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힘찬] 1. 소설 보다: 가을(2023) 함께 읽기

D-29
아이가 있는 삶, 어머니로 살아가는 삶, 그 가상의 플롯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된 것이었다. 그건 숙희가 발명한 것도, 숙희만의 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회적 의무와도 같은 선택지로서, 제대로 된 티켓을 구하지 못한다면 억지로라도, 심지어 절차를 어겨서라도 반드시 그 물결에 올라타야만 한다고 여겨졌던 길이었다. 그때, 그 방종했던 기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숙희에겐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숙희는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산과 육아의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감히 그런 꿈을 꾸고 앉아 있었을까.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도 되는 듯이. 엄마가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으로서의 한 여성이 이전에 누렸던 거의 모든 삶의 지분을 빼앗기는 그런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도.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34,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숙희의 마음속에서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기억이 다시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숙희가 사랑했던 그러나 잃어버린 온갖 것들에 대한 기억이. 다시 삶을 달라고, 다시 자기를 봐달라고. 조그맣고 따듯한 몸에서 발산되는 예측할 수 없는 활력이 숙희의 팔과 다리로,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숙희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기쁨이었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56,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수만큼 우리에게 가능한 삶의 양태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어떤 성별인가로 결혼의 유무로 자녀가 있고 없음으로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로 성한 몸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우리 모두가 똑같이 정해진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누구의 삶도 예상대로 흘러가서 정해진 대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우연히 마주한 지금 나의 현재와 관련하여 특별히 자만할 것도 특별히 절망할 것도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불안할 것도 충분히 안심할 것도 없다.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겸허한 마음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어떤 상태이건 우리 모두는 숙희처럼 열린 결말의, 특별한 공식이 없는, ‘실험영화’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 조연정,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막상 어떤 일을 직접 맞닥뜨렸을 때보다 그걸 경험하기 전의 시점이 좀더 초조함과 걱정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듯이 새로운 인생 주기를 앞두고 상념이 많아지는 쪽은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직전의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63-164,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적어도 여성들은 잘 알 겁니다. 우리 안에 있는 '암컷'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수동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요.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69-170,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전하영,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 📝 (23/10/24) 비행공포증이 있는 인물이라니, 시작부터 나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인물에 빠져들었다. 내년이면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어떤 친구는 이미 ‘아줌마’에서 ‘할머니’가 되어 ‘삶이 제공하는 이 끝없는 개념적 공격’(p.118)에 억울함과 피곤함을 느끼는 여성 숙희. 숙희의 감정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정상성의 물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정도가 다를 뿐 누구에게나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나 숙희는 그 물결에 올라타지 못한 것을 두려워한다기보다는 때론 힘겹고, 외롭고, 지루하고, 또 혼란스럽기도 한 듯하다. 혼자이고 싶지만, 동시에 혼자이고 싶지 않은 기분.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고 싶은 마음’(p.137). 온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숙희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마지막에 숙희가 윤미의 손녀 제인의 ‘조그맣고 따듯한 몸에서 발산되는 예측할 수 없는 활력을 전달받으며 예상치 못한 기쁨’(p.156)을 느끼는 게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숙희가 사랑했으나 잃어버린 온갖 것들’(p.156)은 꼭 숙희가 어떤 물결에 올라타지 않더라도 숙희에게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해서. 우리에겐 다양한 삶의 모양이 있을 수 있고, 각자는 각자의 결말로 향하는 ‘실험영화’를 촬영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어떤 흐름에 올라타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나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전하영 작가님은 이름이 어딘가 익숙해서 찾아보니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셨어서 단편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은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이 단편을 읽고 그 단편을 읽고 적어둔 독서노트랑 수상작품집의 작가노트, 해설을 다시 읽어봤는데 이번에 읽은 단편이랑 결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어서 신기했어. 개인적으론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이 조금 더 건조하다는 느낌이고,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는 조금 더 긍정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1)수상작 대상 전하영 ·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멜라 · 나뭇잎이 마르고 김지연 · 사랑하는 일 김혜진 · 목화맨션 박서련 ·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서이제 · 0%를 향하여 한정현 ·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화제로 지정된 대화
■ 10/22~10/28 | 독서모임 마무리 - 세 편의 단편 중 가장 좋았던 단편과 이유 나누기 (필수) - 독서모임 소감 나누기 (필수) 벌써 독서모임 마무리하는 주다! 가장 좋았던 단편이랑 이유, 그리고 독서모임 소감 나누며 모임 잘 마무리해보자. ㅎㅎ ————————————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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