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D-29
혼자 읽고 정리하는 모임입니다.
아프고 지친 어른 아이에게 건네는 단단한 위로 :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by. 이꽃잎> 듣고 싶지 않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리는 아이, 유찬. 스스로 태어나선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아이, 하지오. 이야기는 유도를 하는 지오가 엄마가 예전에 살았던 정주로 갑작스런 전학을 오면서 유찬이를 만나며 시작된다. 이야기는 [하지오]. [유찬]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각자의 마음이 교대로 보여준다. 독자는 지오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가 유찬의 마음 속에도 들어갔다가 둘의 마음을 왔다갔다하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유찬이처럼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지 못하지만 이런 서사구조로 인해 독자는 마치 유찬이처럼 인물들의 마음을 읽는 간접 체험을 하게 된다. 지오와 유찬의 마음을 오가다가 작품 중반부터는 책을 멈추고 며칠을 묵혔다. 강하게만 보였던 유찬이의 마음에 균열이 생기고 조금씩 자신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 페이지를 넘겨 이 아이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유찬을 보며 나도, 아직 멈춰있는 나의 그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형이 혹시라도 행복하지는 않은지, 여전히 형의 삶이 지옥 같은지 확인한다고. 이렇게 괴물같은 게 바로 나야." "그러니까 이제 더 가까워지지 마. 나도 내가 얼마나 더 잔인해질지 모르니까." 두렵다. 이 아이를 내가 더 많이 원하게 될까 봐. 그래서 전부 용서하게 될까 봐. 내게서 가장 소중했던 모든 걸 앗아 간 그날의 화재마저 결국 잊게 될까 봐. <여름을 한 입 베어물었더니> 소설의 제목치고는 너무 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름은 싱그럽고 아름다운 여름이 아니라 유찬을 지난 5년간 내내 괴롭히던 불길이었다. 그 불길 속에서 유찬이를 안아 지켜내고 세상을 떠난 엄마와 아빠에 대한 기억이었다. 화재 후에 혼자만 살아남아 내내 지옥을 살아내는 동안 유찬은 새별이 형을, 엄마 아빠 없이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는 새별이 형을 위해 자신의 아픔에는 무심한 마을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속으로는 아픈 아이. 그런데 막상 누군가가 다가오면 밀어내는 불쌍한 아이, 유찬. 그 아이가 철갑을 두른 듯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려 했던 어린 아이가 마침내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그런 자신에게 진저리를 치며 다시 또 그 갑옷 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지오는, 다시 들어가지 말라며 유찬이를 잡는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서도, 살다 보믐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드라." "알지. 봐주라는 말이 아이다. 어렸으니까 무서웠을 거 아이가. 나이가 암만 많아도 언제나 옳은 선택만 할 수는 없는 긴데, 어린놈이 무서워가 벌벌 떨면서 한 선택이 어땠겠노. 안 봐도 뻔하지.“ 지오에게 건넨 코치님의 말은 지오를 거쳐 나의 마음에도 균열을 만든다. 아버지의 죽음 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혹시 그도 무서웠을까, 두려웠을까, 궁금하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때,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  그도 어쩌면 그의 삶이 버겁고 더 잘하지 못해서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자신의 과오를 돌이키지 못해 술로 잊어보려 했겠구나. 가족들에게, 자식에게 욕을 퍼부으며 주먹을 휘두르며 어쩌면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참 괴로워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용서하고 싶지 않아. 용서하기 싫어. 내 인생을 그렇게 힘들게 만든 아버지라는 작자를, 내가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없지. 내 오랜 악몽 속에서 늘 깨진 병을 들고 나를 죽이겠다고 쫓아오던 그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이를 악물고 그와 같이는 절대 살지 않겠노라고 온 힘을 다해 살아왔다. 분노를 삶의 연료로 삼으며 나는 꼭 그와 반대로 살겠다고 악으로 깡으로 살아왔다. 그를 용서해버리면 내 삶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쉽게 아빠를 나쁜 사람이라고만 판단했나 봐. 지금도 뭐,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지오처럼 나 또한 한번도 내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던 것 같다. 악마 같은 인간. 지옥 같은 집이라고 생각해야지만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만 그를 용서하자 하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열심을 다해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나를 힘들게 한 나의 부모, 그 동네, 그 시절에서 행복을 찾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워지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까 봐. 