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마주>

D-29
더불어 저도 조금 소소한 혼자만의 포인트를 이야기하자면, 사과밭이나 겨울밭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는데요, 저도 부모님이 사과밭을 일구시거든요. 그래서 4월에는 사과꽃 따러 가고, 9월에는 사과잎 따러 가고, 10월에는 사과 따러 가고는 해요. 사과원액 주스라든가 잼을 만드는 배경 이야기들이, 제가 체험한 적 있는 이야기여서일 수도 있겠지만 섬세하게 묘사만큼이나 디테일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읽었어요. 농촌의 모습이 드러나는 소설을 읽기가 쉽지 않아서 더 귀하게 여겨기지도 했고요 ^^
수미는 만조 아줌마한테 물었다. 이웃집 아이한테 어떻게 그런 마음일 수 있었는지. 그런 친절은 어떨 때에 가능한지. 우문이라 대답할 말이 없다는 듯 만조 아줌마는 한가지 일화만을 애기했다. 겨울이었는데, 나리가 그때 학교에 들어갔을 땐가 모르겠다. 한겨울 아침에 애가 손등이 허옇게 터서는 강아지 밥그릇을 들고 울고 있는 거야. 강아지 밥이 꽝꽝 얼었다고. 꽝꽝 얼어서 강아지가 먹을 수가 없다는 거야. 아니 겨울에 밖에 내놨으니까 얼지. 들여놓으면 다시 녹는다고 해도 듣지를 않아. 얼마나 울음을 안 그치는지. 나를 보더니 계속 우는거야.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최은미, <마주>, 282쪽.
안녕하세요! 조금 늦게 참여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전에 최은미 작가님이 발표하셨던 <여기 우리 마주>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번 책에 대한 기대가 컸었는데요. 결론적으로는 기대만큼의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일단 단편에서 장편으로 개작되었다면 단편을 읽었을 때보다의 더 좋음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제 눈에는 그게 잘 안 보였어요. 또 많이 이야기해주신 것처럼 다소 산발적인 전개가 끝까지 소설로의 집중을 방해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만조 아줌마의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일까 잘 붙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요, 이 부분은 나중에 딴산 마을 이야기가 나오면서 납득이 갔던 것 같아요. 또 어떤 기억들은 내안에 잠복해 있던 결핵균이 갑작스레 문제가 되는 것처럼 불쑥 튀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니까요ㅎㅎ
<마주>를 읽으면서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요즘 최은미 작가가 반복적으로 그리는 여성 인물에 대한 것이었어요. 이 소설도 그렇고,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는 <그곳>도 그렇고요. 다소 신경증적인 면모를 보이는 여성 화자가 재난 상황을 맞닥뜨린다는 공통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 부분이 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전에 이야기했던 전형성을 벗어나는 인물의 특성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고, 독자에게 분명한 쾌를 선사하는 서술도 그 때문인 것 같아서요. 여러분들이 말씀해주신 178-179쪽의 서술들도 같은 맥락에서 좋았어요.
저는 소설이 중후반부로 넘어가며 딴산이라는 지역, 그리고 그곳에서 질병을 매개로 형성된 공동체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뤄지면서 이 작품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단일한 사태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질병을 낙인찍고 차별해온 오랜 역사를 환기해주는 것 같아 좋았어요. 딴산이 결핵 환자들의 은둔처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기 직전까지(219~220쪽)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머릿속에 소록도 같은 지명을 떠올린 분이 왠지 저뿐만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비록 두 지역민들이 겪은 질병의 종류, 국가 폭력의 직간접성 등에는 차이가 있지만요.)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딴산 주민들이 국가로부터 방치, 소외, 배제의 경험을 반복하는 장면에서는 실제 현대사의 일면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이야기를 읽거나 볼 때 시대나 제도가 보통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옭아매는지(그리고 인물들이 이 현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주목하는 편인데요. 『마주』에도 주세법 같은 행정 조치가 만조 아줌마의 삶을 규제하고 뒤바꾸는 면면(238~239쪽)이 엿보여서 좋았습니다.
