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힘찬] 1. 소설 보다: 가을(2023) 함께 읽기

D-29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 | 문학평론가 조연정 ‘3가구 중 1가구가 혼자 사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1인 가구 담론은 청년 세대나 노년 세대에 집중되어 있고 중년 1인 가구의 경우에는 주로 이혼이나 ‘기러기 아빠’로 혼자가 된 남성의 사례로 다루어지곤 한다(김희경, 『에이징 솔로』, 동아시아, 2023). 곧 50대를 앞두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줌마’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꼈으나 이제 주변의 친구들이 실제로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중년의 독신 여성으로서 느끼게 되는 여러 혼란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전하영의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는 그런 점에서 특별하게 읽히는 소설이다. 흥미로운 점은 숙희에게는 자신을 보호해줄 안전한 둥지가 없다는 불안보다 오히려 자신이 누군가의 공식적인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심적 불편함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중년의 여성이 어떤 식으로든 돌봄 노동의 주체가 되지 않은 채 스스로 독신의 삶을 편안하게 즐기고 누린다는 것이 어떤 결핍처럼 느껴질 만큼, 여성의 생애주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견고하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어리고 젊은 여성은 대상화되고 나이든 여성은 누군가의 조력자로 주변화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거칠게 이런 식으로 요약될 수도 있다. “자신이 나뭇조각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선을 끌지 않으려 노력했다”라는 소설 속 숙희의 말처럼 한국 사회에서 나이든 여성은 대부분 잊힌 존재에 가깝다. 공식적인 사회적 역할 속에서도 많이 배제되고 그녀들의 다양한, 그래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노동은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 여성이 특정한 방식으로만 대상화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나이든 여성은 점점 없는 존재에 가까워진다. 경제적인 불편함 없이 자신의 삶을 멋지게 잘 꾸려가는 숙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평온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듯 보이는 것은 한국 사회의 고정된 여성적 삶의 패턴으로부터 일탈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 사는 중년 여성의 삶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공통된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인식될 만큼의 다양한 참조점이 그녀에게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남자와의 연애가 부끄럽다든가, 아이를 필사적으로 원했던 시기가 있다든가, 이 소설의 어떤 설정들은 다소 전형적이고 나아가 보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년 독신 여성의 내면을 공적으로 확인할 기회가 적었다는 점에서 날 것 그대로의 숙희의 마음을 읽는 것이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모성’ 욕망으로부터 탈피하여 같은 또래 독신 여성 윤미를 만나러 15년 만에 비행기에 오르는 숙희의 결단은, 그녀가 위태로운 ‘싱글’의 삶을 청산하고 완전한 ‘솔로’의 삶을 편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결심을 드러내는 듯도 하다. 이러한 모범적인 결론도 다소 전형적일 수 있지만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숙희와 유사한 삶을 살았던 그리고 현재 살아가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숙희가 자기 삶에 안심하고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서로에게 보여지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수 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수만큼 우리에게 가능한 삶의 양태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어떤 성별인가로 결혼의 유무로 자녀가 있고 없음으로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로 성한 몸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우리 모두가 똑같이 정해진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누구의 삶도 예상대로 흘러가서 정해진 대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우연히 마주한 지금 나의 현재와 관련하여 특별히 자만할 것도 특별히 절망할 것도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불안할 것도 충분히 안심할 것도 없다.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겸허한 마음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어떤 상태이건 우리 모두는 숙희처럼 열린 결말의, 특별한 공식이 없는, ‘실험영화’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링크: https://moonji.com/monthlynovel/34385/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더니. 숙희는 삶이 제공하는 이 끝없는 개념적 공격에 좀 억울하고 피곤한 마음이 들었다. 인류의 반이 필히 경험하는 것인데도 왜 이토록 힘겹고 외로운 싸움으로 느껴지는 것인지.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18,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아이가 있는 삶, 어머니로 살아가는 삶, 그 가상의 플롯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된 것이었다. 그건 숙희가 발명한 것도, 숙희만의 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회적 의무와도 같은 선택지로서, 제대로 된 티켓을 구하지 못한다면 억지로라도, 심지어 절차를 어겨서라도 반드시 그 물결에 올라타야만 한다고 여겨졌던 길이었다. 그때, 그 방종했던 기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숙희에겐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숙희는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산과 육아의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감히 그런 꿈을 꾸고 앉아 있었을까.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도 되는 듯이. 엄마가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으로서의 한 여성이 이전에 누렸던 거의 모든 삶의 지분을 빼앗기는 그런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도.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34,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숙희의 마음속에서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기억이 다시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숙희가 사랑했던 그러나 잃어버린 온갖 것들에 대한 기억이. 다시 삶을 달라고, 다시 자기를 봐달라고. 