나쁜 사람이라고 어떻게 다 나쁘기만 할까. 착한 사람이라고 어떻게 다 착하기만 할까.  "근데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엄마가 집을 나오지 않고 여기서 그대로 나를 지켰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그럼 나는 이 세상에 엄마랑 나뿐이라는 생각으로 살지 않아도 됐을까?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좋아서 유도를 했을 수도 있을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 엄마가 나를 지키기 위해 했던 일들이 반드시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 엄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착한 사람이라 지켜주어야 하고, 아빠는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선택한 나쁜 사람이니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오가 아빠의 선택 뿐만 아니라 확고하게 옳았다고 믿었던 엄마의 선택 또한 어쩌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 때, 나는 아버지의 그 삶은 틀렸고 내가 애쓰면서 살아온 이 삶은 틀린 것이 없다고 너무 단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해 본다. 그리고 유찬에게 건네는 지오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인다. "엄마의 선택이 완전히 옳은 게 아니었을지라도 그때 엄마는,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거겠지?" "어쩌면 이 마을 사람들도 그날 최선의 선택을 한 걸지도 몰라. 그게 꼭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지라도.“ 그리고 나도 되뇌어본다.  "그 때 당신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거겠지. 당신의 행위가 완전히 옳은 건 아니었겠지만 그때 당신에게는 아마 그게 최선이었을 거야." 내가 그러하듯 젊은 당신도 그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을 텐데. 그런데도 늘 모자라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원망하는 자식과 배우자에게 서운하고 화가 나기도 했었겠다. 당신도 부족할 수 있지. 서툴 수 있지. 처음 해보는 아버지 노릇 허점투성이었겠지. 그런데도 어른이 되었으니 장남이니 괜찮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하느라 더 힘들었겠다.  이 글을 쓴 이꽃님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 이야기가 자신이 쓴 글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나에게도 그렇다. 이꽃님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어린이 청소년 소설인데 빨리 넘길 수 없어서 천천히 읽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와 다른 듯 비슷한 느낌이다. 글자가 글자로 읽히지 않고 마음에 와서 박혀서 속도를 내서 읽기가 힘든 이야기. 숨을 크게 쉬어가며 읽어가야 했다. 혼자인 줄 알았던 이들 곁에 너무도 따뜻한 이들이 언제나 함께였음을 알게 되는, 햇살만큼 반짝이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썼다. 이 이야기가 마음이 닿지 않아 힘들어하는 이에게,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이 답답한 이에게 위로가 되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삶이 여름의 햇살만큼 눈부시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긴 이야기와 작가의 말까지 읽어 준 당신에게 내 온 마음을 보낸다.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 비 온 뒤 뜨는 무지개 같은 이야기로 남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것이다. 황홀한 무지개가 당신 곁에 머무기를 빌며. 작가의 마지막 말까지 따뜻하다. 급하게 몰아가는 얉은 위로가 아니어서 용서를 강요하지 않아서 편안했다. 밀어내고 벽을 치고 위악을 떨며 다시 또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려는 유찬을 꽉 잡아서 단단한 믿음을 건네는 지오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지오에게 준 반찬을 새별이에게 가져다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 순간, 나도 할머니의 마음이 된다. 안도가 되고, 고마움이 되며, 긴 시간의 용서가 된다. 그래 다 잊어뿌자. 그렇게 해 보자. 할머니와 함께 되뇌어본다. 아픈 순간, 그 시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진흙뻘 속에 발이 묻혀 앞으로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어린 나에게 이야기 속 지오가 속삭인다. "그날 온 마을 사람들이 널 지켰던 것처럼 이제 내가 너를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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