다른 분들처럼 저도 초반부를 집중하기 힘들었는데요, 저만의 느낌이 아니라는 게 신기하네요. 저는 다소 산만한 이 이야기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어떤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결핵이 힘든 질병이라지만 왜 이렇게까지 외상적으로 다뤄지는지, 화자인 나리가 겪었던 '여성적 이미지'와의 불화, 어머니와 딸의 관계, 판데믹 시국 이야기, 나리와 수미의 관계, 중간중간 등장하는 만조 아줌마 이야기, 수미와 딸의 관계, 등등... 이것들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각각 중심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만조 아줌마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소설이 안정되었다고 느꼈는데요, 김지운 편집자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결핵이라는 질병도 코로나와 연결되었을 때 제 자리를 찾았다고 느꼈어요. 사실 딴산 이야기가 나오고, 그것이 코로나의 격리 상황과 연결되기 전에는 결핵이 뭔가 너무 추상적인 상징처럼 다가왔었거든요. 질병을 그것 자체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어떤 정신적인 상태의 상징으로 쓰는 경우를 종종 봤던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식의 사용에 공감이 잘 안 되어서요. 그런데 딴산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뤄지면서 소설 속에서 결핵이라는 질병이 갖는 의미가 뚜렷해지면서 확장되고, 현실의 다른 여러 부분들과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층위의 의미들이 함께 다가왔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결이 드러나는 부분을 꼭 이렇게 숨겨두었다가 보여줘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 103쪽까지도 "만조 아줌마도 지금을 겪고 있다. / 나는 그 당연한 사실에 가볍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문장이 있는데 저는 아무래도 화자가(혹은 소설이) 서사적인 완급조절을 위해 뭔가를 말 해주지 않는다고 느껴지면(물론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답답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알고 봐도 재밌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제가 가장 늦게 감상을 말하게 되는 것 같네요. 우선 선생님들 의견 하나 하나 읽어가는 재미가 있네요. 각자 밑줄긋거나 인상 받은 부분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해서 소설의 완성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하는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도 동의했던 부분들을 먼저 나눠보자면 코로나 시절의 생생함이 가장 먼저 보였습니다. 저는 역사의 어떤 시절을 기록하는 것에 있어서 소설은 정말 뛰어난 형식이라고 믿고 있는데요. 시간이 많이 흘러 이 시절을 통계와 자료가 아닌 감각과 감정의 영역으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정서와 한 사람의 공포와 불안을 또한 고립과 단절을 소설적으로 잘 표현해서 대단하는 생각과 함께 고맙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저도 <여기 우리 마주>를 떠올리며 소설을 읽어나갔어요. 이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정적으로 동의하면서 또 충격을 받아가면서 읽었던 부분은 엄마의 정체성. 풀어서 말해보면 아이를 키우는, 아이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너무 사랑하고 하지만 너무 힘든, 때문에 자신의 존재 자체가 변화되는 것을 낯설어하고 괴로워하고 경우에 따라 분노에 이르는 장면과 인식이 정말 좋았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갑작스럽게 울컥, 하며 목 윗부분에서 뜨거운 물 같은 것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정도로 좋았어요. 감동이라는 것이 대부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가치로 사용되지만 감정이 움직인다는 뜻만 봤을 때 이 소설은 제게 삶과 현실에 관한 부정적이고 잔인한 방향으로 마음이 함께 요동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그 부분에서 큰 동의가 됐습니다
캐릭터를 하나의 명제와 하나의 에피소드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인 자극과 반응을 배치하여 도리어 그 점에서 인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최은미 작가가 최근에 계속 보여줬던 인물의 모습이었지만 비슷하거나 동일하다는 느낌 보다는 새로운 디테일을 잡아 다른 면을 혹은 같은 면이지만 더 깊은 심도를 보여줬다고 느꼈습니다
아쉬운 점을 조금 말해보자면 저 역시 만조 아줌마 부분이 중심서사와 만나는 부분이었는데요. 만조 아줌마와 함께 했던 에피소드와 경험과 그것으로부터 발생된 감정과 생각같은 것들은 독자적으로 놓고보면 좋았고 아름다운 부분도 많았지만 그것이 중심 서사와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효과가 조금 단순하거나 감정을 좋은 쪽으로 해소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마지막에 이르러 딴산의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리는 부분은 뾰족하게 솟아오르며 긴장이 생겨서 좋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소설 이야기이지만, 얼마 전 앤드루 포터의 <다른 날들>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에서도 좀 비슷한 걸 느꼈어요. 소설의 핵심이 되는 어떤 폭력 사건이 있는데, 그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정말 늦게 알려주거든요(500페이지 소설인데 대략 400페이지 정도에 와서야..?) 어느 정도는 당연히 그런 궁금증이 소설을 읽어가게 하기는 하지만 종종 '아니 이제 할 만큼 했잖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하루키 소설은 미스터리한 요소를 품고 있지만 그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느껴서 확실히 그 부분이 저에겐 편안하고 좋은 느낌을 줬던 것 같아요. 내가 그림자인지, 그림자가 나인지, '도시'가 실재하는 건지 어떤지, 내가 어떻게 그곳에 오게 된 건지, 뭐 그런 것들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로 소설을 읽어나가게 되지만 그러면서도 그걸 분명히 알아야만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부분이 충족되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말하자면 위의 의문들이 꼭 해결되지 않아도 상관없고, 그런 것들이 자체로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감각이 있고, 소설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그런 느낌은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정답이 딱 있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요...
