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이름 붙이기> 그믐에서 함께 읽고 수다 나눠요

D-29
수리분류학의 등장으로 방법론 적으로 보다 객관성'을 확보했을지 모르겠지만, 반대로 인간과 자연의 거리는 그만큼 더 멀어져간 과정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저는 이걸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류학의 방법론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생물분류학에서의 탈주술화 과정'이라 별명을 지어보았습니다. ^^ 세계를 이해하는 작업에 아마추어 대신, '자격'을 갖춘 과학자 집단이 이 활동에 대한 지배력을 장악하면서 과학은 인간과 분리되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그런데 수리분류학의 시대에 이어 등장한 분자생물학에 기반한 분자계통학은 생물과 세계에 대한 이해 과정을 하나의 블랙박스로 만들어놓은 느낌입니다. 다른 예를 생각해보자면, 라디오나 시계같은 걸 생각해봅니다. 예전에는 아마추어들이 진공관 시대에 라디오나 톱니로 가는 시계를 뜯어보고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집적회로 부품 몇개가 모여있는 전자기기를 뜯어보고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거든요. AS담당하는 사람에게 주로 맞기게 된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분류학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알다시피 단순히 분투하는 과학의 이야기가 아니다. 합리성과 이성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무심코, 그리고 현명하지 못하게 인간의 움벨트를 저버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298p, 7장, 캐럴 계숙 윤
우즈가 말하는 세계, RNA가 말하는 세계는 이런 것이었다. 생명은 애초에 계보다 더 크고 더 포괄적인 집단인 세 개의 역domain으로 구성되었다. 한 역은 세균(일반적이고 익숙한 박테리아)이며, 둘째 역은 새로 발견된 고세균Archaebacteria, 그리고 셋째 역은 진핵생물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316p, 8장, 캐럴 계숙 윤
저는 최근에 알게 된 분류 범주로 역domain이 있습니다. 현재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생물의 분류는 5계(원생생물계, 진핵생물계, 식물계, 균계, 동물계 )로 하고 있는데, 현재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사용되는 이 개념 이후 6계, 그리고 3개의 역 등으로 추가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학생들이 배우는 이 5계 개념은 이미 수십년 전의 낡은 개념이라는 것이지요. 생각보다 우리 과학 교육 과정에 손볼 것이 많이 있다는 인상도 함께 받았습니다.
우즈의 제자인 미첼 소긴과 연구팀이 우즈가 그랬듯 이번에도 RNA를 비교하여, 균계fungi가 사실은 식물보다 동물과 더 긴밀한 관계임을 발견한 것이다. (...) 피자 위 버섯은 옆에 있는 토마토보다 우리와 더 가까운 관계인 셈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326p, 8장, 캐럴 계숙 윤
3부를 마무리하면서 7장과 8장에 대한 인상을 정리해보면,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알아내는 과업에서 수리분류학과 분자생물학의 발전과 성장으로 인간이 감각과 직관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부터 멀어진 현대분류학을 소개한 부분이라 정리하고 넘어가렵니다.
멀어지다 못해 완전히 연결이 끊어져버렸죠. '헤니히'부터 시작한 분기학은 정말로 인간의 움벨트가 끼어들 자리가 전혀 없어 보였어요. 지금은 워낙에야 여기저기서 많은 발표를 하니, 공룡은 조류이며, 버섯은 균류라는 것 등등의 분기학적 분류학을 알지만, 솔직히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거부감이 드는 그런거랄까요ㅎㅎ
와... 저도 어제 밤 11시에 4부를 마무리하고, 생각이 확장되는 즐거움을 만끽했었네요!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이었어요! 결국 우리는 움벨트를 되찾아야만 했어요!
당신이 깔끔하고 명료하며 완전한 진화적 분류를 원한다면, 진화의 역사와 당신의 진화계통수의 진실을 지키고 싶다면, 베시와 함께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랑스러운 독자인 당신까지 포함하여 모든 포유동물을 어류라고 보든가, 아니면 어류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354, 캐럴 계숙 윤
태고부터 살아남고자 투쟁한 무수히 많은 조상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무 쓸모가 없었다면, 우리에게라고 왜 그런 것이 보이겠는가.
자연에 이름 붙이기 p.357, 캐럴 계숙 윤
분기학자들은 분류학이 아직 놓치 못하고 있던 인간의 움벨트와의 끈을 잘라버렸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365, 캐럴 계숙 윤
여기까지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아니 작가님! 물고기를 되살리고 싶다고 하셨으면서 왜 사형선고를 내리시나요!"라고 뇌버럭(?)을 했었습니다ㅋㅋ
오늘날 우리는 아주 많은 종류의, 인간이 만든 구매할 수 있는 물건들의 질서를 아무 노력 없이도 자연스레 인지한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385, 캐럴 계숙 윤
우리의 움벨트가 자연의 질서를 보려는 것에서 쫓겨나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회하며 상품에서 질서와 분류를 찾으려고 했다는 것에서 큰 공감을 했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시리얼 박스에 담겨있더라도 그래놀라가 담긴 것과 나이키 신발이 담긴 것을 아주 쉽게 구분하지요. 똑같은 모양의 박스에 담겨져 있는데 우리는 이를 어떻게 빠르고 정확히 구분하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그 답이 움벨트에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우리는 선들을 그어야만 하고, 일정한 인간적 방식들에 따라 선을 그을테지만, 우리끼리도 과학자들과도 항상 정확히 똑같은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408, 캐럴 계숙 윤
분류는 옳거나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고 단순하게 볼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각각의 분류는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그 사람의 비전, 인간의 움벨트가 표현된 것으로,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하나의 변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409, 캐럴 계숙 윤
이름을 알고 싶은 마음은 그 존재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419, 캐럴 계숙 윤
이부분 딱 읽자마자 과거 고등학교 땐가... 배웠던 <꽃>이라는 시의 구절이 생각나더라구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가 지구의 생명에 관심을 가져야만 그 생명체들이 눈에 보이는 거지요. 그저 초록색 식물은 잡초라고 무관심하게 보아왔던 것들도, 그것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고나면 내가 아는 것들의 식물은 유독 더 잘보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이름, 생명의 질서, 생명의 움벨트를 인지함으로써 생명의 세계에 녹아들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고 봐요
본서는 물질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 ‘인식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춘수 시인의 육필 시집. 표제시 <꽃>을 비롯해 88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쓴 육필 원고로 실어냈다. 또, 글씨 한 자 글획 한 획에 시인의 숨결과 영혼이 담겨있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양면적인 일 같습니다. 세계에 체계를 부여하고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반면, 대상을 규정해버림으로써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게 되니까요. 이게 판단의 기준이 되고 권위가 되어 경계를 짓게 되면, 경우에 따라 경계 안과 밖에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생기니까요. 새로운 문제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겠구요. 대신 저자는 이 이름짓기의 한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품습니다. 저는 이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름을 붙임으로써 대상에 인간의 직관이 개입하는 건 막을 수 없는 부분이죠. 하지만 그로 인해 더 가깝게 다가가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쪽입니다. 만약 우리의 세계가 우주의 별을 세듯이 a0001, b1924 이런식으로 되어있었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신비로운 것들을 전혀 신비롭지 않은 것들로 여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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