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속다문화]#1. 모두에게 복된 새해

D-29
소설 속 인물 형상화와 주제 구현의 방식을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과 비교하면서 읽어봅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 같이 나누고 싶은 질문과 답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그 말에 나는 좀 놀랐다. 명절이기 때문에 터번을 썼다는 말에 그런 게 아니라, 버스에서 개새끼들 있다는 말에 그런 게 아니라, '그치?'라는 그 여성스럽고 다정한, 상대방에게 긍정의 답변을 은근히 요구하는 표현방식에.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20, 김연수 지음
세계의 끝 여자친구한국문학의 영토를 넓혀가는 새로운 상상력의 촉수 김연수의 소설집.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만 십오 년, 김연수 작가는 여섯 권의 장편소설과 이번에 출간된 네번째 작품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까지, 소설로만 열 권째 작품집을 선보였다. 이번 소설집 속에는 2005년 봄부터 2009년 여름까지 씌어진 아홉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아내와 친구가 됐느냐고 물었을 때, 이 친구는 다시 한국어 강좌에 나가게 된 경위를 설명했는데, 그건 앞에서 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한국어가 연기처럼 자욱하게 떠 다니는 광장의 한가운데 혼자 서 있다가 숨이 막혀서 죽을 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요령부득의 설명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21, 김연수 지음
그리고 이 친구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lonely'라는 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다만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해서,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는 가만히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숲과 잠에서 깬 아이와 사원의 기동처럼 늠름한 다리를 가진 코끼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혼자 중얼거린다. 저는 외롭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는 고독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저는 쓸쓸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치 눈이 내리는 밤에 짖지 않는 개와 마찬가지로 저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 p. 141, 김연수 지음
남편이 비로소 아내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한편으론 ‘드디어..’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읽는 나조차도 남편이 참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잘 알 수 있는, 잘 알아야 되는 관계임에도 만난 지 5개월밖에 안 된 외국인에게 아내의 진심을 들은 것이니 말이다. 더불어 진정한 소통의 필수 요건은 함께 지낸 시간이나 현재의 관계가 아니라 상대의 말에 얼마나 귀 기울일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트비르 싱과 아내는 겉보기에 거의 소통이 불가능한 사이였지만 서로 배려하고 관심을 보이며 이야기를 나눴기에 남편보다 더 돈독한 사이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코끼리, 아기처럼”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므로 이 친구의 낯선 발음에, 그리고 또한 거기에도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다시 나는 어딘가 불안하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또다시 나는 그 뒤에서 들리는 자동차들의 소리에 차례로 마음을 빼앗긴다.
1)글쓰기할 때 "문장수집"을 클릭하면 책의 페이지도 같이 남길 수 있어요. 2)내가 쓴 글이나 다른 친구의 글 옆에 말풍선 클릭하면 거기에 대한 댓글 달 수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작품을 읽은 것 같아 더욱 공감이 간다.
당연하게도 나는 "코끼리, 아기처럼”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므로 이 친구의 낯선 발음에, 그리고 또한 거기에도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다시 나는 어딘가 불안하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또다시 나는 그 뒤에서 들리는 자동차들의 소리에 차례로 마음을 빼앗긴다. 거기, 한 해가 그런 식으로 지나가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그 생각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이 친구가 이 노래, "코끼리, 아기처럼"에 대한 노래를 모두 그칠 때까지.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해가 찾아올 때까지.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42, 김연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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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보면, 수천만 번의 겨울을 보내고 다시 또 한 번의 겨울을 맞이하는 해변에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므로, 그게 그 해변의 제일 마지막 겨울이라서 파도 소리를 듣는 일이 그토록 외로운 것이라고. 그렇게 두 눈을 감고 나는 가만히 들어본다. 지금은 그간 여러 해가 흘러갔듯이 그렇게 또 한 해가 흘러가는 12월의 마지막 밤이고, 그 자동차 소리를 배경으로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친구는 막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하지만 아직까지는 음정이 불안정한 피아노를 연주하며 먼 나라의 말로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41, 김연수 지음
수천만 번의 외롭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지금 지나고 있는 고난의 날들이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 외로운 것이라고 하는 조금은 낙천적인 희망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직은 불안정하지만 막 살아나기 시작한 피아노의 음정이 주인공들의 앞으로의 날들이 완벽하진 않지만 희망적일 것을 예고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았다.
