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 5문5답] 31. 정신적 현실주의자 김가을

D-29
다양한 분들을 만나 그 분들의 인생책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생책 5문5답] 인생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준 책. 좋은 삶을 살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용기를 주는 책. 당신의 인생책을 알려주세요. 함께 읽고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설을 좋아하는 정신적 현실주의자 김가을이라고 합니다. 사실 아직까지 인생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책을 만나지 못했고, 그런 책을 만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인생책보다 인생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오에 겐자부로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고 울게 된 것을 계기로 그 분의 책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그믐 인생책 5문5답에서는 서머싯 몸의 장편소설 『면도날』을 인생책으로 꼽아보고 싶습니다. (저는 민음사 판본으로 읽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이 한 여성과 서머싯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래도 재미있어. 『면도날』은 세 번이나 읽었어. 그 소설은 대단한 작품은 아니지만 잘 읽혀. 그 반대보다는 훨씬 낫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화자의 말처럼 막힘없이 쾌속 질주하듯 읽을 수 있는 재밌고도 깊이 있는 책입니다.
Q2 이 책이 인생책인 이유에 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지금은 많은 말과 상황을 흘려보내는 가벼운 사람이 되었지만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나?’ ’악을 뿌리 뽑을 방법이 무엇일까’ 같은 생각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습니다. (책에서 “난 단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욕도, 굶주림도 그 옆에서는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짓게 되고, 그로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어. 그 확신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어쨌든 그것은 술보다도 중독성이 강하고 그 어떤 사랑보다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또 그 어떤 악덕보다도 강력하고 매혹적이야.“라는 문장을 꼽아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할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마음, 한 가지 태도를 찾고 싶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아마 언어로 표현한다면 구원, 사랑, 용서, 숭고한 감정이나 악에 대한 분통함 같은 마음과 관련될 겁니다. 이 단어들을 떠올리면 솟구치는 어떤 뜨거움이 있는데, 그 뜨거움과 연결되는 것들이요. 책에서는 ‘래리’가 제가 쫓던 이상향일 것 같습니다. 주인공 래리는 전쟁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싸우다 죽은 친구를 전쟁이 끝나고도 잊지 못합니다.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 ‘선량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대체 악은 왜 창조한 겁니까.’라는 질문, ‘고통과 슬픔과 불행을 하나님이 정화를 위해 내리는 시련으로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그건 심부름을 보내면서 길을 험난하게 만들기 위해 복잡한 미로를 만들고 벽을 세우는 것 아니냐’는 의문.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래리는 여러 스승들을 찾아 나섭니다. 책 6장에 아트만, 브라만, 주객의 이원성, 절대지, 윤회, 신과 영원, 우주정신 등 종교적 철학적 언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이렇게 재밌게 다룬 책을 전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덮고 난 후에도 계속 떠오르는 책이 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래리’만이 원톱 주인공이라면 그렇게까지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와 젊은 시절 결혼을 약속했지만 결국 래리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 대신 다이아몬드와 모피코트를 선택한 이사벨, 죽기 전까지 상류 사회-사교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허영에 목 맸던 엘리엇, 한 때 시를 썼으나 어떤 사건 이후로 음주, 마약, 문란한 성생활로 자신을 파멸로 이끈(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을 그렇게 잔인하게 대한 삶에 복수하기 위해 지옥으로 곤두박질 친’) 소피, 잘나가는 증권사장에서 한순간 빈털터리가 된 그레이, 여장부 수잔, 코스티 등. 원하는 것이 저마다 다른 인물들이 이야기를 함께 해주고, 이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기에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집니다. 모두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한 사람 한 사람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더라구요. 한 가지 정답(제게 있어 래리라는 인물처럼)만 찾던 저에게 작가가 “이런 마음도 이런 사람도 있는거야. 너를 위로하려거나 혹은 가르치려드는 게 아니라, 진짜 내가 세상을 보니 그래. 이들 모두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을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라고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작가가 소설에서 펼친 이야기는 어느 같은 게 없는 퍼즐 조각이 하나 하나씩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룬 세상 같았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설명이 너무 길었네요.
Q3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신 거예요? 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와 사연이 궁금합니다.
제가 많이 좋아하던 친구(책에서 이사벨과 닮아있던) 재밌을 거라며 추천해준 책입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많이 약합니다. 사람이 책을 끌어들이고 책이 책을, 또 책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상황을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경험하며 살 거라 생각합니다.
Q4 이 책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분들께 추천하시겠어요?
‘발 끝으로 서서 손을 한껏 뻗으면 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116p)을 느꼈던 사람에게. 손 뻗으면 별에 닿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 내 발은 분명 땅에 붙어 있고, 발이 땅에 붙어있대도 정신적 현실에서 별을 그리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지요.
Q5 마지막으로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을 공유해 주세요.
“막상 결혼 날짜가 다가오니까 예수 그리스도 같은 그 사람한테 막달라 마리아가 되어 줄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자신이 없었어요, 선생님.” (소피, 365p)
[인생책 5문5답] 인터뷰에 함께 해 주셔서 진솔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해 주실 분들은 아래 주소에 입장하여 참여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template/1 전 국민이 자신의 인생책 한 권씩 소개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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