잠깐 옆길로 새자면, 저도 <어떤 날들>( 다른 날들이라는 제가 모르는 앤드루 포터의 다른 소설이 있지 않다면 ㅎㅎ) 읽으면서 그 부분이 너무 답답했어요... 심지어 처음에 그 폭력 사건이 있고 경찰이 찾아왔을 때 클로이(딸)는 왜 제대로 진술하지 않고 얼버무렸는지에 대한 설명은 끝까지 설명이 안 되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는 설명해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가던 독자 입장에서는 다 읽고서도 너무 답답했어요 ㅜㅜ
다만 하루키 소설에 대해서도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해보면, 저는 이 소설이 잘 쓰였다고 생각을 하고 여러 면에서 편안함을 주는데도 결국 내가 관심있고 내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이 사람이 다루고 있는 문제, 이 사람이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저의 관심사와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는데요. 예를 들어서 '진짜 '나'라는 건 무엇일까?'라거나, '이곳에 있는 나는 (여러 의미에서) 허상에 불과한 것 아닐까?', '가장 진정하고 순수한 사랑이란 건 일생에 단 한 번만 있을 수 있는 걸까?' 같은 계열을 이루는 이 질문들이... 그런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소설이 큰 울림을 가질 수 있겠지만, 저는 음... 어쩌면 그런 문제를 다루기 때문인지, <도시>에는 경제적으로 불편을 겪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같거든요. 그런 문제들은 하루키 식으로 '그것은 어찌어찌 잘 되었다'고 넘어가는 느낌이고, 어떤 자질구레한 문제들... 가령 새로운 지역에 갈 때의 이사도 너무나 편안하게, 화자와 '이름 없는 커피숍'에서 일하는 '그녀'(이 사람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제가 놓친 걸까요?)도 이미 모든 것이 준비된 집으로 옮겨오게 되고요. 옐로 서브마린 소년도 '이쪽 세계'에서는 소통이 어려운 아이지만 그런 경우에 벌어질 수 있는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아주 넉넉한 집안이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고, 2부의 핵심인 시골의 작은 도서관도 거부라고 할 만한 고야스 씨의 재력으로 운영되니... 누군가는 이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어도 발생하는 문제들이 절실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실 저로서는 ㅎㅎ 그냥 가만히 있어도 엎친 데 덮친 격인 생활을 하다 보니 이렇게 현실에서 추출했다고 느껴지는 문제틀을 접하면 거부감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이상은 접속할 수가 없다는 느낌이에요...
하루키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보원 평론가님 말씀해주신 것과 저도 비슷하게 느꼈고 아마 하루키를 따라 읽어온 독자들 대개가 비슷하게 느꼈을 것 같아요. 편안하고, 매끈하게 잘 쓰였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는 소설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애초에 43년 전 30대의 하루키가 중편소설로 발표했던 것을 개작한 작품이니 하루키가 내내 써온 주요 모티프를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불편하고 어색하더라도 새로운 차원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긴 했어요. (개인적으로 주변에 이번 소설을 읽은 친구들과 얘기 나눠보면 “맛있다. 분명 아는 맛이다. 그런데 이걸 여전히 맛있다고 느끼는 게 좀 자존심(?) 상한다” ㅎㅎ 이런 반응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이 소설을 ‘아는 맛’이라고 느낀다면(말하자면 ‘하루키적인 것들’) 어떤 점이 그런 요소인지 자연히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저는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1.부모 형제와 교류가 거의 없는 소년/남성 1인칭 화자 2.미스터리하지만 아름다운 (대상으로서의) 소녀/여성, 혹은 같지만 다른 두 여성(이전 작품에선 자매, 쌍둥이로 표현되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다른 두 세계의 인물) 3.이 여성과의 섹슈얼한 긴장감 4."현실 세계에서 비현실의 또 다른 세계로 이음매 없이 이동”하는 환상성 5.죽음에 관한 사유 6.의복, 음악, 음식 같은 강박적인 취향의 반복과 이것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 정도일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하루키적인 것’들이 하루키를 좋아하게도, 동시에 또 싫어하게도 만드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 점에서 하루키 소설 역시 1.팬 독자 2.팬은 아니지만 쭉 따라 읽어온 독자 3.하루키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의 반응으로 나눠서 들어봐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제 주변엔 주로 2의 경우가 많고 3의 경우엔 아직 본 적이 없어서 특히 3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떤 작가의 작품을 기대한다는 건 그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 느꼈던 만족감을 또 한번 반복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걸 배반하는 것보다는 익숙하게 변주해주는 것이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방향 아닌가 싶긴 하거든요?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 안에서 모티프를 반복한다는 점이 꼭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관련해서 장르는 다르지만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 게 최근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인데요. 