두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본다. 신호등의 불빛이 바꿀 때마다 자동차들이 일제히 도로를 질주하는 소리가 흘러든다, 조금 열어 둔 창문 틈으로. 그 소리가 파도 소리를 닮아, 내 귀가 자꾸만 여위어간다. 두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보면, 수천만 번의 겨울을 보내고 다시 또 한 번의 겨울을 맞이하는 해변에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므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41, 김연수 지음
덤덤한 어투로 사트비르 싱과 서로 맞아가는 듯, 비틀어지는 듯, 대화를 이어나가는 주인공의 심리가 글의 마지막으로 다가갈 수록 묘하게 긍정적이게 느껴지는 것이, 글을 읽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또한, 주인공의 감각이 느끼는 주변 환경의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해서 나까지 소설 속 세상에 들어가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속 다문화로 새로이 시작하시는군요! 마침 제 새 일이 다문화관련 육체노동 literally인데 말이죠; 구경 잘 하겠습니다.
다문화 소설에 대해 논할 때 김연수의 <모두에게 복된 새해>는 꼭 언급되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이 논문집에서 다루어서 교과서(신사고 문학)에 나온 <명랑한밤길>과 비교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모임 열었어요. 학생들에게도 이런 독서플랫폼 있는 거 알려주고 싶은 목적도 있었구요.
한국 다문화 소설의 서사 담론 연구(양장본 HardCover)타자가 서사 담론의 조건에서 어떻게 형상화 되었는지 알아보고, 다문화 사회의 타자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는 새로운 소수자들을 등장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자본주의로 인해 인종과 민족, 국가라는 단일성이 사라지면서 인류는 주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따라서 이주자의 타자성은 주체와의 권력 관계에 의해 새롭게 설정되고 있다. 다문화 소설 속에 나타난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에서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는 주체에
혜진 영어 잘 못합니다. 맞습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140, 김연수 지음
이 소설의 사트바르 싱이 겪었던 일은 내가 겪었던 일과 비슷하기도 하다. 다문화 사회속에서의 연애에서 서로간의 마음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 사트비르 싱이 혜진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소설 속에서 싱은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적 차이와 한국어만의 비유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서 혜진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다. 나도 1년 넘게 겪었던 내 고민을 학교 선생님들에게 표현할 용기를 내는 게 힘들었다. 내 적성에 맞지만 쉽지 않은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을지, 아니면 내 꿈을 계속 가져 이루도록 노력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그 꿈을 이루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이것에 대해 선생님들께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주변 선생님들에게 조금씩 내 속마음을 표현하니 결국엔 내 속마음을 모두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싱과 달리 내 고민에 대한 표현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긴 하지만, 내가 싱보다는 우리말에 훨씬 능숙하지만 서툰 마음 때문에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쉽기도 했다.
성준이가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경험과 연관지어 이해한 것이 참 좋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기는 것은 일부분인 것 같아. 더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인정하고(싱처럼) 그것을 판단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 태도인 것 같아. 그래서 작가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타자들이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했지.
그때 나는 용서라는 말이 떠올렸다. 먼 훗날의 누군가를, 혹은 나 자신을 지금의 내가 용서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의 경우는 어떨까? 먼 훗날의 나라면 지금의 나를 용서할 것인가?
세계의 끝 여자친구 모두에게 복된 새해 p123, 김연수 지음
‘용서’라고 하면 내가 남을, 혹은 남이 나를 용서하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남을 용서하고 용서를 받는 것보다 내가 나를 용서하는 것이 더 힘들고 용기가 필요하다. 아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남보다 나를 더 낮게보고 험하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이기에 잘못됨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남보다 나를 더 용서해주지 않고 자책만을 이어간다. 우리는 과연 언제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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