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속다문화]#1. 모두에게 복된 새해

D-29
내게 겨울은 낭만적인 계절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냐 하는 질문에 바로 답을 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런 점 마저도 낭만적으로 다가올 만큼, 나는 언제부턴가 겨울이라는 계절이 푹 빠져 있었다. 비록 글에 적힌 것처럼 수천만 번의 겨울은 보내지 못했지만 겨울이란 계절은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설레임과 울렁거림을 각인시켰다고 생각한다. 한 번을 지내고 나면 1년을 지내서야 찾아오는 이 하얀 계절은, 이전 계절의 기억을 망각하게 하며 작년에 내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그 찰나의 순간들과 추억을 다시 끄집어낸다. 이것들은 계절의 공기에도, 바람에도, 풍경에도 조금씩 각인되어 있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내게 겨울은 조금 이르게 찾아온 서늘한 냉기와 함께 이 글로써 내게 다가왔다. 이리 생각해 보건데, <모두에게 복된 새해>는 부분 부분 겨울을 닮아 있었다. 아이와의 이별 여행 차 다녀온 훗카이도의 오타루에서는 시리고 포근한 눈이 내렸으며, 조율이 덜 된 채 오랜 겨울동안 싹을 틔우지 못한 풀처럼, 심의 말을 빌리자면 긴 시간 노래하지 않은 피아노가 그러했다. 또 제목에서도 언급되는, 겨울의 끝자락에서야 마침내 찾아오는 “모두에게 복된 새해”역시 그랬다. “그게 아니라면, 저는 고독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저는 쏠쓸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치 눈이 내리는 밤에 짖지 않는 개와 마찬가지로 저는.....” 작중 심이 하는 이 대사는, 마치 부부의 겨울과 같은 감정을 비록 조율이 덜 되었지만, 날것 그대로의 음악을 들려주는 오래된 피아노처럼 서툰 말로서 표현한 것 같았다. 그랬기에 무엇보다 겨울을 잘 나타낸 이 구절이 내게 많은 여운을 남기게 되었다.
나는 이 친구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게 아내의 심장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인지. 그러자 이 친구는 맥주 캔을 내려놓고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더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트비르 싱은 아내의 외로움을 이해하지만 남편이 아내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답답했다. 아내의 심장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인지 부분에서 남편은 아내의 외로움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는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제야 나는 "말하자면 친구"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은근히 걱정한 것처럼 심각한 게 아니라 아무런 대가 없이 서로에게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쳐주는 관계였던 것이다. 이 친구는 더듬더듬 한국어로 말하고. 마찬가지로 아내도 더듬더듬 영어로 말하는 사이. 말 그대로. "말하자면 친구"인 사이. 나는 마음이 좀 풀어져서 맥주를 쭉 들이켜고는 이 친구에게도 마시라고 강권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37, 김연수 지음
'나'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이 친구가 될 수 없을거라는 인식으로 "말하자면 친구" 라는 관계에 대해서 궁금해 했고, 남편 본인이 아닌 최근에 만난 외국인 노동자가 아내를 더 안다는 사실과 남녀 사이에 관한 걱정 등이 아내의 친구라는 말을 솔직히 믿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구절이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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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한국어가 연기처럼 자욱하게 떠다니는 광장의 한가운데 혼자 서 있다가 숨이 막혀서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제 음을 찾아가야만 하는,아직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리들이 집을 울렸다. 이제쯤 돌이켜보면 오타루의 겨울은 단 한 톨의 눈송이도 버리지 않을 정도로 검소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아주 많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마침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해가 찾아올 때까지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42, 김연수 지음
이 여자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 아픔을 위로해준건 정작 남편이 아니라 사트비르싱이 아니었나 싶다. 또 아내와 인도인인 사트비르싱이 친구가 되어가는것을 보면서 정작 남편은 속으로 걱정을 하는 그 모습. 서로 힘들어 보이기만 한다. 이 구절은 소설 가장 마지막을 마무리하며 나오는 구절인데, 새로운 해가 모두에게 찾아온다면 희망이 생긴다는 말 같아보였다. 괜찮아지면 좋겠다.
한 십여 년 전, 우리의 꿈은 소박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처음 읽을 때는 번듯한 집 한채라도 가지기를 바라는데 왜 굳이 대출까지 받아서 후쿠오카로 여행을 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읽을 때는 이별여행이라는 것의 숨겨진 뜻을 알고 나서 둘의 슬픈 감정을 차마 헤아릴 수도 없었다. 또한, 소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구체적인 서사가 시작되는 문장이었다.
내 말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이나 대꾸가 없던 그녀는 코를 훌쩍이는가 싶더니 울음을 터뜨렸고,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p. 126, 김연수 지음
남편은 아내가 유산한 것에 대해서 정말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아내 혼자 먼저 떠나보낸 아기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워 했을 것 같다. 누구보다 아내를 가장 잘 알고있을 것 같은 관계인 남편이 아닌, 만난 지 5개월 째인 외국인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을 보아 남편은 평소에도 아내의 마음이나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여겼다. 본인을 제대로 이해해 줄 생각이 없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또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이 친구가 이 노래, “코끼리 아기처럼”에 대한 노래를 모두 그칠 때까지.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해가 찾아올 때까지. 남편이 아내를 공감해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외국인 노동자와 대화를 하며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놀라고 마지막에 공감하는 듯한 느낌을 보이는 것에 놀랐다. 이 소설이 끝나도 완전한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듯한 문장이었다. 또 마지막의 ‘코끼리’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았는데 영어 관용구 중에 불편한게 있음에도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이[의역] “elephant in the room"이라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들이 인용하는 노래는 Damien Rice의 <Elephant>이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코끼리’에 대하여는 부부 사이에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여운을 남기는 문장을 통해 부부 사이가 조금은 좋아지리라 하고 기대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RPwFAoQwxc 노래를 찾아볼 생각은 못 했는데 예림이 덕분에 노래도 들어보네. 노래 들으며 작품을 보니 그 분위기가 더 절절히 그려진다. 이전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 작품으로 낭독극으로 공연한 거 봤었는데 단편영화로 각색해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가사 해석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uJYkZv4xgwU
“내 말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이나 대꾸가 없던 그녀는 코를 훌쩍이는가 싶더니 울음을 터뜨렸고,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p. 126, 김연수
아내를 먼저 보냈다는 것이 너무 슬프고 누구보다 아내를 잘 알고있을 것 같은 남편이 외국인이 더 잘알고 있는 것이 남편의 무관심으로 보이는 것도 참 슬프다..
한 해가 흐르고 또 한 해가 지나는 동안, 음정은 틀려지고 건반은 망가진다. 그 아이의 한국어가 이미 죽은 한국어인 것 처럼.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시간이 흘러도 피아노를 버리지 않고 있던 노인의 미련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인상깊었다.
고개를 숙이고 아기처럼 엉엉 우는 그녀를 바라보자니, 내 눈에서도 조금 눈물이 나왔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26, 김연수 지음
아내는 엉엉 우는 것에 반해 남편은 ‘조금’ 눈물이 나왔다 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아 남편은 아내의 슬픔과 힘듦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옆에서 엉엉 우니 저도 눈물을 슬쩍 흘리는 느낌이랄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 공감이 안되고 본질적으로 소통이 안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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