 책을 도서관처럼 분류하는 습관이 있어요(다른 물건은 이렇게 타이트하게 정리하지 않습니다!). 크게 분야를 구분하고, 그 분야 내에서 국가를 구분하고, 그 뒤엔 저자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요. 소설/인문/과학/예술 등으로 분류한 뒤 각각의 분류 내에서 한국,일본,영어권, 기타로 분류를 하고 마지막으로 작가이름 가나다순으로 하는거지요. 도서관의 체계를 따라한거지만 책을 정리하고 찾을 때 이게 가장 편리하더라구요!
우리가 만물에 붙인 이름들은 잘못된 것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노예"는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유를 누릴 가치도 없는 존재였던가? "마녀"는 화형을 당하는 게 마땅한 존재들이었나? (...) 고요한 오싹함이 나를 덮친다. 데이비드가 만난 수천 가지 물고기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로 선택한 단 하나가 왜 하필 이것이었을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 94, 99, 룰루 밀러
작가님이 드래곤같이 생겼다고 한 그 물고기를 말씀하시는군요! 사실 드래곤을 닮았는지는 모르겠으나(ㅋㅋ) 특이하게 생긴 물고기이긴 했어요. 데이비드의 분류방식이 과연 옳은가하는 의문이 서서히 생겼던 부분이라고 봅니다!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데이비드의 생각이 너무 알고 싶었습니다. 그의 성격으로 봤을 때 분명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런 이름을 붙였을 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가장 '기발한' 방법은 조수웅덩이의 작은 틈새에 숨어 있는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을 꺼내기 위해 독을 사용한 것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101, 룰루 밀러
데이비드의 악행이 처음으로 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사실 뒷부분을 읽기 전만 하더라도 이 부분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어요. 수집을 위해 이런 방법도 쓰는구나 생각만 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보니 수집을 위해 잘못된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을 보며 옳고 그름을 떠나 생각보다 데이비드의 삶에 흡입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는 로널드 B. 토비아스의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에서 '추구의 플롯'에 해당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가 그가 간절히 원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 인생 전부를 걸었다고 느껴졌거든요.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102, 룰루 밀러
그는 물고기의 뼈와 내부기관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중략) 인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류를 더 높이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적응 방법을 빌려올 수 있을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105, 룰루 밀러
데이비드는 물고기 해부를 통해 종간의 유사점과 차이점, 진화의 방향보다는 적응 방법에 더 몰두했었네요.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었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천문학자 조르다노 브루노를 영웅으로 칭송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화형을 당하기 전 브루노는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이 인용문을 독자들에게, 만약 그들이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을 차단해버린 적이 있다면 그들 역시 브루노를 살해한 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경고하고 비난하는 데 사용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 125, 룰루 밀러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는 말이 저도 정말 와닿았어요. 무지한 다수가 신념을 가지면 '브루노'를 살해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지는거죠.
맞아요 저 문장 너무 좋았어요 :)
그리고 마침내, 어느 오후 나는 발견했다. 공포에 대한 해독제, 희망에 대한 처방을 말이다. 그 것은 그가 '진화의 철학'이라 이름 붙인 강의 요강의 제일 밑에 묻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그날 하루의 강의를 내가 풀고자 했던 그 난제, 바로 과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바쳤다. "이러한 인생관은 염세주의로 이어지는가?" 강의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마술 같은 주문을 걸었다. 혼돈이 주는 냉기를 떨쳐버리는 한 가지 방법을 말이다. (...)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 장엄함은 존재해. 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 128, 룰루 밀러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중략) 나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 그 개념은 단지 내가 그것을 거역한다면 나를 부숴버리겠다고만 약속할 뿐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 130, 룰루 밀러
저두 이부분이 좋아서 플래그를 붙여 놓았습니다. ^^
7장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스크랩한 문장이 너무 많아 3개 정도로 추렸는데 그래도 길군요. 문장들의 흐름이 너무 좋아서 길게 적어둔 것 같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파괴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파괴되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은 인생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이러한 '파괴되지 않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사람들의 경우 감에 따른 선택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장엄함은 존재해. 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 그가 '파괴되지 않는 것'을 표현한 가장 신랄한 문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강렬한 표현들이 데이비드의 내면에 남아서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하게 만든 것이겠지요. 저 또한 7장 이후로 체크한 부분이 많지만 하루씩 차근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ㅎㅎ 데이비드라는 인물이 가상의 인물이고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데이비드는 매력적이고(그것이 좋지 않은 매력이더라도 캐릭터적으로는 매력이 있음) 이야기의 흡입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정말로 데이비드라는 한 인간의 전기 그 자체로만 채워진 줄로만 알았을 정돕니다ㅎㅎ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67, 룰루 밀러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41, 룰루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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