조그맣고 따듯한 몸에서 발산되는 예측할 수 없는 활력이 숙희의 팔과 다리로,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숙희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기쁨이었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56,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수만큼 우리에게 가능한 삶의 양태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어떤 성별인가로 결혼의 유무로 자녀가 있고 없음으로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로 성한 몸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우리 모두가 똑같이 정해진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누구의 삶도 예상대로 흘러가서 정해진 대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우연히 마주한 지금 나의 현재와 관련하여 특별히 자만할 것도 특별히 절망할 것도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불안할 것도 충분히 안심할 것도 없다.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겸허한 마음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어떤 상태이건 우리 모두는 숙희처럼 열린 결말의, 특별한 공식이 없는, ‘실험영화’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 조연정,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막상 어떤 일을 직접 맞닥뜨렸을 때보다 그걸 경험하기 전의 시점이 좀더 초조함과 걱정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듯이 새로운 인생 주기를 앞두고 상념이 많아지는 쪽은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직전의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63-164,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적어도 여성들은 잘 알 겁니다. 우리 안에 있는 '암컷'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수동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요.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69-170,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전하영,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 📝 (23/10/24) 비행공포증이 있는 인물이라니, 시작부터 나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인물에 빠져들었다. 내년이면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어떤 친구는 이미 ‘아줌마’에서 ‘할머니’가 되어 ‘삶이 제공하는 이 끝없는 개념적 공격’(p.118)에 억울함과 피곤함을 느끼는 여성 숙희. 숙희의 감정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정상성의 물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정도가 다를 뿐 누구에게나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나 숙희는 그 물결에 올라타지 못한 것을 두려워한다기보다는 때론 힘겹고, 외롭고, 지루하고, 또 혼란스럽기도 한 듯하다. 혼자이고 싶지만, 동시에 혼자이고 싶지 않은 기분.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고 싶은 마음’(p.137). 온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숙희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마지막에 숙희가 윤미의 손녀 제인의 ‘조그맣고 따듯한 몸에서 발산되는 예측할 수 없는 활력을 전달받으며 예상치 못한 기쁨’(p.156)을 느끼는 게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숙희가 사랑했으나 잃어버린 온갖 것들’(p.156)은 꼭 숙희가 어떤 물결에 올라타지 않더라도 숙희에게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해서. 우리에겐 다양한 삶의 모양이 있을 수 있고, 각자는 각자의 결말로 향하는 ‘실험영화’를 촬영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어떤 흐름에 올라타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나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전하영 작가님은 이름이 어딘가 익숙해서 찾아보니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셨어서 단편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은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이 단편을 읽고 그 단편을 읽고 적어둔 독서노트랑 수상작품집의 작가노트, 해설을 다시 읽어봤는데 이번에 읽은 단편이랑 결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어서 신기했어. 개인적으론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이 조금 더 건조하다는 느낌이고,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는 조금 더 긍정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1)수상작 대상 전하영 ·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멜라 · 나뭇잎이 마르고 김지연 · 사랑하는 일 김혜진 · 목화맨션 박서련 ·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서이제 · 0%를 향하여 한정현 ·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화제로 지정된 대화
■ 10/22~10/28 | 독서모임 마무리 - 세 편의 단편 중 가장 좋았던 단편과 이유 나누기 (필수) - 독서모임 소감 나누기 (필수) 벌써 독서모임 마무리하는 주다! 가장 좋았던 단편이랑 이유, 그리고 독서모임 소감 나누며 모임 잘 마무리해보자. ㅎㅎ ————————————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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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이야기했어요
[밀리의서재로 듣기]오디오북 수요일엔 기타학원[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팟캐스트/유튜브] 《AI시대의 다가올 15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같이 듣기
⏰ 그믐 라이브 채팅 : 최구실 작가와 함께한 시간 ~
103살 차이를 극복하는 연상연하 로맨스🫧 『남의 타임슬립』같이 읽어요💓
매달 다른 시인의 릴레이가 어느덧 12달을 채웠어요.
[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 12월] '오늘부터 일일'[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11월] '물끄러미'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10월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어두운 달빛 아래, 셰익스피어를 읽었어요
[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
독서모임에 이어 북토크까지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1일 오프라인 북토크 예정!스토리 수련회 : 첫번째 수련회 <호러의 모든 것> (with 김봉석)[책증정] 저자와 함께 읽기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오프라인북토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AI 에 관한 다양한 시선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결과물과 가치중립성의 이면[도서 증정]《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AI 메이커스> 편집자와 함께 읽기 /제프리 힌턴 '노벨상' 수상 기념[도서 증정] <먼저 온 미래>(장강명)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AI 이후의 세계 함께 읽기 모임
독자에게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이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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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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