저는 아직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주변에 영화를 본 사람들은 여러 다른 지브리 작품들의 요소요소가 다 녹여져 있어서 하야오 감독 작품의 집대성이란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 작품의 개봉을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렸던 사람들은 바로 그 ‘지브리적 요소’, 더 구체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감독 특유의 감수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일테고요. 그런데 재밌는 건 정작 하야오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볼 게 얼마나 많은데 제발 그러지 말라면서, 그 시간에 다른 영화를 보라고 한다는 것이고, 팬들은 재미있을지 재미없을지 몰라 모르는 다른 영화에 도전할 바에는 익숙하게 좋은 영화를 보는 게 낫다고 말한다는 점이었어요. ㅎㅎ
너무 작품 외적인 얘기만 할 것 같아서 소설 얘기를 덧붙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소설에서 약간 속수무책으로 감동 받았던 대목이 제법 있었어요. ㅎㅎ 특히 소설 속 인물들이 ‘책 읽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로 느껴져서 이입이 됐던 것 같은데요. 책 읽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 너머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고, 그 연결은 도서관을 매개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일종의 메타 소설처럼도 여겨졌어요. 사실 현실의 우리는 그림자에 불과하고 우리의 진짜 역할은 꿈을 읽고 쓰는 그 세계에 있다는 게 이상한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여기 선생님들을 포함해서 저처럼 현실엔 약간 부적응(?)하고 책 읽기에 빠져 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매료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ㅎㅎ
어쩌면 그는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들어감으로써 그 ‘지의 기둥’을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지의 적절한 아웃풋 통로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옐로 서브마린 소년… 그 자신이 그대로 하나의 자립한 도서관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크게 숨을 내뱉었다. 궁극의 개인 도서관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557p
<마주>에 대한 느낌들을 이렇게 같이 이야기하니, 좋았던 요소들이며 아쉬웠던 부분들 모두, 개인적 호불호의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작법의 차원이나 수용의 차원 등으로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네요. 특히 객관화된 방식으로 눈에 보이는 요소들, 그러니까 묘사나 대사 같은 것이 아니라 구성이나 연결들은 얼마간 숨겨져 있거나 상당히 주관적으로 판단되는 부분인 만큼 그런 독해들을 공유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런 개인적 바람들이 많이 충족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감상을 나누면서 대화를 하다 보니 소설에 대한 판단도 좋다 나쁘다, 잘 썼다 못 썼다, 같은 단순한 언어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고요.
하루키의 소설에 대해서라면, 얼마전 제가 한 팟캐스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초반부는 신선하지만 지루하고 중후반부는 지루하진 않지만 진부하다. 이 느낌을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해 보자면, 저는 글이 좀 안 풀리거나 답답하면 하루키 소설을 읽어요. (다른 외국어에 비해 일본어가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해서일 테지만)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 정말로 하루키 문체가 느껴지고, 그 문체가 만들어내는 텍스트의 대기 속에 머무라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펼치면 그게 언제든 그 소설의 공기 속으로 다이빙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저한텐 신선하게 다가오는 요소이고, 소설을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게 해 주는 모종의 가벼움을 주는 동시에 그 가벼움이 주는 특유의 쓸쓸함, 혹은 무게에 하루키의 오리진이 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하지만 주제 의식이랄까, 작품들 사이의 차별성에 대해서라면, 이미 이전 작품들부터 '집대성'이란 표현이 계속되고 있고, 솔직히 '집대성' 된 작품 중에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들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큰 매력을 못 느꼈던 부는분이에요. 과거에 새로웠던 하루키 특유의 몽롱함이 이제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새롭지 않은 세계관이 되었다는 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실과 비현실이라거나, 자아와 그림자라거나 하는 경계와 구분을 걷어내는 작품들이 상당히 많고 문학 작품에서 (어쩌면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현실 인식론이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어김없이 도착하는 곳은 하루키라는 작가가 어떻게 기억될까, 그리마나 오래 기억될까, 하는 궁금증인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또 도착하는 곳이, 하루키 독자로서 그런 질문은 어딘가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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