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제발트 읽기] 『이민자들』 같이 읽어요

D-29
나는 그날 오후 내내 벤치에 앉아 물의 연극을 보고 들었다. 그리고 소금물이 농축되면서 실로 기묘한 석화와 결정의 형태들을 만들어내는, 그 모요하고 오랜 과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형태들은 자연을 모방하면서 동시에 보존하고 있었다. 1990녀에서 1991년 사이의 겨울 내내, 나는 대개 주말과 밤에만 허락되는 얼마 되지 않는 자유시간에 앞에 적어놓은 막스 페르버의 이야기를 집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때로 몇시간 혹은 며칠 동안 전혀 진척이 되지 않는가 하면, 심지어 심심찮게 이전으로 되돌아가기도 해야 하는 매우 힘겨운 작업이었다. 작업이 계속될수록 나는 점점 더 소심해졌고, 그럴수록 작업을 전혀 진척하지 못하는, 일종의 마비상태에 빠져드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소심해져간 것은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묘사하는 대상을 적절하게 재현하지 못할 것 같은 무력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글 쓰는 행위 자체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민자들 293-94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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